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화. 지서 파편 소지자, 허칠안 (3)
이묘진과 초원진의 주옥 같은 말이 앞서자 사람들은 잇따라 기대하였다.
“금련 도사님, 오랜만입니다. 도사님은 어째 이 버릇을 아직도 고치지 않으셨습니까.”
갑작스러운 웃음소리가 사람들 뒤에서 들려왔다. 사람들이 소리를 따라보니 검은색 경장(勁裝)을 입고 머리를 높게 묶고 뒤 허리에는 긴 패도를 찬 젊은 남자가 보였다. 그는 황갈색 고양이 앞에 웅크리고 앉아 끊임없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황갈색 고양이는 깜짝 놀라 몸을 구부리고 그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도사님, 연기를 정말 진짜처럼 하시네요……!”
그는 하하하 박장대소했다.
“그, 그건 금련 사숙이 아니라 평범한 들고양이에요.”
한 제자가 작은 소리로 한마디 했다.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젊은 남자가 돌아보더니 의아해했다.
“그런가요?”
그의 모습은 더없이 준수했다. 적당히 도톰한 입술, 오뚝한 콧날, 빛나면서도 그윽한 두 눈까지. 선명한 얼굴 윤곽에서는 남성성이 돋보였다.
자리에 있던 십여 명의 천지회 제자들은 머릿속이 ‘쿵’하고 울렸다. 그들은 믿기 어려운 감정이 솟구쳐서 안색이 잇따라 굳었다.
‘허, 허칠안?! 대봉 은라 허칠안이다!’
월씨 산장에 은거하는 제자들은 혜성처럼 등장하여 하나씩 하나씩 전설을 창조한 이 젊은 남자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월씨 산장 정보망에 들어간 건 불문 두법이 끝난 후였다. 조정에서는 관보를 널리 배포해 천하에 명백히 알리고, 허칠안이 대봉에 이름을 떨친 전설을 공고히 했다.
그런 뒤 밖에서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제자가 이 자에 관한 상세한 자료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감옥에 갇힌 채, 혼자 힘으로 세은 사건을 꿰뚫어 봄으로써 가족을 구했다. 그가 상백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평양군주가 해를 당한 케케묵은 오래된 사건을 파헤침으로써 많은 조당 우두머리가 실각했다. 뒤이어 그가 운주에 가서 사건을 조사하니 사절단이 위험한 때에 용감하게 나서서 홀로 반란군을 어느 정도 막아냈다…….
그는 경성에 돌아온 후, 먼저 궁 안의 복비 사건을 해결했으며 그 후 불문을 격파하고 두법에서 이긴 전설 같은 남자였다.
적잖은 남제자들은 그 시절을 회상하였다. 산장 안의 적잖은 사매와 사저들은 자주 사적으로 이 남자에 관해 언급했다. 수천만의 강호 소협들이 허칠안 손가락 하나도 막아내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략 보름 전쯤에는 검주성에 황제 폐하의 죄기소가 붙어서 검주 강호 전체가 충격에 빠졌었다.
이는 용의 위의 그자가 37년간 재위하면서 처음으로 쓴 죄기소였다. 그 내용은 보기만 해도 몸서리쳐졌다.
그들은 월씨 산장에서 제자를 보내 알아보고 나서야 최근 경성에 이렇게 큰 사건이 발생했다는 걸 알았다. 회왕이 성 안의 백성을 도살하고, 황제가 은폐하였다. 조당의 모든 제공은 황권이 무서웠으며, 또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웠기에 누구도 38만 백성을 위해 오류를 정정하려 일어서지 못했다.
허칠안이었다!
그는 황궁에 난입하여 국공을 사로잡고, 채시구에서 조정을 규탄한 뒤 단칼에 베었다. 이로써 천지를 태평하게 하고, 자신의 앞길도 끊어 버렸다.
월씨 산장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전설적인 은라를 매우 흠모하였다.
그녀들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자신들이 흠모한 지 오래된 그 전기적인 인물이 지서 파편 소지자이자 천지회 구성원이라니. 그는 우리 사람이었다…….
이는 어떤 호언과 원대한 포부보다도 사람 마음을 고무시켰다.
젊은 여제자들은 흥분한 나머지 얼굴과 귀가 빨개졌으며 눈에는 반짝반짝한 빛이 돌았다. 그녀들은 마치 언제든 날카롭게 부르짖으며 달려들 것만 같았다.
