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화. 대융(大戎)
“알고 보니 무림맹의 전신이 의병이었군…….”
허칠안은 촛불이 놓인 탁자 위에서, 야경꾼 안독고에서 가지고 나온 권종을 덮었다. 그는 이곳에 소홀히 하면 안 되는 허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권종 기록에 따르면 그 무림맹의 창시자인 3품 고수는 애당초 대봉 시조에게 졌다. 하지만 시조의 영혼은 진작에 하늘과 땅으로 돌아갔는데 그가 무슨 근거로 아직 살아 있다는 거지?”
실력이 더 강한 고수는 죽었건만 실력이 낮은 자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모두가 무사고, 마찬가지로 저속하다면 무슨 근거로 몇백 년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이 사고에 따르다 갑자기 예전에 소홀히 했던 세세한 부분을 발견했다. 무종 황제가 그해 청군측(*淸君側: 군주 측근의 간신을 몰아냄)을 구실로 삼아 황위를 찬탈한 무도 전봉의 영웅호걸이 있었다.
그는 백 년 뒤 천명을 다했지만…….
“대봉 시조와 무종 두 황제의 상황을 보자면, 무사는 장수할 수 없는 듯한데?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검수의 그 필부는 어떻게 몇백 년을 살아온 거지? 무림맹이 허세를 부리며 천하를 속이는 건가? 불가능하다. 만약 거짓말이라면, 기껏해야 보통 사람을 속이는 것이지, 조정을 속일 수는 없다. 하지만 조정이 무림맹의 존재를 묵인했다는 건 약간 꺼린다는 걸 의미한다. 일찍이 의병의 수장이었던 그자가 정말 살아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문제는 대봉 황실에 있는 건가? 무슨 이유로 대봉 황실의 고품 무사는 장생할 수 없는 건가?”
허칠안은 답이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돌려 다른 한편의 푹신한 침상에서 가부좌를 튼 종리에게 물었다.
“종 사저, 저 갑자기 한 가지 질문이 생각났습니다.”
종리는 마구 헝클어진 머리를 돌리더니, 어수선한 머리카락에 숨겨진 눈으로 그를 주시하였다.
“대봉 개국 황제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서서히 늙어 죽었지.”
“…….”
허칠안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황급히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전봉 무사의 수명이 설마 보통 사람과 같은가요?”
“나, 나는 무사가 아니니 모르지…….”
종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허칠안을 대신해 의혹을 풀어줄 수 없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렇군. 됐다. 어쨌든 반드시 답을 얻어야 하는 급한 일은 아니니깐…….’
허칠안은 촛불을 불어 끈 다음 신발을 벗고, 침상으로 기어올라 웃으며 조롱했다.
“와서 함께 잘래요?”
종 사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 * *
구주 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검주에 있는 산 중에 사람 얼굴을 한 짐승이 있다고 했다. 그 짐승은 꼬리가 여섯 개에 달을 삼킬 수 있어 ‘대융(大戎)’이라고 불렸다.
대융산은 무림맹의 본부였다.
소혼수 용용은 사부와 루주를 따라 마차를 타고 대융산에 이르렀다. 이 산은 검주 무림 인사 마음속의 성산(聖山)이었다.
만화루의 루주는 고수 십여 명을 데리고 부름에 응해 왔다.
만화루는 여인 위주의 공간이었다. 이곳 소속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꽃다운 얼굴과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으며 수줍음이 많았다. 그들은 자질이 뛰어나면 남아서 직계 제자가 되고, 자질이 부족한 편이면 타지로 시집갔다.
백년 동안, 검주에서 서열 있는 파벌의 대부분은 크든 작든 간에 전부 만화루와 인척 관계를 맺어 왔다.
“이번에 사부가 너를 데리고 나와 세상 물정을 보려 한다. 잘난 체하지 말고, 방관자가 되면 그만임을 기억하려무나.”
아름다운 부인이 제자에게 당부했다.
모든 미인 중에서도 특출난 용용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뒤 약간은 복종하지 않는 기색을 드러냈다.
“사부님, 저 이미 6품이에요.”
6품 동피철골은 강호에서 든든한 버팀목인 셈이었기에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래도 6품 정도는, 검주 같은 무도 성지에서는 평범한 축이어서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 보였다.
