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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42화 (536/712)

542화. 하룻밤을 넘기지 않은 복수

별안간 허칠안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손을 들고 쥐어 석가산 옆에 기대어 있는 패도를 빨아들인 뒤 성큼성큼 걸어가 눈시울이 붉어진 소녀를 맞이했다.

“그는 어디에 있소?”

“이미 산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추선의는 허칠안을 데리고 밖으로 걸어가며 흐느꼈다.

“능운을 누군가 보내왔습니다. 다리가 잘렸는데 저희가 그의 영혼을 불러낼 수 없더라고요. 백련 사고께서 그에게 이루지 못한 바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허칠안은 입가에 매서운 호선을 그렸다.

* * *

두 사람은 화원을 지나 푸른 돌이 깔린 길을 따라 한 마당에 이르렀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마당 안에서 떼를 지어 움직였다. 안채 문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 금련과 백련, 초원진과 이묘진 등이 모두 방 안에 있었다.

나머지 제자들은 마당 안에 서 있었다.

그리고 허칠안은 예상 밖의 인물을 마주쳤다.

묵각의 류 공자였다.

허칠안은 문턱을 넘어 한 바퀴 훑어본 뒤 시선이 침상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백한 얼굴을 한 젊은이가 한 명 누워 있었다. 그는 이미 죽은 지 시간이 꽤 흘렀다.

그의 두 다리는 무릎에서부터 잘렸는데 잘린 부위가 반듯했다. 손을 쓴 자는 실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무기도 대단히 날카로웠다.

허칠안은 숨을 깊게 들이쉰 뒤 평정심을 유지했다.

“누가 한 짓이오?”

류 공자가 공수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신비로운 젊은이입니다. 흰 장포를 입고 있고, 곁에는 삿갓을 쓴 거인 둘을 데리고 다닙니다. 듣자 하니 그가 삼선방에서 지종의 남련 도사와 충돌이 있었는데 곁에 있던 거인이 한 손바닥으로 남련 도사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합니다…….”

주루의 대청 내부는 상대적으로 밀폐된 공간에 속했다. 상대방과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으면 무사는 다른 체계에 압도적으로 우세를 차지할 수 있지만, 설령 남련 도사가 연화도사 중에서 중하위권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실력은 적어도 베테랑 4품이었다.

허칠안은 아무런 내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류 공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 뒤 그자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상을 걸었습니다. 단숨에 법기 네 개를 꺼낸 뒤 큰소리쳤다고 합니다. 허 공자님의 팔 하나를 벨 수 있는 자는 법기 하나를 상으로 주고, 사지를 베면 네 개를 상으로 준다고 말이죠. 만약 허 공자님의 목, 목을 벨 수 있다면 검합 안에 있는 모든 법기를 공로자에게 증여한다고 했습니다.”

이묘진이 냉소를 지었다.

“건방지군.”

그녀는 허칠안보다도 분노하는 듯했다.

초원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성적으로 분석했다.

“이렇게 보니 흰 장포 공자가 칠안을 겨냥하여 온 것인가?”

항원이 양손을 합장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미타불, 빈승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 대인은 이전에 경성에 있었고, 오늘 막 검주에 왔으니 소식이 이렇게 빨리 전해지기는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그의 원수까지 끌어들였다니요. 그 흰 장포 공자가 본래 검주에 있지 않은 이상 말입니다. 하지만 류 공자가 말하길 그자는 신분이 신비로운 것이, 검주 인사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러므로 그는 아마 연밥을 노리고 왔을 겁니다.”

항원 대사의 IQ는 그래도 기준선 이상이었으니 아마 이묘진과 막상막하일 것이다.

금련 도사가 허칠안을 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 그자에게 무슨 인상이 있는가?”

“저는 그를 모릅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고, 잠시 멈칫하다가 냉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가 어느 쪽 세력이 속하는지는 대략 알 것 같습니다.”

구주를 통틀어 여러 세력, 각 체계 중에 누가 이렇게 많은 법기를 손쉽게 가지며 지푸라기 취급할 수 있겠는가?

사천감은 가능하다!

하지만 사천감이 유일한 후보인 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일은 술사여야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또한 반드시 고품 술사여야 했다. 4품 진법사가 돼야만 법기를 정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흰 장포 공자 배후에 고품 술사가 있었다.

