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화. 연밥이 여무는 시기가 다가오다 (2)
요원한 선산(仙山) 속, 어느 오래된 도관(道觀)의 정실 안, 탁자 위에는 등잔이 놓여 있었으며 부들방석 위에는 가부좌를 튼 검은 그림자가 촛불을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얼굴 절반은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나머지 절반은 그림자에 감춰져 있었다.
촛불이 그들의 그림자를 담벼락에 던지니 불꽃을 따라 흔들렸다. 이에 따라 사람을 위협하는 도깨비처럼 그림자가 일그러졌다.
“구색연화가 곧 여물어가는군…….”
둔탁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전해오더니 정실 안에서 메아리쳤다.
촛불 옆의 검은 그림자가 소곤소곤 속삭였다.
“금련 그들을 다 죽이고, 구색연화를 되찾아오자고.”
“백련을 잡아 와서 교대로 보충하자고. 그녀의 정원(精元)을 다 빨아버려야지.”
“나는 백련의 몸을 탐한 지 벌써 여러 해 되었다고…….”
“거리낌 없이 죽인 지 오래되었군. 사람의 피를 빨아들이고 싶어 오금이 쑤셔…….”
“검주에 무림맹이 있어 성가시지만, 이래야 재미있어. 헤헤헤…….”
대화 내용이 악하고, 말투가 을씨년스러워 마치 악마가 모인 것 같았다.
둔탁한 목소리가 다시 허공에서 울렸다.
“함정일 가능성도 있네. 초주의 그 신비로운 고수가 금련의 동료야. 우리가 스스로 그물에 걸려들길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네.”
속삭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촛불 옆을 둘러앉은 그림자들은 마치 꺼림칙한 듯 오만방자함을 거두었다.
둔탁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소식을 널리 퍼뜨리자고. 구주 무림맹이 관심을 보일 걸세. 구색연화가 여물기까지 아직 보름이 남았으니, 다른 주(州)의 강호 고수 역시 분명히 관심을 둘 걸세.”
여기까지 말을 마친 둔탁한 목소리가 바보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대봉의 그 황제도 포함되고.”
* * *
허칠안은 동쪽 곁채에서 양초를 불어서 끈 뒤 침상 위에 앉아 잠을 청했다.
갑자기 익숙한 진동소리가 전해 왔다. 누군가 파편을 통해 전서를 보냈다.
그는 즉시 일어서서 다시 양초에 불을 붙이고, 탁자 옆에 앉아 지서 파편을 꺼내 전서 내용을 살폈다.
[구: 여러분, 보름 뒤면 구색연화가 여무네. 준비되었는가?]
[사: 지금요?]
사호 초원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금련 도사는 전서로 말했다.
[구: 아니, 지금은 필요 없네. 구색연화가 여물려면 아직 보름 남았네. 여무는 기간에 돌입할 때가 마침 가장 약한 시기라 상해를 견디지 못하네. 지종이 구색연화를 망치려는 게 아닌 이상, 이 시기에는 습격하지 않을 걸세. 하지만 보름 후 필연적으로 한 차례 대전을 맞이할 게야.]
이호 이묘진이 전서로 말했다.
[이: 지종 요도들이 이미 몸을 숨긴 곳을 발견했습니까?]
금련 도사가 대답했다.
[구: 흑련과 구색연화 사이에는 밀접한 감응이 존재하네. 평소에는 내가 쌍방 간의 연락을 덮을 수 있지만, 연화가 여물기 직전에는 기운을 감출 수가 없지. 바로 방금처럼 구색 노을빛이 충천하면 흑련이 반드시 알아차릴 것이네.]
‘흑련? 지종 도수를 흑련이라고 부르나? 악, 지종의 도사들은 전부 색 있는 연꽃으로 이름을 짓나? 백련은 있는지 모르겠군…….’
허칠안은 지종 도수의 도호를 처음으로 알았다.
‘흑련이라는 호칭은 무천불조(*無天佛祖: 《서유기후전》 드라마의 최대 악역) 당신이야?’
그는 탁자에 앉아 자신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드립을 중얼거리더니 아무 망설임 없이 다소 쓸쓸하게 웃었다.
초원진이 전서로 말했다.
[사: 이는 지종 요도가 준비성이 더 철저하다는 의미라네. 우리에게 아주 불리해.]
이때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오호 리나가 전서로 반응했다.
