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화. 지서 파편 소지자, 허칠안 (2)
금련 도사가 어쩌다 한 번 나갔다 오더니 고양이 기르는 걸 좋아하기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여제자들은 이 고양이들을 아주 좋아해서 수련 시간 외에는 껴안고 노는 일을 즐겼다.
백련은 고양이들을 쳐다보면서 웃었다.
“백련 사고, 진법 보수가 쓸모가 있습니까? 설령 우리가 잘 보수한다고 해도 다음 포탄이 오면, 우리의 성과를 손쉽게 때려 부술 텐데요…….”
한 젊은 제자가 분풀이하듯 손안의 재료를 내리쳤다. 그는 슬프고 분하면서도 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눈을 붉혔다.
“우리는 사천감의 술사가 아닙니다. 저희는 포탄을 막을 진법을 형상화하지 못한다고요. 우리, 우리는 연밥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마도에 빠진 요도(妖道), 무림맹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조정 세력…… 저희가 무슨 까닭으로 지킨답니까? 무슨 근거로?!”
그의 감정은 다른 제자에게 옮아갔다. 그는 모든 이가 하던 일을 묵묵히 쳐다보다가 백련 도사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중년 도사는 제자들이 이미 무너지기 직전에 놓였다는 걸 깨닫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동안 여러 산수가 십여 리 밖의 작은 마을에 일제히 모였다.
그중에는 무림맹, 지종 요도 및 법기 화포를 배치할 수 있는 조정 세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월씨 산장에서 제자를 파견해 강호 인사로 위장 침입하여 남몰래 수집한 정보였다. 그들은 바로 이러한 이유를 기반으로, 적이 얼마나 강대한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며 걱정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쌓였던 참에, 방금 그 화포 폭격으로 불이 붙었다.
“자네들은 걱정하지 말게. 우리에게는 지서 파편 소지자가 있잖나. 우리는 결코 사면초가가 아니네…….”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 젊은 여제자가 말을 끊었다. 그녀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큰 소리로 반박했다.
“사실 근본적으로 지서 파편 소지자가 없는 거지요, 그렇지요, 사부님? 만약 정말 무슨 원군이 있다면, 정말 지서 파편 소지자가 있다면, 왜 사부님께서 모르시지요? 사부님께서 줄곧 저희에게 알려주지 않으시는 건 저희를 속이고 계셔서인 겁니다!”
백련은 버들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모든 제자를 훑어보았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망연자실과 낙담이 가득했다.
‘알고 보니 그들 역시 이렇게 생각했군…….’
백련 도사는 눈동자가 갑자기 날카로워지더니 호통 쳤다.
“정말 지서 파편 소지자가 없다면 너희들은 싸울 수 없는 것이냐? 우리 지종은 널리 공덕을 닦고, 의협심을 발휘하여 의로운 일을 하는데 제자들은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제자들은 잠시 침묵하였다. 한 젊은 남제자가 고개를 가로젓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백련 사고, 저희는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닙니다. 저희가 두려운 건 쓸데없는 희생입니다. 현재 지종의 진정한 후손은 34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구색연화 때문에 모조리 손해를 보았지요. 사고, 사고와 금련 사숙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또 다른 남제자가 두 주먹을 꽉 쥐더니 눈물을 머금었다.
“만약 사형, 사저들이 모두 월씨 산장에서 죽으면 구색연화를 지켜냈다고 해도 어찌하겠습니까? 후손이 모두 끊겼는데요.”
앞서 큰 소리로 반박했던 여제자가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사부님, 저희 물러나요. 사부님께서 가서 금련 사숙과 얘기해보세요, 네?”
백련 도사는 화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슬플 뿐이었다. 기세가 드높은 이 아이들은 본래 전부 지종의 미래 대들보였다. 그들은 도사가 사도에 빠진 후로 이리저리 숨어다녔고, 동문과 사단장이 마도에 빠져 도살용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다.
