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4화. 사투 (2)
양천환이 ‘허’하고 소리 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나서지 않을 걸세. 비천한 개미는 내가 나설 가치가 전혀 없어.”
구겸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억제할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그는 이 백의 술사가 말하는 어조와 건방진 태도에 깊은 반감을 느꼈다.
“만약 네가 고의로 나를 화나게 한 거라면, 성공했다.”
구겸이 냉소를 지었다.
“너도 자격이 있나?”
양천환이 태연하게 말했다.
“본 모습을 사람들 앞에 드러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건 내게 보복당할까 봐 두렵기 때문인가?”
구겸은 상대방의 뒤통수를 주시했다.
양천환은 그저 간단히 ‘허’라고 답했다.
“…….”
구겸은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좌사, 우사, 이 자식을 죽여라.”
과묵한 우사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는 다시 나타나더니 양천환 뒤에서 주먹을 날렸다.
그의 주먹이 양천환의 몸을 관통했지만, 맞은 건 그저 잔영이었다.
백의 술사는 먼 곳에 나타나더니 일부러 얻어맞고 싶은 척하는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저속한 무사 같으니라고. 너희를 상대하는 건 마치 어리석은 쥐를 희롱하는 것 같구나. 아니, 쥐는 급하면 사람을 무니까 너희는 파충류다.”
“그를 죽여라!”
구겸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양 사형은 매를 잘 버는 스타일이야…….’
이 말은 허칠안조차 듣기에 좀 거북했다.
‘나는 방금 그가 무릎을 굽히고 힘을 비축하는 걸 보지 못했어. 그런데 그는 양 사형 뒤에 번쩍 나타났다. 이는 5품 화경의 기이함이겠지. 그는 육신의 힘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나는 예전에 왜 금라들이 번쩍번쩍 나타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드디어 이해했다.’
양천환은 허둥거리지 않고 여유 있게 품에서 철 상자를 꺼내어 열었다. 화포와 상노가 하나씩 옆에 나타나 그를 가운데 두고 둘러쌌다.
동시에 화통이 하나씩 떠오르더니 그의 주변 허공으로 흩어졌다.
화포, 상노, 화통 모두 진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위력은 보통 화기의 열 배 가까이 되었다.
양천환 발밑에는 진문이 떠올랐고, 이 중형 무기를 그 속에 망라하였다. 그것들은 마치 양천환과 하나가 된 듯 그를 따라 함께 전송되면서 여기저기 번쩍번쩍 나타났다.
“저속한 무사 같으니라고. 술사의 위대함과 무서움을 알려 주지.”
양천환이 손가락을 튕겼다.
상노, 포구, 총구가 동시에 삿갓을 쓰고 망토를 입은 우사를 조준했다.
화력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동피철골의 몸인 우사 역시 이렇게 빽빽하고 무서운 화력에는 완강히 저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무사의 사나운 폭발력으로 양천환을 돌아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는 측면으로 우회하여 기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양천환은 전송 능력을 장악했기에 그보다 더 빨랐다. 그는 항상 미리 방향을 바꾸어 포구를 조정할 수 있었기에 우사를 계속 빙빙 돌도록 압박할 수 있었다.
양천환의 철 상자는 마치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백보대(*百寶袋: 중국의 이윤 반환 웹사이트)처럼 끊임없이 탄약과 화살을 보충했다.
갑자기 화력에 속수무책이던 우사가 기이하게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체구가 크고 우람하며 건장한 사내가 곧 양천환 뒤에 나타났다. 그와 양천환 사이의 거리는 3척(尺)이 채 되지 않았다.
4품 전봉급 무사는 이 거리에서 중상을 입힐 수 있었으며, 나아가 같은 품계의 다른 체계 고수를 때려죽일 수도 있었다.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우사는 여전히 잔영만을 공격했다.
‘위험했다. 하마터면 의외의 실패를 맛볼 뻔했어…….’
양천환은 수십 장(丈) 밖에 나타났다. 그는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겉으로는 아주 침착한 모습을 내보였다.
“전송 법기로 나를 상대하고, 술사의 수단으로 나를 상대하다니. 너를 똑똑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어리석다고 해야 하나? 내 생각에 너는 아주 똑똑해. 내가 네 덕분에 지능 지수로 뭉개는 쾌감을 체득하는 데에 성공했거든.”
‘양 사형은 술사로서 전문적인 능력은 그래도 아주 뛰어나다. 방금 나마저 손에 땀을 쥐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쓸데없이 걱정한 거였어. 그에게는 확실히 식은 죽 먹기야…….’
