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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03화 (500/712)

503화. 용솟음치는 암류 (2)

허칠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역고부의 수행 법문은 확실히 기력을 증가시킬 수는 있었으나 지능 지수를 향상하는 효과까지는 없었다. 그런 효과가 있었다면 리나 역시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터였다.

그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머리카락 끝이 곱슬곱슬하고 눈동자가 쪽빛 바다와 같고 밀색 피부에 이목구비가 정교한 리나를 쳐다보았다.

“달라진 것 같아 보이는데요.”

리나가 그를 살폈다.

“어디가 달라졌소?”

허칠안이 반문했다.

리나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그냥 그가 걸을 때, 사지가 협조하는 정도와 근육이 힘을 내는 방식이 전부 향상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오라버니, 돌아오셨군요.”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당연히 허영월이었다. 청아하고 속되지 않은 갸름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녀는 직접 허칠안에게 밥을 떠 주고 수저를 놓아주었다.

허신년은 잠시 기다렸다가 친여동생이 자신을 전혀 개의치 않는 걸 보더니 스스로 손을 움직여 밥을 펐다.

“돌아왔으면 됐다.”

숙부는 조카를 계속 주시했다. 그는 조카가 무탈한 걸 보자 오히려 기력이 점점 더 왕성해졌고, 거칠고 난폭한 얼굴에 문득 웃음을 띠었다.

“그래!”

도도한 숙모가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영음, 어서 내려오너라. 네 큰 오라버니가 밥 먹는데 방해하지 말고.”

숙모는 오늘 점잖은 색에 해당화가 풍성하게 수놓인 대금(*對襟: 두 섶이 겹치지 않고 가운데에서 단추로 채우게 되어 있는 중국식 의복)을 입었다. 또 노란색 유군으로 그녀의 아리따움에 고상함과 지성을 좀 더해 주었다.

* * *

허칠안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초대를 받아 허신년의 서재로 들어갔다.

어느덧 두 사람은 중요한 일을 상의할 때 숙부를 피하기 시작했다. 애당초 이제는 호부시랑 주현평을 상대할 때처럼 세 남자가 함께 상의하지 않았다.

형제 둘은 이 상황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숙부는 본래 아귀다툼에 능하지 않았기에 그가 아는 게 많을수록 오히려 고민이 늘었다.

그는 윗사람으로서 조카와 아들이 문제를 해결하게끔 앉아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했다.

아이를 보호하는 건 모든 어른에게 있는 본능이었다. 그런데 하필 숙부는 이런 데에 서툴러서 고민만 키울 뿐이었다.

* * *

숙부는 동쪽 행랑채에서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신 뒤 탄식했다.

“뻔뻔한 두 놈이 벌써 아버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군.”

흰색의 얇은 옷을 입은 숙모가 침상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자신의 옥 팔찌를 가지고 놀면서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그녀가 고르고 가느다란 두 다리를 한데 포개니 아주 아름다웠다.

“에휴, 초주에 큰일이 났구려. 오늘 관리들이 황성에서 소동을 부린 일이 퍼지면서 의견이 분분하오.”

숙부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요?”

숙모는 궁금해하며 물었다.

“부녀자가 많은 걸 신경 써서 뭐 하려고.”

숙부가 괜히 그녀를 노려보았다.

형제 둘이 숙부에게 많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숙부도 마찬가지로 아내가 쓸데없는 우려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녀처럼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어도 스스로 젊고 재기발랄하다고 여기는 여인은 위험 없이 즐거워하면 그만이었다.

* * *

“형님, 아직 제게 초주성의 자세한 경위를 얘기해주지 않았어요.”

허신년은 서재 안에서 진한 차 한잔을 받쳐 든 채 찻상 옆에 앉아 있었다.

허칠안은 창가에 서서 칠흑같이 어둡고 적막한 마당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초주 사건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단다…….”

그는 자신의 북행 경험을 차분하게 서술했다. 그는 정 포정사와 공정하여 초주성의 백성을 대량 학살하는 장면을 본 것까지 포함하여 허신년에게 조금씩 알려주었다.

그의 어조는 조금의 기복도 없이 차분했다.

진정으로 슬프면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알고 보니, 알고 보니 그자 역시 개입했군요…….”

허신년이 멍하니 말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얼마 되지 않는 충군(忠君)의 감정이 우르르 무너져서 조금도 남지 않았다.

“사절단이 이번에 경성에 돌아온 목적은 진북왕의 만행을 만천하에 알리려는 것이다. 허, 정 대인은 진북왕 같은 짐승이 친왕의 신분으로 고이 모셔져 대봉의 호국 신장 명성을 후세에 널리 전하는 걸 용납하지 않아.”

허칠안이 냉소를 지었다.

