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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50화 (593/712)

550화. 무림맹의 규칙

문제는 당대 감정이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로 철천지원수였다.

지금 그는 양대 감정 게임의 바둑돌이다. 감정이 그에게 내보인 건 대부분 선의였지만, 과정이 어떠하든지 간에 사실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

당대 감정은 반드시 그의 몸속의 기운을 되찾아야 했다.

대봉에 기운을 돌려주어야만 국력이 회복될 터였다. 그리고 왕조의 국운과 감정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국력이 쇠약해지면 감정의 실력 역시 쇠약해질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관계가 있는데 당대 감정이 어떻게 기운을 되찾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취하지 않는 건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허칠안은 얼음 창고로 떨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온몸에 오한이 났다.

“너희는 언제 거사할 계획인가?”

허칠안이 물었다.

“위연이 죽고, 허칠안 몸속의 기운을 도로 빼앗고, 내가 4품으로 승직하면.”

구겸이 대답했다.

“왜 네가 4품으로 승직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는 앞의 두 가지 대답은 마음속으로 이미 예상했었기에 전혀 놀랍고 의아하지 않았다.

“4품으로 승직하면 이 엄청난 기운을 포용할 수 있다. 나는 부친의 적자이자 장래의 구주 공주이니 이 기운은 내 것이다.”

‘어쩐지 그가 이렇게 나를 혐오하고 질투하면서 지금 나의 모든 게 그저 그의 이득을 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더라니…….’

허칠안은 생각하더니 물었다.

“네 부친이 네게 알려주었나?”

“물론이다. 만약 나를 계승자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가 어찌 ‘용아(龍牙)’를 내게 맡겼겠는가.”

구겸이 말했다.

“너희의 은신처는 어디에 있는가?”

“허주(許州)에 있다.”

‘허주? 대봉에 이런 곳이 있나……?’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간단히 기억을 더듬어 보았고, 자신이 이 장소를 들어본 적 없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대봉에는 13개 주(州)가 있고, 주(州) 안에는 또 주(州)가 셀 수 없이 많이 있었다.

그는 전생에 또 지리 백치였기에 남방과 북방의 구분 기준도 몰랐다.

“허주가 어디에 있지?”

허칠안이 직접 물었다.

“나,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구겸이 중얼거렸다.

“?”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뭔 말이야. 자기 집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나?’

“허주는 어디에 있지?”

허칠안이 다시 물었다.

“나, 나는…….”

구겸의 희미한 얼굴에 강렬한 고통이 드러났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통에 신음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펑!

그의 영혼이 산산이 흩어져 음풍이 되어 방 안 구석구석을 휩쓸었다.

* * *

밀림 밖, 산비탈. 백의 술사가 시선을 거두고 손가락을 튕기자 적색의 화염이 시체와 승냥이에 불을 지펴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그가 소매를 펄럭이자 잿더미가 갑자기 치솟아 먼 곳으로 날아갔다.

“회왕이 죽고, 원경제가 죄기소를 쓴 후에 기운의 일부가 다시 하락했다. 다음은 위연이다……. 희겸, 네 임무는 완수했으니 가치 있게 죽었다.”

그는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 양손을 뒷짐 진 채 빙그레 웃으며 멀리 걸어갔다.

* * *

한여름, 방 안의 온도는 늦가을처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허칠안은 고요한 실내에 서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내 질문이 어떤 금기에 닿아 희겸의 영혼이 자폭했나? 아니다. 그는 허주까지 얘기했다. 이치대로라면 내가 이 질문했을 때 그의 영혼에 저촉되어 자폭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지금 설령 허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해도 내가 돌아가서 자료를 찾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는 탁자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늘 밤에 얻은 정보를 묵묵히 소화했다.

‘초대 감정은 죽지 않았고, 500년 전의 정통 혈통 역시 남아 있는 후예가 있다. 20년 전, 대봉 국운을 훔친 건 초대 감정이었다. 그들은 줄곧 반란을 꾀하고 있었다…….’

만일 이 정보들이 공포되면 틀림없이 큰 파문을 일으킬 터였다.

온 나라가 들썩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초대는 나를 호구로 삼아 기운을 담았다. 당대는 나를 바둑돌로 삼아 게임에 이용하고 있다. 원경제는 나를 죽이려고 하고, 이는 조정도 기다리는 바이다. 나는 누군가 그를 용의에서 끌어내리지 못하는 점이 한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위연은 나를 아들처럼 대하고, 임안과 회경은 또 나의 여사친인데…….’

