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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13화 (510/712)

513화. 분노 (2)

“마마, 이공주마마께서 뵙기를 청합니다.”

시위장이 회경의 서재 문을 두드렸을 때, 마침 회경은 기분이 엉망이었기에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때 만약 임안이 또 그녀를 도발하고 성가시게 한다면,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터였다.

“그녀에게 응접실에서 기다리라고 하거라. 본 공주는 환복하고 가겠다.”

회경은 시위장을 내쫓았다. 그녀는 종이를 태워버리고 눈처럼 하얀 궁군으로 갈아입은 뒤 응접실에 이르러 온몸이 붉은 여동생을 만났다.

이내 그녀는 깜짝 놀랐다.

예전의 임안은 활발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비록 매번 회경이 휘두르는 따귀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도, 그녀는 재잘거리는 참새처럼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어 상대를 쪼아댔다.

그녀는 언제나 지칠 줄 모르고 다시 날아올라 당신의 얼굴을 쪼려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본 임안은 쭈글쭈글한 꽃 같았다. 임안은 달걀형 얼굴이 생기 없이 암담했고, 도화안을 아래로 쭉 늘어뜨린 모습은 몹시 열등감 있고 무력한 계집애 같았다.

“만약 정흥회가 죽은 건지 묻고 싶다면, 나는 명확하게 네게 대답해줄 수 있어. 맞아.”

회경이 담담하게 말했다.

임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바닥을 쳐다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 나 그다지 편치 않아……. 나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좀 그냥 편치 않아. 그리고 두려워…….”

‘이 일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충격이 너무 크구나……. 대봉의 태평 성대 기간이 너무 길고, 국구가 죽기 전에 후궁은 또 화목했으니…….’

회경이 담담하게 말했다.

“별거 아니야. 네가 책을 너무 적게 읽었구나. 사서를 많이 읽고 쓰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라는 걸 알 거다. 피비린내 나고 공정하지 않은 일일수록 몇 획 되지 않지.”

“언니, 정말 그렇게 생각해?”

임안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정흥회의 죽음과 초주성의 38만 망혼으로 인해 마음속의 죄책감이 곧 터질 듯했고, 사람 전체가 우울하고 편치 않았다.

임안은 이런 시기에 회경이 떠올랐다. 회경은 자신이 줄곧 앞지르려고 했던 언니였기에, 임안은 그녀가 무척 그리웠다. 그녀는 회경이 이 일을 어떻게 마주하는지 보고 싶었다.

지금 그녀는 회경의 대처 방식을 보았고 약간 실망했다.

회경은 그녀 앞으로 걸어가더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달이 차면 기울고, 물이 차면 넘치는 법이지. 만사, 만물은 차면 넘친다는 이치에서 벗어날 수 없어. 한 황조가 흥하다가 쇠약해지면 반드시 수많은 피와 눈물을 수반하고, 내부의 부패가 조금씩 좀먹게 되지. 이런 일은 더 많이 발생할 거란다.”

임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언니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해?”

회경은 손을 뻗어 임안의 머리를 눌렀다. 그녀의 눈에는 보기 드문 부드러움이 스쳤다.

“이럴 때 누군가 일어설 거야.”

‘누군가 일어설 거라고…….’

임안은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이묘진은 내성의 한 객잔 안에 있는 대당의 구석 탁자에 앉아 의붓자식인 여인을 데리고 밥을 먹었다. 그녀는 이 여인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항상 사람을 마구 부리지는 않았다. 요 며칠 동안, 평범한 자태의 이 여인은 많이 개선되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했다.

이묘진이 정말 좋아하지 않는 부분은 그녀 눈에 비친 독선적인 도도함이었다.

이 여인의 눈에는 다른 여인은 전부 미천하고, 세상에서 그녀 하나만 미인인 듯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녀야말로 가장 평범하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남자들이 한번 보는 것조차 하찮아하는 그런 여인이었다.

“그는 왜 아직도 나를 찾으러 오지 않지?”

모남치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허, 시집갔던 여인이 이렇게 뻔뻔하게 사내를 그리워하다니?”

이묘진은 까닭 없이 기분이 좋지 않아 냉소를 지었다.

“그저 너랑 같이 있는 게 재미없을 뿐이거든.”

왕비는 아래턱을 치켜들고 오만하게 말했다.

“…….”

‘그래서 도도하고 자부심 강한 이 태도는 어디서 비롯되는 거야? 그녀는 자신의 주제를 모르나? 귀찮군.’

이묘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치가 떨렸다. 그녀는 요 며칠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회왕을 단죄하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 오늘이 돼서야 정흥회가 감옥에 들어갔다는 걸 알았다.

