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화. 검주에 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열흘이 지났다. 검주 현지 관아는 경악할 만한 발견을 했으니, 바로 그동안 검주에 강호 인사가 아주 많이 왔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객잔, 주루, 기생집에 떼 지어 모여 검주에서 진기한 보물이 세상에 나오리라는 소식을 마구 퍼뜨렸다.
검주 지부는 그제야 뒤늦게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관아에서 가장 반감을 품는 것이 바로 무림 인사들의 패거리 규합이었다. 그들은 말썽을 일으키기 쉬운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즉시 사람을 파견해 정보를 캐보았는데 뜻밖에도 진기한 보물이 세상에 나오는 장소를 아주 가뿐하게 알아냈다. 검주성 먼 교외에 있는 한 산장이었다.
검주 관아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 성안에서 난투극이 발생해 강호 인사들이 죽네 사네 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거기까지 신경 쓰기 귀찮았다.
* * *
금련 도사는 산장 안의 각루 위에 서서 먼 곳의 산길을 조망했다.
피부가 하얗고 얼굴이 아름다운 백련은 각루에 올라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서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방금 또 강호 사람 한 무리가 미혼진에 걸려들어 제자들이 기절시키고 포박하였어요. 그동안 우리는 총 수십 명의 강호 인사를 포로로 잡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죽을 정도의 죄를 짓지는 않았는데 만약 그들의 목숨을 해친다면 무고한 자들을 죽이는 겁니다. 죽이지 않고 남겨 두어도 잠재해 있는 위험이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금련 도사는 탄식하더니 말했다.
“이건 흑련이 일부러 내보낸 소문일세…….”
다른 세력, 다른 조직이라면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틀림없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본보기로 삼아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을 터였다.
하지만 금련 도사,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지종의 수련은 공덕의 일종이었으므로, 그들은 이유 없는 살생을 저질러서는 안 됐다. 그들은 그런 짓을 했다가는 신마가 생겨 마도에 빠질 터였다.
“흑련이 바로 이 점을 알기에 유언비어를 널리 퍼뜨려 모든 강호 인사들을 끌어들인 거죠.”
백련은 희고 매끈한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탄식했다.
반면 금련 도사는 마치 모든 걸 조속히 통제할 거라는 듯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급하지 않네. 한 놈을 기다리자고. 만약 그가 온다면 그 오합지졸들의 8할은 물러날 걸세.”
백련 도사는 금련 도사가 어느 강호 고수들을 지서 파편 소지자로 골랐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색깔 있는 연꽃이었으므로 지위가 아주 높았다.
그녀도 내막을 어느 정도는 알았다. 그녀가 듣건대 금련 도사가 선택한 파편 소지자는 전부 대복연을 지닌 신예라고 했다. 그들은 장차 금련 도사가 마념(魔念)을 제거하는 데 중요한 버팀목이 될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 젊은이들이 전부 신예라 실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들이 어느 정도까지 강할 수 있단 말인가?
전부 4품이지 않는 이상, 백련은 이 젊은이들이 사도에 빠진 지종의 몇몇 연화 도사와 흑련 도사 그리고 무림맹의 병마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금련 도사는 그가 결성한 ‘지서 천지회’에 아주 자신이 있는 듯했다.
‘구주 각지, 청년 준걸이 셀 수 없이 많으니 금련 도사가 물색한 젊은이가 누구인지 정말 짐작할 수가 없네…….’
백련은 가슴이 안절부절하면서도 기대가 되었다.
* * *
깊은 밤, 금색 실로 여러 겹의 구름무늬를 수 높은 자색 장포를 입은 조청양(曹靑陽)은 홀로 대융산의 대원을 나서서 뒷산으로 향했다.
뒷산에 있는 사람은 나라와 나이가 같았다.
그는 어두운 달빛이 비추는 밤에, 천천히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아래에서 바람을 가르며 산속의 오솔길을 따라 걸어갔다. 자색 장포 자락이 길가의 잡초를 어루만졌다.
조청양은 마흔 초반으로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눈빛이 날카로우며 관상은 ‘정(正)’자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 맹주에 관해서 검주 강호에서는 줄곧 흥미진진한 소문이 하나 있었다. 말하는 바에 의하면 전임 맹주가 관상학에 빠졌다가 우연히 당시 무림맹 조무래기였던 조청양을 만났다고 했다.