허칠안은 무엇이 진퇴양난인지 철저하게 체득했다. 그는 미간을 문지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정석대로 가자. 일에 부딪혀서 결정하지 못할 때는 대빵을 찾아가자. 나는 이 일을 위 공에게 알려야겠다. 어떻게 할지는 그가 골머리를 썩이게 하지 뭐.’

그는 결정을 내린 뒤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품속에서 희겸의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안에는 상노, 화포 등의 중형 살상력 법기가 있었고 보갑(寶甲), 무기 등의 법기도 있었다.

허칠안은 너무 오래 찾지 않고 자단목으로 제작한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는 약 3척 길이였으며 안에는 용과 봉황이 조각되어 있었다.

나무 상자를 가죽 주머니 안에서 꺼낸 뒤 탁자 위에 올려놓고 열었다. 누른빛의 부드러운 비단 위에 약간 구부러진 이빨이 누워 있었다. 약간은 포켓 버전의 상아 같았다.

새하얀 표면에는 빽빽한 부문(符文)이 새겨져 있었다. 허칠안은 이를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이 침침해지고 역겨움에 구역질이 났다.

그는 더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바로 단향목 상자를 덮었다.

‘이게 바로 용아임이 틀림없어. 씁, 이 법기는 약간 과하게 강한 것 같은데……. 희겸의 표현대로라면 용아는 그들 혈통의 지보로, 서열 후계자여야만 지닐 수 있는 것 같은데?’

허칠안은 직감적으로 이 용아가 장차 큰 쓸모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 * *

작은 마을, 촛불이 높이 비추는 두 채 딸린 사합원 안에서 자색 장포 차림의 조청양이 대청 안에 단정하게 앉아 차분한 눈빛으로 양쪽의 문주와 방주를 쳐다보았다.

그 자리에는 총 열여섯 명이 방주와 문주가 있었다. 그중에는 무려 4품 고수 열두 명이 있었는데 다섯 명은 베테랑 4품이었다.

조청양의 왼쪽에는 금색 가면을 쓴 천기가 앉아 있었다.

이 무사는 검주에서 가장 큰 강호 조직을 장악한 사람으로서 손에 차를 받친 채 찻잔 뚜껑으로 잔 가장자리를 가볍게 쳤다. 대당 안은 소리 없이 적막했다. 찻잔 뚜껑과 찻잔 가장자리가 부딪치는 소리만이 미약하면서도 맑고 깨끗하게 울렸다.

“양최설, 부정문(傅菁門). 자네 두 사람은 정말 이번 행동에서 빠질 것인가?”

조청양이 담담하게 말했다.

양최설은 묵각의 각주고, 부정문은 신권방의 방주였다. 어젯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허칠안 대신 세 명의 연화 도사를 막았다.

그들은 부상을 좀 입어 안색이 다소 창백했다.

조청양의 물음에 두 사람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문이 나지막이 말했다.

“조 맹주님, 연밥은 저한테 물론 지보이긴 하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더러 허 은라를 적으로 삼으라고 한다면 명령에 따르지 않음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조청양이 ‘허’하고 소리 내었다.

“허 은라가 자네에게 은혜를 베풀었나?”

부정문이 고개를 저었다.

“저희 신권방의 권법은 강함에 있고, 올곧음에 있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데 있습니다.”

조청양이 다시 양최설을 쳐다보더니 무표정으로 말했다.

“양 문주, 자네 묵각의 검법은 엉큼한 기술이 적잖은데 자네는 또 무슨 이유인가?”

양최설이 공수하더니 개탄하였다.

“이 노인네는 소년 호걸과 친구가 되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저는 허칠안이라는 자를 아주 좋게 봅니다. 단지 이뿐입니다.”

조청양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의 명령이 자네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개소리니 듣고 나서 잊는 건가?”

그의 어조는 시종일관 아주 무미건조했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늘 시원시원했던 조청양이 만약 이런 태도를 보일 때는 기분이 아주 나쁘다는 의미임을 충분히 이해했다.

위험했다.

만화 루주 소월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 맹주님, 양 선배와 부 형이 일부러 맹주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게 아닙니다. 그저 대장부로서 어떤 일은 행하고, 어떤 일은 행하지 않을 뿐이지요. 게다가 그해 무림맹이 성립했을 때, 초대 맹주께서는 우리 각 파벌과 약속하셨습니다. 공적인 명령은 듣겠으나 사사로운 선포는 듣지 않겠다고요. 만약 무림맹의 명령이 도의를 거스르고 자신의 의지와 반한다고 생각이 들면 거절할 수 있습니다.”

