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4화. 분노 (3)
궐영수는 다소 막연하게 그를 따라 함께 오문 입구로 갔다. 그가 인파를 헤치고 보니 오문 밖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체격이 좋은 이 자는 무명옷에 칼을 짚은 채 오문 밖에 서서 군신들이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흰옷을 입은 한 명과 붉은 옷을 입은 한 명이 더 서 있었다.
“허칠안, 자네 또 오문을 막고 뭐하는가? 이번에는 뭘 하고 싶은 겐가?”
형부 손 상서가 조건반사적으로 외쳤다.
문관들은 깜짝 놀라 그를 살폈다. 그들은 이렇게 익숙한 장면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지 몰랐다.
더욱이 손 상서, 그는 이미 허씨가 지은 시로 두 차례 욕을 먹었더랬다.
‘허칠안? 그가 바로 초주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의 허칠안이군. 조국공이 하는 말로는 정흥회의 지지자라던데…….’
궐영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제공들의 말은 이 자가 오문을 한 번 막은 적이 있단 소린가?’
허칠안은 군신을 둘러보며 평온한 눈빛으로 말했다.
“누가 궐영수인가? 그리고 조국공, 너희 둘 나와라.”
조국공은 불길한 예감이 더욱 짙어져서 미간을 찌푸렸다.
“허, 이 자가 이렇게 간덩이가 크다니. 지금 나를 욕하고 싶은 것이냐? 뒤에서 받쳐주는 위연이 있다고 해서, 문관에게 한 번 욕한 적 있다고 해서 내게 욕해도 되는 줄 아는가?”
호국공 궐영수는 비웃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본공이 저 문관들처럼 입만 놀릴 줄 안다고 여기는가?”
조국공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 자는 수련 경지가 약하지 않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군.”
궐영수는 코웃음을 치더니 문득 말했다.
“내가 여기에서 그를 벤다고 하면 폐하께서 책망하시겠는가?”
조국공 역시 이 말을 듣더니 웃음을 내보였다.
“자네가 그가 움직이도록 자극할 수만 있다면, 그는 반드시 죽을 걸세. 음, 이 자식은 뒤에서 받쳐주는 위연을 등에 업고 있어, 경성에서 제멋대로 굴며 위세를 떨치고 있네.”
“그건 그가 나를 만난 적이 없어서 그러네. 본공은 전쟁터에서 여러 해 동안 전쟁을 치렀네. 이런 싸움닭을 괴롭히는 걸 가장 좋아한다고.”
궐영수는 냉소를 지으며 조국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군신들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그는 칼을 짚고 서 있는 젊은이를 바라보며 야유했다.
“본공이 바로 네가 찾던 사람이다. 어떻게, 욕을 퍼부을 건가? 듣자 하니 너 허칠안이 시를 짓는 데 아주 능하다던데 본공에게 한 수 선사하는 건 어떠한가. 본공 역시 역사에 길이 이름이 남을 수도 있지 않은가.”
궐영수와 조국공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
궐영수는 말을 마친 뒤 칼을 짚은 젊은이가 움직이지 않고 우뚝 서 있는 걸 보더니, 적당한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계속해서 비웃었다.
“위 공, 자네 사람을 가르치는 수준이 부족하구먼. 이 버릇없는 자식 좀 보게. 오문에 난입하여 난폭하게 굴다니. 만약 자네가 가르치지 못하겠으면 본공이 자네 대신 가르치면 어떻겠는가?”
위연은 말없이 침묵하며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나는 오늘 욕하지 않을 것이다.”
허칠안이 탄식하더니 말했다.
“나는 사람을 죽이러 왔다.”
조국공과 모든 관원의 낯빛이 변했다.
“하하하…….”
궐영수는 자신이 엄청난 우스갯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
“그가 사람을 죽인다고 합니다. 여러분, 들으십시오. 그가 사람을 죽인다고 합니다. 오문 앞에서 사람을 죽인다네요.”
그가 웃다가 갑자기 멍해져서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그는 군신들이 일제히 뒷걸음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사람들 사이에는 육부상서, 육과 급사중, 한림원 청귀가 있었다……. 그들은 전부 경성에서 권력 전봉에 있는 인물인데 일개 은라 하나를 이렇게 꺼리다니?
위연과 왕 재상은 움직이지 않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건…….’
