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7화. 체면 (1)
금련 도사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금련 장로네. 남은 여러 장로 중, 자련은 양연의 손에 죽었네. 양연은 4품 전봉이면서 무사이니 자련이 그에게 패해도 억울할 게 없었지. 하지만 자련은 수련 경지가 장로 중에서 밑바닥이네. 적·등·황 세 장로는 4품 전봉이고, 녹·청·남 셋은 좀 부족하네. 하지만 보통 4품보다는 훨씬 강하지.”
이묘진이 한 마디 중얼거렸다.
“내가 바로 밑바닥급 4품인데…….”
그녀가 4품에 들어선 지 고작 석 달이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기초가 얕아 경력이 풍부한 전봉 4품 고수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리나는 미간을 찌푸렸으며, 그녀의 쪽빛 눈동자에는 당혹이 스쳤다. 그녀는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하더니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적, 등, 황, 녹, 청, 남, 자, 금, 백……. 금련 도사님, 도사님과 백련 도사님이야말로 밑바닥인데요.”
백련 도사는 어리둥절하여 질문하는 눈빛으로 금련 도사를 쳐다보았다.
“저 소저는 어찌 된 일인 게 사람을 앞에 두고 체면을 깎는 거지?”
금련 도사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네.”
“콜록콜록!”
그는 목을 가다듬고 화제를 공적인 일로 돌렸다.
“무림맹이 휘하의 각 파벌 세력을 소집했네. 그 방주, 문주들은 대다수가 4품인데 강약이 다르고, 접촉이 너무 적어서 정확하게 헤아릴 수가 없네.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자는 무림맹의 맹주 조청양이야. 이 자는 무방(武榜)에서 세 번째로 강호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절반만 3품 문턱에 들어섰다더군. 대봉 강호 몇백 년 이래에 3품이 될 가망성이 제일 큰 인물 중 하나네.”
초원진이 침음하더니 말했다.
“그의 실제 전투력은 어떠합니까?”
절반만 3품에 들어섰다는 이 말은 지나치게 두루뭉술해서 이 정도로는 실제 전투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금련 도사가 분석했다.
“양연 둘이 와도 그를 이기지 못하네.”
‘다시 말해서 양연 셋이 있어야 이길 수 있거나 비길 수 있다는 뜻이군…….’
초원진은 무거운 기색을 드러냈다.
‘언제부터 내 전 직속 대장이 전투력을 가늠하는 단위가 되었지…….’
허칠안은 비아냥거리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조정에서 군대를 얼마나 파견했나요?”
이묘진이 물었다.
“군대가 아니라 신비로운 고수들이었네. 그들은 검은 장포를 두르고 가면을 쓰고 있었네. 화포를 지닌 20여 명이 십여 리 밖의 마을에 주둔하고 있지.”
금련 도사가 묘사했다.
“진북왕의 밀정?!”
‘보아 하니 진북왕이 남긴 세력을 원경제가 받아들여 편제한 모양이군…….’
허칠안과 이묘진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알고 보니 진북왕의 밀정이었군.”
금련 도사는 문득 깨달았다.
적에 고수가 좀 많았다. 다른 건 둘째치고, 4품 무사 수만으로도 그들을 뛰어넘었다. 심지어 생각 없는 리나도 막중한 부담을 느꼈다.
허칠안은 연못가에 서서 구색연화를 바라보며 갑자기 물었다.
“도사님, 이 구색연화가 도사님에게 아주 중요하지요? 설령 희생을 무릅쓰더라도 보전해야지요?”
이묘진 일행은 어리둥절하여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초원진이 가장 먼저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음미했다. 이묘진이 그다음이었고, 그 뒤는 항원이었다.
리나는 IQ 시험을 통과할 수 없었다.
‘나는 금련 도사가 그날 중상을 입고 경성에 도망쳐 들어온 이유가 구색연화를 몰래 취할 때 사도에 빠진 도사에게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구색연화의 작용과 가치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크다. 그렇지 않고선 금련 도사가 몰래 취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초원진은 이 사소한 부분을 떠올렸다.
‘비록 구색연화가 보기 드문 진기한 보물이지만, 만약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하지 못한다면, 이렇게 강적이 엿보는 국면을 마주했을 때 연화를 버리고 실력을 보전하는 것이야말로 옳은 선택이다. 하지만 금련 도사는 그들에게 정면으로 맞설 생각만 하니…….’
