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06화 (503/712)

506화. 개막 (3)

요림은 읍을 올리고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소리를 높였다.

“신은 재상 왕정문을 탄핵하려고 합니다. 그가 전 예부상서에게 요족과 결탁하여 상백을 폭발시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금란전 안이 약간 술렁였다.

제공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요 며칠, 왕정문이 군신들을 이끌고 궁문을 둘러싸 명성이 자자했다. ‘황제를 못살게 구는’ 선구자로 불릴 만했다.

그가 이 시기에 탄핵을 당한다는 건 마치…… 당연한 일인 듯했다.

하지만 사실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면, 전 예부상서는 확실히 왕당 사람이었다. 도대체 그가 왕 재상의 지시를 받았는지 아닌지는 참으로 말하기 어려웠다.

상백 사건은 사실 전 예부상서가 요족과 결탁하여 상백을 폭파한 데 그 내막이 있었다. 그리고 요족이 내건 승부수는 항혜와 평양군주의 시체였다.

그들은 이 불운한 연인을 통해 양당의 죄상을 까발렸다.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당쟁이었으며, 요족은 외국인 용병 신분을 맡았다.

왕 재상이 이를 정말 아무것도 모를까? 제공들이 이 문제에 있어 마음속에 물음표를 그릴지, 마침표를 찍을지는 그들 자신만이 알았다.

뒤이어 요림은 왕정문의 몇 가지 죄상을 또 공표하였다. 예컨대 부하가 횡령하거나 뇌물을 받도록 종용했다거나 부하가 준 뇌물을 받았다든가…….

그는 상백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뒤에 나열한 몇 가지 죄상은 확실히 못을 박았다.

청렴결백한 사람이 재상을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당신을 따라 일하길 원하겠는가?

‘폐하가 본보기를 삼을 작정이군…….’

제공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비록 유가에는 도룡술이 있었지만, 군신 간에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원경제는 소년이 아니라 조당에서 30년을 굽어본 황제였다.

왕 재상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원경제가 쌀쌀맞게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을 마주하자 더는 망설이지 않고 나지막이 말했다.

“신, 걸해(乞骸)하겠습니다.”

원경제가 눈 속에 분노를 내비치며 막 입을 떼려는데, 바로 이때 어사 장항영이 대열에서 나와 읍했다.

“폐하, 왕 재상이 횡령하고 뇌물을 받아 국가와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왔으니 절대 그를 붙잡으시면 안 됩니다.”

장 어사는 위연 사람이었다.

원경제는 한참을 묵묵히 있다가, 노승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위연을 곁눈질하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왕 재상, 말이 지나치구려. 재상 대인은 제국을 위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임하여 세운 공이 크네. 짐은 자네를 신임하네.”

원경제가 혼자 다져온 균형이 오늘날 그의 가장 큰 속박이 되었다.

다른 누군가가 해직하겠다고 하는 건 상관없었지만 왕 재상은 달랐다. 그는 현재 조당에서 유일하게 위연을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없으면 설령 원경제가 다른 당파가 자리 잡도록 지지한다고 해도 위연의 한 손을 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고작 일각 사이에 원경제, 위연, 왕 재상 조당의 거물 셋은 이미 한 차례 접전을 마쳤다.

원경제라는 쫌생이는 군신들의 기세를 꺾고, 제공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왕 재상과 위연 역시 손해 보지 않았다. 그들이 화제를 다시 회왕의 백성 대량 학살 사건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폐하께서는 진북왕을 엄벌에 처하시고 그의 죄명을 인정하시어 세상 사람에게 해명해주십시오.”

드디어 위연이 대열에서 나왔다.

제공들은 즉시 맞장구쳤지만, 이번에는 원경제가 훑어보았는데 일부 사람들이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달리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입꼬리를 올렸다. 조당은 필경 이익 위주라 자신의 이익이 모든 것보다 높았다. 그는 방금 본보기를 삼아 그 정도 놀라게 할 수 있는 것만으로 이미 수지가 맞았다.

“폐하, 소신이 생각하기에 초주 사건은 천천히 신중하게 의논해야 합니다. 절대 맹목적으로 회왕의 죄명을 인정하시면 안 됩니다.”

첫 번째 반대의 목소리가 나타났다.

말한 사람은 우도어사 원웅이었다.

