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화. 문령(問靈)
임안은 회경이 더 말하지 않자 머리 위의 장신구를 계속해서 흔들어대며 하얀 아래턱을 치켜들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이들은 입으로 대의를 외치며 아바마마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결국, 당신의 힘이 필요할 때는 바로 입을 다물고.”
그녀는 거만한 눈빛으로 회경을 흘겨보며 이번 판은 내가 드디어 회경을 한 번 제압했음을 암시했다.
그녀는 허칠안이 이묘진과 항원을 데리고 황성에 들어가 맞선 일을 말하고 있었다.
회경은 웃었다.
허칠안이 두 악인을 베어 죽인 후 임안은 가슴 속의 울분을 쓸어버렸다. 그녀는 어느새 사람 전체가 다시 활발해졌다. 더욱이 그녀는 여태 ‘역적’을 속에 품고 있었기에 이번 일로 마음이 편해졌다.
이 일이 없었다면 그녀도 분명히 참으려 했을 것이다. 오래 참는다고 응어리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 역시 단순한 마음에 얼마나 많은 먹구름을 감추었겠는가.
회경이 애써 이 공로를 임안에게 ‘양보’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회경은 임안이 제멋대로 도발해도 아무런 동요 없이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언니가 아니었기에 칭찬하는 얼굴로 웃음 지었다.
“그래, 네 태자 오라버니보다 훨씬 책임감 있더구나.”
갑자기 임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저택으로 돌아갈래요.”
그녀는 씩씩거리며 일어섰다.
콰당, 옅은 노란색의 패옥이 회경의 눈에 비쳤다. 그건 반들반들한 재질의 옥패였다.
도도한 장공주는 눈빛이 약간 멈칫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네 허리 위의 그건 무엇이니?”
임안은 하얀 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옥패를 잡아당겼고, ‘오’하고 소리를 내더니 설명했다.
“이건 개자식이 나한테 선물한 옥패야. 재질과 가공 기술 모두 그런대로 괜찮지만, 이건 그가 직접 조각한 거야. 봐, 흠이 이렇게 많아. 만약 산 거라면 절대 이렇지 않겠지.”
그녀는 말을 마치더니 자랑하듯 얼굴을 치켜들고 호선이 아름다운 아래턱을 드러냈다.
그녀의 말속에 자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달콤함이 묻어났다.
회경은 새하얀 얼굴에 순간 폭풍이 스치는 듯했지만, 즉시 원 상태를 회복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꺼지렴. 여기서 내 눈에 거슬리지 말고.”
“나 원래 가려고 했거든, 흥!”
임안은 화가 났다. 그녀는 회경이 방금 불러세운 건 마지막 그 한마디를 내뱉어 체면을 만회하여 자신을 억누르기 위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불쾌해하며 돌아서서 가느다란 허리를 뒤틀고는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내청으로 걸어갔다.
붉은 치마가 간 후, 회경은 화가 난 나머지 품속에서 작고 정교한 도장을 꺼내 분풀이하듯 바닥에 내던졌다.
한참 있다가 그녀는 다시 일어서서 치맛자락을 들고 주워왔다. 그녀는 자세히 살펴보다 도장 한 귀퉁이에 흠이 생긴 걸 발견했다.
그녀는 약간 마음이 아파 이내 예쁜 두 눈썹을 찡그렸다.
* * *
허칠안이 관성루의 어느 은밀한 방 안에서 음낭을 떼서 붉은 매듭을 짓자 푸른 연기가 두 가닥 피어오르더니 공중에서 궐영수와 조국공의 모습으로 변했다.
두 영혼이 나타나자 실내 온도가 약간 떨어졌다.
이 음낭은 이묘진이 특별히 제작한 물건으로, 진법을 새기거나 그릴 필요 없이 새로 죽은 망령을 소환할 수 있었다. 음낭 자체에 진법이 새겨졌기 때문이었다.
도문 역시 법기를 만드는 데 능했다. 물론 술사와 비교했을 때 도문은 부업이라면 술사는 전공이었다.
조국공과 궐영수는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 멍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에 누가 질문하면 생각 없이 대답했다.
허칠안이 먼저 조국공을 쳐다보았다.
“너는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을 어떻게 알았지?”
조국공이 멍하니 말했다.
“궐영수가 경성에 돌아온 후, 비밀리에 폐하를 만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하께서 나를 부르셔서 이 일을 말씀하셨다.”
“그가 네게 뭘 하라고 했지?”
“전력으로 그에게 협조하라고 하셨다…….”
