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화. 지서 파편 소지자, 허칠안 (1)
이른 아침, 강력한 열량을 머금은 햇빛이 대지를 비추었다.
허칠안은 때맞춰 일어났다. 그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다소 힘들었지만 일단은 하품하면서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부향을 보러 가지 않았더니 보고 싶네.”
그는 옷차림을 단정히 한 다음, 멀지 않은 푹신한 침상 위에 있는 종리를 불러 깨운 뒤 그녀와 함께 세수하고 양치하러 갔다.
두 사람은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돼지털 칫솔을 움켜쥐고, 입안에 거품을 가득 채운 채 이를 닦았다.
“진짜 최고의 법기는 그 속에 진법을 낙인하는 게 아니라 영(靈)이 있는 신기(神器)네.”
이때 종리가 갑자기 두서없이 한 마디 던진 뒤 고개를 갸우뚱하며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따졌다.
“할 말 있으면 끝까지 하세요. 저한테 눈빛을 보낸들 제가 이해할 수 있겠어요?”
“아아…….”
그녀는 모호하게 ‘아아’ 소리 내더니 침을 한 모금 머금고 내뱉고는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스승님께서 자네에게 준 그 칼 말이야, 세상 제일 신병(神兵) 티가 나면서도 상응하는 기령(器靈)이 없네.”
허칠안은 마음이 동요하였다.
“그래서요?”
종리는 처마 밑의 풍경 같은 낭랑한 목소리에 부드러움을 담아 진지하게 제안했다.
“반드시 연밥을 얻어야 하네. 그건 무기를 점화시켜 자네의 칼이 기령을 탄생시킬 수 있게 할 거야. 기령이 있는 무기를 지니면 장차 진정한 살상 무기가 될 걸세. 진국검, 지서처럼 구주에서 가장 뛰어난 법보 모두 기령을 지니고 있네. 다시 말해서 기령 탄생은 구주 최고의 법보 반열에 드는 토대야. 감정 스승님께서 자네에게 준 패도가 만약 기령을 지닐 수 있다면, 고품 무사의 육신은 더는 그렇게 무적이 아니야.”
‘맞다, 나는 전에 어째서 생각하지 못했을까. 연밥은 만물을 점화시킬 수 있으니 당연히 내 패도도 점화시킬 수 있을 텐데…….’
허칠안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마음속으로 따져보았다. 만약 흑금장도가 기령을 탄생시킨 뒤 거기에 그의 《천지일도참》을 배합한다면, 같은 급에서 무적인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리라.
가능성이 농후했다. 한 경지를 넘어 적을 참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컸다.
그가 진짜 5품으로 승직하면, 4품 무사를 때려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음, 4품 전봉은 어렵다고 해도 보통 4품은 어렵지 않을 터였다.
이런 식으로 유추했을 때, 만약 4품으로 승직하면 같은 급에서 공격하고 죽이는 기술로는 손꼽히는 거 아닌가?
허칠안이 지금 가장 부족한 건 바로 진실한 전투력이었다. 무기 역시 전투력의 일부였다.
종리는 입을 헹구고 온유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령이 탄생하고 나면 칼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네. 자네가 매일 온양하면, 주인을 알아볼 걸세. 제삼자는 사용할 수 없고. 자네에게 지서 파편이 있으니 이해하겠지.”
‘종리 정말 짱이다…….’
허칠안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검주에 가고 싶어졌다. 그는 일부러 정색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제게 지서 파편이 있는지 사저가 어떻게 알지요? 제가 연밥을 지키러 갈 건지 어떻게 알지요? 제 전서를 엿보았나요?”
“?”
종리는 그를 맹한 눈으로 쳐다봤다.
허칠안은 입가를 훔치고 손바닥 안의 거품을 그녀의 정수리에 발라서 원래도 지저분한 머리를 닭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득의양양하게 해죽거리며 자신의 걸작을 쳐다보았다.
“나, 나 머리 감겠네…….”