아름다운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6품은 볼품없어. 다음 사건에서는 아마 5품 이상이어야만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5품 이하면 제 발로 죽을 길 찾아가는 앞잡이가 될 거야.”
소혼수 용용은 가슴이 철렁하여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부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녀가 말하는 사이, 마차가 대융산 기슭에 멈춰 섰다. 만화루의 여인들은 마차에서 뛰어내려 저 멀리를 응시했다.
운무가 감도는 대융산은 산봉우리가 기이하고 가팔랐다. 이곳에는 괴이한 바위가 겹겹이 우뚝 솟았으며 산림이 빽빽이 우거져 있었다. 들쑥날쑥한 백 년 된 고목 사이로 각루, 마당 딸린 집이 돋보였다.
용용이 산기슭에 한백옥으로 세운 패방(*牌坊: 문짝 없는 문)을 지나친 뒤 치맛자락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니 사부가 소리를 낮추고 하는 말이 들렸다.
“지종 알지?”
용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문 삼종(三宗)은 강호에서 ‘신선 파벌’로, 구주에서 최고 세력이었다. 삼종 도수는 조정조차 어느 정도 꺼리는 존재였다.
“루주가 하는 말을 들으니 지종의 한 도사 집단이 검주에서 구색연화라고 불리는 진기한 보물을 키우고 있다고 하더구나. 얼마 전에 진기한 보물이 여물어 노을빛이 충천했다. 조 맹주가 찾아가서 연뿌리를 얻으려고 했는데 거절당해 지종 도사와 한바탕 싸웠다고 하더구나. 그후에 무림맹이 각 파벌을 불러모아 그 도사를 토벌하고자 했다.”
용용은 깜짝 놀랐다.
“조 맹주는 이게 무슨 짓인가요? 설령 무림맹이 오랜 세월 장성했다 해도 절대로 도문 지종의 미움을 사면 안 되지요.”
아름다운 부인이 근심 가득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다시 고개를 저었다.
“조 맹주는 지혜와 지략이 뛰어나고 안목이 독특해. 그가 감히 이렇게 하는 데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거야. 그저 우리가 모를 뿐이지.”
이때 용용은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루주가 부드러우면서도 도도한 목소리로 하는 말을 들었다.
“쉿.”
둘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용용은 고개를 들고 루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만화루 여인의 옷차림은 비교적 개방적이었다. 또 태양이 이글대는 한여름이라 아주 시원하게 입었다. 용용이 있는 각도에서는 루주의 엉덩이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더 위로는 명주 띠를 맨 한 줌짜리 개미허리가 보였으며, 부드럽고 아름다운 등 라인이 돋보였다.
루주는 일 년 내내 얇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지냈다. 그녀는 바짝 붙은 요염한 두 눈동자 그리고 볼륨감 있는 몸매로 외부에서 만화루 ‘기녀’라고 칭송받았지만 매력은 평균적인 편이었다.
그들은 아주 빠르게 산정상에 도착하여 무림맹 총무의 안내하에 안뜰로 들어갔다. 만화루의 루주는 마당을 지나 의사 대청으로 걸어 들어갔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마당 밖에 남아 있었다.
용용이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자 안뜰에는 익숙한 얼굴이 많이 서 있었다.
등에 검을 맨 사람들은 전부 묵각의 제자였다. 류 공자와 그의 사부 역시 그 속에 있었다.
청의를 입은 건 신권방(神拳幇) 사람이었는데, 이 파벌에 소속된 이들은 규칙에 따라 방법적으로 주먹을 사용했다. 근래에 이 파벌은 개성이 강한 여제자를 많이 거두어들였다.
금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옷을 입은 사람은 천기문(千機門)이었다. 그는 각종 암살 무기와 독약을 사용하는 데 능했으며, 수법이 괴상하면서도 다루기 어려웠다.
온몸에 검은 장포를 뒤집어쓴 이는 비도문(飛刀門)이었다. 비도(飛刀)는 암살 무기이면서 동시에 암살 무기가 아니었다. 듣건대 비도문의 문주(門主)는 108자루 비도를 부릴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이 적을 공격하여 죽일 때, 정정당당함이 하늘을 찔렀다.
