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화. 적을 베다
땅!
횡도(*橫刀: 가로로 든 검)가 수검(*竪劒: 세로로 든 검)을 막자 불꽃이 반짝이면서 난폭한 기기가 잔잔하게 폭발하였다.
월영검이 끝까지 베자 흑금장도의 날카로운 칼날에서 눈을 자극하는 불꽃이 튀었다. 구겸은 여세를 몰아 몸을 빙빙 돌리며 두 번째 칼을 바로 내보냈다.
땅땅땅땅…….
그는 마치 팽이로 변신한 것처럼 한칼, 한칼을 받았다. 마치 해조처럼 매 칼의 여세를 다음 칼로 축적하여 한칼, 한칼 더 강해졌다.
‘강하다…….’
허칠안은 비틀거리는 척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해조 같은 도광(刀光)의 충격으로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척했다.
그는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뒤, 칼을 칼자루로 거두어들였고, 모든 감정을 추스르고 모든 기기를 무너뜨렸다.
월영검에서 눈부신 광채가 터져 나와 하늘의 밝은 달과 서로 어우러졌다.
“네게 알려주는 걸 잊었군. 월영검에는 영(靈)이 있어서 달빛을 스스로 삼킬 수 있지. 밤이 가장 사악할 때다.”
구겸은 섬뜩하게 웃으며 몸을 돌려 마지막 칼을 뽑았다.
이 칼은 4품 이하의 극한에 도달했기에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도광이었다.
쨍! 무기가 칼집에서 나오는 소리는 늦었지만, 먼저 이르렀다.
한밤중, 어두운 도광이 빛나기 시작했고, 힘닿는 데까지 안으로 축적하여 곧 빛을 초월할 차례였다.
천지일도참!
여러 달 만에 허칠안은 마침내 그의 유명한 절기(絶技)를 시전해 냈다. 그의 유일한 절기 말이다!
구겸은 어두운 도광이 반짝이더니 이내 사라지는 광경을 보았다. 뒤이어 월영검에 응집한 광채가 갑자기 터지면서 흩어지더니 손아귀가 갈라지고는 장검이 손에서 벗어나 날아갔다.
곧 빛을 초월할 그 칼끝이 청광 장벽에 부딪혔고, 쌍방은 몇 초간 대치했다. 칼끝은 어쩔 수 없이 폭우와 같은 자질구레한 기기를 터뜨렸고, 주위 바닥에 얕은 구덩이를 남겼다.
구겸은 비틀거리다가 뒤로 넘어졌다. 그는 믿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허리춤에 걸려 있는 자색 옥패를 쳐다보았다.
4품 무사를 막을 수 있는 이 호신용 법기에 균열이 생겼다.
구겸은 갑자기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그는 허칠안이 극도로 강한 도법을 지배하고 있고, 폭발력이 아주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허칠안은 아직 연신경일 때 이 도법에 의지하여 동피철골경의 육신을 베어 부순 적이 있었더랬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깊은 인상을 남긴 후에는 이 도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게 그저 초기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도법이라서 결함이 너무 크니까, 수련 경지가 올라감에 따라 점점 뒤를 이을 힘이 없어지자 포기한 걸로 오해하곤 했다.
“동년배 중에 적수를 만난 적이 없댔지…….”
허칠안이 칼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서 비웃었다.
“고작 이 정도로?”
구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바로 이때, 먼 곳에 있던 좌사가 망토를 걷어 올렸다. 그는 망토 밑에 마치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친 듯한 형상을 한 독특하고 거대한 활을 숨기고 있었다. 그가 허칠안을 조준하더니 활시위를 당겼다.
뻥!
활시위 소리는 낮고 힘찼다.
화살이 발사된 뒤, 갑자기 눈을 자극하는 빛이 부풀어 오르더니 한 줄기 유광(流光)이 되어 날아왔다.
허칠안은 본능적으로 물러섰고, 아주 기이한 위력의 이 화살을 피했다. 그가 어찌 짐작할 수 있었겠는가? 화살은 마치 그의 꼬리를 잡는 듯 수십 장(丈)이나 뚫고 나가더니 문득 방향을 틀어 다시 날아왔다.
게다가 화살은 역학 법칙을 거스르고 활시위를 떠날 때보다 속도가 더 빨랐으며 위력도 더 강했다.
“이 화살은 무회(無悔)라고 한다. 전출무회(箭出無悔)는 내가 이번에 가져온 법기 중에 가장 특별하고 가장 강한 놈이지.”
구겸이 빙그레 웃으며 구경했다.