원경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의 뜻을 잘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

“원 경은 왜 그렇게 말하는가?”

원웅이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회왕은 폐하의 친동생이자 대봉 친왕입니다. 이 일은 황실의 체면 그리고 폐하의 체면과 관계되는 일입니다! 하오니 어찌 쉽사리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뻔뻔하다!

화가 난 문관들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이 자식은 지난번 과거 부정행위 사건을 이용해 넌지시 위연을 가리켜 동각대학사 등의 미움을 샀다. 과거 후 동각대학사는 위연과 연합하여 원웅을 탄핵하였다.

결국에 폐하는 이 자식을 지키고 석 달 치 감봉 처분하는 걸로 일을 마무리했었다.

지금 그는 역시나 폐하의 칼이 되어 그를 대신해 문관 집단 전체에 반격하였다.

“폐하, 원 우도어사의 말이 일리 있습니다…….”

이때, 점점 늙어가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은 채 부들부들 떨며 대열에서 나왔다.

노인은 검은빛이 보이지 않는 은백색 머리카락에, 붉은색 바탕에 금빛 다섯 발톱 금룡이 수 놓인 관복 차림이었다.

역왕!

선황의 친동생으로 원경제와 회왕의 숙부였다.

“황숙, 어찌 오셨습니까. 짐이 조회에 참석하실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원경제는 깜짝 놀란 듯 분부하였다.

“속히 황숙께 자리를 안내하거라.”

“제가 오지 않으면 대봉 황실 육백 년의 명성이 불초 자식 손에 망가질까 두려워서이지요.”

노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원경제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자를 옮겨오자 노인은 의자 쪽으로 방향을 틀어 군신을 바라보며 앉아서는, 또 콧방귀를 뀌었다.

“대봉은 세상 사람의 대봉이고, 나아가 우리 황실의 대봉이다. 고조 황제께서는 어렵게 나라를 창업하셨다. 전조의 부패를 싹 쓸어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립하셨지. 무종 황제께서 간신을 몰아내느라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리셨는가. 회왕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백번 죽어 마땅하지만, 본왕이 하루라도 살아있는 한 너희들이 우리 황실의 명성을 더럽히는 건 허락하지 않는다.”

정흥회는 얼굴까지 피가 솟구쳐 올라 나지막이 말했다.

“왕야, 대봉이 건국한 지 육백 년 이래, 자신의 과실로 돌리는 군왕은 적잖이 있었습니다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역왕이 세차게 말을 끊더니 크게 꾸짖었다.

“군은 군이고, 신은 신이거늘 너희는 경전을 많이 읽어 모두가 국자감 출신이면서 아성전의 가르침을 잊었느냐?”

제공들은 갑자기 두피가 저렸다.

만약 원경제가 이런 말을 했다면, 제공들은 미친 듯이 기뻐하며 죽음으로써 간언했을 터였다. 황제를 밟고 이름을 날리는 건 세상 지식인들의 마음속에 가장 통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역왕이었다. 역왕은 젊을 때 재주가 넘쳐흘러 경성에서 이름난 수재였으므로, 제공들은 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후학인 셈이었다.

그가 친왕과 유림 선배의 신분과 나이를 내세워 뻣뻣하게 구니 아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급진파의 기세가 다시 한 번 꺾였다.

“자, 역왕께서는 심사숙고하시지요.”

위연의 탄식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왕은 허리를 곧게 펴고, 여기저기 움푹 팬 늙은 얼굴을 굳히고선 눈을 흘겨 위연을 쳐다보았다.

“흥, 환관 주제에 본래는 궁 안에서 노비 노릇 할 놈이. 만약 폐하께서 혜안으로 진주를 식별하여 네게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면 네 놈이 오늘의 영광을 누렸겠느냐?”

위연은 고개를 숙이고 약한 자세를 내보였다.

“역왕께서 만일 황실 명성을 위해 생각하신다면, 회왕을 대신해 이 일을 덮으려 하시면 더욱이 안 됩니다. 어제 운록서원의 대유 셋이 폐하를 비난하러 경성에 오려는 걸 제가 막아서 돌려보냈습니다. 대유 셋이 말하길 조정에서 사서를 고칠 수 있지만, 운록서원의 사서는 조정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오늘날 진북왕이 초주성의 38만 인구를 도살하였으니, 장차 운록서원의 지식인은 이 일을 단단히 기억하여 후세에 전할 것입니다.그리고 폐하께서 친동생을 감싸신다면 그와 같은 죄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사서에 새길 것입니다.”

