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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28화 (525/712)

528화. 버려진 왕비 (2)

허칠안은 내청을 걸어 나가는 세 사람을 배웅했다가 막 문 앞까지 걸어갔는데, 종리가 벽에 붙어 조심스럽게 옮겨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오는 내내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존재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예방했다.

그런 뒤 그녀는 이옥춘과 우연히 마주쳐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허칠안은 춘 형의 뒷목에 닭살이 돋아난 걸 똑똑히 보았다. 그런 뒤 그는 무서운 사물을 맞닥뜨린 것처럼 본능적으로 뒤로 날뛰며 동시에 발을 날렸다.

퍽!

종리는 걷어차여 저 멀리 데굴데굴 굴러갔다.

이옥춘은 당황하여 입을 벌렸으나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차마 종리를 보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얼굴을 가리고 갔다.

허칠안은 쏜살같이 달려가 종 사저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흐느끼면서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

“그가 왜 나를 때렸지……. 미쳤는가…….”

“…….”

허칠안 역시 입을 벌렸지만,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불쌍히 여기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사람은 미치광이라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나중에 마주치면 그를 피해 가세요.”

* * *

금군 통솔자는 부하를 데리고 허부를 나섰다. 그는 말을 타고 어느 정도 달려가다가 그제야 속도를 늦추고 물었다.

“허부의 상황은 어떠한가?”

부하가 대답했다.

“근래에 저택에 새로 들어온 하인이 없고, 역용하고 변장한 흔적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신분이 확실합니다. 조금 이따가 부아, 장락현아의 호적과 신분을 대조하면 됩니다. 그리고 저희가 허부를 간단하게 수색했는데 내력이 불분명한 여인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확실히 왕비와 아무런 관련이 없나 보군…….’

금군 통솔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분부했다.

“그동안 사람을 파견해 허부를 주시하거라. 저택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주의하게. 만약 저택에 새로이 들어오는 하인이 있다면, 즉시 보고하고.”

부하는 언짢아했다.

“장군께서는 6품 무사를 주시하실 수 있습니까?”

“…….”

* * *

궁으로 돌아온 후, 금군 통솔자는 사실대로 보고했다. 원경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추적 조사하라는 분부도 하지 않았고, 여기서 그만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 * *

오후 햇빛이 바싹 마르는 더위를 발산했다. 푸른 잎은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알록달록한 일곱 빛깔을 머금은 상태였다.

숙모는 모두에게 매실탕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허영음, 리나, 저채미의 호평이 이어졌다.

허칠안은 신년의 서재 문을 열었다. 허신년은 초원진과 대국을 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술을 마시면서 바둑을 두고, 잡담을 나누었다.

똑똑…….

허 색마는 탁자를 두 번 두드려 두 사람의 주의를 끌더니 침음했다.

“신년, 내가 기억하기로 궁궐에서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관직이 있다던데.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기록해야 한다고 말이다.”

초원진이 웃었다.

“기거랑(起居郞)이네.”

허칠안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바로 기거랑이에요. 음, 한림원 소속 맞죠?”

허신년은 아래턱을 치켜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림원이 사서 편찬을 책임지고 있고, 기거주(*起居注: 황제의 일상 언행을 기록한 서류)는 사서 편찬의 중요한 근거 중 하나이므로, 당연히 우리 한림원의 청귀가 기거랑을 담당하지요.”

허칠안이 캐물었다.

“네가 접촉할 수 있니?”

허신년은 약간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좀 어렵긴 하지만, 가능합니다.”

허칠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원경제 재위 이래로의 모든 기거주가 필요해.”

……허신년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황당무계하군요. 기거주는 가지고 나오지 못하고 게다가 떳떳하게 베껴 쓸 수 없습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저었다.

“베껴 쓰라는 게 아니고, 너더러 가지고 나오라는 건 더욱이 아니다. 네 머리로 기록한 뒤에 내게 외주렴. 8품 수신경이니 한 번 본 건 잊지 않겠지.”

허신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래도 힘들다고요. 기거주는 편폭이 아주 길어요…….”

허칠안은 아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너 왕씨 집안 아가씨와 눈 맞은 거 아니니? 큰형이 조만간 네게 절학을 한 수 가르쳐주마. 강호 48수란다.”

* * *

이튿날 허칠안은 애지중지하는 암말을 타고 한 주루에 이르렀다. 그는 별실을 달라고 한 뒤 술과 음식을 시키고 천천히 기다렸다.

일각이 되기도 전에 형부 진 총포두와 대리사승이 연달아 약속 장소로 왔다.

