553화. 허칠안 vs 조청양
초원진이 손가락을 검처럼 모아 하늘을 향하자, 순식간에 검기가 천지를 가득 메웠다.
조청양은 그 속에서 제 몸이 검의 바다에 위치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발 밑바닥, 머리 위의 하늘, 몸 주변의 공기 전부 검으로 변했다.
이건 검세(劍勢)였다!
초원진은 한 발짝 내디뎌 조청양을 향해 검지를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검이 없었다. 물질이 응고되어 검이 되지도 않았지만, 조청양의 눈에는 천지를 비추는 드높은 검광이 있었다. 검광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예기를 띤 채 격렬하게 날아왔다.
이 검이 내밀어지자 천지가 같이 살기를 뿜었다.
조청양은 천천히 주먹을 쥐고 스트레이트로 검광과 겨루었다. 무사의 개인 위력으로 천지의 살기와 겨루었다.
초원진의 ‘검’이 그의 주먹에 조금씩 파열되었다. 산산이 조각난 검기는 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세로이기도 가로이기도, 삐치기도 기울기도 했다…….
자세히 보면 검은 모든 흔적에 특별한 ‘검세(劍勢)’를 내포하고 있었다. 강호 산인에게는 이곳의 모든 흔적이 전부 최상급의 검법이었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이 검법을 깨달을 수 있다면, 반드시 수련 경지가 크게 성장할 터였다.
“내가 졌군.”
초원진은 경련을 일으키는 듯 오른손을 살짝 떨더니 가까스로 공수한 다음 길을 비켜주었다.
“진법의 응결된 기세를 빌린 네 검은 4품 무사라도 한을 품어야겠군.”
조청양이 극도로 높이 평가했다.
* * *
그는 소매를 털고, 계속해서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남강의 까만 피부 리나를 만났다.
“그럼 이 관문은 힘인가?”
조청양은 그녀를 힐끗 훑어보았을 뿐이었지만 바로 그녀가 역고부 출신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나 역시 주먹을 한 번만 내밀 것이다.”
리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시원시원하군.”
조청양이 웃었다.
리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깊이 숨을 들이쉰 뒤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녀의 흉강이 조금씩 기복을 이루다가 기복이 심해지면서 평지에 광풍이 불었다. 그녀의 모든 호흡은 과장된 기류 운동을 조성하였다.
무형의 힘이 그녀의 몸을 뒷받침하였다. 이건 내력 진법의 증가폭이었다.
그녀는 십여 번 호흡하니 얼굴이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덜미, 팔뚝 등 밖에 노출된 피부 역시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마치 잘 익은 새우 같았다.
쿵쿵, 쿵쿵……. 리나의 심장 박동이 빽빽한 북소리처럼 끊이지 않았다. 보통 무사였다면, 심장이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여 이미 그 자리에서 폭발했을 터였다.
그녀의 혈액은 제방이 무너진 홍수처럼 혈관을 씻어 내렸다. 그녀의 몸은 마치 깊이 잠든 거대한 짐승처럼 되살아났다.
괴상한 무늬가 그녀 피부 표면에 나타났다. 무늬에는 마치 문신처럼 괴이한 미적 감각이 배어 있었다.
철컥!
갑자기 바닥에 균열이 생기더니 리나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았다. 그 과정 중에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니, 쥐어 짜낸 공기처럼 둔탁한 소리가 났다.
펑……!
허칠안은 수년 만에 초음속 전투기가 내는 포효 소리를 다시 들었다.
리나의 주먹은 음속을 뛰어넘었다.
소리는 그저 찰나였고, 마치 포탄이 폭발하는 듯한 더 우렁찬 굉음으로 대체되었다.
많은 사람이 이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이 장면을 육안으로 포착할 수는 없었지만, 소리 변화 덕분에 마지막 폭발 소리가 두 사람의 충돌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었다.
충격파가 청석판을 들어 올려 사방의 집, 나무, 석가산 등의 사물을 전부 날려버리고 쓰러뜨리면서 직경 10m가 넘는 원형 지대를 형성했다.
이 원형 지대 안에는 노출된 지면만 있었을 뿐, 깔아놓은 푸른 벽돌조차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리나는 바닥에 앉아 숨을 크게 헐떡이면서 오른팔을 힘없이 늘어뜨렸다. 손바닥을 포함한 팔 전체의 뼈가 전부 으스러졌다.
조청양이 아픈 주먹을 내젓더니 탄식했다.
“힘만으로 역고부는 세상에 둘도 없군.”