여러 해가 지나고 그들은 이미 조그마한 일에도 위축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의 의지는 서서히 닳았으며 그들의 용기는 조금씩 마모되었다. 그들은 한 번의 승전으로 자신감을 만회하고 믿음을 빚어야만 했다.
갑자기 백련의 귓바퀴가 약간 움직였는데, 바람 사이로 미약한 움직임이 들려왔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자 휙휙 소리를 내며 오는 검광이 보였다.
‘비검 비행?’
백련은 가슴이 철렁했다. 검을 부려 비행하는 건 도문만의 수단이었고, 천지인 삼종은 모두 시전할 수 있었다. 이 결정적인 시기에 검을 부려 비행하는 고수가 나타났다고 하면, 그 상대는 지종 요도일 가능성이 더 컸다.
주변의 젊은 제자들은 즉시 경계하며 잇따라 자신의 법기를 부렸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전투해야 하는 때가 오자 그들은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검 위의 사람 형체는 수십 줄의 기기가 자신을 바짝 따라붙었다는 걸 눈치챈 듯 침착하게 품속에 손을 넣어 옥석경을 꺼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흔들었다.
젊은 제자들은 여전히 만반의 준비를 마친 채 적의 습격에 대비했으나 이 물건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백련은 눈동자가 약간 수축하더니 곧 그것이 지종의 지보, 지서 파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지, 지서 파편 소지자구나……!”
깜짝 놀란 백련은 기뻐하며 말했다. 동시에 그녀는 힘껏 손을 아래로 저어 제자들에게 무모하게 나서서 원군을 잘못 다치게 하지 말라는 뜻을 표했다.
‘지서 파편 소지자가…… 왔다고?’
모든 제자들의 얼굴에 놀람과 기쁨 또는 망연함 혹은 흥분의 감정이 나타났다. 정말로 지서 파편 소지자가 있었다!
비록 백련 사고가 늘 원군이 있다고 강조했지만, 제자들이 아무리 캐물어도 백련 사고는 지서 파편 소지자의 신분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지나자 제자들은 겉으로 말하지는 않더라도 속으로는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의지가 가장 꺾였을 시기에 지서 파편 소지자들이 정말 나타났다.
비검은 폐허 옆에 낙하했으며 두 미인이 재빠르게 뛰어내렸다. 앞선 장포를 입은 여인은 늠름하고 갸름한 얼굴에 붉은 입술과 반짝이는 눈을 지녔다. 그녀의 피부는 희었고 다소 날카로운 눈썹꼬리는 재기가 넘쳤다.
다른 소녀는 남강 사람의 특징을 지녔다. 그녀는 이목구비가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웠으며, 활발한 기질을 지녔다. 또한 그녀의 바다와도 같은 쪽빛 눈동자는 민첩하고 밝았다.
하지만 밀색 피부와 건강한 몸매 때문에 그녀는 밀림 속에서 생활하는 표범처럼 보였다.
“이묘진, 천종 성녀 이묘진이다…….”
“묘진 사저라고? 정말 묘진 사저라고?”
“잘됐다. 묘진 사저가 우리 지종의 지서 파편 소비자라고?”
제자들은 이묘진을 알아보았다. 천지인 삼종에는 각각의 이념이 있었다. 천인 양종은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였지만, 상호 간에 절대로 왕래하지 않는 건 또 전혀 아니었다.
삼종 제자는 가끔 서로 찾아가곤 했다. 비록 천인 양종은 자주 불쾌하게 헤어진다고 말했지만, 도문 두 글자는 필경 삼종들이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게 했다.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다.
얼마 전 이묘진과 초원진의 천인 간 전쟁으로 세간이 떠들썩했다. 월씨 산장도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건 아니었기에 천지회 제자들은 상황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다.
이묘진은 도문의 예를 갖추고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여러 사형, 사저 분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천지회의 젊은 제자들은 잇따라 답례하고 리나를 쳐다보았다.
이묘진은 상황을 이해하고는 리나를 소개했다.
“그녀는 남강 역고부에서 왔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리나를 향해 예를 갖추었고, 남강 까만 피부의 소녀는 허리를 굽혀 답례했다.