종리는 무고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렇게 대접받는지 알지 못한 채 억울해하며 떠났다.
‘하하, 만약 왕비라면 지금 당장 달려들어 내 얼굴을 할퀴었을 텐데…….’
허칠안은 득의양양하게 ‘흥흥’ 소리를 냈다.
익숙한 가슴 뛰는 소리가 이 결정적인 시기에 파고들었다.
* * *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리곤 돼지털 칫솔을 내던졌다. 그러고는 방으로 돌아와 베개 밑에서 지서 파편을 집어 문자를 살폈다.
[구: 여러분, 즉시 출발하여 검주로 오게. 상황이 좀 심상치 않네.]
초원진이 바로 대답했다.
[사: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도사님, 검주에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구: 당장은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네. 이번에는 적이 좀 많고, 정세가 아주 심상치 않네. 자네들 바로 와서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게 가장 좋겠네.]
‘이번에 적이 좀 많다고?’
허칠안은 즉시 눈썹을 치켜올렸다.
종리가 한 말이 있었으니 그는 연꽃을 반드시 얻어 기세를 굳혀야 했다. 이로써 그는 무서운 첩을 얻는 게 아니라 세상 제일의 신병을 지닐 수 있었다.
“저 바로 떠나야겠습니다. 음, 우선 사저를 사천감으로 데려다드리지요.”
허칠안은 종리의 팔을 잡고 방문을 달려 나갔다.
마침 이묘진이 비검을 든 채 방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 옆에 소소가 없는 걸로 보아 아마 음낭에 거두어들인 듯했다.
“나는 그녀를 사천감으로 데려다줄 것이오.”
허칠안이 말했다.
“응.”
이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액운이 몸에 달라붙은 종리가 설령 평소에 조심한다고 해도 만약 전쟁터에 있다면…….’
* * *
허칠안은 종리를 데리고 암말에 올라탄 뒤 사천감으로 돌아갔을 때 막 이묘진과 회합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속에서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솟구쳤다.
양천환은 4품 술사라 공격하고 죽이는 기술은 무사만 못 하지만, 진법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법기도 있었다…….
허칠안은 돌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곧 눈앞에서 사라지려는 종리를 쳐다보더니 황급히 소리쳤다.
“종 사저, 양 사형이 지하에 있는 거 맞지요?”
종리가 고개를 돌렸다.
“응.”
“양 사형, 양 사형?”
그가 지하로 돌진하면서 크게 소리치자 목소리가 쾅쾅 울려 퍼졌다.
“시끄러워 죽겠군. 무슨 일로 나를 찾는가?”
양천환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형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요…….”
허칠안이 막 입을 떼려는데 양천환이 말을 끊고 거절했다.
“돕지 않겠네, 꺼지게!”
허칠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종리를 쳐다보았고, 종리는 고개를 저어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나타냈다.
그는 생각하더니 탄식하곤 소리 높여 말했다.
“제가 이번에 가는 건 공격하기 쉽지 않은 험준한 요새지 때문입니다. 제가 이번에 가는 건 악인들을 전부 죽이고 강호를 놀라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이번에 가는 건 무도 성지인 검주에 가서 검주의 강호에게 한 마디만 건네기 위함입니다.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전부 쓰레기입니다!’”
허칠안이 말을 마치자 눈앞에 하얀 형체가 반짝였다. 양천환이 뒷짐 진 채 서서 나지막이 말했다.
“가세!”
* * *
검주, 월씨 산장.
나이가 대략 마흔이고, 얼굴이 동글반반하며, 몸매가 풍만한 백련 도사는 검은색 장포를 입고 머리를 묶은 뒤 흑단 도잠(道簪)을 꽂고 있었다. 간결함과 제멋대로인 기질 안에 부인의 유순함이 배어 있었다.
부드럽고 유순한 백련 도사는 지난날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이 순간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없이 산장 외곽 지역을 걸었다.
십여 명의 제자가 그녀 뒤를 따르며, 장애물을 깨끗이 정리하고 진법을 재배치하려 했다.
