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화. 사투 (1)
황혼 뒤, 흰 장포에 옥대를 찬 구겸(仇謙)은 작은 마을의 객잔에서 뒷짐 지고 창가에 서 있었다. 두 명의 거대한 사내는 탁자에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말없이 침묵했으며 한 사람은 나지막이 타일렀다.
“공자님, 이러시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겁니다. 이렇게 하시는 건 아니 됩니다.”
구겸이 냉소를 지었다.
“내 처지를 너는 잘 알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나를 더 힘들게 할 뿐이다. 하지만, 만약 허칠안을 사로잡아 그를 데리고 돌아갈 수 있다면 모든 위협과 경멸이 깨끗이 사라질 것이다. 나의 위치를 흔들 수 있는 자는 더는 없을 거야.”
좌서는 계속해서 타일렀다.
“대기운을 가진 사람은 늘 전화위복이 됩니다. 그자 역시 순리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진작에 죽었을 텐데 공자님께서 나설 필요가 있습니까?”
구겸은 다소 불쾌하여 미간을 찌푸렸다.
“기운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수행하겠는가? 기운을 쟁탈하면 그만이지.”
그는 고개를 돌려 서쪽으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더니 혀를 찼다.
“보아하니 그를 얕보았군. 걸려들지 않다니. 음, 곁에 있는 동료가 그를 말렸을 수도 있겠군.”
그가 말하던 중 객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내 문이 열렸다.
구겸이 눈살을 찌푸린 채 돌아섰는데 준수하기 그지없는 한 젊은이가 문밖에 선 모습이 보였다. 그는 허리에 패도를 찬 채 차디찬 눈빛으로 세 사람을 훑어보았다.
구겸은 역용한 티가 확실히 나는 이 자식을 보면서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허칠안!”
“나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고, 명확한 답을 주었다.
“역시나 왔구나.”
구겸은 계획이 뜻대로 됐다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네 성격을 분석해보았는데 충동적이고 강하더군. 쉽게 속지도 않고 말이야. 내가 마을에서 공공연히 도발하여 그 지종 제자를 죽였으니 네 성격으로는 절대 참지 않겠지.”
“짐작했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명확한 답을 주었다.
“그럼 사도에 빠진 지종 도사와 회왕의 밀정이 지금 이미 객잔 전체를 포위했다는 것도 짐작했는가?”
구겸의 웃음 속에 정세를 장악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어느 연장자께서 내게 알려주더군. 사람은 저마다 약점이 있으니 잘 틀어잡기만 하면 일격에 죽을 지경에 이를 수 있다고 말이야.”
횡포한 기운이 다가오더니 객잔에 바싹 접근했다.
구겸은 얼굴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너는 확실히 내 성격적 약점을 틀어쥐었군.”
시종일관 무표정이던 허칠안이 냉소를 지었다.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놈이구먼.”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한 백의 형체가 갑자기 방에서 나타나 나지막이 읊조렸다.
“바다가 하늘 끝까지 닿아 해안을 이루고, 술도(術道)는 절정에 이르니 내가 최고봉이네.”
그가 발을 딛자 바닥에 진문이 번쩍이더니 객실 전체를 재빠르게 뒤덮었다.
다음 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사라졌다.
쿵!
콰당…….
방 안에 모든 사람이 사라진 순간, 사람 형체 몇몇이 달려 들어와 창문과 벽에 부딪혔다.
그들은 각각 금색 가면을 쓴 검은 장포 두 사람이었다. 가슴에 남련, 녹련, 청련이 수놓인 세 명의 중년 도사들도 들어왔다.
금색 가면을 쓰고 별칭이 ‘천기(天機)’인 천자호 밀정은 방 안을 훑어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아마 전송인 듯하군. 방금 그의 역용을 발견하지 못했다니.”
그들은 줄곧 근처에 매복하면서 객잔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력으로는 근거리에서 살펴볼 필요 없이 사람 탈 같은 류의 위장을 간파할 수 있었다.
금색 가면을 쓴 다른 검은 장포 사람이 입을 떼고 깨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천환도 왔는가?”
“음.”
천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부터 허칠안은 사천감 술사와 친분이 좋았으니 이상할 것 없네.”
여인 밀정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들이 우리를 갈라놓고 차례차례 격파할 생각인가?”
지종의 청련 도사가 소리 내지 않고 냉소를 지었다.
“어리석기는.”
별칭이 ‘천추(天樞)’인 여인은 그를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4품 술사의 전송 거리 한계는 대략 30리로 너무 먼 편은 아니네. 유일하게 불확실한 건 그가 사람을 어느 방향으로 전송했는지야.”
