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8화. 냉정한 분석
허칠안이 침음하더니 말했다.
“남궁천유가 빈자리를 메울 수 있습니다.”
양천환은 전혀 체면을 살려주지 않고 허허허 웃었다.
“자네의 금강신공과 비교하자면 4품 무사의 신체와 정신은 그래도 좀 부족하지. 자네 잊지 말게. 회왕 밀정의 손에 화포와 상노가 있네.”
금련 도사가 고개를 저었다.
“남궁천유는 본래 계획에 있었네. 결코, 추가로 나온 뜻밖의 기쁨이 아니야.”
적군에는 지종, 4품 여섯 명, 3품 경인 도사의 분신이 있었다. 또한, 회왕 밀정, 4품 무사 둘, 나머지 고수가 다소 있었다. 무림맹에는 3품에 준하는 초특급 고수 한 명과 4품 문주와 방주가 약간 있었다.
그가 제 편에서는 4품 전투력을 지녔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금련 도사, 백련 도사, 초원진, 이묘진, 허칠안 그리고 양천환과 남궁천유가 있었다.
이에 비해 천지회는 고작 지종과 회왕 밀정 연합을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홈그라운드 어드벤티지와 진법 설치로 맞먹는 저력과 여러 측 세력이 있었다.
금련 도사의 계획에 따르면 연밥이 여무는 걸 책임지기만 하면 산장을 버릴 수 있었고, 애써 고수하며 사투할 필요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여길 지킬 수 있다는 전제하의 이야기였다.
‘이상하다. 내 상태가 회복되든 말든 사실 연밥을 지킬 수 없잖아. 설령 내가 강호 산인과 무림맹의 4품 고수 일부를 퇴출시킬 수 있다고 해도 말이야. 하지만 진귀한 재물은 사람 마음을 움직이니까 모두가 내 체면을 내세울 리는 없다. 기껏해야 그때 가서 사정을 봐주는 정도겠지. 이렇게 보니 사실 결국에는 지킬 수 없다고……’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철렁하면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금련 도사, 그는 또 무언가 기댈 구석이 있는 건가?’
허칠안이 막 생각하던 참에 금련 도사가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허칠안, 자네 무슨 생각이 있는가?”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금련 도사는 다소 주름살이 진 눈으로 부드럽게 그를 바라보면서 일깨웠다.
“다시 잘 생각해 보게.”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주시하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은 평온한 듯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수많은 정보가 은연중에 스치는 중이었다.
‘금련 도사의 말이 무슨 뜻이지? 그가 내 비밀을 안다고……? 기운 아니면 신수? 도사님은 나와 감정이 애매한 관계라는 걸 안다. 알지 못하는 건 내가 대봉의 국운을 품고 있다는 건데……. 내가 기억하기로 지난번에 지하 궁전에서 나와 미라를 제압했다는 핑계로 감정이 내 몸속에 한 수 남겨 두었다고 변명했었다. 틀린 것도 아니다. 확실히 한 수 남겨 두기는 했다.
그러므로 금련 도사는 감정이 남긴 한 수가 아직 있다고 여기는 건가? 이게 바로 그가 줄곧 생각한 방법인가? 어쩐지 그가 이렇게 침착하더라니. 도사님은 내가 최상급 강자의 전투력을 폭발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지하 궁전 그때처럼. 아니면 금련 도사님은 이미 신수가 내 몸속에 있다는 걸 안다. 초주의 신비로운 고수가 외부인의 눈에는 확실히 신비롭지만, 일부 지인들의 눈에는 사실 탄로 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금련 도사가 상백 사건에 참여했었고, 봉인물과 불문이 관련 있다는 걸 알고, 도사님은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내가 지종 도사 앞에서 허풍을 떨었던 걸 수만 명의 사람들이 다 들었다. 후, 도사님이 대봉 관리 사회의 인물이 아니라 다행이다. 그랬으면 아주 곤란했겠어…….’