원경제는 안색이 변했다.

급진파 제공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이는 정말 운록서원 지식인들이 해낼 일이었다. 유가 체계를 걷는 지식인들은 일을 처리할 때 늘 오만하면서도 시건방지고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그들은 화가 제대로 풀렸다!

역왕이 태연하게 말했다.

“후대 자손들은 정사(正史)만 알 텐데 일개 서원의 야사(野史)에서 뭐라고 하는지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그는 이 말을 원경제더러 들으라는 듯이 꺼냈다. 그는 조카가 도를 닦고 싶어하면서도 명성을 좋아한다는 점을 알았기에, 위연에게 위협당하지 말라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

위연이 여유롭게 말했다.

“역왕께서는 한평생 악행을 전혀 하지 않으시고, 학식도 겸비하신 황실 종친의 모범이자 지식인의 모범이십니다. 이 일로 늘그막에 지조를 잃었다고 운록서원에 기록되지 마십시오.”

역왕은 안색이 홱 변했다. 그는 손가락을 들고 부들부들 위연을 가리키며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위연, 네가 감히 본왕을 위협하다니. 반역하고 싶은 게냐!”

왕 재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간언이 언제 위협이 되었습니까?”

“너, 너희들…….”

역왕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역왕은 어릴 적부터 책을 읽었다. 그는 친왕 신분이지만 줄곧 지식인이라고 자처했으며, 평범한 훈귀 무장보다 ‘명추청사(*名垂靑史: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다)’라는 네 글자를 더 신경 썼다.

이는 지식인의 고질병이었다.

위연의 이 말은 확실히 역왕에게 깊은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방금 언급한 정사, 야사는 그저 원경제를 위로하기 위해 채택한 단어였을 뿐이었다. 지식인이야말로 운록서원의 권위를 더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조당 투쟁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응하곤 했다.

원경제는 역왕이 더는 말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이 수가 이미 ‘적’에게 읽혔다는 걸 알았지만, 이 수는 들켜도 무방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다음에 내보이는 수야말로 승부의 관건이었다.

그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훈귀 대오 속의 조국공을 쳐다보았다.

조국공은 마음속으로 깨닫고 성큼성큼 대열에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폐하, 신이 한 마디 올리겠습니다.”

문관들은 즉시 고개를 돌리더니 관찰하려는 마음과 적의가 함께 어린 눈빛으로 조국공을 쳐다보았다.

‘38만 원혼’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 중에서도, 급진파 문관 단체의 구성은 복잡했다. 누군가는 마음속 정의를 위해서 또 누군가는 경전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나섰다. 반면 누군가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또 누군가는 대세에 따라서 나섰을 뿐이기도 했다.

급진파는 위연과 왕정문을 필두로 했다.

반대파 구성원의 구성도 마찬가지로 복잡했다. 우선 그들은 황실 종친이었다. 이 안에는 분명히 선량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때로는 신분이 입장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일단 회왕의 죄가 결정되면, 황실 전체 명성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타격이 생길 터였다. 시정 사람들의 말로 표현하자면 앞으로 낯을 들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셈이었다.

평범한 사람도 체면을 중시하는데 하물며 황족은 어떠하겠는가?

진북왕은 죽을 수는 있을지라도 단죄를 당해서는 안 됐다.

다음으로 훈귀 집단이었다. 훈귀는 나면서부터 황실과 친근한 이들이었다. 누구든 작위의 성질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훈귀와 황실이 같은 진영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을 두 글자로 개괄하자면 ‘귀족’이었다!

문관은 마치 부추처럼 숨돌릴 새 없이 바뀌었으므로, 언제나 새로운 힘이 조당에 몰려들고는 했다. 이들은 형세가 그럴 듯할 때는 조정을 장악했지만, 기세가 기울 때는 사자(嗣子)나 평민이나 다름없었다.

유일하게 변함없이 세습하는 훈귀만이 타고난 귀족으로서 평민들과 다른 계층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변함없는 세습과 끊임없는 사자의 권력은 황실이 하사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훈귀 사이에 회왕과 원경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아마도 침묵을 지킬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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