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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09화 (506/712)

509화. 불청객

두 사람은 말없이 관아를 나와 마차에 들어갔고, 마부 역할을 맡은 신도백리가 마차를 몰며 떠났다.

정흥회는 가는 도중에 오늘 조당에서의 경과를 묘사하였다. 그는 제공들의 태도가 애매해졌으며 그들이 은근히 입장을 바꾸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

“위 공께서는 그러지 말았어야지요. 그의 위치에 이르면, 진정으로 원하는 게 있으면 스스로 도모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양심을 저버리고 폐하께 영합할 필요는 없습니다.”

허칠안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위 공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흥회가 무력한 어조로 위 공을 대신해 한마디 설명했다.

“군신은 유별합니다. 폐하께서 대다수 사람의 이익을 건드리지 않으시기만 하면, 조당에서는 그의 적수가 없지요.”

“위 공께서 고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세 가지를…… 정 대인께서는 어찌 고려하지 않으십니까? 당분간 칼끝을 피하십시오. 회왕이 이미 죽었으니 초주성 백성들의 원한도 이미 갚은 셈입니다.”

허칠안이 권했다.

정 대인은 좋은 벼슬아치였다. 그는 이런 사람이 마지막에 처참한 결말을 맺기를 바라지 않았다. 마치 애당초 그가 운주에서 장 순무를 위해 홀로 반란군을 막았듯이 말이다.

이번에는 반란군이 없었다. 이번 싸움은 조당에서 벌어졌기에, 허칠안 역시 칼을 들고 궁으로 쳐들어가 일격을 가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는 정 대인에게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정흥회가 그를 보면서 물었다.

“기꺼이 원하십니까? 회왕 같은 망나니가 영웅이 되어 종묘에 모셔지고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는 일을 보길 원하십니까?”

허칠안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정흥회는 이 젊은이의 눈에 시큰둥한 기색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그는 흐뭇하게 웃었다.

“본관은 2품 포정사이지만, 지식인이기도 합니다. 지식인은 양심에 부끄럽지 않기를 추구하며 자신에게 떳떳해야 하지요. 또한, 당신을 정성 들여 키워준 부모님께 떳떳해야 하고요.”

그들은 가는 동안 달리 말이 없었다.

* * *

한참 뒤 마차를 길가에 세우고, 신도백리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대인, 도착했습니다.”

허칠안은 발을 젖혔다. 마차는 아주 기품 있는 대원 앞에 세워져 있었다. 대원 문 편액에는 ‘문연각’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내각이다!

정흥회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입구의 시위에게 말했다.

“본관은 초주 포정사 정흥회다. 왕 재상을 만나뵙고자 한다.”

허칠안은 여기까지 보았을 때 이미 정흥회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그는 중재인이 됨으로써 제공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내비쳐, 그들을 다시 진영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시위가 내각에 들어가 보고하더니 금세 성큼성큼 돌아와 나지막이 말했다.

“재상 대인께서 말씀하시길 정 대인께서는 초주 포정사이니 당직 시간이든 퇴근한 후든 그를 찾아오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작당한다는 이유로 탄핵당하지 않기 위해서요.”

정흥회는 실망하여 돌아갔다.

그다음 날도 허칠안은 그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유세하다가 퇴짜 맞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해 질 무렵, 침울하게 역참으로 돌아왔다.

* * *

허신년은 퇴근하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가 큰형이 보이지 않아 저택 안을 한 바퀴 도니 그때서야 용마루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대 형님 여기에 있소.”

묘령의 여인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고개를 들어 보니 천종 성녀 이묘진이 있었다. 그녀는 처마에 서서 무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표정만 보아도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허신년은 사다리를 옮길 때 이미 이묘진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큰형은 풀뿌리를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뒤통수를 받친 채 처마 위에 누워 다리를 꼬았다.

허신년은 준수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관포 아랫단을 들고 계단을 따라 처마로 올라갔다.

“올라와서 뭐 하려고.”

허칠안은 언짢아했다.

“짜증 나게 하는 사람이 가니까 네가 와서 나를 시끄럽게 하는구나.”

“이 장군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던데요.”

허신년은 차분한 어조로 말하며 큰형 옆에 앉았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지. 실력만 된다면, 지금 그녀는 묘시에 궁에 쳐들어가겠다는 생각을 할걸.”