“두, 두 분뿐입니까?”
한 젊은 제자가 떠보았다.
만약 지원군이 고작 둘이라면, 사실 정세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설령 천종 성녀 이묘진이 이미 4품에 들어선 전도유망한 신예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 눈앞에는 늑대 무리가 어슬렁거리는 데다 고수가 구름처럼 몰려들기까지 했다.
“그들이 곧 도착합니다.”
이묘진이 웃었다.
‘그들이라…….’
천지회 모든 제자는 속으로 기뻐했다. 이는 지원군이 한 명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들은 지서 파편의 다른 소지자를 기대하였다.
남강 소저는 수련 경지가 어떠한지 알아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묘진은 명성이 높으니 틀림없이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지 않을 터였다.
그들이 막 생각하던 중, 또 누군가 검을 부리며 와서는 월씨 산장 상공을 한 바퀴 선회하더니 재빠르게 낙하하여 이묘진 등을 향해 돌진했다.
검등 위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두 남자였다. 앞에 있는 사람은 청삼 차림이었으며 용모는 점잖은 편이었고 이마 앞에는 흰 머리카락 한 가닥이 있었다.
청삼 남자 뒤에는 체구가 크고 훤칠한 중년 승려가 있었다. 그는 이목구비가 평범했으며 기질이 온화하여 어떤 특출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초원진, 인종의 기명 제자입니다. 여러 지종 동문들께서는 그가 전혀 낯설지 않겠지요.”
이묘진이 웃으면서 그를 소개했다.
“초원진?”
아름다운 여제자 한 명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천인 간 전쟁 전에 초원진의 명성은 경성에서만 퍼졌다. 하지만 이묘진과 맞붙은 이후에는 인종 기명 제자의 명성이 재빠르게 솟구쳤다.
그의 예전 사적 역시 들춰졌다. 원경 27년 장원으로 이듬해 벼슬을 그만두고 무도를 닦았다. 수년간 기별이 없다가 급부상하여 위연에게 ‘경성 제일 검객’으로 칭송받았다.
그는 전기적 색채가 농후한 인물이었다.
‘뜻밖에도 도사님이 천인 양종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 둘을 천지회에 끌어들였다니…….’
백련 도사는 깜짝 놀라 기쁨을 금치 못했다. 장차 이묘진은 천종 고위층이 될 인물이었다.
‘그녀가 천지회에 들어온 게 천종의 뜻일까? 천종 역시 지종 집단이 사도에 빠진 일로 도문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고 생각해 손을 쓸 작정인가? 마찬가지 이치로 인종 도수 낙옥형 역시 이렇게 생각할까?’
백련 도사는 보통 제자보다 더 깊고 더 길게 보았다.
“우리 천지회가 이런 시련을 겪는데 네 분께서 먼 길을 달려와 도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백련은 마중 나와 정중하게 예를 갖추었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정세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무림맹의 4품 고수만 해도 저희보다 훨씬 많고, 하물며 사도에 빠진 요도들 그리고 혼란한 틈을 타 한몫 챙기려는 산수들도 있지요. 여러분께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절대 호기 부리시면 안 됩니다. 정말 안 되면 구색연화를 포기하면 됩니다.”
‘그녀는 우리의 전투력으로는 대세를 완전히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여기는군…….’
초원진은 백련 도사의 말에 숨은 뜻을 알아들었다. 그녀의 말투에는 얕보는 감이 있었지만 확실한 진심이 엿보였다.
초원진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한 명 더 있는데 그는 저와 묘진보다 강합니다. 게다가 강호에서 잘 알려진 인물들은 아마 체면이 좀 설 겁니다.”
이묘진이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더니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어째 아직도 오지 않는 겁니까.”
항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아직 오는 길이겠지요.”
‘그들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지? 이묘진과 초원진보다도 강하고 강호에서 잘 알려진 인물들의 체면을 좀 살려줄 수도 있다고? 그러러면 어떤 거물이어야 하는 거야…….’
천지회 제자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