이묘진은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둘러보았다. 그녀는 젊은 여도사들 눈의 흥분과 동경을 똑똑히 본 순간, 좀 불쾌한 나머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지종의 여제자들이 허칠안이라는 불구덩이에 빠지는 걸 보길 원치 않아서였다. 그는 호색가였으며 결코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뭐겠는가?
“콜록콜록!”
금련 도사가 귀신처럼 나타나 황갈색 고양이 옆에 서서 거짓 웃음을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허 공자, 농담하지 말게. 빈도가 어째서 고양이란 말인가?”
‘씁, 도사님의 이 눈빛은 좀 무섭다고요…….’
허칠안은 말귀를 잘 알아듣고 화제를 돌렸다.
“도사님, 저희 왔습니다. 연밥이 여물기까지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요?”
그는 말을 마친 뒤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도사께서 지서로 저희한테 오라고 통지하신 게 이 상황 때문입니까?”
금련 도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난잡하게 어질러진 현장을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자네들 대봉의 그 황제도 구색연화에 아주 관심이 많더군. 신비로운 고수 한 대오를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법기 화포도 휴대했더군. 동틀 무렵, 한 차례 폭격으로 내가 배치한 진법이 깨졌네.”
그는 탄식하였다.
“나는 본래 자네들이 진법과 협력하여 산장을 수호하고 우세를 점했으면 했네. 이래야만 적게 공수를 들여 많은 걸 취할 수 있지. 지금은…….”
허칠안 일행이 대꾸하기도 전에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울리더니 폐허 위에서 메아리쳤다.
“이렇게 조잡한 것도 진법이라고 하는가?”
그 목소리에는 조금도 숨기지 않은 경멸과 멸시가 섞여 있었다.
천지회 제자들은 화가 나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누가 말하는데 머리는 숨기고 꼬리만 보이는 건가?!”
“에잇!”
나지막하고 어렴풋한 탄식 소리가 여기저기, 사방팔방에서 들려왔다.
“하늘이 나 양천환을 낳지 않았다면, 대봉의 오랜 세월은 기나긴 밤과 같을 것이니.”
이 목소리는 마치 요원한 상고 시대에서부터 비롯된 듯, 세상의 온갖 풍파와 무거운 역사를 담아 사람들 귓가에 울려 퍼졌다.
“외, 외람되지만 선배님께서는 어느 쪽 신성(神聖)이신지요?”
‘하늘이 나 양천환을 낳지 않았다면, 대봉의 오랜 세월은 기나긴 밤과 같을 것이니……. 이는 무슨 패기와 무슨 오만함이란 말인가!’
백련 도사는 깜짝 놀랐다.
‘금련 도사가 지서 파편 소지자 외에 희대의 고수를 한 분 더 초청했다고?’
자리에 있던 제자들은 이때도 법기를 거두고 어색하게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선배’의 모습을 찾았다. 백련 사고조차도 선배라고 칭하는데 그들이 어디 감히 무례를 범하는 말을 하겠는가.
“저기에 있다…….”
한 여제자가 그를 발견하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의 형체가 먼 곳에 서서 모든 사람을 등진 채 뒷짐 지고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 그의 옷자락을 흔들고, 그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니 그 우쭐대는 모습이 마치 적선(*謫仙: 벌을 받고 인간계로 쫓겨 내려온 선인) 같았다.
“이분은 경성에서 내노라하는 술사 양천환, 양 선배입니다.”
허칠안은 황급히 모두에게 소개했다.
백련 도사가 몇 걸음 마중 나가 공손히 예를 갖췄다.
“양 선배님이 도와주러 오실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선배님과 금련 사형은 경성에서 알고 지내셨나요?”
백련 도사는 말을 하면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금련 도사를 쳐다보았다.
‘도사님이 뜻밖에 사천감 줄도 댈 줄 알다니.’
사천감 술사는 유가가 이어진 후에 가장 안하무인인 체계라는 걸 알아야 했다. 설령 도문이라고 해도 술사들은 안중에 없었다.
역시 도사님다웠다. 어느새 이 정도까지 안배하였다.
모든 제자의 얼굴에 희색이 나타났다.
양천환이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금련이 누구인가?”
‘악…….’
백련은 어리둥절했다.
“금련 사형을 모르십니까?”