허칠안이 언짢아했다.

허신년은 이 말을 듣더니 머리를 움츠렸다.

“다행히 저는 그저 서길사일 뿐이군요.”

허칠안은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 그는 다 웃고 난 후에 다시 탄식했다.

“천종이 수련하는 건 감정에 움직이지 않는 일이지. 어쩌면 장차 그녀는 실력을 배양해 더는 그해의 비연 여협객이 아니게 될지도 몰라. 이게 바로 인생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지.”

“형님은 더 냉정해진 것 같아요.”

허신년이 흐뭇해했다.

“냉정한 게 아니라 좀 지치고, 다소 실망스러운 거야.”

허칠안은 두 손으로 뒤통수를 베고 석양이 점점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허신년은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보더니 시선을 높은 하늘로 옮겼다.

“저는 조정의 일을 이미 확실히 압니다. 형님과 좀 얘기하고 싶어서 올라왔어요. 진북왕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은 비록 조정에서 결론을 내렸지만, 경성은 이 일로 매우 시끌벅적하고, 이미 기정사실화되었습니다. 국면을 전환하고 싶어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지요. 설령 조정이 억지로 진북왕을 영웅으로 형상화해도 이 일은 보이지 않는 위험을 남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일을 언급할 때, 처음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진북왕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이게 바로 앞으로 결론을 뒤집을 핵심입니다.”

‘결론을 뒤집는다라…….’

허칠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는 순간 전생의 역사 중에 여러 사례가 떠올랐다.

억울하게 죽은 무고한 충신과 명장들이 결국에는 복권됐고, 한때 잘나가던 간신들은 결국 제 죄값에 상응하는 말로를 맞이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자가 진회(秦檜)였다.

이 천고의 간신과 아내는 지금까지도 어느 유명 관광지에 동상까지 세워진 채 후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들이 어느 정도까지 미움을 받느냐 하면, 세간에서 진회의 아내가 바람둥이였다고 말하는 수준이었다.

‘위 공께서 정흥회에게 세 가지를 고려하라고 했다는 말은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품었다는 뜻인가……. 정 대인은 분노와 원한으로 이성을 잃었으니 감정이 극단적일 수밖에 없고 위 공의 뜻을 깨달았을 거란 보장이 없다. 음, 내가 내일 가서 그를 일깨워줘야겠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 법이지. 사람보다 형세가 강한 이상 꾹 참지 뭐. 우리 신년은 역시나 재상의 자질이 있어. 총명함과 지혜로움이 위 공에게 뒤지지 않아…….’

허칠안은 흐뭇해하며 일어나 앉아 허신년의 어깨를 안았다.

허신년은 싫다는 듯 그를 확 밀쳤다.

* * *

호화로운 장식의 황궁 침전 안, 원경제는 푹신한 평상에 기대어 경전을 연구했다. 그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었다.

“내각 쪽에서는 요즘 무슨 움직임이 있는가?”

늙은 태감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재상 대인께서는 근래에 손님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원경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연은?”

“그제 조회가 끝난 뒤, 정 포정사가 야경꾼 관아에 가서 위 공을 만났습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고요.”

늙은 태감은 사실대로 아뢰었다.

“위연과 왕 재상 둘 다 참 똑똑해. 다만, 위연이 더 짐을 안중에 두지 않지.”

원경제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한쪽으로 시선을 넘기고 정신을 집중하여 한참을 보더니 갑자기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흥회는?”

“정 대인께서는 요 며칠 여기저기 바삐 다니며 백관들에게 유세하고자 했으나 기꺼이 그를 만나려는 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제공들 모두 관망하고 있더군요. 나중에 그는 생각을 바꿔 학자들을 꾀어내러 국자감으로 달려갔습니다.”

늙은 태감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원경제는 웃었다. 그의 웃음기 전혀 없는 눈빛은 음침하고 차가웠다.

* * *

5월 12일 아침, 진북왕의 시체를 경성으로 운구한 지 벌써 8일이 지났다.

조정에서는 이렇게 진북왕의 죄를 단정할지 여부에 관해 줄곧 공고문을 내붙이지 않았다.

경성 백성들은 전혀 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천자 발밑의 주민으로서, 황성에서 심지어 한 사건을 몇 년 동안 끄는 것도 본 적이 있었다. 또한, 조세 감면 정령(政令)은 몇 년 전부터 전해지기 시작해서 몇 년째 여전히 떠돌고 있었다. 아마 이 정령은 계속해서 퍼져나갈 터였다.

