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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05화 (502/712)

505화. 개막 (2)

저 멀리 정 포정사가 국자감 밖에 서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성인이 말씀하시길 백성을 중시하고 군자를 가벼이 여기라 했거늘…….”

“진북왕은 친왕의 몸으로 백성을 가축 새끼처럼 여기고 도살하였으니, 이는 실로 우리 지식인의 공공의 적이다…….”

“우리 지식인은 백성의 복을 모색하고, 덕을 쌓고 공을 세우고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말을 해야 하거늘. 예전의 내가 경성으로 돌아와 초주성 38만 백성에게 정의를 구현할 거라 맹세한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일이 쓸모가 있었는가?

당연히 쓸모 있었다. 새롭게 일어난 대유들은 아직 세상에 명성을 떨치기 전에 국자감 같은 곳에서 설교하는 걸 즐겼다.

그들은 자신의 학술 이념을 전파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학자들의 인정을 받아 명성을 떨칠 수 있다면, 종파를 세우는 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흥회는 이념을 전파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진북왕을 비판하며, 학자들에게 비판 대군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효과는 아주 뛰어났다. 지식인, 더욱이 열정이 식지 않은 젊은 학자는 웅대한 포부가 있기에 관리 사회의 약삭빠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순수했다.

예나 지금이나 소란을 피우고 시위하는 이들은 대다수가 젊은 사람이었다.

“제지하러 오는 자가 없나요?”

허칠안이 물었다.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이거 불합리한데…….’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길가에서 기다렸다. 정흥회가 가슴속의 울분을 다 토하고, 신도백리 등의 호위병을 데리고 돌아오자 허칠안은 그제야 그를 맞이하러 갔다.

“이곳은 말할 곳이 못 되니 허 은라께서는 저를 따라 역참으로 돌아가시죠.”

정흥회가 융통성 없이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 *

정흥회는 역참으로 돌아온 뒤 허칠안을 데리고 서재로 들어갔다. 인생의 기복이 큰 이 지식인은 이한이 차를 내온 후에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오늘 관리 사회에서 떠돈 유언비어 때문입니까?”

“그건 그저 하나일 뿐입니다. 소문은 그가 퍼뜨린 겁니다. 일리가 없는 게 아니라서 막지 않으면 안 됩니다.”

허칠안은 탄식했다.

“저는 태자 습격 사건 때문에 왔습니다.”

정흥회가 침음하더니 말했다.

“이 사건에서 누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지요?”

허칠안은 어리둥절했다.

“위 공과 왕 재상입니다.”

정흥회는 옷깃을 바로하고 단정하게 앉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건은 아마 위 공과 왕 재상이 도모한 일일 겁니다. 목적이 무엇인지는 저도 모르겠지만요.”

‘잉? 위 공과 왕 재상이 태자를 암살하려 했다고? 이유가 뭐지. 태자가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지……?’

허칠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흥회는 오랫동안 상의한 끝에 방 안의 물시계를 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저는 경성의 오랜 벗을 만나러 여러 곳을 오가야 하니 허 은라를 더 이상 붙잡아 두지 않겠습니다.”

허칠안이 내친김에 일어서서 문턱까지 걸어갔을 때 뒤에서 정흥회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 은라…….”

그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등이 점점 구부러지는 이 지식인은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머리를 정리하더니 읍을 올렸다.

“사내대장부가 한 약속은 천금처럼 무겁지요. 저는 허 은라의 그 반 수짜리 시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날 저는 성벽 위에서 억울하게 죽은 삼십만 백성에게 정의를 되찾아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기왕 약속했으니 원망도 후회도 없습니다. 이 일이 끝나면 저는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할 겁니다. 아마 현세에서는 다시 만날 날이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러하니 본관이 미리 그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허칠안은 돌아서서 진지한 얼굴로 조금도 소홀함 없이 답례하였다.

그가 방문을 열고 문턱을 밟아 몇 걸음 걸어갔는데 뒤쪽의 방 안에서 정흥회가 시를 낭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의 의협심이 오도웅(五都雄)과 만났네. 간담이 서늘해지고 털이 곧추서네.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생사를 같이하네. 천금과도 같은 약속 꼭 지키세…….”

‘세상사가 어지럽고 번잡한데 만약 공을 세우면 물러나, 여유롭고 한가한 전원생활만을 남겨놓는 것도 좋네…….’