허칠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정말 생각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우선 신수 승려는 이미 잠들었으니 깨울 수 없으므로 이 아이템은 잠시 사용을 중단해야 했다. 감정의 경우, 이 늙은 남자는 셈이 깊었다. 이렇게 무서운 인물은 근본적으로 허칠안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정말 방법도 비장의 카드도 없었다.
금련 도사는 눈동자가 다소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흐른 뒤 그는 탄식했다.
“됐네. 일이 이미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모든 건 하늘에 맡길 수밖에.”
사람들은 이 말을 듣자 한숨을 내쉬었다.
“참…….”
갑자기 금련 도사가 고개를 돌려 초원진을 쳐다보았다.
“내가 이 일을 낙옥형에게 알리라고 했는데, 자네 전했는가?”
초원진은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도사가 애써 이 일을 언급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전했지요.”
금련 도사는 황급히 캐물었다.
“그녀가 뭐라고 하던가?”
“국사께서는 ‘몸조심하게’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초원진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국사는 본래 이렇게 냉담한 성격의 사람이라 너무 많이 당부할 리가 없었다.
금련 도사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약간은 기대하면서 약간은 절실한 태도로 물었다.
“그, 그녀가 자네에게 무슨 물건을 주었는가?”
초원진은 깜짝 놀라더니 말했다.
“도사님께서는 이마저도 알아맞히실 수 있다니요……. 사실 국사께서 제게 호신부(護身符)를 하나 선물해 주셨습니다.”
“어, 어서 꺼내 보게…….”
금련 도사는 연거푸 말했다. 누구라도 그의 놀람과 절박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초원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품속에서 잘 접힌 칙령에 붉은 끈으로 뚫은 호신부를 꺼냈다.
“이건 그저 보통 호신부라 무슨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사실 초원진은 이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이는 국사가 그에게 선물한 물건이었기에 ‘윗사람’의 성의인 셈이었다.
금련 도사는 손을 뻗어 호신부를 집었다. 그의 눈빛에는 약간의 홀가분함이 내비쳤다. 그런 뒤 그는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했다…….
“허칠안, 이 호신부를 자네가 챙기게.”
“???”
모든 사람이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도사님, 왜 저에게 주십니까?”
허칠안의 표정은 막연했다.
‘도사님, 초원진이 저를 먹으려고 해요. 그의 눈빛을 보세요. 어서 그의 눈빛을 보시라고요…….’
금련 도사는 다시 신중하고 노련한, 약삭빠른 사람으로 변한 듯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묻지 말게. 내일이면 알게 될 걸세. 음, 마지막 관문은 자네가 연못 밖에서 지키게.”
허칠안은 막연히 금련 도사의 전음을 받았다.
“위급한 순간에 호신부를 태워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낙옥형한테? 놀리지 마세요, 도사님. 저와 이모는 친하지도 않은데 그녀가 제게 부검을 선물한 것만으로도 이미 체면을 살려준 거라고요. 근데 제가 어떻게 또다시 그녀를 성가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저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라고요. 도라에몽!’
허칠안은 그 정도 친분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말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는 약삭빠른 도사를 알았다. 금련 도사는 만약 확신이 없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금련 도사님, 이게 무슨 의미지요? 국사가 제게 선물한 호신부를 무슨 까닭으로 허칠안에게 준다는 거지요……?’
초원진은 모욕당한 듯한 기분에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예지로우면서도 냉정한 사람으로 분석(뇌피셜)에 능했으므로, 곧 사고를 전환하여 금련 도사의 의도를 생각하며 브레인스토밍을 펼쳤다.
이묘진과 항원 대사 역시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쓸데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리나야말로 멍청했다. 그녀는 자신의 뇌세포를 유달리 아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를 쓸 계획이 없었다.
이때 추선의가 제자 몇 명을 데리고 뜨끈뜨끈한 밥과 음식을 받들고 왔다. 순식간에 향기가 방안에 그득했다.