허칠안은 비(非) 사천감 출신의 고품 술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 몸의 기운과 신비로운 술사 패거리가 관련 있다. 그리고 그들은 본래 세은 사건을 빌려 내게 손을 쓰고 싶어 했다. 그 흰 장포의 공자는 아마 기운에 관한 일을 알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그가 내게 이렇게 강렬한 적의를 드러낼 리가 없다. 신비로운 술사 패거리가 드디어 내게 손을 쓰려는 건가?’

허칠안은 호흡이 약간 가빠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이 추측을 부정했다. 항원 대사가 말한 대로 이는 우연한 마주침이었다. 그 흰 장포의 부잣집 공자는 아마 때마침 기회를 맞닥뜨려 그가 검주에 있다는 걸 알아냈으리라.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끄는 태도는 그 신비로운 술사의 스타일에 부합하지 않는다. 아마 그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게 아니라 운명이 그렇게 나와 그 흰 장포의 부잣집 공자를 우연히 마주치게 했겠지……. 어쩌면 나에게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를 죽이고 영혼을 불러 모든 의혹을 푼다.’

모든 이가 설명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더 캐묻지 않았다.

류 공자가 말했다.

“그런 뒤 그 흰 장포의 공자가 능운을 잡아 그의 두 다리를 베어 기어서 돌아가게 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현장에 있지 않았기에 소식을 접한 후 바로 달려갔습니다.”

류 공자는 여기까지 말한 뒤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긴 핏자국 두 줄을 남기며 길거리를 기어오는 능운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때 이미 의식이 흐려졌음에도 최선을 다해 기고 있었습니다……. 그 흰 장포의 공자는 능운 옆을 따라오고 있었는데 손에는 매실주를 받치고 해죽이 웃으며 구경하고 있었고, 옆 사람이 능운을 구하러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능운은 마을 밖까지 계속 기어가다가 죽었습니다. 그 흰 장포 공자가 떠난 뒤에야 저, 저는 다가가서 그를 데리고 돌아올 엄두가 났고요…….죄송합니다.”

이묘진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백련 도사는 얼굴에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은 듯했다. 그녀는 방금 한 차례 소식을 들었지만, 여전히 분노를 감추기 어려웠다.

“금련 사형, 우리 천지회가 이미 이런 지경까지 타락했습니까? 어찌 누구나 밟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단 말입니까?”

백련 도사는 처참한 목소리로 말했다.

“능운은 우리가 보고 자란 아이입니다.”

금련 도사가 허칠안을 쳐다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영혼을 불러낼 수도 없고, 눈을 감길 수도 없더군. 자네 그에게 무슨 해 줄 말이 있는가?”

허칠안은 침상 옆으로 걸어가 말없이 능운을 쳐다보더니 한참 뒤 조용히 말했다.

“자네는 임무를 완수했네.”

그가 손을 뻗어 능운의 얼굴을 문지르니 눈을 감았다.

허칠안은 벼락을 맞은 듯 굳었다.

금련 도사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도문 제자에게 있어 죽음은 끝이 아니네. 우리가 그의 영혼을 부양할 것이네. 그는 그저 방식을 바꿔 우리 곁에 함께할 뿐이야.”

허칠안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세는 아주 위험합니다. 무림맹, 지종, 회왕 밀정,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이 자식. 그의 실력은 확실하지 않지만, 곁에 두 수행원은 적어도 전봉 4품입니다. 게다가 법기가 많다는 것도 예측할 수 있고요. 내일 설령 우리에게 뒷받침해주는 진법이 있다고 해도 저희 몇몇만으로 정말 이렇게 많은 고수를 막아낼 수 있습니까?”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모두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지만, 실망스러운 결론만 나올 뿐이었다.

다들 앞서 맞닥뜨린 분노에 휩싸여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금련 도사의 눈에 근심이 스쳤다.

“모든 제자들이 마당에서 물러나게 해주십시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허칠안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람들은 즉시 그쪽을 쳐다보았다.

백련 도사는 문밖으로 나가 마당 안의 제자들을 해산시켰다.

허칠안은 방문을 닫은 뒤 천천히 말했다.