급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열기는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결코 열기가 식지는 않았다.

경성 백성들은 한가한 휴식 시간에 습관적으로 진북왕을 들추어내 한번 두 번 세 번 긁었다…….

이날 새벽녘, 경성에 불청객들이 찾아왔다.

말 서른 마리가 성문을 뚫고 들어와 외성을 지나쳐 내성의 성문 입구에 멈췄다.

일행의 필두에 선 자는 얼굴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한쪽 눈이 멀었다. 그는 바로 초주 도지휘사 궐영수였다.

이 호국공은 갑옷이 낡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어, 누가 봐도 이리저리 떠다니며 온갖 고생을 다 겪은 모습이었다.

그와 동행하는 동반자 모두 이러했다.

궐영수는 성문 입구에 이르러 말을 버리고 성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품속에서 혈서를 꺼내 손바닥에 바치고 소리 높여 외쳤다.

“본공은 초주 도지휘사 호국공 궐영수로, 초주 포정사 정흥회를 고소합니다. 그는 요족, 오랑캐와 결탁하여 진북왕을 죽이고, 초주성 38만 백성을 죽였습니다. 그후, 정흥회는 사절단을 속이고 본공을 죽이고자 추적하였습니다. 요족, 오랑캐와 결탁한 사실을 덮기 위해 진북왕이 성안의 백성을 도살했다고 모함하였습니다! 극악무도하기 그지없습니다!”

그가 걸어가면서 말하자 성안의 백성들은 걸음을 멈추고 둘러싸 구경하였다. 다들 의견이 분분했다.

“호국공? 초주의 그 호국공? 진북왕 백성 대량 학살 사건에서 그를 도와 악행을 저지른 그자?”

“잘 돌아왔군.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왔네. 그들이 도망치지 않게 예의주시하라고. 우리 관아에 보고하러 가세.”

“서두르지 말고,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고. 포정사 정흥회가 요족, 오랑캐와 결탁하여 진북왕을 죽이고 사절단을 속였다니……. 이,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설마 그 초주 포정사야말로 초주성을 파괴한 원흉이었단 말인가?”

시정 백성들은 이런 반전 사건을 익숙하게 들었다. 마치 이야기꾼이 버릇처럼 해오던, 모함당했던 충신이 결국에는 역전했다는 연극처럼 말이다.

그들은 이런 연극 프로그램에 아주 익숙했다.

“틀림없이 거짓이네. 진북왕이 초주성을 해한 거야. 자네들 잊었는가? 사절단에는 허 은라가 있다고. 허 은라가 좋은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겠는가? 만약 그 무슨 포정사가 간신이라면 허 대인이 눈치채지 못하겠는가?”

“일리 있어.”

주변의 백성들은 이 말이 아주 그럴 듯하다고 여겼다.

경찰이 있던 해, 경성에는 큰 사건이 차례로 발생했다. 매번 수석 수사관은 허칠안이었는데 그때 그는 일개 동라에서 점점 백성들에게 인지도를 쌓아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는 운주에서 돌아온 후, 명성이 한 단계 오르면서 단순한 화젯거리를 넘어 열사가 되었다. 그의 명성이 진정으로 터진 시기는 불문과 두법할 때였다. 그는 불문을 격파한 뒤 경성의 영웅이 되었다. 조정의 관보가 각지로 뿌려지면서 그는 대봉 각지의 백성과 강호 인사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거대한 명성이 굳혀졌다.

그는 천인 간의 전쟁으로 이미지와 명성을 견고하게 다졌다. 그는 백성들의 머릿속, 꿈속, 마음속 그리고 외침 속에 단단히 자리했다.

따라서 궐영수의 혈서에 비교했을 때 백성들은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하면서, 허 은라가 데려온 초주 포정사를 더 믿고 싶어 했다.

초주 도지휘사, 호국공 궐영수는 아주 빠르게 경성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손에 혈서를 받친 채 거리를 따라 초주 포정사 정흥회의 일을 고발했다. 그들의 고발은 이들을 둘러싼 채 구경하던 관중들을 따라 재빠르게 퍼져나갔다.

한순간 진북왕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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