여기에는 조당에서 ‘보조역할’을 맡아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등등도 포함되었다.
조국공은 사후에야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을 알았다. 음, 이 귀신의 가치가 급격히 곤두박질쳤다.
허칠안은 돌아서서 궐영수를 쳐다보았다.
“너는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의 전말을 아는가?”
궐영수는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안다.”
“사건의 전말을 내게 알려 주어라.”
“…….”
‘아, 지능지수가 너무 낮구나. 역시나 이런 허점을 파고들면 안 되겠어. 질문을 하나씩 해야겠군…….’
허칠안은 속으로 경멸하면서 침착하게 물었다.
“너는 진북왕과 지종 도수, 무신교 고품 주술사가 협력했다는 걸 알았지?”
“알았다.”
“원경제는 진작에 이 일을 알았고?”
“성안의 백성을 학살하는 일은 본래 폐하와 회왕이 계획한 것이다…….”
대답은 결코 의외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위 공이 한 암시를 통해 원경제가 이 모든 걸 꾸민 배후 검은손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걸 알았었다.
“왜 전쟁을 열지 않고 성안의 백성을 도살했지?”
허칠안이 물었다.
“필요한 정혈이 지나치게 방대하고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전쟁을 열면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너무 많아지기에 안전하고 확실하지 않았다.”
궐영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원경제가 이 일을 도모한 진짜 목적이 무엇인가?”
허칠안이 다시 물었다.
그는 줄곧 원경제가 진북왕을 지나치게 중용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진북왕의 승직에 목을 맨다는 게 제왕의 심리 상태와 부합하지 않았다. 게다가 의심 많은 제왕이지 않은가.
‘무치(無癡)’라는 두 글자가 정말 꾀가 많은 제왕의 의심과 거리낌을 지울 수 있을까?
“회왕께서 말씀하시길 그가 2품으로 승직하면 황실에 감정을 견제할 수 있는, 나라를 지키는 진정한 기둥이 생길 거라고 했다. 감정과 운록서원을 과도하게 두려워할 필요 없이 말이다. 이 역시 폐하의 염원이기도 하다.”
‘이 이유로는 부족한데, 너는 믿었니?’
궐영수가 한 그다음 말에 허칠안의 안색이 다소 변했다.
“폐하께서는 혼단을 정제하고 싶어 하신다.”
‘혼, 혼단을 원경제가 정제하려 한다고? 이거 이상한데. 금련 도사가 아주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나? 지종 도수가 혼단이 필요하다고? 따라서 형제 둘 중, 하나는 혈단이 필요하고, 하나는 혼단이 필요하니 백성들한테서 고혈을 짜냈구나…….’
금련 도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혼단의 작용은 원신 강화, 단약 재료 충당, 법보 정련, 불완전한 영혼 보수, 기령(器靈) 사육이라고……. 겨우 이것들만으로는 원경제가 세상의 비난을 감수하며 한 도시의 백성을 제물로 바치기에는 부족했다.
물론 혼단은 수확 중 하나일 뿐이고, 혈단은 진북왕이 대원만에 충격을 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수혜자는 진북왕이었다. 상대적으로 비교했을 때, 원경제의 수확은 그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결정을 내리기에는 부족했다.
‘한 사람의 수확과 그가 무릅쓴 위험이 정비례가 되지 않을 때 사건은 절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허칠안은 미간을 문질렀다.
그는 너무 오래 생각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물었다.
“혼단은 어디에 있지?”
“회왕이 죽은 후, 나는 난리를 틈타 혼단을 가지고 경성에 돌아와 폐하께 드렸다…….”
궐영수의 원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쩐지 양연이 이래서 백성으로 혈제(血祭)를 드릴 때, 정혈이 올라가면서 혈단이 되고, 영혼은 바닥으로 들어갔는데 사후에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고 했구나. 알고 보니 궐영수가 난리를 틈타 훔친 것이었다…….’
허칠안은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 그는 지종 도수가 혼단을 가져간 줄 알았지, 원경제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자면, 지종 도수는 소위 말하는 ‘악’을 위해서 이 일에 개입한 셈이네. 음, 진북왕과 지종 도수가 어느 정도 협력했다는 말인데. 원경제가 지종 도수에게도 추파를 던질지는 모르겠네? 이거 심상치 않은데. 만약 이렇다면, 나는 신분을 조심해야 한다. 그날 1대5일 때, 지종 도수는 내게 지서 파편 기운이 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가 초주의 그 신비로운 고수가 지서 파편 소지자임을 안다면, 구색연화를 수호할 때 나는 ‘허칠안’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려야 한다.