* * *
그는 두 번째 관문에서 체구가 크고 훤칠한 승려를 보았다. 승려는 원한이 깊은 얼굴을 하고 양손을 합장한 채 서 있었다.
“네 모습을 보니 물러나지 않을 듯하군? 역시 나와 겨루고 싶은가?”
자색 장포의 맹주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즉시 사방을 훑어보더니 주위의 농무 장벽을 발견했다. 방향감을 잃기 쉬웠다.
“이건 미진(迷陳)인 듯한데 네 전투력에는 더해지지 않았군.”
조청양이 일깨워 주었다.
“너는 4품조차 이르지 않았는데 내가 한 손바닥으로 너를 때려죽일까 봐 두렵지 않은가?”
항원은 대답하지 않고 뒤로 한발 물러났다. 농무가 바로 움직이더니 그를 통째로 삼켰다.
몇 초 후, 조청양은 귓바퀴를 살짝 움직여 왼쪽 후방을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항원이 끙끙거리는 소리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더니 다시 농무를 끌어들여 조청양 뒤에 나타났다. 하지만 자색 옷의 맹주는 이를 진작에 눈치챘기에 곧장 세차게 뒤로 밀려나 빳빳하게 날아갔다.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 * *
조청양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 농무를 뚫고, 한 정원에 이르렀다. 이곳에서는 음산한 바람이 이따금 불었으며 스산한 소리가 감돌았다. 그다지 진실하지 않은 환영이 허공에서 나풀거리며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너는 3품이 아니다.”
목놓아 우는 귀신들 사이로 이묘진이 허공에 떠서 조청양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몸은 얼핏 실존하는 듯 보였지만, 이는 결코 진짜 육신이 아니라 그의 음신이었다.
도문이 가장 잘하는 게 원신 영역의 법술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영역에 능한 주술사라도 도문보다는 한 수 떨어졌다.
무사는 파괴력과 체술(体術)로 유명했기에, 원신 방면으로는 단점이 없다 할 수 있었지만 그리 뛰어나지도 않았다.
이 만귀대진(萬鬼大陳)은 전문적으로 4품 무사를 누르기 위함이었다.
“나는 지금 확실히 3품이다. 그저 원신은 3품보다 좀 떨어질 뿐이지.”
조청양이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는 선조가 하사한 정혈 덕에 단기간 내에 3품 무사의 무서움과 강대함을 체험했다. 하지만 원신은 여전히 원래 경계에 머물렀다.
이묘진이 허구 거울을 꺼내 허공에 비추니 거울에 조청양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손을 뻗어 거울 속을 뒤지더니 그 사람 형체를 빨아들였고, 손가락을 튕겨 허수아비 몸속에 들여보냈다.
망령이 하나씩 허수아비에게 달려들어 그의 사지와 머리를 짓눌렀다.
이묘진이 손을 내밀어 허공에서 허구의 송곳을 하나 잡더니 허수아비의 미간을 찌르려던 참이었다.
조청양이 기기를 흔들자 허수아비가 갑자기 터졌고, 몸을 짓누르던 그 망령들이 동시에 가루가 되었다.
이묘진이 고개를 들자 갑자기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진영 속에 있는 빽빽한 망령 역시 고개를 치켜들고 처절한 비명소리를 냈다.
형태가 없고 실체가 없는 음파는 마치 조청양의 대뇌에 강철 못을 쑤시는 듯 그의 원신을 교란하고 그의 정신을 유린했다.
이와 동시에 조청양의 옷이 잇따라 반란을 일으켰다. 허리띠가 그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으며 옷이 그를 묶으려 했다. 그는 좌우의 양 소매로 매듭을 짓더니 형태를 바꾸어 양손을 묶었다.
이묘진은 상대가 얼떨떨한 틈을 타 급강하하여 자신을 예리한 화살로 변화시켜 조청양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그녀의 뒤에는 천군만마가 있었다.
망령들이 그녀를 빼곡하게 둘러싸고 그녀를 쫓아다녔다.
조청양은 때맞게 놀라 혀끝을 깨물었고, 혈무(血霧)를 토해냈다.
슉슉슉…….
혈무에 닿은 망령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이묘진은 공중에서 고통스럽게 나뒹굴며 처절한 신음을 냈다. 그녀의 음신이 약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나의 기혈은 3품이고, 나의 혀끝 피는 지극히 강하고 지극히 돌출되어 있다. 네가 음신을 이루지 못하면 나의 혈액을 감당할 수 없지.”
조청양이 웃었다.
“귀신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지. 네가 이 망령들을 직접 거두겠는가, 아니면 내가 네 대신 제도할까?”
그가 비웃었다.
