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23화 (520/712)

523화. 소환 (1)

허영음은 온몸에 잎 부스러기와 지푸라기를 묻힌 채 바닥에 누워서 쿨쿨 자고 있었다. 허칠안은 올라가서 그녀를 흔들어 깨우며 화를 냈다.

“너 계속 여기서 잘 거면 내가 너를 때리라고 네 어머니를 부를 거야!”

“큰 오라버니네…….”

허영음은 용감하게 뒤로 벌렁 나자빠진 자세를 유지하며 큰 오라버니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는 사부님과 나와서 짐승을 사냥하고 있었는데 사부님이 잡다 보니 보이지 않더라고요. 피곤해서 조금 잤어요.”

허영음은 조리 있게 설명한 뒤 눈썹을 치켜올리고 덧붙여 말했다.

“어머니가 절 때리는 건 무섭지 않다고요.”

허칠안은 냉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때리는 건 무섭지 않겠지만, 네 아버지가 대나무 가지로 너를 때리는 건 어때? 그것도 무섭지 않은가 봐?”

허영음은 눈을 부릅뜨고 두 손으로 엉덩이를 감싸며 아연실색했다.

“큰 오라버니, 저 돌기가 아프기 시작하는 거 같아요.”

“돌기가 뭐니?”

허칠안은 닭을 잡는 듯 그녀를 들어 올려 산꼭대기로 걸어갔다.

“돌기가 바로 엉덩이에요. 새로 배운 글자예요.”

콩알이는 마침내 큰 오라버니를 가르칠 기회를 잡았다.

“알아요?”

“그건 볼기야.”

“돌기예요.”

“볼기!!”

“돌기라고요.”

콩알이는 한 번 따라 읽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

허칠안은 너그러운 사람이었기에 작은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는 집안의 여동생이 이렇게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달리 어떻게 하지는 않기로 했다.

서원에 들고 가서 판자로 한 차례 때리면 더 좋은 거 아닌가? 뭐하러 입씨름을 벌이는가.

하지만 이묘진이 허칠안의 아동 학대를 저지했다. 천종 성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할 말 있으면 좋게 얘기하게. 아이에게 폭력을 휘둘러 뭐하겠는가.”

‘성녀야, 너는 말썽꾸러기를 둔 학부모가 얼마나 마음고생하는지 영원히 모를 거다…….’

허칠안은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돌아서서 마당으로 들어갔다.

* * *

마당 안에는 어머니와 딸만 있었다. 얼굴이 갸름하며 이목구비가 입체적이어서 혼혈 느낌이 다소 있는 허영월이 목제 의자 위에 앉아 수를 놓았다.

숙모는 옆에서 빈둥거렸다. 그녀는 연두색 치맛자락을 종아리 쪽에 매듭을 지은 뒤 화단 가장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나무 삽과 가위를 손에 쥐고 꽃과 풀을 만지작거렸다.

숙모는 평소에 허영음을 때리는 것 말고도 이런 취미가 있었다.

그녀의 수행 여종 녹아는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

“큰 오라버니!”

영월 동생은 허칠안이 돌아오는 걸 보자 아주 기뻐했다. 그녀는 실과 바늘을 내려놓고 꽃 같은 보조개를 지으며 맞이했다.

그녀는 곁눈질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이묘진과, 소소 그리고 종리를 훑었다.

“아무 일 없으니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

허칠안은 그녀의 동글반반한 코를 비틀더니 집을 바라보았다.

“신년과 숙부는?”

“아버지는 무예를 연마하러 어디로 가신지 모르겠고, 둘째 오라버니는 장 선생님이 계신 곳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허영음이 소녀의 부드러움이 담긴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고 막 말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허영월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큰 오라버니, 그 언니는 누구예요?”

그녀가 물은 상대는 종리였다.

종리는 허칠안과 함께한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껏 정식으로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허영월은 그녀를 처음 보았다.

“채미의 사저야.”

허칠안이 말했다.

‘아, 그 대식가 낭자의 사저구나…….’

허영월은 문득 깨달았다.

대식가는 그녀가 저채미에게 지어준 별명이었다. 저채미는 대식가 1호, 리나는 대식가 2호, 허영음은 대식가 3호였다.