그는 기대 이상이라면서 매우 기뻐했고, 이 자의 관상이 비범하며 극히 드문 후토상(后土相)이라고 직언하였다. 천원지방(天圓地方), 덕이 높은 사람은 중대한 임무를 맡을 수 있는 법이라는 말처럼 후토상을 지닌 사람은 덕행에 흠이 없어 군웅을 거느릴 수 있었다.
맹주는 그를 즉시 제자로 거두고 무학(武學)을 전수했다. 그런 뒤 그는 무림맹의 맹주 자리를 전수하였다.
관상학에 일리가 있든 없든, 전임 맹주의 안목은 확실히 뛰어났다. 무학의 조예로 말하자면, 조청양은 검주 제일 무사로 무방(武榜)의 제일인자였다.
직업적 소양을 논하자면, 조청양은 검주 무림맹을 십여 년 동안 통솔하면서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검주 강호의 질서는 안정적이었고, 나아가 관아와 협력하여 강호 탈주범을 체포하기도 했다.
그가 산림 사이를 일각 동안 걸으니 눈앞이 확 트이면서 거대한 절벽이 나타났다. 높이 솟은 절벽의 밑부분은 돌문이었다.
돌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 앞에는 썩은 나뭇잎이 가득 떨어져 있고, 잡초가 가득 자라 있었다. 마치 끝없는 세월 먼지로 가득 덮여 열린 적이 없는 듯했다.
숲을 빠져나와 절벽을 보는 순간, 조청양은 절벽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홍등롱(紅燈籠)두 개를 날카롭게 눈치챘다. 그의 몸을 잠시 ‘비추더니’ 이내 소멸한 그것의 정체는 바로 견융(犬戎)이었다.
조청양은 돌문 옆으로 와서 등을 구부리더니 차분하고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상님, 제가 조상님을 대신해 구색연화를 빼앗아 관문을 돌파해드리겠습니다.”
문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조청양은 계속해서 말했다.
“20년 전 산해관전역 이후로 대봉의 국력은 날로 쇠퇴하고 있으며, 각 주(州)에 대한 조정의 장악력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각 주(州)에서는 재해가 끊이지 않습니다. 저는 대란이 곧 닥칠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문 안에서 드디어 노쇠하고 어렴풋한 목소리가 울렸다.
“대봉의 황제는 여전히 도를 닦는가?”
조청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흥!”
콧방귀 소리가 문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조청양이 계속해서 말했다.
“근래에 경성에서 소식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변방을 수호하던 그 진북왕이 2품 대원만에 충격을 가하기 위해 초주성 38만 백성을 도살하였다가 한 신비로운 강자에게 초주성에서 목을 베였다고 합니다.”
그가 바로 소식을 한 차례 간단하게 얘기했다.
“잘 베었군!”
그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후에 원경제가 악행을 감추기 위해, 경성에 들어와 억울함을 호소하는 초주 포정사를 살해하고 주범 중 하나인 호국공을 은폐했습니다.”
“조당 제공들이 관여하지 않았는가? 감정이 관여하지 않아?”
그 목소리가 좀 저조해졌다.
“그렇습니다.”
조청양의 대답이 떨어지자 갑자기 발밑 대지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돌문 역시 진동하기 시작했고, 먼지가 부스스 떨어졌다.
절벽 위에서 그 두 개의 등롱이 다시 반짝이더니 차갑게 그를 주시했다.
“조상님, 노여움을 가라앉히십시오. 이 일은 아직 뒷 내용이 있습니다…….”
조청양이 황급히 말했다.
산채의 떨림소리가 멎었고, 절벽 위 홍등롱 두 개도 바로 꺼졌다.
조청양이 한숨을 내쉬더니 위엄 있고 단정한 얼굴로 여유로워진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며 말을 이어갔다.
“후에 한 은라가 황궁에 난입하여 호국공을 사로잡고 황제의 악행과 진북왕의 악행을 통렬하게 비난한 뒤, 사건에 연루된 두 국공을 채시구에서 참수했습니다.”
돌문 안에서는 한참 동안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았다. 그는 반각을 조용히 침묵하더니 어렴풋한 탄식 소리를 냈다.
“자고로 필부가 가장 가증스럽고, 자고로 필부가 가장 부끄럼이 없는 법이지.”
조청양은 생각하더니 설명했다.
“조상님, 그 은라는 죽지 않았습니다.”
“아?”
이번에는 차분하고 어렴풋한 목소리에 호기심이 섞였다.
“이 자의 이름은 허칠안이라고 하는데 야경꾼입니다. 작년 경찰 때 부상한 인물로, 조상님께서 만약 듣고 싶으시다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데 제가 귀찮다고 싫어하지 마십시오.”
