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화. 구겸의 신분
허칠안은 방 안에서 문과 창문을 잘 닫고 향낭을 열어 구겸의 영혼을 다시 풀어냈다.
음풍이 불자 실내 온도가 떨어졌다.
구겸은 지주 집의 멍청한 아들처럼 공중에 멍하니 떠 있었다.
“이름이 뭐지?”
허칠안이 떠보며 한 마디 물었다.
“희겸(姬謙)이다.”
구겸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허칠안은 침음하면서 잠시 어휘를 골랐다.
“너는 도대체 정체가 뭐지?”
“대봉 황족이다.”
구겸은 기복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허칠안의 머릿속에는 세찬 조수와 함께 해일이 일면서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듯한 효과가 발생했다.
‘그가 대봉 황족이라고?! 어쩐지 그의 성이 희씨라니. 아니다, 대봉 황족에 이런 인물이 있었나?’
허칠안은 이런 저런 생각이 번뜩였지만 애써 침착해지려 노력하면서 나지막이 물었다.
“어느 혈통이지?”
그가 이렇게 물은 이유는, 경성 종실에는 절대로 이런 인물이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대봉 국조(國祚)가 육백 년간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혈통을 잇는 지맥이 너무 많았다. 이 희겸은 방계거나 어느 분의 사생아일 것이다.
그렇기에 허칠안은 그가 어느 혈통인지 물었다.
구겸은 중얼거렸다.
“오백 년 전의 정통 혈통이다.”
허칠안은 자칫하면 자신의 표정을 절제하지 못할 뻔했고, 갑자기 팔을 떨었다.
‘오백 년 전의 정통이면 즉 그는 무종 황제에게 죽임당한 선황의 후예라는 말인가? 그 선황에게 남은 핏줄이 있었다고? 그 황제의 혈통은 간신 손에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나……? 악, 그 역사는 틀림없이 왜곡된 것이다. 사서는 믿을 수 없다. 하지만 무종 황제 같은 뛰어난 임금이 화근을 철저히 없애버린다는 이치를 모를 리가 없다.’
“네 민족은 어떤 지위인가?”
“나는 부친의 적자다.”
“네 부친이 누구인가?”
“그는 희소(姬霄)라고 한다. 그는 반드시 구주의 공주(共主)가 되어 원경제를 대신할 것이다…….”
‘오백 년 전의 그 혈통이 복수하기 위해 돌아왔나? 내가 태자를 죽였구나…….’
허칠안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하늘을 놀라게 할 만한 이 정보를 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뒤 그는 이어 물었다.
“내 몸의 기운은 어떻게 된 일인가?”
그는 우선 희씨와 관련된 정보를 묻지 않고 바로 문제의 핵심에 이르렀다.
“…….”
구겸은 침묵하였고, 또 침묵하였다.
‘내가 좀 지나치게 흥분했군…….’
허칠안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허칠안 몸의 기운은 어떻게 된 일인가?”
“그의 몸의 기운은 그 대인이 그의 몸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원대한 계획과 패업의 조력자요, 감정에 대항하는 근간이요, 우리의 중원 쟁탈 계획에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구겸은 이 말들을 할 때 얼굴에 보기 드물게 생동감이 넘쳤다.
이 일은 아마 그의 영혼 깊은 곳에 낙인된 듯했다.
“그 대인이 누구지?”
허칠안은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다음 질문을 입으로 내뱉을 뻔했다.
<왜 기운을 내 몸에 맡겨야 했는가.>
이때 구겸은 표정이 확연히 일그러지더니 발악했다.
* * *
고요한 밤하늘, 가늘고 높은 벌레 울음소리가 울렸다.
밀림 밖 산비탈에서 승냥이 몇 마리가 시체를 뜯어 먹는 중이었다. 그들은 입에서 ‘우우’ 위협적인 소리를 내뱉어 동료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흰 장화를 신은 두 발이 허공에서 떨어져 구겸의 머리 없는 시체 옆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는 눈처럼 새하얀 사람으로 하얀 옷과 하얀 신발은 검은 머리카락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의 얼굴에는 짙은 안개가 겹겹이 덮여 있어서 마치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듯했다.
그의 존재는 한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애써 인기척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승냥이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시체를 뜯어 먹었다. 승냥이들은 본래 더할 나위 없이 예민해야 했지만 지금은 백의 형체가 출현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백의 형체는 고개를 숙인 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시체를 훑어보더니 별다른 표정 없이 시선을 옮겨 월씨 산장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을 주시하더니 가볍게 웃었다.