[오: 그러든가 말든가. 더 많은 사람이 와도 내가 그들을 잘게 다져진 고기로 으깰 수 있다고.]
허칠안은 여기까지 보자 그들에게 힌트를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붓 대신 손가락으로 문자를 입력했다.
[삼: 내가 형님에게 들었는데 그가 초주에 있을 때 지종 도수가 혈단 정제에 개입한 걸 보았다고 하네. 그자는 분신이었는데 실력은 3품 정도였다지. 만약 구색연화를 쟁탈할 때 이런 분신이 더 온다면, 내 생각에 우리는 사전에 구색연화를 포기해도 될 것 같네.]
‘아, 신년을 사칭해서 말하니 정말 좀 수치스럽군. 아니, 진짜로 나를 수치스럽게 하는 부분은 이묘진과 금련 도사가 내 신분을 안다는 점이지…….’
허칠안은 얼굴을 감싸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는 지금 자신이 사회적으로 더 깊이 매장당했다고 생각했다.
한편 천지회 구성원은 가슴이 철렁했다. 흑련 도수가 정말 3품 분신을 동원할 수 있다면, 설령 그들이 3품 전투력에 충분히 도달해도 도수가 천지회 모든 구성원을 소탕하기에 족했다.
금련 도사가 전서로 말했다.
[구: 흑련이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에서 큰 이득을 얻었네. 그 3품 분신은 틀림없이 그때 만든 것일 게야. 비록 분신은 파괴되었지만, 그는 분명히 여력이 있을 것이네. 어쩌면 같은 경지의 분신을 다시 만들지도 몰라. 하지만 자네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네. 지금 나는 이미 회복했으니 흑련 본체가 직접 오지 않는 이상, 내가 그를 상대할 수 있네. 허허, 그의 본체가 오기란 불가능해. 이 점은 내가 보장할 수 있네. 자네들이 상대해야 할 자는 지종의 다른 연화 도사들이네.]
‘반드시 흑련 본체가 오지 않으리라는 점을 뭘로 보장하지? 그리고 금련 도사 네가 정말 그렇게 강하다고? 흑련 분신은 3품이라고…….’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응? 그날 금련 도사는 비밀리에 지종으로 돌아가 구색연화를 빼내다가 흑련 도사에게 상처를 입은 후 경성으로 도망쳐 온 것이다. 이렇게 보니 내가 상상한 것보다 금련도사가 훨씬 강한가? 심지어 4품을 뛰어넘는다고?’
금련 도사가 믿을 만하게 장담하니 천지회 구성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초원진이 전서로 말했다.
[사: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은 우리에게 회왕이 흑련과 결탁했음을 알려주네. 이로써 원경제 역시 지종과 결탁한 건 아닌지 추정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 이 점은 반드시 막아야 해.]
‘맞아. 나는 어찌 생각하지 못했을까. 만약 원경제가 이 일에 개입했다면, 변수가 커진다…….’
이묘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초원진은 역시 이 무리에서 지능 지수를 담당하는 또 다른 사람이야. 내 근심을 꼬집어 주다니…….’
허칠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 함께 죽사발 만들면 되지…….’
리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육호와 일호는 시종일관 염탐하면서 전서를 보내지 않았다.
금련 도사가 전서로 대답했다.
[구: 이 일은 그래도 처리하기 쉽네. 삼호, 자네 사촌 형에게 나서서 서로 돕자고 좀 통지하게. 첫째는 우리 쪽 전투력을 끌어올릴 수 있고, 둘째는 위연이 가만히 좌시하지 않을 테니까.]
‘좋은 생각이다!’
초원진은 눈이 반짝였다.
허칠안은 비록 6품 무사였지만, 금강신공 소성이면서 유가 법술 서적을 지녔기에 발휘할 수 있는 전투력이 보통 4품보다 훨씬 뛰어났다.
여기서 가장 관건은 허칠안이 무사라는 점이었다. 무사가 공격하고 죽이는 수법은 모든 체계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무사는 지구력 역시 최고였다.
그는 사용하는 수법이 단순하고, 복잡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며 단체 공격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단점이 없었다.
‘악, 애당초 금련 도사가 나를 삼호 지서 파편 소지자로 택하고, 그 후에 또 나를 교량으로 삼아 위연과 어느 정도 암묵적인 합의를 이룬 게 결정적인 순간에 야경꾼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품었기 때문이었나?’