‘언젠가는 칼을 들고 궁에 쳐들어가서 원경제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테다…….’

이호 이묘진은 분노했다.

이때 옆 탁자에 있는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자네들 아는가? 정흥회가 이미 죽었네. 알고 보니 그가 요족 및 오랑캐와 결탁한 장본인이라더군.”

“뭐라고?!”

손님들이 모두 경악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자는 똑똑히 말했다.

“내가 아는 형씨가 대리사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는데 오늘 듣자 하니 그 정흥회가 형벌이 두려워 옥에서 자살했다고 하더군.”

대당 내가 갑자기 발칵 뒤집혔다.

‘뜻밖에 정말로 이런 반전이 있었다고?’

그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정흥회는 정말이지 짐승보다 못하더군. 그는 오랑캐 및 요족과 결탁하여 우리 대봉을 지키는 기둥인 회왕을 죽이고, 초주성의 38만 백성을 죽였네. 그러고는 사절단을 기만하여 경성에 들어와 고발하였네. 회왕에게 얼마나 깊은 원한이 있단 말인가? 내가 듣자 하니 그가 초주에 있을 때 군전을 횡령하고 뇌물을 받아 회왕에게 여러 차례 꾸지람을 들어서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다더군. 이번에 오랑캐 및 요족과 결탁한 것도 회왕이 그의 죄를 그러모아 조정에 탄핵하려 했기 때문이라네…….”

그자는 여기까지 말을 마치자 눈물을 짜내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탄식했다.

“우리는 비록 평민이지만 이런 자는 상대하지 않지. 세대의 호걸인 회왕이 처량한 말로를 맞이해 참으로 애석하네.”

손님들은 아연실색하여 밥을 먹는 것도 잊고 격렬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불가능해. 회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한 소식은 사절단이 전해왔네. 허 은라가 전해 왔다고.”

“맞네. 허 은라는 사건 해결의 신인데 어찌 회왕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겠는가?”

“우리는 믿지 않네.”

“허, 믿지 않으면 믿지 말라지. 내일 조정에서 포고를 발표하면 자네들은 믿지 않을 수 없을걸.”

“퉤, 허 은라가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믿지 않네. 내일 소식을 기다려보자고.”

이묘진의 젓가락이 ‘탁’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허칠안…….’

한편 왕비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가 먼저 떠올린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라 바로 얄미운 허칠안이었다.

그녀는 귓가에 그가 했던 말이 또 메아리치는 듯했다.

‘제가 초주성에 가서 그를 저지할 것입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저는 그를 죽일 겁니다…….’

* * *

이날 경성 곳곳에서 초주 포정사 정흥회가 형벌이 두려워 자살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달리 꿍꿍이 속셈을 품은 자의 서술에 의하면, 정흥회는 요족 및 오랑캐와 결탁하여 진북왕과 초주성 38만 백성을 죽였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제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죄를 진북왕에게 전가해 대봉을 지키는 기둥의 지위와 명예를 잃게 했다.

누군가는 이런 유언비어에 경악했으나 누군가는 이 말을 믿지 않았으며 또 누군가는 망연자실했다…….

시정 백성들은 내막을 몰랐으며 그 속의 우여곡절과 아귀다툼은 더욱이 알지 못했다. 보통 사람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이런 사건을 맞닥뜨리면 본능적으로 마음속에서 권위 있는 인물을 찾곤 했다.

권위 있는 인물의 의사 표현은 그들이 기꺼이 믿을 수 있는 사실이었다.

현재 이런 방면으로 권위 있다고 할 만하고, 시정 백성들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자는 아마 허칠안 하나뿐인 듯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막 사천감에서 나온 참이었다.

감정은 여전히 그를 만나지 않았고, 허칠안 역시 감정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저 감정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채미에게 부탁했을 뿐이다.

* * *

항원과 초원진이 사천감 건물 밖에서 그를 기다렸다.

이마 앞에 흰 머리카락이 삐져나온 검객이 빙그레 웃었다.

“자네 나를 따라 강호를 떠돌길 원하는가?”

허칠안은 입을 가로로 벌렸다.

“서역의 여인은 매끈매끈한가요?”

초원진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진작부터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네.”

허칠안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테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는 홀로 떠났다.

황혼 전, 허신년과 숙부는 집안의 안식구를 데리고 성을 나섰다.

* * *

이튿날, 조회. 수많은 제공들이 금란전에 발을 들여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경제가 왔다. 그는 마치 한시바삐 조회를 열고 싶은 듯했다.