허칠안은 웃었다.

* * *

원경제는 황궁에서 부들방석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반쯤 감은 채 태연하게 말했다.

“자객은 잡았나?”

늙은 태감이 고개를 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전해온 소식은 없습니다.”

“기왕 잡지 못할 거면 잡을 필요도 없지.”

원경제는 눈을 떴다. 그는 웃음 속에 냉혹함을 띤 채 개탄하는 어조로 말했다.

“이 조정에서 위연과 왕정문만이 좀 재미있고, 나머지는 좀 부족해.”

늙은 태감은 고개를 숙인 채 원경제의 말을 평가하지 않았다. 그가 감히 평가할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원경제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람을 궁 밖으로 내보내 명단에 있는 자들에게 말을 전하거라. 이목을 끌 필요도 없지만, 조심할 필요도 없다고 말이야.”

그는 멈칫했다가 말을 이어갔다.

“내각에 통지하라. 짐이 내일 어서방에서 제공을 소집해 공무를 논의하겠다. 초주 사건에 대해 협의하고 검토한다.”

늙은 태감은 호흡이 가빠지더니 말했다.

“네!”

* * *

진북왕의 시체를 경성으로 운송한 지 닷새째 되는 날, 인시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빛 아래, 오문 밖 석등 안 초에서 귤색 불빛이 흔들거리며 두 대열의 금군이 손에 쥔 횃불을 비췄다.

군신들은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오문에 모여 묵묵히 조회를 기다렸다. 어쩌다 서로 잘 아는 관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를 나누며 소곤소곤 속삭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숙을 유지했다.

관원들은 마치 숨을 참는 듯 부풀어 올랐으면서도 또 기운을 거두고, 터뜨릴 기회를 기다렸다.

둥둥둥…….

하늘빛이 밝아질 때쯤, 오문의 성루 위에서 북소리가 울렸다.

문무백관은 암묵적으로 합의한 듯 대오를 맞춰 천천히 열리는 궁문 안으로 차례차례 들어갔다.

* * *

금란전!

4품급 이상의 관원이 대전에 들어서서 조용히 일각을 기다리니, 도포를 입은 원경제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여러 날 보지 못했는데 황제는 희끗희끗한 머리가 흑발로 변했고, 다소 초췌해진 상태였다. 그는 눈두덩이가 부었고 두 눈에는 핏발이 가득 섰다. 그는 친동생을 가슴 아프게 잃은 형이 갖춰야 할 이미지를 충분히 드러냈다.

문관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폐하가 용체 양생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걸 알았다. 원경제는 도를 닦은 이래로 항상 신체가 건강하고 혈색이 좋았다.

그가 언제 이렇게 초췌한 모습이었던 적이 있는가?

적잖은 사람들이 가슴이 철렁하여 소리 없이 눈을 마주쳤다.

늙은 태감은 원경제를 보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있으면 상주하시고, 일이 없으면 퇴청하십시오.”

초주 포정사 정흥회가 성큼성큼 대열에서 나와 제공들 앞에 이르러 읍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폐하께 아뢰옵니다. 초주 총병 회왕이 무신교, 지종 도수와 결탁하여 2품으로 승직하고자 하는 자신의 사욕을 위해 초주성의 38만 백성을 도살하였사옵니다. 대봉이 개국한 이래, 이렇게 천인공노할 만행은 유례가 없었습니다. 폐하께서는 회왕을 서민으로 좌천하시고, 그의 머리를 사흘간 성에 매달아 38만 원혼을 추모하고…… 만천하에 명백히 알려주십시오.”

원경제는 무표정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뜻밖에도 초주 포정사 정흥회는 분노를 품은 황제를 침묵 사이로 마주하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거리낌 없이 시선을 맞추었다.

이때 왕 재상이 대열에서 나와 정중하게 말했다.

“회왕의 이번 거사는 천인공노할 일로 경성에서 이미 의견이 들끓고 있습니다. 초주 민심이 사납습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에게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면 민중 봉기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폐하께서는 회왕을 서민으로 좌천하시고, 그의 머리를 사흘간 성에 매달아 초주성 38만 원혼을 추모하시길 바랍니다.”

원경제는 천천히 일어서서 싸늘한 얼굴로 조당 제공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얼굴 근육이 서서히 실룩거리고, 이마에 핏줄이 하나씩 서더니 갑자기…… 앞에 있는 탁자를 뒤집어엎었다.