사실 이 밥통 셋을 아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비슷한 별명을 생각하고 있었다. 예컨대 마당에서 온몸이 더러운 막내딸 때문에 화가 난 나머지 대나무 가지를 주워서 막내딸을 쫓아 문을 나선 아름다운 부인이 그랬다.

숙모가 리나와 허영음에게 지어준 별명은 대략 이러했다. 어리석은 여자아이와 꼬마. 식탐이 많은 여자아이와 꼬마, 어리석으면서도 잘 먹는 여자아이와 꼬마.

죄다 이런 부류였다.

“이 몸이 매일 너희 빨래를 하는데, 지치지 않겠니? 이것아, 어머니를 아끼는 마음을 조금도 모르다니.”

숙모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내가 너를 때릴 때도 너를 딸로 볼 필요가 없겠구나!”

허영음이 말대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저는 어머니 딸이 아닌데 어머니는 저를 때려서 뭐하시려고요.”

숙모는 말문이 막혀 무능하게 격분했다.

“……네가 감히 말대꾸를 하다니!”

* * *

허칠안은 종리를 데리고 소원(小院)을 나와 집과 마당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청석판(靑石板)이 깔린 길을 따라갔다. 때로는 계단을 오르기도 하면서 일주향 후, 대나무가 우거진 산골짜기에 이르렀다.

대나무는 대다수가 남방에 있었다. 대봉은 구주의 정통을 자랑하며 중원을 통치했지만, 경성의 지리적 위치는 구주의 중북부였다.

이곳은 대나무가 자라는 데 적합한 기후가 아니었다.

청운산의 이 대나무 숲은 정말 보기 드물었다.

여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 계절의 죽림은 아주 울창했다. 산바람이 불어오면 바스락 소리를 내는데 아주 정취가 있었다.

하지만 허칠안은 죽통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했다.

죽림 사이를 가리면서도 돋보이는 이 작은 각루는 마치 은둔자가 거주하는 아각(雅閣)같았다. 각루로 바로 통하는 자갈이 깔린 오솔길에는 대나무 잎이 가득 떨어져 있었다.

“원장님, 허칠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각루를 향해 읍하였다.

눈앞에 청광이 스치더니 밖에서 각루 내부로 순간 이동하였다. 원장 조위는 탁자에 앉아 화차를 품평하다 말없이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낡은 유삼은 하얗게 바랬으며 희끗희끗한 머리는 다소 흐트러져 보였다. 그는 온몸에 대유의 기운이 배어 있었다.

조위는 허칠안이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격조 없는 고품 강자였다. 같은 노인이지만 감정의 백의는 눈보다도 하얗고, 비범한 풍격을 지녔다. 도액 대사 역시 금실을 수 놓은 화려한 가사(袈裟)를 입고 있었는데 기개가 담박하면서도 득도한 고승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 원장은 공을기(孔乙己) 혹은 범진(范進)과도 같아 보였다…….

‘음, 하마터면 고양이 도사를 잊을 뻔했군. 도사님 역시 방랑 도사의 모습이라 아주 궁상맞잖아…….’

허칠안은 속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원장님께서 나서서 도와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허칠안은 감사를 표했다.

“세상을 위해 결심하고, 백성을 위해 입명하고, 선현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손에게 태평을 열어주기 위함이네. 자네가 내게 가르쳐 주었으니 잊지 않았겠지.”

조위가 미소를 지었다.

‘원장의 말은 내가 초심을 잊지 않기만 하면, 여전히 좋은 남남 친구라는 뜻이지…….’

허칠안은 웃으며 읍을 올린 뒤 남남 친구에게 요청했다.

“서생이 서원에 온 건 원장님께 책 한 권을 빌리고 싶어서입니다.”

조위는 그를 쳐다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대주습유입니다.”

허칠안은 위 아빠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왕비의 비밀을 알고 싶으면 운록서원에 가서 이 책을 빌리라고 했다.

“허허!”

조위가 웃었다.

“이건 육백 년 전에 서원의 한 대유가 쓴 서적이지. 그는 대주(大周) 말기에 태어나서 대봉 초기에 활약하였네. 자신이 대주에 관해 보고 들은 모든 걸 서적으로 편찬했지. 이 책은 세상에서 딱 한 권뿐이네. 아직 간인(刊印)하지 않았기에 이 책을 읽은 자는 극히 드물어.”