* * *
구겸은 표정이 일그러지고 발악하였다. 허칠안은 이런 상황을 처음으로 맞닥뜨렸다.
‘사람이 막 죽고 세 개의 영혼이 다 모이지 않은 상황에서는 지주 집의 멍청한 아들이 돼서 묻는 대로 답한다고 이묘진이 말하지 않았나?’
이때 구겸은 표정이 점점 평온해지더니 초점 없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가 초대 감정이 아닐까 의심된다.”
“…….”
허칠안은 머릿속에 우렁찬 천둥이 치는 듯 모든 생각이 산산이 조각났고, 머리가 웅웅 울리면서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아주 긴 시간을 들여서 비로소 이 폭발적인 정보량으로부터 평온을 되찾았고, 구겸의 대답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구겸은 ‘의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허칠안은 이 두 글자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두 가지 추리해낼 수 있었다.
하나, 구겸은 그가 속한 세력에서 결코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가장 핵심적인 기밀을 접하지 못했다.
둘, 구겸이 이렇게 의심한다는 건 그가 어느 정도 내막을 파악했다는 의미기도 했다.
허칠안은 주의력을 집중하여 캐물었다.
“네 근거는 무엇이지?”
구겸은 기복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우연히 들었는데 그는 당대 감정을 악인이라고 칭했다. 또한, 그가 나와 나의 형제자매에게 말하길 우리 물건을 결국에는 다시 빼앗아올 것이라고 했다. 오백 년 동안 꾹 참은 건 자신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허칠안은 잠자코 있으면서 마음속으로 잠시 분석한 결과 희겸의 추측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해 초대 감정은 죽지 않았고, 후수를 남겨 두었다. 그래서 그 황제의 후예를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무종 황제가 화근을 철저하게 없애버릴 수 없었던 게 바로 이 이유…….’
이는 논리에 부합했고, 말이 되었다.
동시에 허칠안은 이 점을 검증할 여러 디테일이 떠올랐다.
‘나는 또 다시 타입슬립한 이래로 겪었던 모든 일과 모든 사건을 복기해야겠다……. 가장 처음은 세은 사건이다. 전 호부 시랑 주현평,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한 사람이 바로 오백 년 정통 혈통이다. 그가 20년간 횡령한 백은 몇백만 냥의 행방이 드디어 설명된다……. 반역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가? 돈이다. 운주 사건은 제당 병부상서와 무신교가 결탁하였다. 하지만 운주에서 사건을 조사할 때 초대 감정으로 의심되는 그 신비로운 술사가 나와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첩자를 잡는 데 도움을 주었고, 암암리에 나를 도왔다. 그가 나를 도와준 목적이 무엇인가. 이유가 없다…….’
운주 때 발생한 이 일은 가시처럼 시종일관 허칠안의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상응하는 단서와 증거가 부족하여 짐작할 수가 없었다.
‘최근은 진북왕의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왕비가 사절단을 따라 비밀리에 초주로 갔다. 이는 원경제가 조정의 앞잡이에 대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에 이미 조정에 여러 대신이 암암리에 신비로운 술사와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 추리해 냈다. 그래. 만약 신비로운 술사가 초대 감정이라면, 배후 세력은 오백 년 전의 대봉 황실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합리적이다. 알아야 할 건 일부 신하는 일찍부터 은근히 원경제가 도를 닦는 데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마도 이미 초대 감정에 의해 암암리에 반란을 꾀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모두 대봉 황족이다. 어차피 네 혈통은 쓸모가 없는데 내가 왜 오백 년 전의 그 혈통에 빌붙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진정한 주인이다. 게다가 신비로운 술사는 오랑캐가 왕비를 납치하는 걸 도왔다. 이 역시 아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왕 초대 감정이 반란을 꾀하려는 이상, 분명히 진북왕이 2품으로 승직할 수 없게 해야 한다. 심지어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 병법에 정통한 2품 무사의 존재는 반드시 그들의 반란 사업에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따라서 초대 감정의 모든 계획은 전부 대봉 국력을 약화시키는 데 있다. 이 목적을 캐치해서 반대로 생각한다면…….’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눈동자가 약간 수축되었다. 그는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위연은?’
반란을 꾀하려면 반드시 죽여야 할 인물 첫 번째는 감정이며, 그다음은 아마 위연일 것이다.