두 사람은 평상복을 입고 있었는데, 아주 수상쩍었다. 마치 누군가 알아볼까 봐 간단한 역용을 한 듯했다.

“허 대인은 현재 금기시되는 인물이니 자네와 사적으로 만나려면 지극히 조심해야 하네.”

대리사승은 얼굴에 능구렁이의 웃음을 지으며 여유롭게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진지한 표정을 한 진 총포두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를 무슨 일로 찾았는가?”

허칠안이 두 사람에게 술을 따라주더니 웃으며 말했다.

“두 분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 해 묵은 사건을 하나 조사하고 싶습니다. 사건의 주범은 소항이라고 하는데 정덕 29년의 진사입니다. 원경 14년에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강주 지부로 좌천되었다가 이듬해 횡령 및 뇌물 수수로 참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이 사람은 제공 중 한 사람으로, 신분이 낮지 않습니다. 형부와 대리사에 반드시 그의 권종이 있을 겁니다. 제가 좀 보고 싶습니다.”

대리사승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자에 관해서는 들은 적이 없네. 허 대인은 왜 갑자기 20여 년 전의 오래된 사건을 조사하려 하는가?”

허칠안이 입에서 나오는대로 설명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이 소항의 장녀가 제 첩입니다.”

그는 이 말을 마치고 진 포두와 대리사승의 안색이 확 변한 걸 보았다.

“???”

대리사승은 침을 삼켰다.

“원경 14년에 죽은 자의 그, 그 장녀가 자네 첩이라고?”

진 포두는 ‘이런 소리를 한다고?’라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악, 소소의 진짜 나이는 사실 우리 엄마뻘이지…….’

허칠안은 이때서야 반응이 왔으나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농담입니다. 사실 그의 장녀의 딸이 제 첩입니다. 그해 뜻밖에도 그의 장녀가 마침 집안에 없었기에 화를 면했습니다.”

대리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은 처리하기 쉽네. 사흘 후, 같은 시간 이곳에서 만나지. 내가 권종을 자네에게 가져오겠네. 하지만 자네가 가져갈 수는 없어. 다 본 뒤에 내가 도로 가져갈 걸세.”

진 포두가 말했다.

“나 역시 그러하겠네.”

허칠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두 분.”

그는 말을 마치고 일백 냥 값어치를 하는 은표 두 장을 꺼냈다.

대리사승은 받지 않고 자조했다.

“내가 막 정 대인께서 내 양심을 돌이켜줬다고 말했잖나. 나를 더는 모욕하지 말게. 자네가 술자리를 대접해준 것만으로 사례한 셈이네.”

진 포두가 말했다.

“나 역시 그러하네.”

‘장비인가…….’

허칠안은 속으로 괜히 빈정거리며 술잔을 들고 미소로 답했다.

그는 술을 충분히 마시고 밥을 배불리 먹은 뒤 암말의 등위에 앉았다. 그는 기복 있는 리듬을 따라 아항을 향해 갔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미인이 안치되기를 기다렸다.

* * *

왕비는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해 객잔으로 돌아와 화장대 앞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버림받지는 않았는지 의심스러웠다. 천종 성녀가 간 지 나흘이 되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리고 그 못된 남자는 그녀를 깡그리 잊은 듯했다.

그는 다시는 그녀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이 객잔에서 열흘간 묵을 수 있는 은자는 있었다. 다만 그녀의 마음속에 의지할 곳이 없어졌기에 더는 안정감을 찾을 수 없었다.

더욱이 왕비는 오늘 아침 식사를 먹고 나서 평범한 부인으로 위장하여 엉덩이를 흔들며 혼자서 성안을 거닐었다. 그녀는 한창 거닐다가 희루(*戲樓: 연극할 때 이용하는 건축물)까지 갔다. 희루는 시끌벅적하면서도 볼거리가 있었기에 항상 재미있었다.

그녀는 동전 다섯 개를 꺼내고 들어가서 연극을 보았다. 연극은 부귀한 집안 출신의 소저가 궁상맞은 수재를 사랑하게 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집안끼리 격차가 심하다는 이유로 가족이 동의하지 않아 두 사람은 몰래 도망쳤다.

맨 처음 생활은 달콤하고 행복했다. 서생은 공명을 위해 어려움을 견디며 공부했고, 부잣집 소저는 수공예를 배우며 희고 매끄러운 손으로 살림을 꾸려갔다. 가난한 나날을 보냈지만 그래도 살 만했다.