콰당…….

탁자는 계단으로 굴러떨어져 제공들 앞을 묵직하게 내리쳤다.

뒤이어 금란전 내에 늙은 황제의 고통스러운 포효가 울려 퍼졌다.

“회왕은 짐의 친동생이다. 너희가 그를 서민으로 좌천하려는 저의가 무엇인가? 짐에게 죄를 돌리려는 것 아니냐? 너희들 눈에는 짐이 있기는 한 게냐? 짐은 형제를 잃은 아픔에 마치 팔 하나가 잘린 듯한데 너희는 동정할 줄은 모르고 연이어 며칠씩이나 궁문에서 규합하다니. 짐을 몰아세워 죽일 작정인 게냐?!!”

험상궂은 표정에 붉게 상기된 두 눈의 늙은 황제는, 마치 슬피 통곡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늙은 짐승 같았다.

‘그건…….’

제공들은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원경제가 재위한 지 37년, 문무백관의 마음속에 그는 꾀가 깊고, 권모술수에 능한 이미지로 깊이 뿌리 박혔다.

그들은 언젠가 속이 깊은 이 제왕이 이렇게 슬피 통곡할 때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군신들 앞에 내보인 이런 모습이 고유의 인상과 상반되니 그들은 공연히 마음이 찡해졌다.

군신들의 드높은 기세가 한풀 꺾였다.

원경제는 제공들이 큰 충격에서 벗어나기 전에 슬픈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맥없이 주저앉았다.

“짐이 태자였을 때 선황께서 짐을 꺼리고 방비하였다. 짐의 지위가 불안정하여 종일 전전긍긍하였지. 회왕은 줄곧 짐을 묵묵히 지지해주었다. 우리 둘이 같은 어머니 배 속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형제간의 정이 깊었다. 회왕이 진국검을 손에 쥔 그해, 제국을 위해 적을 살육하여 영토를 보위했다. 만약 그가 산해관전역에서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대봉에 오늘날의 번창을 어찌 가져왔겠는가?

너희들 모두 그의 은혜를 입었다. 산해관전역 후, 회왕은 명을 받들어 짐을 위해 변방을 수호하러 북상하였다. 십여 년간, 그가 경성에 돌아온 횟수는 손에 꼽는다. 확실히 회왕이 큰 잘못을 저질렀으나 어쨌거나 이미 처형당했는데 경들은 사후의 명성조차 높여주지 않는단 말인가?”

원경제가 ‘난폭하게’ 말을 끊는 바람에 군신들은 순간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한참 동안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상관없었다. 당상 위에는 언제나 기꺼이 선봉에 서 적진 깊숙이 들어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정 포정사는 큰 소리로 말했다.

“폐하, 공(功)과 과(過)는 상쇄되지 않습니다. 요 몇 년간 회왕이 공을 세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이미 논공행상하였고, 백성들은 그를 더없이 받들어 추대하였습니다. 지금 그는 용서할 수 없는 큰죄를 저질렀기에 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폐하께서는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규율을 어기시는 겁니다.”

원경제는 그를 크게 꾸짖었다.

“개 같은 놈, 요 며칠간 네 놈이 경성에서 여기저기 날뛰며 황실과 친왕을 헐뜯었겠다? 짐은 네놈이 여러 해 동안 근면 성실하게 임한 걸 염두에 두고 공로가 없어도 있다고 하며 지금까지 줄곧 참아왔다. 회왕 사건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거늘. 하루빨리 결정되지 않으면, 그는 무죄일 테니 친왕을 폄하한 네 놈은 죽을죄겠구나!”

“폐하!”

왕정문이 갑자기 소리치며 원경제의 박자를 끊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포정사의 일은 후일에 다시 말씀하시지요. 우선은 회왕의 일을 의논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원경제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왕정문을 스쳐 지나가 어느 곳에서 잠시 멈췄다.

바로 누군가 마치 원경제에게 응답하듯 대열에서 나와 소리를 높였다.

“폐하, 신도 아뢸 일이 있사옵니다.”

모든 관원이 소리를 따라 쳐다보니 그는 예부 도급사중 요림(姚臨)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급사중은 프로 키보드 워리어로 잡은 놈은 닥치는 대로 무는 조당의 미친개였다.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조당 투쟁의 파티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번에도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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