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화. 3품?
양측의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대기하며 손꼽아 시작을 기다렸다. 시간이 1분 1초 지나가면서 태양이 서서히 머리 위로 떠올랐다.
우시 무렵, 월씨 산장 깊숙한 곳에서 노을빛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노을빛의 기둥 밑부분에서는 아홉 가지 색이 서서히 반짝였다.
연밥이 여물기 직전이었다…….
천기가 손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발포!”
화포의 강철 몸뚱이에 빽빽한 주문이 빛나더니 이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동력에, 우레와 같은 화포 발사 소리가 동반되었다.
엄청난 반동 때문에 묵직한 강철 화포가 뒤로 밀리면서 흙덩이가 대량으로 튀었다.
슉슉슉……!
스산하고도 날카로운 소리 사이로 포탄이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월씨 산장 밖의 장벽 위에 우르르 부딪혔다.
이는 산장 전체를 뒤덮은 반원형의 반투명한 청색 장벽이었다. 포탄이 장벽 표면에서 눈을 자극하는 불빛을 터뜨렸다. 충격파는 마치 허리케인처럼 기승을 부렸다.
산장 밖에서 남궁천유가 1층 방어 진법의 진안 위치에 선 채 홍조를 띠었다. 그는 포탄이 폭발할 때마다 제 몸에서 그것들이 터지는 듯했다. 그는 기혈이 솟구쳤으며 목구멍에서 들척지근한 맛이 솟구칠 정도로 뒤흔들렸다.
신광이 그의 몸에서 번쩍이더니 기기를 끊임없이 주입하여 장벽의 확고함을 유지하였다.
“이, 이건 무슨 진법이지? 방어력이 이렇게 세다니. 이렇게 빽빽한 화포를 막을 수도 있고 말이야.”
둘러싸서 구경하던 각 세력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화포는 대봉 조정이 구주를 무력으로 통치하고, 각 측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중요 수단이었다. 화포의 살상력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스무 문(門)의 화포가 일제히 발사되면 4품 무사도 목숨 절반은 잃었다. 하지만 눈앞의 방어 진법은 그저 격렬한 진동만 일어날 뿐이었다.
이는 진법의 방어력이 4품 무사의 육신보다 더 강하다는 의미였다.
“변방 주성(主城)의 호성(護城) 진법이 떠오르는군……. 월씨 산장에 어떻게 이렇게 강한 진법이 있을 수 있지?”
“맞다, 어젯밤 전투에 술사가 개입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문득 깨달았다.
어쩐지 월씨 산장의 방어 진법이 이렇게 강하다 했다.
“발사!”
천기는 나지막이 입을 떼 다음 사격 지령을 하달했다.
그는 명색이 회왕 밀정으로서 북경에서 여러 해 동안 충성을 다한 만큼 한눈에 진법의 허와 실을 알아차렸다. 이 진법은 기껏해야 세 차례 폭격을 버틸 정도였으며, 그들이 이번에 가져온 포탄은 수량이 넉넉했으니 월씨 산장을 폐허로 만드는 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소리가 갑자기 울리더니 빽빽한 화포 소리 사이로 인파의 귓가에 똑똑히 박혔다.
그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소리를 따라 보니 남쪽 산비탈 위에 선 백의 술사가 보였다. 뒤통수가 사람들을 향했다.
그가 발을 들어 가볍게 구르자 진문의 빛이 밝아졌다.
화포와 상노가 그의 주위에 펼쳐졌고, 포구와 화살이 회전하더니 일제히 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조준하였다.
천추가 낯빛이 변하더니 다급히 말했다.
“물러나!”
뻥뻥뻥……….
쿵쿵쿵……….
불덩이가 겹겹이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하여 삽시간에 스무 문의 화포를 산산이 조각내고, 그 구역을 폐토(廢土)로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화포와 상노는 ‘눈팅족들’을 뒤덮었다.
하지만 고의인지 아니면 조준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는 몰랐다. 화포가 인파 근처에서 터지자, 강호 인사들은 놀란 나머지 머리를 감싼 채 허둥지둥 내빼며 벌벌 떨었지만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십여 명의 회왕 밀정이 화포로 인해 절반 가까이 손해를 입었다. 그래도 천추와 천기가 미리 위기를 알아채 후퇴하라고 명령했기에 이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류 공자는 황급히 도망치다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는 마음속에 의구심이 생겼다.