하지만 점점 부잣집 소저가 가져온 은자가 바닥났고, 서생은 공부하는 것만 아니 생활이 대책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잣집 아가씨는 서생에게 버림받고 집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녀는 혼자서 처량하게 거리를 걷다가 결국에는 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택했다.

결말을 본 왕비는 눈물이 콸콸 흘러내렸다. 그녀는 자신이 바로 그 가련한 부잣집 소저라고 생각했다. 감언이설에 속아 집을 나섰다가 무참히 버림받았다.

“허칠안 이 칼 맞아 죽을 놈. 분명히 나를 잊은 거야. 거추장스러운 내가 싫은 거야…….”

왕비는 화장대 앞에 앉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바로 이때, 누군가 객실 문을 두드렸다.

‘이묘진이 돌아왔나? 아니면 객잔 심부름꾼이 문을 두드리는 건가?’

왕비는 당황하여 눈물을 닦고, 목을 가다듬고선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누구세요?”

방문 밖에서 익숙하면서도 걸걸한, 아주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접니다. 문 여세요.”

왕비는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얼굴에 주체할 수 없는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흥분이 솟구쳐올랐다. 그녀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반짝였지만, 바로 의자에 도로 앉은 뒤 등을 돌려 버렸다.

“그쪽이 누군데? 나는 그쪽을 알지도 못하는데 무슨 근거로 문을 열어주지?”

“저는 그쪽 대명호반의 외간 남자입니다.”

허칠안이 문을 두드렸다.

왕비는 침을 뱉더니 버들눈썹을 치켜세우고 책망했다.

“나는 그쪽을 알지 못하니 다시는 폐를 끼치러 오지 마시오. 아니면 주인을 불러 쫓아낼 것이오.”

그녀 머릿속에 바로 오전에 본 연극이 떠올랐다. 그 서생도 처음부터 부잣집 아가씨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그 속의 브릿지 플롯(Bridge Plot)에서 부잣집 소저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정말 나에게 관심이 있다면, 뜰 밖에서 삼경(三更)까지 기다리세요. 제가 창문을 열고 그대를 보면 믿겠습니다.>

서생이 과연 삼경까지 기다리자, 부잣집 소저는 그제야 자신을 향한 그의 진심을 믿었더랬다.

왕비가 상대방을 떠보았다.

“그쪽이 만약 진실하다면, 문 앞에서 삼경까지 서 있으시오. 그러면 그쪽을 믿겠소.”

그녀는 말을 마치고 허칠안의 반응을 기대했다.

물론 왕비는 자신이 그와 무슨 애매모호한 관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가 자신을 안배하도록 승낙했을 뿐이었다. 허칠안 본인은 자신이 호색가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를 진짜 호걸로 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믿었다.

그녀와 허칠안은 순수한 관계였다. 두 사람은 결코 사사로이 평생을 약속한 남녀가 아니었다.

요 며칠 그녀는 수도 없이 자신에게 강조했다. 쌍방의 관계는 강호 호걸의 천금과 같이 무거웠다. 두 사람은 절대 다른 남녀들처럼 서로 몰래 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허칠안과 함께 지내며 그의 선물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길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녀는 시집갔던 여인이었다. 유명무실한 남편이 막 죽었는데 그녀는 외간 남자를 따라 사사로이 도주했으니 얼마나 망신스러운가.

“정신병자!”

문밖에 있는 사람은 가차 없이 욕을 내뱉더니 몹시 불쾌해했다.

“도대체 문 열 거예요, 말 거예요?”

왕비는 오기가 생겼다.

“안 열어.”

그는 말했다.

“기왕 객잔에서 머무는 걸 좋아하면 그렇게 하세요. 제가 정기적으로 와서 방세를 내드리죠. 방해하지 않을 테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왕비의 어깨가 움직였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돌아서려고 했지만 참았다.

그녀는 잠시 묵묵히 있다가 정말로 문밖에 인기척이 없자 끝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보았다. 문밖은 텅 비어 있었다.

왕비는 마음이 무거워지더니 갑자기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솟구쳤다. 그녀는 일어서서 문 앞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복도가 휑했다.

다급해진 왕비는 치맛자락을 들고 긴 복도를 달려 계단을 따라 내려가 객잔 밖으로 쫓아나갔다.

그런 뒤 그녀는 객잔 밖 길가에 부드러운 이목구비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쫓아 나온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요!”

왕비는 어찌 된 영문인지 그를 본 순간 모든 조심성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녀는 결국 모든 억울함과 분노를 내려놓고 그를 따라가기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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