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화. 여러 해 묵은 미결 사건
“종리, 종리 사저…….”
허칠안은 방을 나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 여기 있네.”
종리는 무릎을 감싸 안고 창가에 앉아 가냘프게 대꾸했다.
‘떨어져서 다치지 않았으니 됐다…….’
허칠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종리를 데리고 허신년의 서재 옆을 지나치다가 창문을 통해 보니 허신년과 초원진이 술잔을 들고 환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서생은 팔짱을 낀 채 실행하지 않고 계속해서 입으로만 말할 뿐이었다.
‘음, 초 형은 처세술이 노련하니 신년이 신분을 노출하지 않길 바라는 걸 안다는 전제하에 무턱대고 지서 파편을 언급하지 않을 거야. 신년이 초원진과 이렇게 오래 얘기할 수 있다니 역시 춘시 회원답군. 2갑 진사의 수준 괜찮네.’
이묘진 방문 앞에 이르니 소소가 안에서 낭랑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에이, 아버지, 에이…….”
소소는 반복 재생기처럼 한 번 또 한 번 반복했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듯했다.
“나를 어떻게 아버지라고 부를지 이미 연습하기 시작했니?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고, 아빠라고 불러야 해.”
허칠안은 방문을 밀어젖히고 방으로 들어갔다.
소소는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흰 치마를 입고 껄껄껄 웃었다.
“대인과 무슨 상관이지요? 대인 댁의 그 멍청한 꼬마 정말 재미있던데요. 주인님이 글자를 가르쳐준다고 ‘아버지’를 쓰고 주인님이 ‘아버지’라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대인 댁 그 멍청한 꼬마가 ‘에이!’라고 말했어요.”
소소는 웃다가 발밑이 미끄러져 탁자에 엎드렸다. 미인이 마구 몸을 떨었다.
“…….”
어쩐지 이묘진은 그 당시 자신의 인생을 의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초원진은 왜 또 그렇게 격하게 화를 냈을까?’
허칠안은 동료의 마음의 상처를 들추고 싶지 않았기에 잠깐 생각할 뿐 더 묻지 않았다.
“나는 밖에 나갔다 오겠소. 만약 별일 없으면 나와 함께 가지 않겠소?”
허칠안은 천종 성녀를 쳐다보았다.
얼굴에 ‘불쾌함’이라는 세 글자가 가득 쓰여 있는 성녀는 언짢아했다.
“할 말 있으면 하게. 나 수련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말투가 좀 세다. 콩알이한테 난 화를 나한테 분풀이하면 안 되지…….’
허칠안이 설명했다.
“내가 조국공의 사택을 알고 있는데 안에 대단한 물건이 감춰져 있으니 같이 가서 탐색해 보겠소?”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흥미롭게 들리는걸…….’
이묘진은 웃기 시작했다.
“좋네.”
* * *
조국공의 사택은 황성에서 몇 리 떨어진 곳에 있는, 호수와 맞닿은 소원(小院)이었다.
말이 소원이지 사실 작지도 않았다. 마당 문에 자물쇠가 달린 이 두 채짜리 사택에는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
이묘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이 저택을 살피다 콧방귀를 뀌었다.
“황성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위치 좋고, 또 조용한 이런 사택은 적어도 은자 팔천 냥은 되겠군. 게다가 조국공은 이런 사택이 십여 채나 있는데 첩을 키우는 데 사용하다니. 정말이지 가증스럽고 역겨워.”
‘미안, 조금만 지나면 나도 사택을 사서 첩을 키우는 남자가 될 거야…….’
허칠안은 소리 없이 비웃고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위험에 대한 무사의 본능적인 직감이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주위에 매복한 자가 없었다. 조국공의 이 사택은 확실히 은폐되어 있었다.
허칠안, 이묘진 그리고 종리는 높은 담을 뛰어넘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보자 마당 안으로 사뿐하게 내려갔다.
허칠안은 발바닥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갑자기 돌아서서 양팔을 벌렸다. 다음 순간, 담을 넘을 때 발끝이 젖혀진 종리는 머리를 그의 품속으로 꽂았다.
종 사저의 가냘픈 몸은 부드러웠다. 그는 무명 장포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여전히 피부의 탄성을 감지할 수 있었다.
“고마워…….”
종리는 약간 기뻐했다. 본래대로라면 이번에 그녀의 얼굴이 먼저 땅에 떨어졌을 터였다.
“고마워할 필요 없습니다.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깁니다.”
허칠안이 웃었다.
“…….”
이묘진은 입을 벌리고 불쌍히 여기며 탄식했다.