천기가 침음하더니 말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네. 흩어져서 추적하자고. 음, 술사의 전송은 끊길 수 있어. 방금은 아마도 허를 찔린 것일세. 두 고수의 실력으로는 두 번 다시 오기란 불가능하네. 자네들 너무 멀리 추적하지 말게. 만약 계속해서 기기 파동이 없다면 방향이 틀렸다는 걸 의미하니 바로 방향을 돌리자고.”
이때 더 많은 군사가 객잔 밖에 돌진해왔다. 우의 장포를 입은 지종 제자, 암암리에 연맹을 결성한 강호 산인, 회왕 밀정, 놀란 무림맹 세력도 있었다.
백여 명이 객잔 밖에 집결하였다. 길거리나 뒷골목에 전부 사람으로 꽉 찼다.
이는 음모가 있는 매복이었다. 낮에 삼선방에서 동맹을 맺은 뒤 흰 장포의 부잣집 공자는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밀정과 지종 도사들은 한번 시도해봄 직하다고 여겼고, 결과적으로는 정말 상대방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건 월씨 산장에 4품 술사가 한 명 더 숨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4품 다섯 명이 객잔을 뛰쳐나왔고, 천기는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말했다.
“내가 서쪽을 맡을 테니 나머지 방향은…….”
그는 갑자기 침묵하더니 고개를 돌려 길거리 앞쪽을 쳐다봤다. 묵직한 발소리가 그쪽에서 들려왔는데 매 걸음마다 경미한 지진 효과를 일으켰다.
한 소녀가 화포를 높이 치켜든 채 미친 듯이 달려왔다.
‘화포를 높이 치켜들고 있다고?’
“아이쿠……!”
그녀는 내달리던 관성을 빌려 힘껏 화포를 투척했다.
후……. 거대한 강철 짐승이 빙글빙글 선회하며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은은한 바람 소리를 동반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머리를 감싸 안고 다급하게 도망쳤다.
천기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그 과정에서 피풍을 찢고, 손목을 흔들어 해수 같은 기기를 털어냈다. 기기는 한 번씩 화포에 부딪혀서 화포의 충돌하는 힘을 상쇄했다.
천기는 손을 내밀어 화포를 받아 아무렇게나 길가에 내던졌고, ‘쿵’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자네들 먼저 가게. 나는 이 역고부 계집아이를 처리할 테니.”
천기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 계집아이는 아주 뛰어나니까 죽이지 말고, 도사 어르신에게 갖고 놀라고 남겨드리게.”
남련 도사는 괴상 야릇하게 웃었다.
천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어디에나 배어 있는 지종 도사의 악의에 좀 반감이 들어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적을 대할 때 우유부단하게 움직이지 않네.”
남련 도사는 그를 비웃더니 문 안에 있던 제자들을 데리고 큰길 다른 편으로 갔다.
“아미타불!”
이때 체구가 크고 훤칠한 승려가 가는 길을 막았다.
거의 동시에 검광 두 줄기가 잇따라 왔다. 이묘진과 초원진이 비검을 밟은 채 남은 4품 셋을 막았다.
“역시나 진작에 음모를 꾸몄군. 너희를 얕잡아봤구나.”
천기가 나지막이 말했다.
“헛소리는 적당히 하시지. 지난번에 초주에서 빨리 도망치던데.”
이묘진은 성미가 거칠었다.
여인 밀정 천추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묘진, 마침 너를 찾아가 이 빚을 제대로 갚으려던 참이었다.”
그녀는 바로 웃었다.
“너는 우리가 고작 이 정도로만 꾸몄다고 생각하나?”
초원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같은 말을 네게 돌려주지.”
* * *
작은 마을 곳곳에 고수가 포진해 있었다. 더욱이 객잔은 요 며칠 진작에 강호 인사들에게 점령당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 객잔 안의 강호 인사가 잇따라 뛰쳐나왔다. 먼 곳에 묵던 강호 인사들과 무림맹의 다른 문파 역시 잇따라 달려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용용 낭자가 방문을 열자 일찍부터 마당에 집결한 장로들이 보였다.
그리고 루주는 처마에 서서 객잔 방향을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객잔 쪽에서 싸움이 벌어졌구나. 기기 파동에 근거하여 추측해볼 때 4품 급이다.”
소월노는 정신을 차리고 뜰 안의 제자들을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즉시 마을 백성들을 분산시켜라. 협조하길 원치 않는 자들은 폭력적인 수단을 취한다.”
“네!”
만화루 제자와 장로들이 일제히 말했다.
“루주, 갈등이 벌어진 자들이 어느 쪽 사람들입니까?”