용용은 말없이 시선을 거두었다. 자리에 있는 강호 조직만 십팔여 개는 되었다. 무림맹 호소에 호응하여 집결하러 올 수 있는 이는 전부 고수였다. 결코 조무래기들은 없었다.
‘맹주(盟主)는 구색연화에 무슨 뜻을 둔 걸까…….’
* * *
시간이 1분 1초 지나, 한 시진이 더 흘렀다. 만화루의 루주가 앞장서서 나왔으며 그다음에 나온 이는 다른 문주, 방주(幇主)였다.
용용이 활짝 열린 의사당 대문을 통과하자 방 안 높은 의자 위에 앉은 체구가 크고 우람한 중년 남자가 보였다. 그는 금색 실로 여러 겹의 구름무늬를 수 놓은 자색 장포 차림이었다.
그녀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재빨리 고개를 숙인 채 루주와 동문 뒤를 따라 대원을 벗어났다.
그들이 만화루가 배치된 장소에 이르자, 루주는 안에 있던 아름다운 부인과 장로 몇몇을 소집하더니 방으로 들어가 일을 의논했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아름다운 부인이 돌아왔다. 용용은 즉시 스승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가 문과 창문을 꽉 닫더니 캐물었다.
“스승님,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름다운 부인이 한참을 침음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사건에 대해 이미 이해했다. 검주에 잠복한 그 지종 도사는 지종의 반역자다. 그들이 구색연화를 몰래 취득한 뒤 무림맹의 ‘은폐’에 기대어 숨어버려 지종의 추적을 피했다더구나. 얼마 전에 진기한 보물이 여물어 이변이 나타났다. 지종 도수가 뒤쫓아왔으나 무림맹을 두려워하는 탓에, 조 맹주와 합의를 이루어 양측이 공동으로 지종 반역자를 토벌하기로 했다더구나. 보상은 연뿌리 한 토막이었다.
조 맹주께서는 루주(樓主), 그들에게 앞으로 구색연화가 여물 때까지 기르겠다고 약조하였다. 무릇 참여한 자는 연밥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더구나. 허허, 너는 아마 모를 거다. 이 연밥은 얻기 힘든 진귀한 보물이란다. 만물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병기이자 기령(器靈)을 탄생시킬 수 있거든. 물론 연밥은 일 갑자에 한 번 여물기에 주기가 길어서 조 방주는 다른 이익까지 약조했더구나.”
‘만물에 불을 붙인다라…….’
용용은 입을 오므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은근히 부러움이 스쳤다.
이렇게 지극히 귀중한 보물은 누구도 갈망하고 탐낼 터였다.
그녀는 즉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만약 그렇다면 조 방주가 왜 우리를 소집하려 합니까? 대융산 무림맹의 세력으로 지종과 연합하면 반역하고 도망친 그 도사를 토벌하기 어렵지 않을 텐데요.”
아름다운 부인이 찬성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종문을 배신하고 떠난 그 도사는 당연히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아주 쉽게 없앨 수 있다. 조 맹주가 진정으로 방비하려는 이유는 아마 지종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봐 우려했기 때문일 거야.”
용용은 문득 크게 깨달았다.
* * *
다른 한편, 묵각이 잠시 머무는 거처, 방 안에서 류 공자는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
“그 연밥이 정말 그렇게 신기합니까?”
류 공자의 사부는 애지중지하는 장검을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도문 지종의 지보(至寶)는 아무리 신기하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지. 만약 내가 연밥 한 개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 이 검을 점화하는 데 사용할 게야.”
류 공자의 눈빛이 갑자기 원래 자신에게 속했던 법기로 향했다. 그는 침을 삼키고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연밥이 여무는 건 일 갑자 후의 일이니 사부님 안심하십시오. 제가 잘 대우하겠습니다. 장차 우리 조직에서 대대로 계승하는 희대의 신병이 될 겁니다.”
류 공자의 사부는 반박하는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웃음 지었다.
“각주(閣主)가 하는 말을 들으니 지종을 배반하고 도망친 그 도사의 실력이 강한 편은 아니라더구나. 하지만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되니 너는 이번에 개입하지 말고 주위에서 관전하려무나.”
류 공자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