궐영수는 두려움에 즉시 조국공을 쳐다보았고, 그가 이미 슬그머니 십여 장이나 물러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다시 문관들의 표정을 보고는 마침내 이상함을 발견했다. 그들의 눈 속에는 증오와 미움과 그리고…… 기대가 서려 있었다.
“금군은? 여봐라, 여봐라, 이 자식을 체포하거라.”
궐영수는 크게 소리쳤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금군이 일제히 달려와 허칠안을 겹겹이 둘러쌌다. 칼을 뽑을 놈은 칼을 뽑았고, 창을 들 놈은 창을 들었다.
궐영수가 침착하게 손을 흔들었다.
“이 자가 궁 안에서 본공을 죽이겠다고 큰소리치는구나. 속히 체포하여 폐하께서 처분토록 넘기거라.”
금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체포하라. 본공의 명령이 먹히지 않는 게냐?!”
궐영수는 분노했다.
이때 군중들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가 일깨워주었다.
“그, 그에게는 목숨을 면하는 금패가 있습니다…….”
궐영수는 순간 눈을 부릅떴다. 그는 제공들이 왜 물러나고 금군이 왜 손을 쓰지 않는지 이해했다.
금군은 황제를 보호하는 자들이었다. 황제의 생명이 위협을 받지 않을 때, 그들은 죽음을 면하는 금패를 손에 쥔 사람과 사투하지 않을 것이었다.
‘죽음을 면하는 금패면 또 어때. 나는 그가 감히 궁 안에서 손을 댈 거라 믿지 않는다…….’
궐영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는 5품 고수였다. 비록 그는 오늘 조회에 참석할 때 칼을 차지 않긴 했지만, 그렇다고 반격할 힘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때 허칠안이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털더니 불을 붙이고 나지막이 말했다.
“금고(禁錮)!”
궐영수와 조국공의 몸이 갑자기 굳어져 잠시도 움직일 수 없었다.
허칠안은 칼을 들고 한 걸음씩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왕 재상이 나지막이 말했다.
“허칠안, 자신을 그르치면 안 되네. 호국공은 일등 공작이자 개국 공신의 후손일세. 그에게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기면, 자네가 책임질 수 없어.”
어사 장항영이 서둘러 말했다.
“위 공, 얼른 그를 말리십시오.”
위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허칠안이 한 걸음 걸어가면, 문관들은 한 걸음 물러나는 바람에 조국공과 호국공이 부각되었다.
탁탁…….
그가 칼집을 휘둘러 호국공과 조국공의 무릎뼈를 부쉈다.
이 공격에 따르는 통증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조국공과 호국공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크게 비명을 질렀다.
궐영수는 군신들을 쳐다보면서 큰 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자네들 얼른 그를 저지하게, 얼른 그를 저지해. 모두 같은 조당의 관원으로서 죽는 걸 보고도 돕지 않으면 안 되네. 일개 무사가 감히 오문 밖에서 사람을 죽이는데 조당 전체 제공들 중에 나서서 얘기할 자가 없다니. 자네들, 자네들 세상 지식인에게 비웃음당하고 싶은 겐가?”
춘시에 새로 급제한 한 젊은 관원이 그의 말에 자극받아 무의식적으로 선뜻 나서 허칠안의 폭행을 저지하려 했다.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의 옆에 있던 형부 손 상서가 갑자기 발을 날려 그를 걷어차 버렸다.
육부상서, 시랑, 육과 급사중 등등 조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대신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택했다. 말을 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설령 허칠안과 원한이 있다 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궐영수는 상황을 이해했다. 속이 검은 지식인들은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인 듯했다.
그들은 전부 그가 죽기를 바랐다.
허칠안이 패도를 허리춤에 도로 걸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동작을 취했다. 그는 서쪽 하늘을 향해 손짓했다.
그런 뒤, 그는 조국공과 호국공의 옷깃을 쥔 채 밖으로 걸어갔다.
* * *
원경제는 침전 안의 조회를 마친 뒤 막 어서방에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시위가 허둥지둥 뛰어 들어와 통전도 하지 않고 문 앞에 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폐하, 허칠안이 또 오문을 막았습니다. 호국공과 조국공울 죽이겠다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원경제는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크게 화를 냈다.
“그가 반란을 일으키고 싶은 건가? 조국공과 호국공은 어떠한가?”