술사 5품, 그녀는 예언사가 얼마나 많은 흉노족을 목 졸라 죽였는지 알지 못했다.
* * *
이 뜰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지만,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다. 생각건대 조국공이 정기적으로 사람을 시켜 보수하고 청소한 듯했다.
세 사람은 마당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간 뒤 한 바퀴 탐색해 보더니 이곳이 한동안 쓰지 않고 놀린 정상적이기 그지없는 저택임을 확인했다. 여기에는 그다지 진귀한 물건이 없었다.
“아마 암실이 있을 거야.”
이묘진이 분석했다.
“암실이 아니라 토굴이오.”
허칠안은 천종 성녀의 의아해하는 눈길을 맞으며 설명했다.
“집의 구조, 실내의 크기로는 밀실을 감추기에 부족하오.”
이묘진이 문득 깨닫고는 향낭을 풀어 가볍게 치자, 푸른 연기가 피어올라 바닥으로 뚫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푸른 연기 한 가닥이 돌아와 이묘진 귓가에 귀신 언어로 속삭였다.
이묘진이 잠시 경청하더니 말했다.
“나를 따라오게.”
그녀는 허칠안과 종리를 데리고 안방과 통하는 서재에 갔다. 책상 뒤에 있는 큰 의자를 밀어젖히며 힘껏 밟았다.
와장창…….
바닥 벽돌이 산산이 깨지면서 시커먼 지하 동굴이 무너져내렸다. 가파른 돌계단이 토굴로 통했다.
세 사람은 돌계단을 따라 토굴로 들어갔다. 무거운 공기 속에 그들의 발소리가 메아리쳤다.
토굴은 전혀 깊지 않았다. 이는 보통 부유한 사람이 얼음덩이나 야채를 비축하는데 쓰는 토굴과 같았다. 다만 조국공은 진귀한 골동품을 소장하는 데 이 토굴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이묘진은 벽에 끼워진 등잔에 불을 밝혔다. 하나씩 어두컴컴한 토굴에 적색 빛을 밝혔다.
토굴 안에는 박고가(*博古架: 옛날 양식을 본뜬 틀)가 한 줄씩 방치되어 있었는데 각양각색의 골동품, 도자기 병, 옥기, 청동수(靑銅獸), 야광주 등이 가득 놓여 있었다.
보는 사람의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세상에 아름다움이 부족한 게 아니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이 부족하구나…….’
허칠안의 마음속에 이 명언이 뭉게뭉게 떠올랐다.
그때 이묘진이 하는 말이 들렸다.
“여기에 있는 모든 물건은 값어치가 나가는 편이니 가져가서 은자로 바꾸면 돌아갈 집 없이 배를 곯는 난민을 구할 수 있겠어.”
그녀는 이 말을 할 때 눈에 흥분한 빛이 반짝였다.
“?”
허칠안은 뻣뻣한 목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가 너를 데려온 게 이것 때문이니? 내가 사람을 죽여 멸구한다면 믿을래……?’
그는 기침 소리를 냈다.
“확실히 그렇소. 허나 자선은 능력을 헤아려가며 해야 하오. 가산을 탕진하여 자선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오.”
“이것들은 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이 아닌가?”
이묘진이 그를 흘겨보았다.
‘감정에 움직이지 않는 이묘진이 확실해?’
“그때 가면 그대가 좋은 일을 하도록 3할을 할애해 주겠소.”
허칠안은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 손사래를 치며 돌아섰다.
“이런 것들은 횡령하고 뇌물을 받아서 생겼거나, 다른 옳지 않은 경로로 얻은 것이오.”
종리는 작은 손을 뻗어 쪽빛의 얼음 구슬을 집어 들었다. 몸체가 마치 푸른 바다를 품고 있는 듯 재질이 맑고 투명했다. 등잔 빛에 비추니 짜릿한 빛이 굴절되었다.
“이건 남해국(南海國)에서 많이 나는 상어 알로 아주 진귀하지. 최상품이네.”
종리는 사천감의 제자로서 사치품에 대해 허 색마와 천종 성녀보다 훨씬 많이 알았다.
‘최상품을 몰래 슬쩍할까?!’
허칠안은 이해했다. 그러기에 조국공이 특별히 사택을 사들여 이런 물건들을 안치했으리라.
이어 그는 지서 파편을 꺼내 이 진귀한 물건을 하나하나 거울 속 세계로 거두어들였다. 예를 들면 파손되기 쉬운 것들, 예를 들면 비교적 골치 아픈 도자기류였다.
“이곳에 상자가 있으니 상자 안에 정리하지.”
이묘진이 토굴 깊은 곳의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탁 소리에 상자가 열렸다.