원경제가 평온하게 앉자, 늙은 태감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뒤 목소리를 높였다.

“아뢸 일 있으면 상주하시고, 없으면 퇴청하시오.”

말을 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지만, 이 순간 조당의 수많은 시선이 대리사경에게로 향했다.

대리사경은 눈 딱 감고 대열에서 나와 읍했다.

“소신 아뢸 일이 있사옵니다.”

사람이 대리사에서 죽었으니 이 일은 반드시 그가 말해야 했다.

원경제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경은 얘기하시오.”

대리사경이 약간 멈칫하더니 우렁차게 말했다.

“초주 포정사 정흥회가 어제 오시, 형벌이 두려워 옥중에서 자살하였습니다.”

금란전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졌다.

원경제는 입가의 웃음이 점점 더 짙어졌다.

“경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결론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좌도어사 원웅이 대열에서 나왔다.

“이미 형벌이 무서워 자살하였으니 초주 사건은 매듭지을 수 있습니다. 초주 포정사 정흥회는 장주 인사로 원경 19년 2갑 진사입니다. 이 자는 요족, 오랑캐 두 종족과 결탁하여 진북왕 및 초주성의 38만 백성을 죽였으니 구족을 멸해야 합니다. 정흥회에게 청주에서 재직하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조정에서 관보를 보내 청주 포정사 양공과 접촉하여 그 일가를 체포할 수 있습니다. 참수하여 백성들 앞에서 징벌하시지요…….”

원경제가 모든 대신을 둘러보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물었다.

“경들은 다른 의견 있는가?”

말을 하는 자가 없었다.

원경제는 웃기 시작했다. 그가 여러 해 동안 펼친 상호 견제술 덕에 조당에 즐비한 당파가 오합지졸처럼 응집하기 어려워졌다.

그는 지난날에 까마득히 높은 곳에 앉아 이 사람들이 싸우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결과 싸움은 확실히 격렬하면서도 다채로워졌다. 하지만 존귀한 제왕인 자신이 퇴장한 뒤, 이 오합지졸은 결국 일개 오합지졸에 불과한 상태에 머무르는 신세가 되었다.

그의 의지가 바로 대봉 최고의 의지였다.

이 자들이 뜻밖에도 황실의 체면을 발밑에 밟아, 세상 사람들이 업신여길 거라고 망상했다.

그는 이들이 무척이나 가소로웠다.

군신 중에 궐영수는 하마터면 자신의 웃음소리를 절제하지 못할 뻔했다. 그는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위연도 그렇고, 왕 재상 그리고 다른 문관들도 그렇고 결국은 신하였다.

수법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폐하의 눈에는 그저 그런 존재일 따름이었다.

그는 이 사건이 지나면 무사하게 넘어가는 수준을 넘어 논공행상할 수도 있었다. 그는 호국공 작위를 지금까지 계승해 마침내 다시 자신의 손에서 궐기할 수 있었다.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늙은 태감이 외쳤다.

“퇴청!”

궐영수는 이 일이 이미 일단락되었음을 깨달았다. 위연과 왕 재상은 사태를 만회할 힘이 없었다.

제공들은 분주한 걸음으로 금란전을 나왔다. 그들은 더는 여기 머물고 싶지 않은 듯했다.

“조국공, 밤에 교방사에 가서 놀아보자고. 북경에 여러 해 있었더니 교방사 낭자들의 생기발랄함을 잊을 지경이네.”

궐영수는 기분 좋게 조국공을 찾아가 말을 걸었다.

조국공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신분이 신분이니 만큼 교방사에 가는 걸 하찮게 여겼다. 그는 집에 꽃 같은 미모의 부인과 첩이 셀 수 없이 많아서 그들을 친히 찾아가기도 벅찼다.

하지만 조국공은 궐영수의 정을 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네!”

그는 말을 마치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자네 요 며칠 외출하지 않는 게 좋겠네. 저택에 남아 있게. 만약 교방사의 여인과 잠자리를 갖고 싶으면 그녀에게 호국공부로 오라고 하면 되네. 굳이 직접 갈 필요가 있는가?”

궐영수는 잠깐 따져 보더니 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내가 저택에서 연회를 베풀겠네. 동료와 벗을 초대할 것이니 조국공 자네도 반드시 내 체면을 봐서라도 오게.”

“그야 당연히…….”

조국공은 웃으면서 응했는데, 갑자기 전방의 문관들이 멈춰서더니 오문 앞에 모였다. 다들 그곳으로 시선이 향했다.

그는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솟구쳐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가세, 가서 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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