그는 방금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질투심과 좌절감을 억눌렀다.
허칠안은 두 번 피한 뒤, 놀라운 발견을 했다. 화살의 기세에 더 저력이 생기고, 속도가 더 빨라졌다.
매번 발사할 때마다 힘을 축적하는 듯했다.
‘이건 과학적이지 않아. 동력원이 어디에 있는 거지?’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곤혹스러워하면서 본능적으로 전생의 지식을 이용해 눈앞의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는 것도 믿지 않는데 무한대까지 합쳐질 수 있다고?’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는데, 자신의 안위를 걸고 내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자발적으로 화살을 맞이하며 단칼에 베었다.
쿵!
화살이 변한 유광이 폭발하여 흩어지면서 빛 부스러기가 허칠안의 금신 표면을 공격하였다. 금색 빛 부스러기가 끊임없이 튀었다. 소리는 마치 산탄총 백 자루가 강판 벽을 때리는 것 같았다.
어렵사리 유지한 허칠안의 금신이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 그는 중상을 입고 하루아침에 벼랑 끝으로 몰렸다.
뒤이어 그는 자신이 더는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밝은 은색의 거울 빛이 그를 고정했다. 구겸은 기습에 성공하자, 군말도 망설임도 없이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를 떼어내 힘껏 손을 뿌리쳤다.
화포와 상노가 한 대 한 대 나타났다. 화포는 포구를 들어 올리고, 상노는 허칠안을 조준했다.
“네 강함은 내 예상 밖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명색이 6품인 네가 나의 신체 보호 법기를 부술 수 있다니. 만약 신체를 보호하는 법기가 없었다면, 동피철골에만 의지해서는 방금 그 칼에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죽었겠지. 네가 더 성장하면 정말 화근을 키우는 꼴이겠어. 물론, 너한테 성장할 기회는 없다. 너는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도살용 칼이 곧 떨어질 거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거든.”
구겸은 음침한 표정으로 허칠안을 주시하면서 자신의 질투와 증오를 더는 감추지 않았다.
“신분을 비교해도 네가 나보다 고귀하지 않고, 조력자 수행원도 나에게 미치지 못하고, 수단과 책략을 비교해도 너는 여전히 네 손바닥 안에 있는데 너는 뭘 걸고 나와 싸울 건가? 너는 그저 내 이익을 챙긴 천민에 불과하다. 지금 네가 가진 모든 건 본래 내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소위 실패자에게 늘 인자했지. 오늘은 너를 죽이지 않고, 네 사지를 베고, 네 수련 경지를 소멸시켜서 데리고 돌아가 남의 공을 가로채야겠다.”
좌사가 칭찬했다.
“공자님의 타고난 자질은 총명하시고 뛰어난 인재이지만,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일을 길게 끌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얼른 손을 쓰십시오.”
쿵쿵쿵!
뻥뻥뻥!
그는 양천환의 조작을 복제하고, 전쟁터에서나 사용하는 중형 살상 법기를 이용하여 6품 무사를 상대했다.
허칠안은 천지를 뒤덮을 만한 법기를 마주한 뒤 단 세 글자만을 읊을 뿐이었다.
“빗맞았군.”
빽빽한 포탄과 하살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쏠리거나 위로 떠올라 목표를 완벽하게 피했다.
언출법수의 효과가 아직 남아 있었다.
“너…….”
구겸은 믿기 어렵다는 듯 눈동자를 갑자기 수축시켰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다가 이내 새파랗게 질려서 포효했다.
“불가능하다. 너는 유가의 법술 서적을 시전할 기회가 없었다. 너는 사용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그는 허칠안이 유가 법술 서적을 지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줄곧 이를 사용하는 것을 철저하게 방어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칠안이 서적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허칠안은 ‘허’하고 소리를 냈다.
“설마 너는 내가 방금 홧김에 양천환에게 포탄 한 방을 먹이라고 한 줄 알았는가?”
양천환이 갑자기 근처에 나타나 여유롭게 칼을 더했다.
“무사는 무사군. 그 저속함이 참 가엽구나.”
그는 다시 사라지더니 우사와 계속해서 추격전을 벌였다.
구겸은 엄청난 좌절감이 밀려와 몸을 비틀거렸다.
사실 허칠안에게는 빨리 이길 방법이 더 있었다. 그는 그저 한 마디를 읊기만 하면 되었다.
<내 기기를 10배 증강한다!>
그는 단칼에 구겸을 죽일 수 있다고 장담했다.
대가는 허 은라가 원수와 함께 죽는 것이었지만.
