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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07화 (504/712)

507화. 개막 (4)

마지막 세력은 자리를 잡고 싶거나 처지가 그다지 좋지 않은 문관들이었다. 이들은 암암리에 원경제와 이익 교환을 달성하여 그를 위해 발언하는 그의 무기가 되었다.

황실 종친, 훈귀 집단, 일부 문관 세 측이 반대파를 이루었다.

이때 조국공이 대열에서 나와 훈귀 집단을 대표해서 그들의 의지를 대변했다.

“폐하, 요 몇 년 동안 조정은 안팎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름철에는 가뭄이 끊이지 않고, 장마철에는 홍수가 그치지 않아 민생고가 극심했지요. 각지에서는 매년 조세가 밀리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끊임없이 조세를 감면하심으로써 백성의 휴식을 도모하시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원성이 자자합니다.”

조국공은 원망이 극에 달하여 나지막이 말했다.

“이 시기에 만약 진북왕의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이 퍼져나간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조정을 어떻게 바라보겠습니까? 향신(*鄕紳: 퇴직한 벼슬아치)과 서리(*胥吏: 말단 벼슬아치)는 또 조정을 어떻게 대해야 한단 말입니까? 조정은 이미 썩어 문드러졌기에 기존보다 더 거리낌 없이 백성의 고혈을 짜낼 거라 여길까요?”

“버러지 같은 놈!”

원경제는 벌컥 화를 내더니 조국공에게 삿대질하며 욕을 퍼부었다.

“자네 지금 짐이 아둔한 군주라고 풍자하는 건가? 자네 지금 조당 제공들 전부 아둔한 자라고 풍자하는 건가?”

“신이 감히 그럴리가요!”

조국공이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 제공들이 하는 짓이 바로 아둔한 일 아닙니까? 다들 입으로는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회왕을 단죄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이중 대세를 고려한 자가 있습니까? 누가 조정의 낯을 고려했습니까? 조정의 관리인 제공들이, 설마 조정의 체면이 바로 그들의 체면이라는 걸 모른단 말입니까?”

두 사람이 맞장구를 치는 모습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 따로 없었다.

조당 제공들은 서로 귀를 갖다 대고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다.

정 포정사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놀라면서도 화가 났다. 그는 조국공의 말이 억지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일리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황실의 체면은 제공들이 입장을 바꾸는 이유로서는 부족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만약 조정의 체면이라면?

문무백관의 마음속에 조정의 위엄은 그 어떤 것보다 높은 지위를 점했다. 조정의 위엄이 바로 그들의 위엄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로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정흥회 자신조차도 저도 모르게 방금 조정이 어떻게 체면을 만회하고, 백성들 마음속의 인상을 만회해야 하는지를 떠올렸다.

원경제는 원망이 극에 달해서 길게 탄식했다.

“허, 허나 회왕은…… 확실히 잘못했지 않은가.”

조국공이 소리를 높였다.

“폐하, 회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의논하는 소리가 단숨에 커졌다. 누군가는 여전히 작은 소리로 논의를 이어갔지만 누군가는 격렬한 논쟁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늙은 태감은 채찍을 움켜쥐고, 무의식적으로 바닥의 벽돌을 후려쳐 군신들을 꾸짖고자 했다.

하지만 늙은 태감은 원경제의 싸늘한 곁눈질에 황제의 뜻을 알아차리고 즉시 침묵을 유지하였다. 그는 논쟁이 격화되고 지속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래, 회왕은 이미 죽었잖아. 가장 큰 훈귀가 끝났으니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탈 수 있는 무장도 사라진 셈이군……. 기왕 이렇다면 죽은 사람을 위해 조정의 체면을 짓밟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적지 않은 문관들의 마음속에 이러한 생각이 스쳤다.

원경제가 노했다.

“죽으면 있었던 일을 지워버릴 수 있는가?”

조국공이 읍했다.

“가능합니다!”

위연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칼날처럼 차디찬 시선으로 조국공을 훑어보았다.