“기왕 주 무대의 우세가 눌린 이상, 차라리 내일 적이 집결하는 걸 기다리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출격해 따로따로 행동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돌격합시다, 해가 지면 돌격합시다!”

백련 도사는 그가 이렇게 헛소리를 내뱉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터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불쑥 말했다.

“안 되네. 우리는 연밥을 수호해야 하는데 어떻게 마을까지 죽이러 가는가! 게다가 지금 마을에 고수가 넘쳐나는데, 만약 진법의 뒷받침이 없으면 그들과 싸워서 이기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네.”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을 버리고 적진에 뛰어든다면, 이는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격이었다.

허칠안이 말했다.

“그 자식이 일부러 이렇게 큰 기척을 내고, 능운을 욕보인 게 저를 끌어들이고 싶은 것 아닙니까? 그는 틀림없이 제 속사정을 알고, 제 성격을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애당초 그는 상급을 칼로 베었으며 운주에 있을 때 홀로 반란군을 막았다. 또한 그는 더 나아가 국공을 베어 죽이기까지 했으니, 충분히 충동적이고 거친 무사라 할 수 있었다.

그 자식이 낮에 한 모든 행동은 성격이 본래 그렇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허칠안이 스스로 그물에 걸려들게 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려고?”

이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돌격하자고 했지만, 마을에서 싸우자고 하지는 않았소.”

허칠안이 냉소를 지었다.

“자네 그 말 무슨 뜻인가?”

초원진은 어리둥절했다.

허칠안은 직접적으로 대답하는 대신 분석했다.

“내일, 마을에 집결하는 세력은 대규모로 공격할 것이고 우리는 모든 부담을 감내해야 합니다. 무림맹의 고수, 지종의 고수, 회왕의 밀정 그리고 새로 나타난 그 잡놈까지요. 바로 이렇기 때문에 뒷받침하는 진법이 있다고 해도 저희가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사전에 적을 갈라놓는다면요?”

* * *

일각 후, 허칠안은 마당을 나섰다. 천지회 제자들이 흩어지지 않고 마당 밖에 집결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추선의는 눈시울을 붉힌 채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소녀의 얼굴에는 기대가 서려 있었다.

“허 공자님. 공, 공자님께서 능운을 위해 복수하실 거죠? 그렇죠?”

허칠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제자가 읍하며 예를 갖췄다.

* * *

작은 마을, 어느 민가에서 용용 낭자는 마당에 있는 나무로 엮은 의자에 앉아 뺨을 괴고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뭘 걱정하니?”

부드러우면서도 듣기 좋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용용은 황급히 나무로 엮은 의자에서 뛰어올라 고개를 숙였다.

“루주.”

소월노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고, 가을 호수의 맑은 물 같은 눈동자로 용용을 한 바퀴 훑더니 웃으며 말했다.

“돌아온 후에 사방으로 그 공자의 신분을 알아보고 있구나. 그자가 마음에 드니?”

용용은 어리둥절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그가 마음에 드나보구나.”

“아, 아니에요…….”

용용이 막 설명하려고 할 때 소월노가 한마디 하자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말한 건 허칠안이란다.”

용용은 모기처럼 가는 소리로 말했다.

“역시 아니에요. 저는 그저 그를 존경하고 그를 흠모하기에 걱정하는 것뿐이에요.”

흠모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녀와 사이가 아주 좋은 묵각의 류 공자 역시 허 은라를 아주 흠모하였다.

소월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흰 장포의 부잣집 공자는 내력이 비밀스럽고, 곁에 있는 두 수행원은 실력이 아주 막강하다. 검주에 있었어도 최고 반열에 들지. 그 자신의 실력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용용은 근심 걱정이 태산 같았다.

“많은 사람이 그 법기에게 매혹되었다는 걸 저는 느낄 수 있어요. 내일 허 은라는 아마 위험할 거예요.”

“이렇게 강하면서도 돈깨나 있다고 뻐기는 적을 건드리면, 위험을 피할 수 없다. 허나 허 은라의 실력도 약하지 않고, 또 몸을 보호하는 금강신공이 있잖느냐. 비록 그 수행원의 적수는 아니지만, 목숨을 건지는 데는 문제 없을 거란다.”

소월노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용용은 그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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