허칠안은 매혹적인 금빛이나 은빛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 다소 실망했다.
상자 안에는 밀서가 겹겹이 놓여 있었다. 허칠안이 몇 통을 펼쳐서 보다가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하나씩 재빠르게 읽어갔다. 이 밀서들은 조국공이 기록한 것으로 뇌물을 받고 법을 어긴 기록이었다.
심지어는 10~2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었다. 공물을 횡령하고, 구휼 식량을 독직하고, 군전을 강점하는 등…… 그와 결탁한 사람들 중에는 문관, 훈귀, 황실 종친이 있었다.
만약 이 밀서를 노출하면 틀림없이 조당이 요동치고, 서로 배척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터였다.
“위 공에게 줘야겠다, 이 밀서들을 위 공에게 줘야겠어…….”
허칠안은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이를 위연에게 넘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가 이 자료들을 장악하여 정치적 자본을 늘리도록 말이다.
몇 초 후, 그는 냉정해졌다.
그는 급하지 않았다. 설령 위연에게 준다고 해도 촌각을 다투는 일은 아니었다. 아니, 전부 위연에게 주면 안 되고 신년에게 좀 남겨줘야 했다. 그 역시 정치적 자본이 필요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다시 바닥에서 밀서 한 통을 뽑더니 펼쳐서 읽었다.
“원경 15년, 이미 왕당, 연당(燕黨), 예왕 등 종친 훈귀가 손을 잡고 소항을 제거하여 철저히 숙청하였다……. 당, 소항은 참형에 처하고 저택의 안식구는 교방사로 편입되고, 남자는 유배당했다. 연당과 왕당 각각 팔천 냥의 뇌물을 수령했다…….”
‘소항, 이 이름이 아주 익숙한데…….’
허칠안은 마음속에 생각이 스쳤는데, 이묘진이 꽃 같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내뱉었다.
“소소의 부친…….”
허칠안은 갑자기 기억났다. 소소의 부친이 소항이었다. 정덕(貞德) 29년의 진사로, 원경 14년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강주 지부로 좌천되었다가 이듬해 참수형을 당했다. 죄명은 횡령과 뇌물 수수였다.
소소의 부친은 역시나 당쟁으로 죽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당파가 손을 잡았다고?
“알고 보니 소소의 부친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거였군. 연당, 왕당 그리고 예왕 등 훈귀 종친 말이야.”
이묘진이 매우 화가 나 말했다.
“옳지 않소. 이 서신은 문제가 크오…….”
허칠안은 밀서 위의 어느 공백을 가리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보시오. ‘당’ 앞에 왜 공백이 있겠소? 무슨 당을 철저하게 숙청했다는 거지?”
당 글자 앞에 공백이 하나 있었다. 마침 한 글자 정도 너비였다.
“조국공이 두려워 그 당파를 쓰지 않은 데에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나?”
이묘진이 짐작했다.
“만약 그 이유라면 완전히 쓰지 않거나 부호로 대체하는 방법도 가능했소. 게다가 이미 숙청했는데 두려워할 필요가 뭐가 있소?”
허칠안은 고개를 저어 이묘진의 짐작을 부정했다. 그는 밀서를 가리켰다.
“여기는 더욱이 글자를 썼던 것 같소. 마치 무슨 힘으로 빠득빠득 지워져서 공백이 남은 듯하오.”
이묘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열심히 분석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한참 후, 그녀는 분석하다가 생긴 물음표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생각을 포기한 뒤 물었다.
“무슨 의견이 있는가?”
곁에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이 강한 추리의 달인이 있는데 그녀가 구태여 스스로 머리를 쓸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나한테 무슨 생각이 있을 수 있겠소. 겨우 이 정도 정보로는 가설을 세우기에 턱없이 부족하오. 음, 소소 부친의 권종을 강주에서 찾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럼 우리 기회를 봐서 이부와 형부 혹은 대리사에 조사하러 갑시다. 더 많은 단서를 조사했을 때 다시 얘기하면 어떻겠소?”
허칠안은 탄식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점은, 소소 부친의 죽음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오. 절대 정상적으로 횡령하고 뇌물 수수한 게 아니오. 이는 당쟁과 연관되니 연루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오. 아마 이 선을 따라가면 더 많은 정보를 파낼 수 있을 것이오.”
그들은 즉시 자기를 상자에 넣고, 다시 상자를 지서 파편에 넣었다. 이 사택에서 값어치 있는 모든 물건을 싹쓸이했다.
물론 허칠안은 땅문서와 집문서도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그는 이 저택을 판 뒤, 허부 근처에 소원을 한 채 사 왕비를 그곳에서 먹여 살릴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