이묘진은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역시 너다워!’
항원의 생각은 두 사람과 비슷했다.
“맞네. 구색연화는 아주 중요해. 내가 당파를 깨끗이 청산하는 관건 중 하나이니 잃으면 안 되네.”
금련 도사는 거리낌 없이 대답했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도사님, 비용을 추가해야 해요…….’
허칠안은 하마터면 절제하지 못하고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이때 한 제자가 황급히 달려와 몹시 절실하게 소리쳤다.
“도사님, 강호 산수 한 패거리가 진법이 내몰린 틈을 타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사람 수가 아주 많습니다.”
금련 도사는 돌아서서 허칠안과 이묘진을 쳐다보았다.
“이 일은 두 사람이 수고해 줘야겠네.”
허칠안은 즉시 이묘진을 쳐다보았다가 그녀가 전혀 놀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산수들일 뿐이오. 천지회의 실력으로 해결하기 어렵지 않소.”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백련 도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어조로 설명했다.
“그 강호 산수들이 가장 성가시게 굽니다. 저희는 되도록 살생을 삼가고 싶지만, 만약 내버려 두고 상관하지 않으면 반대로 물릴 가능성이 큽니다. 수가 많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보통 제자들에게는 아주 위협적이지요. 하지만 생명을 죽이는 것 역시 금물이기에…….”
“목숨이 위협을 받아도 안 됩니까?”
허칠안은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백련이 고개를 젓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지종이 수련하는 건 공덕이지 도심(道心)이 아닙니다.”
‘그녀의 말은 마음에 물어 부끄러운 일은 지종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군. 사람을 죽이기만 하면 공덕을 해치는 격이 된다……. 이 시각에서 이해한다면, 극악무도한 놈들을 죽이는 건 괜찮다. 악을 제거하는 것이 선을 떨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강호 산수들이 전부 악당일 수는 없지…….’
허칠안은 어느 정도 깨달았다.
초원진이 웃었다.
“나도 가서 돕지.”
항원이 양손을 합장했다.
“아미타불, 빈승 역시 가서 그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들려주겠소.”
사실 항원은 무승이라 머리 위에 계파(*戒疤: 향을 피운 듯한 흉터)가 없었다. 이론적으로 말해 그는 중이 된 게 아니기에 고기를 먹거나 술을 마시고 살생하고 기녀에게 뛰어들어도 괜찮았다.
다만 항원은 특출난 사람이라 그는 줄곧 ‘선수(禪修)’를 규칙으로 삼아 자신에게 요구해왔다.
금련 도사가 말했다.
“자네들에게 그 필부들을 물리치라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역량을 알고 물러나게 하라는 걸세. 연밥이 여물 때 성가시게 굴지 않도록 말이야.”
백련 도사가 이어서 말했다.
“사실 흑련이 애써 소식을 퍼뜨려 강호 협객들을 끌어들인 건 본래 그들을 앞잡이로 삼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요 며칠, 그들은 희생물을 찾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지요. 산수에도 역시 고수들이 있어서 얕보면 안 됩니다. 만약 사전에 내재된 위험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내일 결전할 때 이 힘이 우리를 아주 골치 아프게 할 겁니다.”
백련 도사는 말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이묘진과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때 이미 금련 도사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이묘진은 이 말을 듣더니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강호에서 꽤 명성을 떨쳤고, 친구도 많습니다. 알지 못하는 자들도 제 체면을 세워 주길 원하지요. 제게 맡기세요.”
허칠안이 이묘진 등을 따라가려고 하던 그때, 금련 도사가 갑자기 그를 불러 세웠다.
“허 공자, 자네 잠시 걸음을 늦추게. 빈도가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그는 생각이 번쩍였다. 이유를 알았기에 발걸음을 멈추고 천지회 동료 네 명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 금련 도사가 손짓했다. 지서 파편이 저절로 허칠안의 주머니 안에서 날아올라 늙은 도사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지서 파편을 움켜쥔 채 말없이 웃었다.
백련은 이 모습을 보더니 눈치 빠르게 말했다.
“저는 밖에 가서 전투를 관전하겠습니다.”