이묘진은 최선을 다했고, 그녀의 음신은 육신으로 돌아갔다. 그런 뒤 그녀는 허리춤의 향낭을 떼고 매듭을 풀어 망령을 도로 거두었다.
조청양은 단숨에 다섯 관문을 연파하였다. 월씨 산장이 고생스럽게 안배했으나 조청양 앞에서는 어린애 장난과 다름없었다. 그는 아주 수월하게 뭉개는 식으로 돌파했다.
“조 맹주는 천하무쌍이고, 세상에서 으뜸 가는 호걸이다.”
“믿기 어렵군. 원래는 고전할 줄 알았네. 이렇게 수월할 줄은 생각지 못했어.”
“조 맹주님, 우리가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무림맹을 위해 힘을 바치길 원합니다.”
위풍당당한 군대가 조청양이 개척한 길을 따라 파죽지세로 쳐들어갔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들은 확실히 조청양이 이렇게 용맹스러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는 아주 치열한 다툼을 고집스럽게도 소꿉장난으로 바꾸었다.
고품 술사가 고생스럽게 진법을 치고, 천인 양종의 걸출한 제자가 직접 주재하며 지켰지만, 이것들 모두 조청양에게 걸림돌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파죽지세였다.
만약 조 맹주가 3품에 들어서지 못했다면, 고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구색연화를 쟁취하는 데 어떠한 걸림돌도 없었으니 식은 죽 먹기라고 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맹주가 사전에 모든 준비를 마쳤군. 어쩐지 그가 여태껏 우리들의 태도에 연연하지 않고, 양최설과 부정문의 퇴출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더라니.”
천기문의 문주가 개탄했다.
“그렇다면 그가 우리를 불러들인 목적은…….”
고결한 소월노는 한 마디 중얼거리더니 이내 침묵을 지켰다.
답은 똑똑히 보였다. 조청양이 각 파벌을 불러들인 목적은 월씨 산장에 맞서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의 진정한 적은 지종 그리고 조정의 군대였다.
나아가 떼지어 모여 온 강호 산인 역시 방비해야 할 적 중 하나였다.
만약 상대가 고작 월씨 산장뿐이었다면, 조 맹주는 혼자서 뭉갤 수 있었다.
천지회 제자들은 울화가 치민 나머지 이를 갈며 함께 모였다가 군웅에게 핍박받으며 계속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이미 진지를 지킬 필요가 없었다. 본래 사람들이 예상하기로는 이는 고전이어야 했고, 오랫동안 힘을 겨루는 전투여야 했다.
절망적인 감정이 모든 제자들의 마음속에 솟구쳤다.
“아이고, 그 미인은 아주 생기가 넘치더군. 하하, 이 몸은 연밥이 필요 없어졌네. 아리따운 여인을 납치해 돌아가야겠어.”
제자들 무리 중에 누군가 추선의를 보더니 갑자기 두 눈에서 빛을 냈다.
추선의의 자태는 미녀가 넘쳐 흐르는 만화루와 비교해도 특출났다.
강호에는 지금껏 구제 불능과 색마가 부족하지 않았다. 즉시 몇몇 사나이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추선의 등의 주위를 빙 둘러쌌다.
지종의 요도가 이 광경을 보더니 음침하게 웃었다.
“이게 맞지. 설사 연밥을 얻지 못해도 아리따운 여인을 납치해 돌아갈 수 있다면 헛수고는 아니지.”
“만약 자네들이 나서지 않으면, 우리가 앞질러 가겠네.”
지종 도사들은 강호 필부들이 손을 써서 마도에 헌신하려 하지 않은 이 지종 ‘반역자’들을 전부 죽이게끔 종용했다.
천지회 제자들은 계속해서 물러나더니 산장 가장 깊은 곳, 구색연화를 키우고 있는 차가운 연못 근처까지 물러났다.
그들이 차가운 연못가 근처까지 물러났는데 더 이상 어디로 물러날 수 있단 말인가?
그때가 되면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채 싸울 수밖에 없었다.
천지회 제자들은 결연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쪽에서 전투는 발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순간 모든 사람이 차가운 연못 방향에서 들려오는 냉소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 맹주, 차라리 잠깐 좀 기다리는 게 낫겠군. 내가 우선 이 도둑놈들을 죽이고 다시 와서 너와 결전하겠다.”
추선의의 미색을 탐내던 그 강호 인사들은 즉시 입을 다물고 생각을 거두었다.
그들은 여전히 허 은라가 너무 무서웠다.
추선의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특별한 마력을 지닌 듯 충분한 안정감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