그 술사가 방금 만약 기습했다면, 틀림없이 완벽하다고 할 정도의 적을 무찌르는 효과를 창조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술사는 왜 굳이 시 한 수를 읊었을까?
“너무 강하다. 고품 술사는 너무 강해…….”
“맞아. 이는 무사가 영원히 닿지 못하는 힘이야.”
무림맹의 각 문파와 강호 산인들은 화포 폭격에서 벗어난 뒤 멈춰 섰다. 그들은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태로 현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제야 한 가지 일을 발견하였다…….
“그 고품 술사가 이미 사정을 봐줬어. 화포가 군중을 피하려고 애쓰더군.”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건가?”
“지금 검은 장포 사람들의 화포는 파괴되고, 방어 진법은 여전히 있는데 어떻게 진격할 계획이지?”
이는 확실히 까다로운 문제였다. 적련 도사가 허공에서 비검을 밟은 채 우렁차게 말했다.
“조 맹주, 언제까지 구경할 작정인가? 연밥이 곧 여물 테니 우리 속히 손을 잡고 진법을 파괴하지.”
“그렇게 번거로울 필요 없네!”
자색 옷의 형체가 허공을 가르며 왔다. 그는 마치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장벽 위에 곧장 부딪쳤다.
원형 장벽이 갑자기 움푹 내려앉더니 2초도 못 가 버티지 못하고 쿵 부서지면서 청풍이 되어 휩쓸었고 먼지를 일으켰다.
남궁천유는 피를 토했고, 아름다운 얼굴에는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에잇…….”
먼 곳에서 양천환이 의아해하며 ‘에잇’ 소리를 냈다.
‘진법이 이렇게 깨지다니…….’
이 광경을 본 장외 군웅들은 순간 다소 망연자실했다.
‘조 맹주가 언제 이렇게 강했지?’
그는 화포 스무 문으로 일제히 폭격해도 찢지 못한 진법을 고작 일격으로 깼다.
‘3품?!’
천기와 천추는 깜짝 놀라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진북왕을 따라 여러모로 애를 썼기에 3품 고수의 기운에 너무나도 익숙했다.
이 기운은 비록 진북왕의 중후함과 강대함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짙은 기시감을 주었다.
“3품?”
적련 도사는 어리둥절하여 허공에 굳은 채로 서서 그 자색 장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조청양, 자네 언제 3품으로 승직했지?”
이 말은 마치 거대한 바위로 군중을 내리친 듯 떠들썩한 소리를 끌어냈다.
‘3품? 조청양이 3품으로 승직했다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쿵’하고 순간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표정은 심상치 않으면서도 다채로웠다. 대봉 강호에는 여러 해 동안 3품 무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무림맹의 초대 맹주가 아직 살아 있다고 알려지기는 했으나 아무도 그를 본 적이 없었다. 나라와 나이가 같은 그 늙은 필부는 이미 강호에서 자취를 감춘 지 수백 년이었다.
조청양이 지금 3품으로 승직했으니 무림맹의 기세는 앞으로 사상 최고 수준으로 팽창할 터였다. 그리고 대봉 조정의 진북왕은 마침 얼마 전에 몰락하였다…….
이는 강호 무사가 부상하리라는 의미인가?
이로 인해 대봉의 구도에 변화가 생길 것인가?
가장 흥분한 이들은 아무래도 무림맹 세력이었다. 3품이 한 강호 조직의 공개 석상에서 버티는 것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배후에서 조직을 조종하는 것은 확연히 전혀 다른 문제였다.
대봉 조정 역시 진북왕 한 사람밖에 없었건만 몰락하지 않았는가.
이제 조 맹주 역시 3품이다. 이는 강호에서 무림맹의 영향력이 세지고, 중원에서 조정에 버금가는 세력이 되리라는 의미였다.
진북왕이 죽은 뒤 조정에는 감정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림맹에는 옛 맹주와 새로운 맹주, 3품 둘이 있었으니 그는 둘째라고 일컬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가 이미 3품이라니…….”
소월노는 아름다운 눈에 기이한 광채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무림맹을 위해 기뻐했고, 또 진심으로 맹주 조청양에 감복했다.