허칠안이 초주에 있었는데 초주에 신비로운 고수가 나타났고 게다가 지서 파편 기운이 있다. 이게 뭘 의미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만약 허칠안 역시 지서 파편 소지자면? 이건 너무 구린내가 난다.”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다시 물었다.
“원경제와 지종 도수가 암암리에 결탁했는가?”
궐영수는 멍하니 대답했다.
“모른다…….”
“원경제는 혼단을 정제에 뭐하려는가?”
“모른다…….”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고 너희는 무슨 쓸모가 있니?’
허칠안은 좀 화가 나서 한참을 침음하다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물었다.
“네게 남모르는 재산이나 은자가 있는가?”
궐영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없다.”
호국공부는 비록 경성에 있지만, 궐영수는 초주에서 여러 해 동안 종사하였기에, 비상금이든 뭐든 있다 해도 초주에 있었다.
‘아, 숨겨진 재산은 없다지만 호국공부는 분명히 재산을 몰수당할 거야. 그렇지 않고선 제공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지. 내가 지금 더는 야경꾼이 아니라서 재산 몰수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게 애석하다. 그렇지 않았으면 부자가 될 텐데…….’
허칠안은 마음이 아팠다.
“조국공, 너는 무슨 남모르는 재산이 있는가?”
허칠안은 다시 조국공을 쳐다봤다.
“나는 경성에 사택이 열세 채 있고, 첩과 미소년을 키우고 있다. 그중에 세 군데는 놀리고 있는데, 놀리는 세 군데 중에 한 군데는 진귀한 골동품과 서화 그리고 은량을 보관하는 데 쓰고 있다.”
‘진귀한 골동품을 집안에 두지 않고 밖에 보관하다니. 이 물건들 전부 빛을 보지 못하겠군……. 정말 가증스러운 탐관오리야…….’
허칠안은 놀라워하고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비판했다.
“그 사택의 땅문서와 집문서는 어디에 있지?”
허칠안이 다시 물었다.
“내가 골동품과 진귀한 물건을 보관한 그 저택의 땅문서와 집문서는 모두 저택 안에 있다. 나머지는 국공부에 있고.”
조국공이 대답했다.
‘괘씸하다. 사택 열세 채가 나를 떠나가는군…….’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솟구쳤다.
동시에 그는 진귀한 골동품을 소장하는 데 사용하는 그 저택에 점점 호기심이 생겼다. 집문서와 땅문서를 국공부가 아니라 사택 안에 남겨 두었다는 말은, 조국공이 그 사택과 자신을 국공부와 철저하게 분리했음을 의미했다.
어느 쪽에서 문제가 생기든 서로 연결고리가 생길 리가 없었다.
그는 질문을 마쳤다. 그는 기대감을 좀 남기기 위해 조국공 사택 안에 어떤 진귀한 물품이 있는지 묻지 않았다.
허칠안은 두 영혼을 향낭에 거둔 뒤 밀실을 걸어 나와 천지회 동료 셋을 살피러 갔다. 그들은 각각 다른 방에 속했다.
허칠안은 먼저 이묘진의 방으로 와 문을 두드렸다.
찍……. 문이 열리고, 경국지색이 얼굴을 내밀었다. 허칠안의 종이 인형 마누라였다.
탁!
그녀는 바로 문을 닫았다.
몇 분이 지나자 방문이 다시 열렸다. 이묘진이 단정하게 입은 채 탁자에 앉아 있었는데, 이때 저채미는 고약, 면사, 약 주전자 등의 물건을 정리했다.
‘방금 약을 바꾸고 있었나…….’
허칠안은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이묘진을 주시하며 친절하게 물었다.
“별일 없습니까?”
이묘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했다.
“원경제가 죄기소를 써서 우리를 곤란하게 하지 않기로 약속했소. 그러하니 일찍 경성을 떠날 필요 없소.”
‘사실 그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잖아. 천종 도수는 감정과 같은 급의 다른 존재니까. 원경제에게 아무리 담력을 퍼줘도, 그는 진짜로 당신을 죽이지는 못할 거야. 아빠가 뒷받침해주니 좋구먼…….’
허칠안은 내심 개탄했다.
어쩐지 그가 예전에 소설을 볼 때, 빽이 있는 악역들은 언제나 여기저기서 날뛰며 방자하게 구는 걸 좋아했다. 재수 없게 주인공을 만나지 않는 이상, 보통 사람들은 그들을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