“허칠안이 황궁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시위는 초조해하며 대답했다.
“속히 금군 고수를 동원하여 허칠안을 막는다. 만약 거역하는 자가 있으면 바로 죽여라!”
원경제가 고함쳤다.
시위가 떠나자 그는 갈팡질팡하는 표정으로 탁자 옆에 섰다.
그는 위연과 왕 재상도 모자라 조정 제당까지 굴복시켰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작은 인물을 소홀히 했다.
“그가 감히 짐을 거역하다니. 간덩이도 크구나, 간덩이도 커…….”
원경제는 나지막이 외치더니 탁자 위의 안독, 문건, 문방사우를 전부 바닥으로 쓸어버렸다.
존귀한 지위의 제왕은 여전히 화가 사그라들지 않아 탁자를 걷어차 넘어뜨렸다.
* * *
황실의 지령을 받은 후, 궁중 고수는 금군 수백 명을 데리고 궁문을 뛰쳐나갔다. 말을 채찍질하며 미친 듯이 내달려 거리를 따라 빠르게 추격했다.
금군 대오는 황성 거리 위에서 허칠안을 쫓았다.
“그를 막아라!”
그중에 한 금군 우두머리는 두 국공이 무사한 걸 보더니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 등 위에서 몸을 훌쩍 날려 허칠안을 덮쳤다.
슉!
이때 비검이 갑자기 습격해왔다. 검광이 밝게 빛났다.
금군 우두머리는 패도를 뽑아 들고 비검과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는 다치지는 않았지만 저지당했다.
이묘진이 공중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하늘에 뜬 채로 서 있었다. 그녀는 늠름한 얼굴에 서리가 내린 듯했다.
이묘진은 임안부에서 나와 어젯밤에 줄곧 성에서 머물렀다.
‘천종 성녀…….’
금군 우두머리는 놀라면서도 화가 났다.
“내가 이묘진을 상대할 테니 너희는 허칠안을 막으러 가거라.”
추격하러 나온 건 그 한 명의 고수뿐만이 아니었다.
즉시 강자 세 명이 말 위에서 뛰어올랐다. 그들은 기기를 뒤흔들며 허공을 갈라 추격했다.
쓱!
그때 검광이 번쩍이더니 세 명의 강자 앞을 베어 깊은 고랑이 생겼다.
거리 맞은편의 용마루 위에 청삼 검객이 뒷짐 지고 냉정한 웃음을 띤 채 서 있었다.
“초원진, 자네 조정을 거역할 셈인가? 지명 수배범이 되고 싶은 게야?”
금군 강자 세 명이 초원진을 알아보았다.
초원진이 냉소를 지었다.
“이곳은 황성이네. 고관대작들이 살고 있지. 만약 자네들이 책임지고 싶으면 나와 한판 붙어도 되네. 어쨌든 나는 외톨이니 기껏해야 이번 생에 대봉 국경에 들어가지 않으면 될 뿐이야.”
금군 강자 셋은 노발대발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경성은 천자의 발밑이자, 또 내성이기에 이곳의 백성은 바깥 백성들보다 귀했다. 만약 그들 셋이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면, 대량 사망을 초래할 것이다.
이 책임은 절대적으로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쪽에서 기기 파동이 전해졌다. 황성 안에서는 난폭한 기운이 되살아나면서 자극 반응이 일어났다.
황성 안에 살고 있는 건 전부 고관과 귀족이었다. 어떤 이는 자신이 바로 고수이기도 했고 어떤 이는 저택에서 객경을 배양하기도 했으므로 모두 약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황궁 쪽에서 더욱 난폭한 기기 파동이 전해졌다. 그건 뒤따라온 고수였다.
“우리가 화를 자초한 것 같소…….”
초원진이 전음으로 말했다.
“죽음이 두려우면 꺼지시오.”
거친 성미의 이묘진이 대답했다.
“아미타불!”
항원은 이런 일에 당연히 빠질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쪽 거리에서 방향을 바꾸어 나와 나지막이 말했다.
“이 동지는 왜 내 뒤를 봐주지 않았소?”
그 역시 사전에 황성에 잠입하여 임안부에 숨어 있었다. 다만 이묘진이 방금 검을 부릴 때 그를 엮지 않아 좀 늦게 왔다.
이묘진은 언짢아했다.
“도망칠 때 다시 얘기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