유가의 언출법수는 규칙에 대한 유린이기에 규칙의 반격을 맞닥뜨릴 수 있었다. 허칠안은 처음에 이 내막을 몰랐기에 천인 간의 전쟁 때 한 마디를 읊었더랬다.
<내 원신을 10배 증강한다.>
다행히 이묘진이 제때 깨어나 남자 인터넷 친구가 허풍 떨다가 자폭한 걸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는 응급 처치를 할 수 있었기에 황급히 그의 잔혼을 수집하고, 천종의 법술을 이용하여 영혼을 보수하였다.
허칠안은 일각 늦게 소생했다면 정말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기운이 하늘까지 닿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유가의 법술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사용할까? 여기서 허칠안이 결론을 내린 노하우는 되도록 합리적으로 허풍을 떠는 것이었다.
그의 첫 번째 허풍은 ‘천지일도참의 후유증은 이각 동안 지연된다’였고, 두 번째 허풍은 ‘빗나갔다’였다. 전부 참신하고 속되지 않은 허풍에 속했다.
허칠안은 칼을 칼집에 거두고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그의 뒤에 있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형체가 거울 빛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는 구겸의 뒤에 나타났다.
쨍!
천지일도참이 다시 칼집에서 나왔다.
어두운 도광이 반짝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퍽, 철컥…….
구겸은 허리춤의 옥패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고, 장벽이 파열되는 둔탁한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곧이어 몸이 무거워지더니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무릎은 신체에서 벗어났고, 그의 몸에서는 선혈이 흥건히 흘렀다.
“아아아……!”
구겸은 고통 속에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공자님!”
좌사가 크게 소리치며 달려왔다.
“어서 나를 구해라, 어서 나를 구해……!”
구겸의 눈에서 살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뿜어나왔다. 좌사의 강대함으로는 금강신공이 곧 무너질 지경에 놓인 허칠안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양천환은 마침 우사에게 쫓기던 참이었기에 지금 반응이 왔다고 해도 기껏해야 허칠안을 데리고 갈 뿐이었다. 이렇게 그는 오히려 목숨을 건졌다.
좌사의 형체가 반짝이더니 잔영이 되어 달려들었다. 고작 십여 장(丈)의 거리라서 숨을 쉴 필요도 없었다.
바로 이때 검은 형체가 고속으로 달려왔다. 마치 좌사의 노선을 예측한 듯했다.
푹…….
검은 형체는 거친 소처럼 좌사에게 머리를 부딪쳐서 그를 날려 보냈다. 마치 발사된 포탄 같았다.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자태의 미인이었다. 야경꾼 제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가슴에는 금라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약간 어지러운 듯 똑바로 서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뒤이어 그녀는 다시 사라졌고, 먼 곳에서 기기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좌사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겸 눈 속의 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아니면 네게 일각을 주겠다. 네가 스무 장(丈)을 길 수 있다면 내가 네게 살길을 내어주겠다.”
허칠안은 칼을 짚고 빙그레 웃었다.
“좋은 마음에서 일깨우는 건데 얼른 기어라. 피가 다 말라버리기 전에 응급 처치를 받을 수도 있지 않겠나.”
구겸은 신경질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힘을 내어 앞으로 기었다. 바닥에는 짙고 검붉은 핏자국이 두 줄 생겼다.
아마 부귀영화를 누리던 이 젊은이는 가슴이 미어터질 것이다. 그는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그는 이 냄새를 맡고 전전긍긍했다.
그가 썩은 개처럼 일정 거리를 길 때까지 기다린 허칠안은 몸을 숙이고 구겸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는 먼 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바라보게끔 강요하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전투력으로 말하자면 너는 나보다 못하고, 수법을 논하자면 너는 나에게 못 미치고, 책략을 논해도 너는 역시나 내게 미치지 못하는데 너는 뭘 걸고 나와 싸울 것이냐?”
죽임으로써 동기의 악함을 규탄한다!
구겸 눈에 비친 한 줄기의 빛마저 완전히 어두워졌고, 무거운 절망만이 남았다.
좌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너는 그를 죽일 수 없다, 허칠안. 너는 그를 죽이면 안 된다. 그가 만약 죽으면 주인님이 네 구족을 멸할 것이다!”
“그럼 똑똑히 보거라.”
허칠안은 칼을 들어 구겸의 머리를 자른 뒤, 허리춤의 향낭을 열어 그의 ‘천지’ 영혼 두 쌍을 거두어들였다.
끝났다!
좌·우사는 이 광경을 보니 마치 얼음 창고에 빠진 것처럼 두피가 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