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화. 죄기소 (1)
“네놈들, 네놈들…….”
원경제는 금란전 안팎의 무수한 대신에게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삿대질하였다. 그는 포효했다.
“너희 이게 뭐하는 짓인가. 같이 짐을 핍박하는 것인가? 너희는 군왕이 안중에 없는 것인가? 역신, 역신!!”
그는 마지막 네 글자는 쉰 목소리로 외쳤다.
37년 이래, 그는 여태껏 이렇게 추태를 부린 적이 없었다. 그가 며칠 전에 유일하게 몇 번 부리기는 했지만 그건 전부 허세에 불과했다.
그는 37년간 원숭이를 부렸지만, 오늘 원숭이한테 농락당했다.
원경제는 피가 거꾸로 솟은 나머지 비틀거렸다.
“원웅, 너는 도찰원 좌도어사니 네가 말해 보거라. 이 역신들이 도대체 무얼 하는 건지 말해 보거라.”
좌도어사 원웅은 경직된 목을 조금씩 비틀어 제공들을 쳐다봤다. 제공들 역시 쇠처럼 차디찬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꿀꺽……. 원웅은 침을 삼키고 어려운 발걸음을 내디뎌 대열에서 나와 읍했다.
“폐하,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는 고집하지 마시고 폐, 폐하께서 죄기소를 쓰시길 청하는 바입니다…….”
쿵쿵쿵……. 황제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가 용의 위에 털썩 주저앉더니 중얼거렸다.
“짐은 한 나라의 황제인데 어찌 잘못이 있겠는가. 네놈들 짐이 죄기소를 쓸 거란 생각은 단념해라…….”
노인은 여기까지 말을 마치더니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는 목이 쉬고 얼굴에 경련이 일도록 포효했다.
“단념해라!!!”
바로 이때, 금란전 안에서 탄식 소리가 울리고 청광이 반짝이더니 머리를 산발하고 오래된 장삼을 입은 늙은 유생이 금란전 안에 나타났다.
운록서원 원장, 조위!
조위는 차분하게 원경제를 바라보았다.
“원경, 죄기소를 쓰게.”
원경제는 별안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운록서원 원장 조위는 3품 대유로 당대 유가 일인자였다.
조위는 운록서원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유가 체계를 걷는 모든 지식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조각칼을 가지고 왔다.
원경제는 이 조각칼을 봤기 때문에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이 존귀한 제왕은 재위한 이래, 황궁 안 금란전 내에서 처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겪었다.
“자네가 어떻게 경성에 들어왔지, 자네가 어떻게 경성에 들어왔는가…….”
원경제는 용의 위에 털썩 주저앉아 격해진 감정으로 그에게 삿대질했다.
“감정, 감정, 얼른 천자를 호위해라!!”
대규모 금군이 금란전 밖으로 돌진했으나 청광 장벽에 의해 가로막혔다.
“유가는 임금을 시해하지 않는다, 반역자만 죽일 뿐!”
조위는 도를 위해서라면 몸을 바치는 일조차 두렵지 않다는 듯한 태도를 드러냈다.
“조위는 유가를 대표하여 자네에게 두 가지 약속을 요구한다. 첫 번째 약속은, 즉시 죄기소를 써라. 두 번째 약속, 백성을 대변하고 정흥회의 억울함을 풀어준 허칠안은 결코 죄가 없으니 그를 표창하고, 그가 무죄임을 인정하고, 그의 가족을 해치지 않겠다는 성지를 내려야 할 것이다.”
원경제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조당 제공들을 서서히 훑었다. 국자감 출신의 지식인들 중에 나서서 반박하는 이가 없었다. 어느새 국자감과 운록서원도 같은 길을 걷는 건가?
“짐에게 죄기소를 쓰게 하면 그만인 일로 왜 허칠안을 옹호하려는가?”
조위는 가볍게 웃더니 거리낌 없이 선포하였다.
“아직 알리지 않았군. 허칠안은 나의 출중한 제자다.”
‘뭐라고?!’
조당 제공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야경꾼 허칠안, 그 평범한 자가 운록서원 원장 조위의 출중한 제자라고?’
‘그, 그가 우리 유가의 지식인이란 말인가?’
‘정말이지 역시 시괴답군…….’
‘아니나 다를까, 대대로 전해질 가작을 그렇게 많이 쓸 수 있는 자가 어찌 유가 지식인이 아닐 수 있겠는가…….’
‘우리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제공들 머릿속에 스쳤다.
위연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조위를 쳐다보았다.
“짐에게 국공을 베어 죽인 그 간신을 너그러이 용서하라는 건가? 그가 조당에서 벼슬아치 노릇을 하도록 계속해서 종용하라는 건가? 하, 하하, 하하하…….”