차가운 연못 가에는 금련 도사와 허칠안 두 사람만이 남았다. 늙은 도사는 손가락 끝을 깨물어 지서 파편 거울면에 선혈로 주문을 그렸다.
허칠안은 발을 딛고 엿보았지만, 금련 도사에게 가로막혔다.
“지서 파편은 내 지종 지보일세. 자네가 우리 지종에 들어오길 원치 않는다면, 빈도도 어쩔 수 없이 ‘도불전비인(道不傳非人)’의 규칙에 따를 수밖에 없네.”
‘도사님, 인터넷 정신이 하나도 없으시네요. 인터넷 정신이 뭐냐고요? 무임승차! 아니다, 공유지…….’
허칠안은 속으로 빈정댔다.
금련 도사가 손가락을 꼽아 ‘땅’하는 소리와 함께 거울에 튕기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문이 문득 반짝이더니 지서 파편 속으로 사라졌다.
천둥소리가 머릿속에 내리친 듯, 허칠안의 대뇌가 ‘쿵’하고 울렸다. 뒤이어 영혼으로부터 비롯된 극렬한 통증이 동반되었다.
그는 머리를 감쌌고, 피부는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십여 초가 지속된 후에야 고통이 사라졌다.
“주인을 인식하는 법보는 주인의 일부분이라 억지로 끊는 건 마치 팔을 자르는 것과 같지…….”
금련 도사는 삼호의 지서 파편을 거둔 뒤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만약 계속해서 가지고 있다면, 흑련이 여전히 감지할 수 있을 걸세. 따라서 한동안은 우선 내가 보관하겠네. 일을 마치면 다시 자네에게 돌려주지.”
허칠안은 금련 도사가 지서 파편을 품속에 거두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18년 동안 키운 배추를 돼지에게 내어주는 듯했다. 그는 무척 걱정했다.
“도사님, 꼭 잘 보관하셔야 합니다. 일이 끝난 후에 꼭 제게 돌려주셔야 하고요.”
금련 도사는 허허허 웃었다.
“보아 하니 자네 천지회에 아주 소속감을 느끼나 보군.”
허칠안은 고개를 저으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아닙니다. 지서 파편 속에 제 결혼 자본이 있어서 그래요.”
‘무려 결혼 자금x10…….’
* * *
월씨 산장 외곽의 화포 폭격으로 폐허가 된 지역에서 수십 명의 강호 사나이가 천지회 제자와 대치했다.
이곳은 막 잠깐 교전이 벌어진 곳으로 각자 부상자가 있었지만, 사상자는 없었다.
“꼬마 도사들아, 썩 물러가거라. 우리 사내들이 구하는 건 보물이니 사람 목숨을 해치고 싶지 않다.”
“그러게 말이다. 다시 이 몸들의 길을 막아선다면, 우리가 예의 없이 군다고 탓하지 말아라.”
수십 명의 강호 인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무기를 휘두르고, 욕설을 퍼부으며 위협했다.
이에 대치하는 천지회 제자들은 손에 비검, 옥척(玉尺), 동추(銅錐), 포번(布轓) 등의 법기를 쥐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 묘령의 소녀가 손에 쥔 검을 치켜들며 귀엽게 호통쳤다.
“퉤, 파렴치한 놈들. 우리 천지회의 지보를 넘보는 것도 모자라 가차 없이 빼앗으려 하더니. 꿈도 크구나.”
“흥!”
콧방귀 소리 사이로, 퉁퉁한 뚱보가 양손에 검은 망치를 쥔 채 돌진해 나왔다.
장포를 입은 청아한 미모의 소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볍게 비검을 내던졌다.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땅!”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비검을 어물쩍 쳐낸 뚱보는 섬뜩한 웃음을 짓더니 두 망치를 소녀에게 묵직하게 내리쳤다.
하지만 그는 망치를 내리칠 수 없었다. 누군가 까만 두 손으로 망치를 막았다. 뼈와 살이 고르고, 섬세하고 정교한 여인의 손이었다. 이상하게도 이 두 손이 망치를 막았는데 기기 파동이 전해지지도 않았으며 쇠붙이와 돌이 부딪치는 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피와 살로만 이루어진 몸만으로 이렇게 강한 일격을 막아냈다고?’
천지회 제자들이든 다른 한편의 강호 사나이들이든 이 광경을 보자 모두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