이곳은 막 포탄 습격을 한 차례 받았다. 포탄이 유성처럼 떨어져 거대하면서도 깊은 구덩이를 하나씩 만들어낸 한편, 충격파가 바닥에 깔린 청석판을 젖혀 집과 나무가 무너져 내렸다.
천지회 제자 한 명은 불행히도 포탄에 맞아 시체도 남지 않았다. 또한 천지회 제자 둘은 중상을 입었다.
이 지종 제자들은 지종에서 도망친 후, 사도에 빠지지 않고 이성을 유지한 채 ‘천지회’로 개명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금련 도사가 산장에 배치한 진법의 한 귀퉁이가 무참하게 찢겨 물밀 듯이 밀려오는 적을 더 이상 막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중에는 실력이 강하지 않지만 수는 많은 강호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강호 산수(*散修: 혼자서 수련하는 이들)는 늘 골치 아픈 집단이었다. 그들은 수가 많았으며 사용하는 수법은 기이하면서도 비열했다. 그들은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빽이 없었으니 승직하려면 어떠한 기회도 놓치면 안 됐다.
“백련 사고…….”
옅은 남색 장포를 입은 제자 한 명이 나는 듯이 달려와 눈물을 글썽이며 흐느꼈다.
“능진(凌眞) 사제, 그, 그가…….”
그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통곡하기 시작했다.
능진은 중상을 입은 제자 중 하나로 상처가 심해 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음신을 수련해내지 않았기에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으면 죽는 것이었다.
백련 뒤에 있던 수십 명 제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종 도수가 사도에 빠진 후, 대부분의 제자가 모두 마도에 빠져 요괴가 되었다. 지금 그들처럼 정신이 맑고 깨끗한 제자는 36명뿐이었기에 하나라도 줄어들었다간 큰 손실이었다.
현재 지종 정통 제자는 34명뿐이었다.
“그는 다른 형식으로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아름다운 부인이 탄식했다.
“백련 사고, 금련 도사가 지서 파편 소지자들에게 도와주러 오라고 청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은요? 어째서 아직도 오지 않은 겁니까?”
한 제자가 눈물을 머금고 물었다.
다른 제자들도 이 말을 듣더니 다소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백련 사고가 지서 파편 소지자들 모두 행운아들로 능력이 뛰어나다면서 모두에게 강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틀림없이 지서 파편 소지자들이 그들을 도와 구색연화를 지켜내어 이 난관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올 게야, 올 게야…….”
백련 도사는 끊임없이 제자들을 위로했다. 그녀는 자신의 근심을 내비치지 않았다. 얼마 전의 화포 폭격은 실로 그녀의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금련 도사가 배치한 대로 월씨 산장 전체는 진법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지서 파편 소지자가 한자리를 지키며 진법의 위력을 빌리면, 외적을 막는 동시에 구색연화가 여무는 일을 미룰 수 있었다.
일단 연밥이 여물면, 금련도사는 부분적인 전투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더 산장을 사수할 필요 없이 싸우면서 물러날 수 있었으며 결국에는 성공적으로 퇴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진법을 보수하여 이 빈틈을 막는 걸세.”
백련이 분부하였다.
제자들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 바빠지기 시작하더니 폐허를 청소하거나 진법을 수리하였다.
아주 우아한 자태의 부인이 그들의 분주한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운 눈썹을 치켜올리고 소리 없이 탄식했다. 사실 그녀조차 지서 파편 소지자가 누구인지, 그들이 이번 위기를 헤쳐 나가도록 도울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야옹…….”
이때 황갈색 고양이 몇 마리가 관목 숲을 뚫고 나와 분주한 제자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 고양이들은 금련 도사가 데려온 녀석들로, 산장에서 길러진 지 꽤 되었다. 평소에 고양이들은 산장 곳곳을 한가롭게 거닐면서 도망치지 않았다. 아마 고양이들은 이미 이곳을 집으로 삼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