조위의 요청에 원경제는 완전히 격분한 듯했다. 그는 반쯤 미친 상태에 빠져 실성한 듯 웃었다.
“조위, 짐은 한 나라의 군주이자 버젓한 천자이거늘, 네가 감히 짐을 죽이려는 건가? 짐이 목숨 걸고 너와 유가의 기운을 내기하지.”
원경제는 발광하다가 한발로 탁자를 걷어차 뒤집었다. 그는 수미좌(須彌座) 위를 몇 걸음 질주하더니 조위를 가리키며 비난했다.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나를 이렇게 업신여기다니. 짐에게는 감정이 있다. 짐은 자네가 손대도록 감정이 좌시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그는 조위가 이런 일로 목숨을 걸면서까지 싸우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는 조위의 평생 소원이 운록서원을 빛내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감정이 황제가 죽임당하는데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좌시하리라고는 더욱이 믿지 않았다. 사천감이 대봉 국운과 분리되고 싶지 않은 이상, 감정이 1품 술사 노릇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백관이 협박하고, 조위가 금란전 앞에서 위협하자 원경제는 폭발 직전까지 몰렸다.
이때 찬란한 빛 한 줄기가 금란전 안으로 들어와 허공에서 흰옷, 흰 수염의 노인 형상으로 변했다.
“원경, 죄기소를 써라!”
원경제는 머릿속이 진동했다. 그가 비틀대며 뒷걸음질 치더니 풀이 죽어 용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버림받은 노인처럼, 철저히 고립된 실패자처럼 눈빛이 흐리멍덩하고 안색이 나빠졌다.
그는 마침내 왜 위연과 왕 재상이 백관과 결탁하여 그에게 죄기소를 쓰라고 옥죌 수 있었는지 알았다. 그는 왜 조위가 경성에 들어와 그에게 죄기소를 쓰라고 옥죄었는지 알았다.
이 모든 일은 감정의 지시였다.
이 말을 마친 백의 노인은 천천히 사라졌다.
금란전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조위가 입을 떼 침묵을 깼다.
“그는 이미 조정에 들어가 관리가 될 가치가 없다고 여기네.”
그가 누군가?
그는 당연히 벼슬아치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외친 그 평범한 남자를 가리켰다.
원경제는 풍전등화의 노인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 * *
무명옷을 입은 허칠안은 관성루 팔괘대에서 황궁 방향을 향해 우뚝 서 있었다. 그는 술주전자를 들고 웃었다.
“고금의 흥망성회를 이 술주전자에 다 털어버리니.”
“득의양양하는 거 봐. 이 일을 스승님께서 뒤치다꺼리하지 않으셨으면 네가 잘 다스릴 수나 있었겠어?”
탁자 옆, 노란색 치마의 소녀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달갈형 얼굴과 큰 눈을 지닌 그녀는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그녀가 양 볼에 음식을 가득 담은 모습은 마치 귀여운 햄스터 같았다.
“묘진과 초원진 그리고 항원 대사는 어떠한가요?”
허칠안은 저채미가 빈정대도 개의치 않고 웃었다.
“며칠 지나면 상처가 완쾌될 거야.”
저채미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나는 힘들어 죽겠어. 그들은 송 사형이 상처를 치료해주는 걸 원치 않더라고.”
‘그들은 자신이 실험대상이 될까 봐 두려운 거야…….’
허칠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더 말하는 대신 어제 일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그날 그는 사천감에 와서 감정에게 한 마디를 전해달라고 저채미에게 부탁했다. 위연과 왕 재상이 백관과 연합하여 원경제가 죄기소를 작성하게끔 압박하고 싶은데 감정의 도움을 원한다고 말이다.
만약 대봉 수호신의 허락이 없었다면, 여러 해 동안 조당의 평형을 유지한 원경제와 빽빽한 당파 사이에서 위연과 왕정문은 하루 만에 이익 교환을 달성해 2/3가 넘는 경성 관리의 동의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감정이 이에 동의한 뒤에야 허칠안이 오문에서 군신을 막아서고 조국공과 호국공 궐영수를 납치한 장면이 나왔다.
두 악인을 베어 죽인 일은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위연과 왕 재상이 원경제에게 죄를 인정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결말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만약 위 공과 왕 재상이 수수방관을 택했다면, 허칠안이 두 악인을 베어 정흥회와 하늘에 있는 초주성 38만의 원혼을 위로했을 것이다.