“공적인 명령은 듣겠으나 사사로운 선포는 듣지 않는다니 대단하군요.”

천기가 냉소를 지었다.

“조 맹주님, 저는 줄곧 무림맹이 검주를 독점하고, 맹주께서는 더욱이 영향력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소문이 결국에는 소문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 일이 만약 퍼져나가면 어떻게 강호에 발을 붙이시겠습니까?”

조청양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대인께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천기는 품속에서 황제가 하사한 금패를 꺼내 가볍게 책상에 놓고 차디찬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조정의 제도에 따른다면, 공공연히 명령을 어긴 자는 용서받을 수 없지요.”

조청양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인,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천기는 콧방귀를 뀌었다.

“조 맹주님, 무림맹이 아무리 커도 조정에는 못 미치지요. 모두가 손을 잡고 연밥을 빼앗으면 쌍방이 모두 이롭습니다. 지금 묵각과 신권방이 공공연히 허칠안과 한패가 되었으니 폐하께서는 그들을 용납하시지 않을 겁니다. 무림맹은 이 기회에 버릴 건 버리고 살길을 모색하고, 웬만하면 공을 세워 그 대가로 죄를 면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추후 폐하께서 군대를 파견해 토벌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잘 아시겠죠. 설령 맹주께서 아직 계신다고 해도 고작 두 사람을 위해 조정과 맞설 가치가 있습니까?”

천기가 이번에 온 건 상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위함이었다.

고작 강호 패거리가 하마터면 폐하의 큰일을 망칠 뻔했다. 그들은 분명히 조정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이 바람이 길어지면 안 됐다.

“그럼 더는 할 얘기가 없군요.”

조청양이 탄식했다.

천기는 이 말을 듣더니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비록 폐하의 죄기소가 그의 위신을 확 떨어뜨리고, 조정의 위압적인 힘을 크게 깎아 먹었지만 조정은 어쨌거나 조정이었다. 그리고 조정은 이런 강호 필부에게 있어 맞먹을 수 없는 거대한 물건이었다.

어차피 그도 이따금 대세를 고려하지 않는 경솔한 놈 한둘이 일을 망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원흉을 제거해서 바람을 끄기만 하면 되었다.

다음 순간, 조청양은 손바닥으로 천기의 이마를 눌러 그를 사합원에서 밀어냈다.

기기가 천둥처럼 폭발하더니 기둥과 담이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다.

대청 안에서 사합원 밖까지는 고작 십여 장(丈)의 거리였다. 두 사람의 기기는 백 번을 겨룰 수 없었다.

검은 장포를 두른 천기의 신체가 사합원 밖 길가에 묵직하게 떨어졌다. 가면에 균열이 생기고 이마의 선혈이 파손된 가면을 따라 흘렀다.

조청양은 보잘것없는 작은 일을 한 것처럼 그저 손을 내저었을 뿐이었다.

“조청양, 무림맹의 육백 년 사업을 망치고 싶은가?”

천기가 벌컥 성을 냈다.

그는 능숙한 4품이었다. 비록 전봉까지는 꽤 거리가 남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이렇게 쓸모없어서는 안 되었다. 방금 맞붙었을 때 그는 조청양의 기기에 도저히 대항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과 상대가 아주, 아주 큰 차이가 난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자신이 그와 정말로 맞붙기 시작하면 백수 안에 죽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무방(武榜) 3위는 전율할 정도로 강대했다.

“무림맹에는 무림맹의 규칙이 있다. 육백 년 동안 맹주가 하나씩 바뀔 때마다 언제 조정의 개 노릇을 한 적이 있었는가?”

조청양이 담담하게 말했다.

“너는 돌아가서 황제에게 알려라. 군대를 보내 토벌하든지 사람을 보내 암살하든지 얼마든지 와라. 무림맹이 이로 인해 궤멸한다고 해도 선조들은 엄지를 치켜세우고 나에게 한마디 할 것이다. 무림맹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았구나.”

천기는 침울한 표정을 지을 뿐 감히 독설을 퍼부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 너를 죽이지 않는 이유는 두려워서가 아니라, 네게 그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조청양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자색 장포의 소매를 흔들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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