허칠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마음속의 큰 돌을 내려놓았다.
양천환의 늙은 개처럼 침착한 목소리에 감염된 듯했다.
그는 양천환의 전투에 더는 관심을 두지 않고 칼을 들고 구겸과 좌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우리 시간이 되었군.”
구겸은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맞이하더니 말했다.
“좌사, 네가 나 대신 후위를 맡아라. 나는 이 잡놈을 상대하러 가겠다.”
좌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습관적으로 타일렀다.
“공자님, 공자님께서는 천금의 몸이신데 어찌 위험을 무릅쓰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공자님과 손을 잡고 그를 죽이겠습니다. 이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사생을 결단하는 싸움인데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할 필요는 없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함께 와라. 그러지 않으면 너 같은 개미는 내가 열 대는 칠 수 있거든.”
그는 마치 보잘것없는 사실을 얘기하는 듯 차분한 어조와 평온한 표정이었다.
구겸이 섬뜩하게 웃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불철주야 고되게 무도를 닦았다. 어떠한 동년배 못지않다고 자부하지. 대봉 사람마다 모두 너 허칠안의 천부적인 재능을 칭찬하며 진북왕 못지않은 천재라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안다. 너는 그저 몸에 지닌 그걸 등에 업고, 뜻밖의 기회를 연달아 맞닥뜨려 비로소 현재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사실 너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는 천천히 허칠안을 맞이하며 오른쪽 손바닥을 내밀었다. 좌사가 황급히 칠흑 같은 나무 상자를 열자, 소검이 상자 안에서 날아올라 재빠르게 팽창하더니 가을 호수의 맑은 물 같은 장검이 되었다.
이 검은 가을 호수의 맑은 물처럼 투명했다. 마치 하늘의 달빛을 흡수할 수 있는 듯했다. 검날과 검등 위에는 물 같은 광채가 옅게 뒤덮여 있었다.
‘그는 역시 내가 몸에 짊어진 기운을 알고 마음속에 질투와 원망을 품은 거였어…….’
허칠안은 가슴이 뜨거워졌으며, 사람을 죽여 영혼을 부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두 사람의 모습이 동시에 사라졌다. 다만 허칠안이 원래 서 있던 자리에는 ‘펑’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발자국이 깊게 파였는데 구겸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땅!
다음 순간, 공중에서 눈을 자극하는 불꽃이 나타났고 그런 뒤에야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칼과 검이 서로 겨루었다.
“네 패도는 감정이 정제한 법기지만, 내 이 월영(月影) 역시 뒤지지 않지.”
구겸은 갑자기 힘을 내어 허칠안을 밀어냈다. 이에 검광이 뒤따르니 십여 줄의 검광이 거의 동시에 폭발하여 허칠안의 가슴과 사지와 목구멍을 공격했다.
눈을 자극하는 일련의 불꽃이 동반되었다.
“5품?”
허칠안은 금강신공을 드러낸 뒤 미간을 찌푸렸다. 검광이 공격한 곳에서 은근히 쿡쿡 쑤시는 통증이 전해졌다.
그는 상대방의 검이 흑금장도에 못지않은 신병임을 믿었다.
“몸에 더해진 기운이 사라지면 너는 그저 잡놈일 뿐이라고 내가 말했지. 오늘 내가 너를 뭉개려 한다. 네 사지를 절단하여 너를 인곤(*人棍: 고대 형벌로 눈을 파고 사지를 잘라 몸통만 남기는 형벌)으로 깎아버리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네 물건을 빼앗아오려고 한다.”
구겸이 마지막 한 마디를 할 때, 잔영이 사라지고 실체가 허칠안의 옆에 나타났다. 그는 가장 완벽한 일격을 가했다.
허칠안은 위기에 대한 무사의 본능 덕에 미리 관련 화면을 포착하여 즉시 흑금장도를 휘둘러 막았다.
땅!
또 눈을 자극하는 불꽃이 튀었다. 구겸은 표정이 순간 굳어지더니 눈동자가 잠시 흐트러졌다.
신검!
앞선 일격은 그저 정체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이자는 4품이 아니기에 ‘의(意)’를 탐색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의 신검은 상대방의 원신을 효과적으로 뒤흔들 수 있었다.