용용이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루주 소월노는 눈빛이 갑자기 복잡하게 변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허칠안이 돌격했다.”
“뭐라고요?!”
모든 이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이게 바로 진정한 그의 품격이지…….’
용용은 고개를 홱 돌려 객잔 방향을 쳐다보았다.
* * *
마을 밖, 세 사람의 형체가 비검을 밟고 저공을 빠르게 스쳐 갔다.
그들은 같은 색의 장포 차림이었다. 한 사람의 가슴에는 홍련이, 또 다른 이의 가슴에는 등련이 마지막 사람의 가슴에는 황련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중에 홍련과 등련 두 도사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게 나이가 적지 않았다. 황련은 중년 이미지로 앞의 두 도사보다 나이가 현저히 적어 보였다.
“남쪽이다, 남쪽에 기기 파동이 있어…….”
황련은 잠시 감지하더니 비검을 몰아 선두로 돌진하였다.
도사가 계속해서 초주를 경계할 때를 빼고 지종의 모든 연화 도사는 전부 작은 마을에 있었다.
이묘진 등은 객잔 안에 있는 4품 몇몇을 막았지만, 그들은 막을 수 없었다.
적·등·황 세 도사는 본래 ‘대열 맨 뒤에 서는’ 자들이다. 다른 의외의 상황에 대비하기 때문에 오늘이 마침 그들이 나설 시기였다.
연화 도사들은 비록 마도에 빠져 시시때때로 자신의 사념을 다스리기 어렵지만, 머리가 같이 나빠지지는 않았다.
“참, 정말이지 머리가 단순하기 짝이 없는 필부구먼. 그를 죽이니 정말로 식식거리며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가다니.”
황련 도사가 비웃었다. 악의에 찬 얼굴에는 경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사는 무사야. 그 저속함이 동정심을 유발한단 말이지.”
“금련이 무사에게 전투 원조를 부탁한 게 그의 가장 큰 결점이야. 각 체계 중에서 도문 지종의 마도만이 영원히 변치 않는다고.”
적련 도사가 태연하게 말했다.
젊은 고수 몇몇을 죽인다면, 설령 중상을 입더라도 내일 금련은 연밥을 지킬 수 없을 터였다.
만약 금련이 궁지에 몰려 연밥을 훼손한다면, 마음이 아프고 몹시 애석하리라. 하지만 이때 손해가 가장 큰 사람은 여전히 금련 자신이었다.
이내 도사 셋은 교전하는 양측을 보았다.
멋진 수염을 기른 중년 검객과 현철권투(玄鐵拳套)를 끼고 쩍 벌어진 가슴을 드러낸 사나이였다.
두 사람은 연화 도사 셋이 도착한 걸 눈치채고는, 약속이나 한 듯 싸움을 멈추고 우호적인 미소를 지었다.
“오래 기다렸다.”
적련, 등련, 황련 세 도사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 * *
마을에서 30리 밖, 평탄한 산비탈 위, 동시에 다섯 형체가 나타났다.
구겸은 약간은 허둥지둥 사방을 살피면서 주변 경관을 제대로 본 뒤,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혀를 끌끌 차며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네가 우리를 월씨 산장으로 전송할 줄 알았다. 그러면 이 공자는 정말 위험해지잖아? 방금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미처 막아낼 수 없었는데 지금은 다시 우리를 데리고 전송할 생각하지 마라. 너를 똑똑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어리석다고 해야 하나?”
그는 갑자기 실실 웃다가 방자한 태도로 포복절도했다.
“내 생각에 너는 아주 똑똑해. 왜냐하면 너는 나에게 알랑거리면서 비위를 맞출 줄 알거든. 스스로 죽을 길을 자처하다니.”
허칠안은 천천히 흑금장도를 뽑았다.
“너 같은 잡어를 죽이는 일은 나와 양 사형으로 충분하다.”
이묘진 등은 모두 작은 마을에 있었기에 그들을 산장으로 보내는 일은 의미가 없었다. 우선 구색연화는 강한 기기 파동을 견디지 못했다. 연화가 비록 지보라 해도 방어 측면으로는 별다른 기이함이 없었다.
그다음으로 흰 장포 부잣집 공자의 두 수행원은 실력이 극강이었다. 일단 그들이 산장에서 싸우기 시작하면 천지회 제자가 말려들 게 틀림없었다. 비록 그들은 내일 불가피하게 전투에 투입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양천환이 여러 가지 방어 진법을 쳤다. 적군이 성벽을 기어 올라가려고 한다면, 그들은 시산혈해(*尸山血海: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같이 흐름을 이르는 말)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적군을 부질없이 성벽 꼭대기로 보낼 도리가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