노쇠한 목소리에 장난기가 다소 담겨 있었다.
“이 몸은 수백 년을 제자리걸음 하였네. 속세를 벗어난 강산도 모르고, 구주 강호도 모르지. 어쩌다가 자네의 수다 소리를 듣는 걸 제외하고 다른 때는 아주 재미가 없어.”
조청양은 돌문 앞에 가부좌를 틀고 그의 말을 끊었다.
“최근에 강호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비연 여협객이고, 조당에서 가장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건 허칠안이라는 은라입니다……”
그는 즉시 경찰이 있던 해에 허칠안이 부상한 일련의 사건을 감칠맛 나게 늘어놓았다.
무림맹이 검주 강호를 통치하고, 관아를 두려움에 떨게 한 데다 조정이 이를 묵인하게까지 할 수 있는 데에는 당연히 그만의 독특한 요소가 있었다. 조청양을 가장 오만하게 하는 요소는 무림맹의 고수도 기마병 팔천도 아니었다.
이는 바로 그가 직접 구축한 정보 시스템이었다.
조청양이 보기에 행상인과 심부름꾼, 강호의 협객들이 구축한 정보 시스템은 위연의 야경꾼 첩자보다는 못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의 밑바닥층 정보 소식을 거론하자면 그 부분만큼은 한 수 위였다.
조청양은 옥에서 세은 사건을 해결한 것부터 상급을 칼로 벤 얘기까지, 상백 사건부터 운주 사건까지 그리고 최근 초주 사건까지 아주 상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검주는 허 은라에게 아주 큰 공을 들였다.
물론 그자가 한 일은 지나치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데다 지나치게 번지르르해서 누구든 이 일을 모르고 넘기려 해도 쉽지 않았다.
돌문 안의 선조는 그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었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의 승승장구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이 자가 만약 요절하지 않는다면, 대봉에 전봉 무사가 또 늘겠군.”
어렴풋한 목소리가 웃음기를 머금었다.
“강호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이 자의 천부적인 자질이 진북왕에 못지않다더군요.”
조청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선조의 평가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북왕과 비교하자면, 나는 허씨 사내 같은 무사가 더욱 많이 나타나길 바라네.”
어렴풋한 목소리가 탄식했다.
“무력으로 금기를 범하는 무사는 극악무도할수록 생각이 더 순수하지. 무사가 수련하는 건 자신이니까……. 진북왕은 순수한 무사였네. 그렇기에 그는 그 정도까지 갈 수 있었지만, 마침 이러한 이유로 그는 백성 대량 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 것이지. 그래서 자고로 필부는 가장 가증스럽다는 것이네. 허씨 그 사내 역시 난폭하지만, 마음에 물어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고자 하는 자네. 그렇기에 그는 상관없는 소녀를 위해 상급자를 칼로 베고, 한순간에 피가 끓어 홀로…… 반란군 몇 명이라고 했던가?”
“반란군 이백여 명을 베었습니다.”
조청양이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웃으며 말했다.
“자네, 방금은 그가 반란군 일만을 홀로 막았다고 했네.”
어렴풋한 소리가 말했다.
……조청양은 얼굴에 살짝 경련을 일으키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누구는 팔천이라고 하고, 누구는 오천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만, 이만이라고 합니다……. 소문이 정말 너무 많아서 제가 잘못 기억했습니다.”
어렴풋한 목소리가 ‘음’하고 소리 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 초주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이 황권을 두려워하며 소리를 낼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유독 그만 나서서 화를 분출했구먼. 그래서 자고로 필부가 가장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네.”
조청양이 고개를 숙였다.
“조상님의 가르침을 잘 새기겠습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이번에 방문한 공적인 일을 언급했다.
“지종의 구색연화가 검주에 있는데 며칠 뒷면 여물 겁니다. 저는 연뿌리를 빼앗아 와 조상님께서 관문을 깨는 데 돕고 싶습니다. 다만 그 지종 도수는 마도에 빠졌으므로 믿을 만하지 않습니다. 저는 절반만 3품에 들어섰는데 여전히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해도 내디뎌지지 않더군요. 지종 도수에게 대항할 힘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조상님께서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도문 천지인 삼종의 역대 도사는 전부 2품인데 내가 어떻게 자네를 돕겠는가?”
“조상님, 온 건 그저 분신입니다. 기껏해야 3품이지요.”
조청양이 덧붙였다.
돌문 틈 사이로 투명한 혈주(血珠)가 새어나와 조청양의 미간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