진북왕과 비교했을 때, 위연은 고작 몇 달이라는 시간 만에 기세가 등등해졌기에 무적이라고 불렸다. 그는 북방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과 싸워 낙화유수를 만들어버린 병법의 대가였으며 후방에서 책략을 세워 인류 역사상 가장 장렬한 전역에서 승리하였다. 그는 산해관전역의 초대 군신이었다.
그야말로 진정으로 제거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위연은 당대 감정에 버금갈 정도로 거슬리는 인물이었다.
‘음, 위 공은 확실히 줄곧 군신들에게 공격당했지. 급사중 그 키보드 워리어들은 걸핏하면 소리쳤다. 폐하께서 이 흉악한 개 머리를 베어 주십시오. 그중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이미 초대 감정에 빌붙었는지는 모르지……. 제기랄, 잠깐!’
그의 머릿속에 번개가 치더니 이미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작은 일들을 밝게 비추었다.
그는 한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표면적으로는 황후를 겨냥하고, 황태자와의 싸움까지 영향을 미쳤지만, 실제로는 은근히 위연을 가리킨 사건이었다.
복비 사건!
‘생각해보자. 만약 이 사건에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이 초래할 결과는 황후는 폐위되고 사황자는 적자에서 서자로 좌천되어 더는 제위를 계승할 가망이 없어진다. 사황자를 도와 황위를 계승하는 게 위 공이 포부를 드러낸 발단이다. 이렇게 보면 위 공과 원경제는 군신 관계가 결렬된다. 그들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균열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복비 사건의 배후 주동자는 진 귀비였다. 진 귀비 배후에서 누군가 지지해주는 건 사실이다. 음, 이렇게 생각해보니 애당초 그 하아라는 여종이 기기를 차단하는 법기를 몸에 지닐 수 있었다는 게 아주 재미있군.’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미간을 문지르더니 무력하게 개탄했다.
“술사는 모두 약삭빠르다.”
복비 사건은 아마 그저 위연을 상대하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심지어 서막이라고 칠 수도 없다.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다.
“기운이 왜 허칠안의 몸에 있는 거지?”
그는 마침내 가장 중요한 이 문제를 물었다.
구겸은 멍청하게 서서 대답했다.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어떠한 이유로 기운을 어쩔 수 없이 그의 몸속에 둘 수밖에 없다는 것만 안다. 본래 경찰 연말의 세은 사건 때 그는 경성 밖으로 내보내질 예정이었다.”
“왜 이렇게 큰 양상을 조성해 허칠안을 경성 밖으로 ‘내보내려는’ 거지? 너희들이 바로 사람을 파견해 납치할 수는 없나?”
구겸은 생기 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모른다.”
허칠안이 물었다.
“네가 허칠안을 인곤으로 깎아서 데리고 돌아간다고 말했는데 너는 그렇게 그를 증오하면서 왜 바로 그를 죽이지 않았지?”
구겸이 대답했다.
“그는 기운을 담은 용기다. 기운을 가져오기 전에 용기가 깨져서는 안 된다.”
‘기운을 가져오기 전에 용기가 깨져서는 안 된다면 나한테는 좋은 소식이네…….’
허칠안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기운을 빼내지?”
구겸이 말했다.
“나는 모른다. 하지만 부친과 그 대인은 줄곧 그에 맞는 준비를 아주 여러 해 동안 하고 계신다.”
‘기운을 빼내는 일이 힘들거나 아니면 과정이 번거로운 모양이다. 마치 그해 초대 감정이 온갖 궁리를 다 해서 비로소 국운을 훔쳤듯이 말이지……. 그의 일련의 계획을 분석해보면 초대 감정은 더는 전봉이 아닌 듯하니 어쩔 수 없이 기다리면서 도모할 수밖에 없다. 사고를 바꾸어 생각해보면 만약 대봉 국력이 계속해서 쇠약해지면 당대 감정 역시 이런 궁지에 몰리지 않을까? 음, 이건 아주 중요한 정보다.’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너는 기운을 빼낸 뒤에 용기가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그는 구겸을 주시하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구겸이 답했다.
“당연히 죽음이지.”
‘……쒯!’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상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기운을 빼낸 후에는 그가 죽을 거라고?!’
그렇다면 초대 감정은 그의 철천지원수였다. 이 점은 이미 의심할 여지도 돌이킬 여지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