그녀는 조청양보다 한 세대 아래였다. 그녀는 그해 어머니가 루주를 맡았을 때 이 무림맹 맹주는 타고난 자질이 최고 수준은 아니었으며 성격 역시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던 기억이 났다.
만약 전임 맹주가 전혀 도리를 따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의 발탁을 하지 않았다면, 조청양은 근본적으로 무림맹 맹주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청양은 이렇게 여러 해를 거치면서 사실을 통해 자신을 증명했다. 그는 일찌감치 무방 3위가 되어 검주 무림의 패권을 차지했으며, 지금은 심지어 3품으로 승직하여 무사 체계에서 손꼽을 만한 존재가 되기까지 했다.
“맹주가 3품으로 승직했다고요?”
신권방 방주 부정문이 충격을 감추지 못하여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렇게 보니 구색연화를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겠군. 하지만 맹주는 허 은라를 좋게 보니 그의 목숨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야……. 이렇게 보니 우리가 쟁탈에서 물러나 손해가 막대하군.”
묵각 각주 양최설이 유감스러워했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더니 너무 가슴이 아파져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들이 자진해서 물러난 이상, 곧 구색연화가 여물면 그들 두 문파의 몫은 없었다.
부정문은 마음을 모질게 먹고 콧방귀를 뀌었다.
“안 됩니다. 제가 생떼를 부려서라도 맹주의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양최설은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부정문은 조 맹주보다 나이가 어렸기에 생떼를 써도 무방했지만, 그는 조청양보다 한 세대 위였다. 강호는 힘을 높이 사긴 해도 여전히 서열을 중시했다.
그는 차마 나서지는 못했으나 마음이 너무 아팠다.
* * *
이쪽에서는 미친 듯이 기뻐했으나, 다른 한편의 월씨 산장 안에서는 천지회 제자들은 얼굴이 흙빛이었다.
바로 방금 허칠안이 그들에게 주입한 자신감과 열혈 정신이 이 순간 깨끗이 사라졌다.
“하늘이 나 양천환을 낳지 않았다면, 대봉의 오랜 세월은 기나긴 밤과 같을 것이니!”
양천환이 크게 소리치더니 상노와 화포를 조종하여 조청양을 겨눈 뒤 집중사격하였다.
그는 마지막 고집을 부린 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전송으로 빠져나갔다.
쿵쿵쿵!
조청양이 손을 들고 앞에서 살살 문지르니 오롯이 공기로만 조성된 장벽이 나타나 포탄이 터지고 화살이 꺾였다. 그는 3장(丈) 내에 있으면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구경꾼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그가 3품으로 승직했다는 사실을 점점 확신했다. 4품은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갖출 수 없었다.
조청양이 천천히 진법 안으로 들어가 남궁천유 앞으로 걸어가더니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위연의 수양아들이군. 배경이 있는 자는 항상 달라. 자네에게 선택지를 주겠다. 길을 비키면 자네와 승강이하지 않겠다. 비키지 않는다면,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조청양의 성격은 이러했다. 그는 상대방이 지닌 배경을 탐탁지 않아 하는 마음도 정정당당하게 드러냈다.
남궁천유는 그를 쳐다보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몇 초간 잠자코 있다가 옆으로 물러났다.
상대방이 3품인 이상, 그도 죽음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연밥을 수호하는 일은 꼭 완수해야만 하는 임무는 아니었기에 이렇게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조청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월씨 산장 깊은 곳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 * *
두 번째 관문은 검진(劍陳)!
진을 지키는 자는 초원진이었다.
청삼의 장원랑은 발로 진안을 밟은 채 바싹 다가오는 조청양을 무관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상대가 3품이라는 이유로 꺼리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나는 검을 한 번만 꺼낼 것이다. 검이 지나간 후에는 마음대로 드나들어라.”
조청양은 이 말을 듣더니 시선을 그의 등 뒤에 있는 장검으로 향했다.
“네 등 뒤의 그 검인가?”
“너는 내가 이 검을 꺼내게 할 자격이 없다.”
초원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간파했다.”
조청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의기(意氣)의 검이었으니, 자격이 없다는 말은 실력이 아니라 목표가 옳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럼 멀었군.”
조청양은 차분한 어조로 한 마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