그런 뒤 그는 가족들과 경성을 떠나 강호를 멀리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어제 그는 운록서원에 다녀왔다. 그는 계획을 조위에게 말했지만, 조위는 강호를 멀리 떠돌아다닌다는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허신년은 유일하게 한림원에 들어간 운록서원의 서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 원장이 궁에 들어가 원경제를 협박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벼슬아치 노릇을 하지 않겠어……. 축적된 인맥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조정의 힘을 동원하고 싶으면 어려움이 따를 테지. 게다가 벼슬길도 끊겼으니 더는 위로 올라갈 수도 없고. 장차 배후의 검은손과 담판을 지을 때는 다른 힘에 의지해야 해.”
허칠안은 생각하더니 새로운 발전 계획을 세웠다. 친구 우두머리와 자신의 실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천지회 구성원은 내 의지 세력 중 하나야. 이묘진과 초원진은 4품 전투력이고, 항원 대사는 8품 무승이지만, 초원진의 견해에 따르면 대사의 폭발력과 지구력 모두 아주 뛰어나다고 했어. 전투력이 4품만 못하지만, 5품 무사는 뛰어넘지.
리나의 전투력은 정확하게 평가할 수가 없다. 항원과 비하면 약간 못 미치지만, 금련 도사가 말하길 그녀는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나와 견줄 만한 천재라고 했다. 일호는 일단 신분이 명확하지 않으니 우선은 신경 쓰지 말자. 구호 금련 도사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우두머리 중 하나야. 그의 뒤에는 사도에 빠지지 않은 지종 도사가 아주 많거든. 그러니 앞으로 금련 도사가 구색연화를 지켜내도록 도와야겠어.”
칠호와 팔호에 관해서라면, 듣건대 전자는 이묘진의 사형인 천종 성자라고 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이 사람에 대해 얘기할 때, 이묘진은 우물쭈물하며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 했고 나중에는 질문에도 싫증을 느꼈다.
‘그 자식은 자네처럼 거지발싸개야. 다만 그는 인과응보를 받았지만, 자네는 아니지. 하지만 자네도 언젠가 그의 뒤를 밟을 거야.’
팔호는 두문불출하여 지금까지도 생사를 몰랐다.
“금련 도사를 제외하고, 위연이 내가 믿을 수 있는 우두머리지. 감정은 치지 않는다. 감정은 헤아리기가 너무 어려워. 그가 지금 내보이는 모든 선의가 정말 선의인지도 확실치 않고. 참모습을 까발리기 전에는 전부 믿을 수 없다. 신수 대사는 감정보다는 좀 믿을 만하지. 하지만 그는 지금 깊은 잠에 빠져 있으니 당분간은 깨어나지 못할 거야.
그리고 불문의 도액 대사는 가까스로 반 정도 믿을 수 있겠어. 정말 궁지에 몰리면 나는 불문에 들어가야지. 하지만 신수가 내 몸속에 있으니 불문에 가도 막다른 길이군. 인종 도수 낙옥형은 금련과 친분이 좀 있고, 나와는 친분이 얕으니 거의 기댈 수 없겠고.”
허칠안은 개괄한 후 마음속으로 임무 리스트를 작성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빵: 금련 도사(천지회), 위연.
애매하게 믿음직스러운 대빵: 신수, 감정.
쟁취할 만한 대빵: 낙옥형, 도액 나한.
적: 신비로운 술사 패거리, 원경제.
“초주성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이 끝나면 나는 우선 눈에 띄지 않고 있으면서 되도록 5품으로 승직해야겠다. 너무 어렵지는 않을 거야. 나는 이미 5품의 문턱을 접했으니까. 하지만 5품으로는 부족하다. 4품이 되어야만 진정으로 자신을 보호할 힘이 생긴다. 겸사겸사 신년과 숙부의 처지를 통해 원경제의 태도를 살펴야겠다. 만약 보복할 추세라면, 즉시 경성을 떠난다. 가장 좋은 결말은 내가 4품으로 승직한 후 경성을 떠나는 건데. 지금 경성을 떠난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금련 도사한테만 기댈 수 있을 뿐, 다른 대빵들에겐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의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탁자에 앉아 움직이지 않던 감정이 천천히 눈을 뜨고 말했다.
“폐하께서 죄기소를 쓰시기로 약속했네.”
‘후…….’
허칠안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했다.
“애석하게도 원경제에게 퇴위하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었네. 늙은 황제가 여러 해 동안 조당을 관장하였으니 아직 토대는 있네. 지금 제공들이 그에게 죄기소를 쓰라고 압박하지만, 정말 그의 퇴위를 밀어붙이면, 대다수가 지지하지 않을 걸세. 그 속에는 이익, 조정 국면의 변화 등이 관련되기에 너무 광범위하게 연루되네.”
‘음, 자고로 사람은 욕심을 부리면 안 되지. 이미 내가 원하는 결과라고.’
그는 속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