허칠안은 갑자기 이런 디테일이 떠올랐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여겼다.
이래야만 금련 도사의 약삭빠른 이미지와 일치했다.
‘금련 도사님, 이런 말 하면 부끄럽지 않아요……?’
이묘진은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탁자에 앉은 채 복잡한 눈빛을 띠었다.
그녀는 삼호의 진짜 신분을 알았다. 천종 성녀는 지금 허칠안과 금련 도사가 짜고 치는 모습을 보기가 아주 부끄러웠다.
[삼: 좋습니다, 도사님. 제가 제 사촌 형님에게 통지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위연이 나서기로 승낙한다면, 아마 도사님의 연화는 또 이윤을 좀 나눠야 할지도 모릅니다.]
[구: 문제없네. 구색연화는 60년에 한 번 여물고, 한 번에 연밥 열네 알을 맺을 수 있네. 빈도는 두 알을 더 나눌 수 있어. 이 점에 대해 자네가 사촌 형에게 전달하여 위연에게 알릴 수 있길 바라네.]
[삼: 알겠습니다. 저는 실력이 미천하니 끼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 사촌 형님은 아주 용감무쌍하니 틀림없이 도사님을 도와 연밥을 수호할 수 있을 겁니다.]
[구: 허허, 한 집안에 호걸이 둘이군.]
‘이 두 사람이…….’
이묘진은 말없이 얼굴을 감쌌다.
* * *
허칠안은 단체 채팅을 마친 후, 이변 없이 금련 도사의 전서를 받았다.
“자네 수련 경지가 어떠한가?”
허칠안은 전서로 대답했다.
“마침 아주 통쾌한 전투가 부족했습니다. 전투에 참가해 돌파한다면, 5품으로 승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금련 도사가 말했다.
“훌륭하네. 5품 무사야말로 진정으로 조예가 깊어지는 것이네. 무리 공격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일세.”
허칠안이 말했다.
“도사님, 우선 그건 둘째 치고, 흑련과 원경제가 결탁했습니다. 만약 제가 지서 파편 소지자라는 걸 그에게 들킨다면 원경제에게도 금방 소식이 들어갈 겁니다. 만일 사후에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 저는 아주 성가셔질 테지요. 당분간 지서 파편과의 주인 관계를 어떻게 해제할 수 있을까요?”
만약 흑련이 그가 지서 파편 소지자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증오값이 그렇게 높을 리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날 초주성에서 흑련이 그 신비로운 강자가 지서 파편 소지자라는 걸 알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허칠안이 만일 연밥 수호전에 개입한다면, 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 ‘허칠안’에 관한 모든 걸 숨긴다.
이 방법에는 큰 폐단이 있었다. 그는 흑금장도를 사용할 수 없으며 천지일도참과 금강신공을 시전할 수 없다. 그리고 신수는 이미 깊은 잠에 빠졌다.
가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연밥을 어떻게 수호하겠는가?
둘째, 지서 파편 간의 주인 인식 관계를 해제한다.
이렇게 하면 허칠안이 검주에 나타난 이유는 이묘진과 초원진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으로 만들 수 있었다. 결코 그가 지서 파편 소지자의 신분이어서가 아니었다.
나아가 똑똑한 사람이라면, 그날 초원진과 이묘진이 금군을 막아서서 그를 도움으로써 양측이 사적으로 거래를 달성한 상황이 된다는 것까지 능히 연상할 수 있으리라. 그들의 거래는 장차 허칠안이 연밥을 수호할 때 도움을 줌으로써 되 갚는 것으로 마무리될 터였다.
그는 이렇게 비교해 보니 두 번째 방법이 더 좋아 보였다.
금련 도사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전서로 말했다.
“자네가 검주에 오면, 내가 자네 대신 주인 관계를 풀어주겠네. 지서의 비밀을 외부로 퍼뜨릴 수 없어. 자네가 이해해주길 바라네. 물론, 만약 자네가 나를 스승으로 모시길 원한다면 이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허허, 도사님께서 먼저 운록서원의 스승님 네 분에게 통지하여 그들이 동의하는지 동의하지 않는지 보시지요?’
허칠안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왜 모든 사람이 나의 사부가 되고 싶어 하지? 오히려 나와 실제로 사제 관계를 맺고 있는 그 대빵들은 여태껏 이런 생각을 품지 않았는데. 심지어 그들은 나를 의붓아들로 거두길 원치도 않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