왕정문은 깊이 숨을 쉰 다음 말없이 냉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조국공이 뒤이어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아는 듯했다.

원경제가 의아해했다.

“무슨 뜻인가?”

조국공은 정색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폐하께서는 잊으신 겁니까? 초주성이 도대체 어떤 자의 손에 파괴되었습니까? 오랑캐입니다. 오랑캐가 초주성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이 일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의 연합군이 성지를 함락시키려 했고, 진북왕은 대봉의 국경을 수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결국에 성은 무너지고 사람이 죽고 장렬하게 희생하셨지요.”

조국공은 여기까지 말했을 때 목소리가 갑자기 고조되었다.

“하지만, 진북왕의 희생은 가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의 우두머리와 홀로 맞서 싸워, 길리지고를 죽이고 촉구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북방을 군림하는 두 강자가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다쳤지요. 이 전투 이후 북경은 십여 년간 내지는 수십 년간 평화로울 겁니다. 가치 있게 죽은 진북왕은 대봉의 영웅입니다.”

조국공이 마지막 한마디를 언급할 때, 감개무량함에 격앙된 목소리가 대전 내에 울려 퍼졌다.

조국공은 제공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하나, 자신의 견해를 고수하여 이미 몰락한 회왕을 단죄한다. 하지만 이 방법을 쓰면 황실의 체면이 크게 깎이고,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에도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둘, 진상을 왜곡하는 수를 써서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이 초주성을 파괴한 일로 둔갑하게끔 한다. 진북왕은 성을 지키다 장렬하게 희생한 것이다.

이때 제공들이 해야 할 일은 그저 죽은 친왕을 위해 명분을 바로잡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하면 조정의 체면을 만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위엄과 강대함까지 확립할 수 있었다.

이때 처참한 웃음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정흥회가 말없이 침음하는 제공들을 둘러본 다음 원경제와 조국공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이 지식인은 비통하여 분노에 찼다.

“폐하, 조국공, 이 모든 일을 목격한 사람이 본관뿐만이 아님을 잊으셨습니까? 사절단 사람들 그리고 초주의 이만 장병이 있습니다. 또한 경성에도 이 일을 아는 백성과 국자감의 젊은 학자가 수천 수만입니다.”

정흥회는 갑자기 냉소를 지었다.

“두 분께서는 이 많은 이들의 입을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원경제는 조롱 섞인 눈동자로 높은 곳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퇴청하라. 내일 다시 논의한다!”

* * *

회경은 회경부 뒷 화원의 정자 안 돌탁자 옆에서, 마침 허칠안과 대국했다.

“그저께 임안이 아바마마께 진상을 물으러 찾아갔다가 어서방 밖에서 저지당했다고 들었네. 그녀는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떼를 쓰며 가지 않다가 벌금으로 두 달 치 예전(例錢)을 물었다더군. 나는 본래 그녀가 다시 갈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둘째 날 태자가 자객을 맞닥뜨렸다더군.”

회경은 뽀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흰색 바둑돌을 꼰 채 시크한 표정으로 한담을 나누었다.

“태자께서는 죽지 않으셨겠죠.”

허칠안은 바둑판을 주시하면서 한참 동안 바둑돌을 놓지 않고 아무렇게나 한마디 물었다.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이야.”

회경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와 함께 잠시 대국하면서, 허 은라와 바둑을 두는 일이 정말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았다.

“오늘 조당의 일을 들은 바가 있는가?”

허칠안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공들이 곤경에 빠졌지만, 폐하께서도 득을 보지는 못하셨습니다. 아마 오랜 공방전이 될 듯합니다.”

회경은 청아하고 속되지 않은 얼굴을 들고, 가을이 지난 뒤의 맑은 연못처럼 까맣고 빛나는 눈동자로 그를 주시했다. 그녀는 뜻밖에 비웃더니 말했다.

“자네는 확실히 조당에 어울리지 않는군.”

“?”