‘그렇군. 어쩐지 회경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더니. 설령 공부벌레라고 해도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지. 틀림없이 흥미를 느끼는 책 위주로 목적성 있게 읽었을 거야.’

허칠안은 문득 깨달아, 조위가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네는 그 대유를 분명히 들어봤을 게야. 그의 사적을 후대인들이 비문으로 세웠거든. 바로 산중에 있네.”

허칠안은 갑자기 영광을 번뜩이더니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백성들의 원한을 품고, 대주 마지막 기운을 흐트러뜨린 2품 대유 전종이요?”

그가 처음에 운록서원에 왔을 때, 신년은 그를 데리고 서원을 둘러보면서 전종이라고 불리는 그 대유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조위는 개탄했다.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인으로, 진정으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지. 어느 네 놈처럼 늘 사도를 걸을 생각을 하지 않고 말이야.”

‘실례합니다만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사도를 걷는 그 네 놈이 장진, 이모백, 양공, 진태인가요…….’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조위는 손을 펴고 여유롭게 말했다.

“《대주습유》는 내 손에 있네.”

청광이 번쩍이더니 그의 손에서 오래된 서적이 나타났다. 책 표지에는 대주습유라고 쓰여 있었다!

……허칠안은 이 광경을 멍하니 보았다. 그는 유가의 ‘허세 부리기’ 법칙에 이미 아주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매번 볼 때마다 마음속에선 항상 ‘이 무도는 닦지 않아도 그만이야’, ‘코치님, 저도 유술(儒術)을 배우고 싶어요’ 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남자는 직업을 잘못 택할까 봐 두려워하는 법이지. 숙부가 나를 해칠 거야…….’

그는 속으로 애석해하며 탄식했다.

허칠안은 조위의 손에서 대유습유를 받아 침음했다.

“제가 가져가도 됩니까?”

조위가 말했다.

“안 되네!”

‘아주 깔끔하게 거절하네…….’

허칠안은 고개를 숙이고 뒤적여보았다. 지금 그의 시력이라면 한 번에 열 행을 보는 일은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이 책의 이름은 《대주습유》였다. 안에 기록된 내용은 사실 정사(正史)에 대한 일종의 보충이었다. 안에 기록된 내용을 언뜻 보면 아주 야사(野史) 같지만, 사건은 실질적으로 발생한 일이었다.

예컨대 대주 역사상 유명한 선리(仙吏)인 이모(李慕)가 있다. 사서에서 이 사람에 대해 말하길 매우 방탕하고, 수많은 여인을 친구로 두었지만, 사실 그의 여인들 속에 호요(狐妖)가 있었다. 남요의 한 줄기인 구미천호 종족이었다.

이런 내용은 정사에 기록되지 않을 비밀이었다.

‘운록서원이 사실을 호도한 아성과 같군. 이 이모(李慕)는 거짓을 날조하는 인재였어…….’

허칠안은 남몰래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해서 읽었다.

마침내 그는 민간 신화라고 할 만한 기록 한 편을 들추었다.

대주 융덕(隆德) 시기에 남쪽에 만화곡(萬花谷)이 있었다. 골짜기에는 기이한 꽃이 아름다움을 다투며 사계절 내내 피어 있었다. 골짜기에는 좋은 환경에서 배출된 화신(花神)이 살고 있다고 전해졌다.

화신은 선계의 신기한 화초가 영지(靈智)를 탄생시켜 사람 형상으로 변해 천지의 정신이 한몸에 집약된 존재였다. 화신의 영온을 얻을 수 있는 자는 환골탈태하고 불로장생할 수 있었다.

융덕제(隆德帝)는 이 말을 듣고선 사람을 남쪽으로 파견해 찾게 했다. 시간이 흘러 13년 만에 마침내 만화곡을 찾고, 좋은 환경에서 배출된 화신을 찾았다.

대군이 만화곡을 포위하고, 화신이 입궁하도록 핍박했다. 화신은 원치 않았기에 천둥을 불러 자폭하면서 죽기 전에 저주를 퍼부었다.

<대주는 300년 후에 사라진다.>

아니나 다를까, 300년 후, 대주의 기운이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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