암탉탕, 족발, 찐 새우, 옥수수빵, 찐 양고기, 졸인 돼지고기…….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렸다.
꼬르륵…….
허칠안과 리나는 동시에 침을 삼켰다.
“허 공자님, 공자님을 위해 주방에서 준비한 겁니다. 깨어나셔서 드시기를 기다렸어요.”
추선의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맞아요. 선의 사매가 직접 만든 거예요.”
한 여제자가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
추선의의 얼굴이 빨개졌다.
허칠안은 황급히 감사를 표한 뒤 다소 어색하게 금련 도사와 백련 도사를 쳐다봤다. 그는 그들의 표정이 평소와 다름없는 것을 보고, 그들이 이성을 그리는 제자 때문에 불쾌해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그럼 방해하지 않겠네.”
금련 도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장서서 떠났다.
초원진 등도 뒤따라 떠났다.
리나는 가지 않았다. 그녀는 두 발이 봉인된 채 쪽빛 눈동자로 허칠안을 절박하게 쳐다보았다.
“같이 먹읍시다.”
허칠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고 바로 옥수수빵을 집어 졸인 돼지고기와 양고기와 곁들여 먹었다.
“허 공자님, 맛이 어떤가요?”
추선의는 입을 오므리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선의 사매 솜씨가 아주 좋구려.”
허칠안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칭찬하더니 뒤이어 탄식했다.
“다만 차를 우리는 솜씨는 좀 부족하오.”
“저는 차를 우리는 솜씨도 아주 좋아요.”
추선의는 억울해하며 변명했다.
허 공자는 추선의가 우린 차를 마신 적도 없는데 이렇게 독단적이었다……. 그녀는 허 공자에게 무시당한 듯한 기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말한 건 녹차(*여우짓 하는 여자를 빗대는 말)요.”
허칠안은 빙그레 웃었다.
“우리 집에 여동생이 있는데 나이가 그대와 비슷하오. 하지만 차를 우리는 솜씨는 그대보다 훨씬 뛰어나지. 언제 시간 되면 여러분에게 소개해 주겠소. 그녀에게 많이 배우시오.”
소소는 어여쁘지만 요염한 물건이었다. 이런 여인은 녹차(*여우짓 하는 여자를 빗대는 말)로만 억제할 수 있었다.
방금 영월이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엉엉엉 울기 시작한 다음 ‘억울’해하며 밖에서 밤새 꼼짝 않고 있었으리라. 그녀가 만약 감기라도 걸린다면 금상첨화였다.
소소는 사후에 ‘악귀’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다.
* * *
허칠안은 밥을 배불리 먹고 술을 양껏 마신 뒤 추선의와 여제자들을 보내고 뜰 안에서 소리쳤다.
“양 사형!”
백의 형체가 부름에 응하여 오더니 그를 등진 채 여유롭게 말했다.
“하늘이 나 양천환을 낳지 않았다면…….”
‘모두 이렇게 익숙해졌으니 허세를 부리는 것도 별 쾌감이 없지 않을까…….’
허칠안은 냉철하게 말을 끊었다.
“대봉의 오랜 세월은 기나긴 밤과 같을 것이니.”
양천환은 말문이 막히자 쌀쌀맞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양 사형이 저를 도와 방음 진법을 새겨주셨으면 합니다. 정탐을 차단할 수 있으면 가장 좋습니다. 제가 이제 아주 비밀스러운 일을 하나 하고자 하거든요.”
허칠안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허, 내가 몰래 들을까 봐 겁나지 않는가?”
양천환이 농담조로 반문했다.
“허, 저는 아무도 믿지 않지만 유일하게 양 사형만 믿습니다. 양 사형은 예로부터 품격이 가장 고상한 분이시니까요.”
허칠안은 진실되게 말했다.
“그래도 자네는 참 안목이 있군.”
양천환은 매우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