양천환은 뒷짐을 진 채 서서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왜 그를 알아야 하지?”
백련은 궁금해했다.
“그럼 선배님께서 이번에 온 건 무엇 때문입니까?”
그녀 옆에 있던 수십 명의 제자가 양천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양천환은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허칠안이 부탁하지 않았다면, 본존은 이런 속된 일에 참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네.”
‘충분해요, 충분해, 양 사형. 냄새가 독해요…….’
허칠안은 말없이 얼굴을 감쌌다.
‘알고 보니 허 공자가 모셔왔나 보구나. 그래, 그날 그가 사천감을 대표해 불문과 두법했댔지. 생각해보니 사천감과 깊은 인연이 있을 만해…….’
백련 도사는 돌아서서 허칠안에게 정중하게 예를 갖춘 뒤 온유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협심이 강하다는 허 공자님의 명성이 헛되지 않는군요. 큰 은혜, 천지회는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남제자들 역시 백의 선배는 허 공자가 부탁해서 온 조력자라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그들이 허칠안을 보는 눈빛이 점점 더 감격과 인정으로 넘쳤다.
여제자들도 눈을 반짝였다. 그녀들은 허 공자가 자신들이 상상했던 그 완벽한 이미지와 조금의 편차 없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녀들은 점점 더 그를 우러러보았다.
‘양 사형, 계속해서 이런 허세를 유지해 주세요…….’
허칠안은 내친김에 말했다.
“양 선배, 한 수 보여주는 것도 무방합니다. 월씨 산장을 도와 진법을 보수하고 개량하는 건 어떠신지요?”
순간 금련과 백련을 포함한 천지회 모든 이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양천환의 뒷통수를 바라보았다.
……양천환은 자신이 높은 곳에 끼어 내려올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만약 거절한다면 그가 앞서 조성한 고수 이미지가 깡그리 사라지는 건 둘째 치고 인상이 대폭 깎일 게 틀림없었다.
“알겠네…….”
그는 간단하게 대답하더니 바로 덧붙였다.
“모든 이들은 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다가오면 안 되네.”
아름다운 부인 백련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요. 저희는 선배의 비술을 훔쳐보지 않을 겁니다.”
‘그는 그저 진법을 보수할 때 너희들에게 정면을 보이고 싶지 않을 뿐이야…….’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 * *
산장 깊숙한 곳, 차가운 연못 가.
“이게 바로 구색연화?”
리나는 눈에 구색 노을빛이 거꾸로 비친 채 탄식했다.
“정말 아름답다.”
이묘진은 입을 오므렸다. 그녀 역시 여인에게만 있는 동경과 갈망을 지니고 있었다. 예로부터 여인은 꽃, 특히 예쁜 꽃에 항상 거부감이 부족했다.
“확실히 봉오리가 질 때가 되었군.”
허칠안이 평가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사적인 저택에서 부양하는 왕비가 떠올랐다. 구백 년 전의 화신이 환생한 그 여인도 첫사랑을 나눌 때의 모습은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터였다.
초원진과 항원의 표정은 차분했다. 이 두 사람 중, 전자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검에만 애정을 기울였다. 또한 후자는 생각이 깨어 있어 외적인 사물로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금련 도사가 말했다.
“오늘 아침의 화포는 그저 탐색전일 뿐이네. 그들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 연밥을 망가뜨릴까 봐 두려워하지. 허허, 내일 해 질 무렵 연밥이 여물 것이야. 빈도가 짐작하기에 오늘이 바로 그들이 산장을 공격하여 끝장을 보려고 할 때네.”
“이번 적에 관해 얘기해주세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지 않습니까.”
이묘진이 연못 가에 가부좌를 틀고 말했다.
금련 도사는 잠시 문맥에 맞게 어휘를 고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구색연화를 노리는 세력은 셋이네. 먼저 지종 요도지. 흑련 도사의 분신은 언급하지 않겠네. 도사 외에 지종에는 아홉 명의 장로가 있네. 각각 ‘적(赤), 등(橙), 황(黃), 녹(綠), 청(靑), 남(藍), 자(紫), 금(金), 백(白)’이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동글반반한 얼굴에 피부가 하얗고 아름다운 중년 여도사를 쳐다보며 소개했다.
“이분이 바로 백련 장로시네.”
성숙한 부인의 우아한 자태가 돋보이는 백련 도사는 웃더니 도문의 예를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