허칠안의 일격이 목적을 달성했다. 곧바로 귀를 진동하는 사자후 소리가 이어지면서 다시금 상대방의 원신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그는 기기를 충분히 운행하여 단칼에 상대의 머리를 베었다.
그는 천지일도참을 시전할 시간이 없었던 터라, 후위를 맡은 그 건장한 사내가 반응하기 전에 이 시건방진 자식을 베었다.
윙!
칼끝이 구겸 목덜미 3촌(寸) 지점에서 가로막혔다. 청기 장벽이 솟아올랐고, 흑금장도의 칼끝이 그 위를 벤 뒤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내 광분하며 힘을 잃었다.
허칠안은 단칼에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뒤로 물러났다.
“양 사형, 화포 하나요.”
허칠안이 크게 소리쳤다.
후욱……!
포탄 하나가 처량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더니, 곧장 구겸에게 충돌하여 쾅 터졌다. 순식간에 불빛이 사방을 비추었고 짙은 연기가 밀려왔다.
좌사는 먼 곳에 서서 방관하였다. 그는 이 칼과 이 포탄이 공자님을 해칠 수 없다는 걸 진작 파악한 듯했다. 그렇기에 그는 구조 조치를 취하지 않았지만, 습관적으로 말을 내뱉어 타일렀다.
“공자님, 미루지 마세요. 노비가 이 자의 원신이 보통 사람보다 괴이하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상대하기에 너무 어려워요.”
이때 구겸은 어지럼증에서 벗어났다. 그는 두피가 살짝 저렸으며 두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그는 허리띠에 걸어놓은 자색 옥패를 손바닥으로 받쳐 들고는 숨을 내뱉었다.
“아슬아슬했군. 몸을 보호하는 지보가 없었다면, 방금 내 머리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을 거야. 헤, 너한테 신체를 보호하는 금강불패가 있다면 나 역시 호신 법기가 있다고.”
‘현질하는 게이머는 죽어야 돼…….’
허칠안은 먼 곳에서 화포가 끊이지 않는 양천환을 힐끗 보더니 다시 구겸에게 집중했다.
구겸이 냉소를 지었다.
“너는 자신이 좋은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진북왕 못지않은 총아라고? 부평초 위에서 부상한 인물이라고? 내가 네게 비밀을 하나 알려주지. 사실 너는 그저 비천하고 가련한 사람이야. 네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우리 집안이 네게 베푼 ‘권력’일 뿐이라고.”
“너희 집안?”
허칠안이 아무렇게나 장도를 휘두르자 검기가 펑펑 두 차례 소리를 내어 구겸의 검기를 흩뜨렸다.
구겸은 더는 말하지 않고, 검을 든 채 돌격해왔다.
두 젊은 고수는 빠르게 치고받았다. 칼과 검이 교차하며 공격하는 소리가 촘촘히 울려 퍼졌다. 얼마나 격렬하게 부딪혔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구겸은 5품 화경으로, 허칠안보다 힘이 강했다. 본래 그는 밟고 가는 태도로 허칠안을 때렸어야 했다. 그런데 이 자의 도법(刀法)이 아주 기이하다는 점이 그를 분노하게 했다. 그는 매번 무기가 부딪칠 때마다 강렬한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그는 매번 리듬이 끊겼다. 어쩌다 그가 폭력을 시전하여 월영검이 신체를 베어도 그저 눈을 자극하는 불똥만 튈 뿐 불패금신을 깰 수는 없었다.
‘죽어 마땅한 자식, 고작 6품이 이렇게 까다롭다니…….’
구겸은 검으로 허칠안이 비키게 한 뒤 추격하지 않고 금빛으로 반짝이는 젊은이를 주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무술을 연마하면서 한 가지 도법만 연마했지. 이름은 《구환도(九環刀)》라고 한다. 이 도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칼이 겹겹이 포개지기에 도법 수련에 성공한 뒤로부터 동년배 중에서는 내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
구겸은 손가락으로 검등을 미끄러지듯 매만지더니 도발하며 그를 주시했다.
“실력을 비교하자면 너는 근본적으로 내 적수가 아니다. 감히 내 구도(九刀)를 받겠는가?”
그는 말을 마치고 검을 들고 큰 걸음으로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가 한번 뛰어오르더니 십여 장(丈) 높이의 하늘로 솟구쳤다. 그는 마치 목표물을 덮치는 매처럼 월영검을 높이 치켜들고 달빛을 미친 듯이 흡수했다.
‘도법이라고 한 거 아니야……?’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리곤 흑금장도를 가로로 들어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