‘내가 뭘 잘못 얘기했나? 이렇게 나를 공격하다니…….’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판도 재미없구나. 본 공주는 흥미가 떨어졌네. 차라리 오늘 조당의 일에 대해 자네와 복기해 보지.”

회경공주는 바둑돌을 대오리 바둑알 통에 살짝 던져 넣었다.

허칠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조당에서 초주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했어. 제공들은 아바마마께 명확하게 회왕을 단죄하고 요구하였지. 그를 서민으로 좌천시키고, 사흘간 머리를 성에 내걸라고 말이야……. 아바마마는 참을 수 없는 비통함에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탁자를 내던지고 군신들을 통렬하게 비난했네.”

회경은 웃었다.

“좋은 고육지책이야. 우선 수일간 궁을 닫고 칼끝을 피함으로써 분노에 찬 문무백관을 헛수고하게 했네. 그들의 마음이 진정되고 안정되자, 막을 수 없는 예기(銳氣)가 사라졌네. 조회가 시작되고 다시 한번 그렇게 하면, 제공들의 마지막 여력을 와해시킬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객이 전도되어 제공들은 두려움이 생기면서 조심스럽게 되겠지…….”

‘이건 마치 두 사람이 싸우는 것과 같군. 그중 한 사람이 갑자기 미쳐 날뛰며 벽돌을 집어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면 다른 사람은 틀림없이 그가 미친놈이라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조심할 것이다. 방식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아주 유용하군…….’

허칠안은 원경제가 능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이어 예부 급사중 요림이 왕 재상을 탄핵하러 뛰쳐나왔고, 왕 재상은 사직을 청했네. 이는 아바마마의 일석이조 계책이야. 먼저 왕 재상을 쓰러뜨리면, 이번 조회에서 그는 대적이 하나 줄어드는 거지. 게다가 본보기를 보여 백관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도 있어.”

회경은 차를 받치고 한 모금 마시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다행히 위 공이 제때 손을 써 왕 재상을 처단하려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해. 하지만 이건 아바마마의 취지와는 어긋나지. 그는 결코 진짜로 왕 재상을 파면시키고 싶은 게 아니야. 이렇게 되면 위 공이 독식하게 될 테니까. 허, 위 공에게 있어서는 이렇게 기회를 빌려 왕 재상을 제거하는 게 절묘한 일이고.”

……허칠안은 침을 삼켰고,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본보기로 삼는 계책이 실패하면 아바마마께서는 즉시 좌도어사 원웅에게 나서서 황실의 체면을 끌어올리라고 할 거야……. 자네, 예로부터 지금까지 황실의 존엄은 조정의 존엄에 버금가기에 제공들에게는 당연한 압박을 준다는 걸 알아야 하네.”

회경공주가 나지막이 말했다.

‘신하로서 황실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제공들에게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군…….’

허칠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사이의 싸움은 단지 무력 투쟁과 심리 게임에 지나지 않았다.

마치 그가 타임슬립하기 전에 자주 들었던 단어 ‘픽업 아티스트’처럼 말이다.

“이건 역왕의 후속 등장을 위해 밑밥을 까는 거야. 원웅은 필경 황실 사람이 아니고, 아바마마는 매도하는 사람의 역할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덕망이 높은 역왕이 제격이지. 비록 이 수는 위 공에게 간파당하긴 했지만.”

회경은 바둑돌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역왕이 이렇게 소란을 피운 효과는 그래도 어느 정도 있긴 하네. 또한, 이 모든 건 조국공의 후속 출전을 위해 깐 포석이고. 그는 조정과 황실의 체면을 이용해 감정에 호소하며 마음을 움직였어. 오랑캐와 요족을 죽였다는 결말로써 이치를 설명했고. 비록 초주성은 사라졌지만, 이 모든 건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이 한 짓인 거야.

백성은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의 잔인함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에 이 결말을 아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하지만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은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어. 진북왕이 오랑캐 청안부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북방 요족의 우두머리 촉구에게 중상을 입혔으니깐. 묻겠네. 백성들이 이 소식을 듣고 받아들이길 원한다면 일이 어떻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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