지식인은 사후의 명성을 가장 중시했다. 만약 진북왕을 단죄하지 못한다면, 정흥회가 보기에 이건 성공적이지 못한 복수가 될 테니 이는 초주성 백성에게 정의를 되찾아주지 못하는 셈이었다.

“신년, 너는 이 ‘전투’를 어떻게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허칠안이 시험하듯이 물었다.

“이미 하고 계시잖아요.”

허신년이 말했다.

“대세를 빌려 원경제를 압박하고 있잖아요. 설령 황제라고 해도 민심이 치솟는 대세를 막을 수는 없지요. 그가 왕 재상을 만나겠다고 응하지 않았습니까?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보자고요.”

“애석하게도 조당의 일은 내가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 희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느낌은 좋지 않아.”

허칠안은 탄식했다.

“형님, 이미 충분히 많이 했어요…….”

허신년은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려던 참에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한참을 멈춰 있더니 표정이 점점 무거워졌다.

“형님, 상황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허칠안은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허신년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형님이 한 말대로 만약 이 사건이 원경제와 회왕의 음모였다면, 그를 기습 공격하려고 했던 사절단의 계획은 처음부터 실패했을 겁니다. 잊지 마세요. 궐영수는 잠적했고, 진북왕의 밀정 역시 도망쳤습니다. 이 자들이 진북왕이 몰락한 소식을 경성에 퍼뜨리지 않을까요? 어쩌면 당신들이 으스대며 만족해할 때 그는 이미 사전에 소식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원경제는 어떻게 대처할지 진작 다 생각해놨을 겁니다. 의심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폐하는 여러 해 동안 권모술수를 갖고 놀았습니다. 그가 진지해지기 시작하면, 위 공과 왕 재상 전부 그의 적수가 되지 않을 겁니다.”

“네가 나를 일깨웠구나. 확실히 그러네.”

허칠안은 몸을 돌려서 칠흑같이 어두운 마당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허칠안은 조당이 그의 홈그라운드가 아닌 걸 알았다. 우선, 정치 싸움은 사건 해결이 아니었다. 또한 총명한 머리에 의지하여 종횡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과거 시험에서 승리를 다투고 나왔는데 어느 누가 똑똑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매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일어서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했다.

허칠안은 자신이 조당에서 원경제와 대전을 벌일 수 있다고 여길 만큼 우쭐거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필경 그의 관직은 낮았기에 조회에 참석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는 그가 ‘전선’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이번에 주력 위치는 위 공, 정 포정사 그리고 명성과 이익을 위하거나 혹은 마음속에 정의가 남아 있는 제공들에게 순순히 양보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판 밖에서 힘을 쓸 수 있지.”

* * *

관성루, 팔괘대.

눈처럼 흰 백의에 흰 머리, 흰 수염을 한 감정은 팔괘대 가장자리에 서서 두 손을 뒷짐 지고 경성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밤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휘날리고, 그의 흰 수염을 어루만졌다. 비범한 풍채는 마치 인간세계로 유배된 신선 같았다.

“듣자 하니 진북왕이 북경에서 죽었다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두우면서도 무미건조한 어조는 마치 오랜 벗끼리 나누는 담소처럼 심오한 인상을 주었다.

감정 뒤에 백의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대봉 허세왕, 양천환이었다.

사제 둘은 서로 등을 맞대고 모두 뒷짐을 지고 서 있었으며 전부 눈처럼 흰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복장은 누가 뭐라 말할 필요도 없이, 그야말로 위아래를 가리기 어려웠다.

곧 감정이 ‘음’하고 소리 내더니 웃으며 말했다.

“어떤 이들은 자다가 웃으며 깨겠구먼.”

‘스승님께서 가리키는 사람이 위연인가요, 아니면 누구……?’

양천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만 그의 말투는 여전히 속세를 벗어난 달인처럼 담박했다. 그는 감정을 따라서 ‘음’하고 소리 냈다.

감정은 진작에 제자의 성격에 익숙해졌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양천환이 그의 앞에서 ‘바다가 하늘 끝까지 닿아 해안을 이루고 술도는 절정에 이르니 내가 최고봉이네’를 읊지 않기만 하면, 감정은 그와 승강이하기 귀찮았다.

양천환이 계속해서 말했다.

“진북왕을 죽인 건 신비로운 고수입니다. 초주성 폐허 위에서 홀로 5대 고수와 싸워 많은 사람이 주시하는 가운데 진북왕을 베어 죽였습니다. 백성들을 위해 원수를 갚았지요. 그런 뒤 천 리를 추격해 길리지고를 베어 죽였습니다. 정말이지 뜨거운 피가 끓어올랐습니다. 제가 그의 자리를 빼앗지 못하는 게 한스럽더군요.

허나 허칠안 역시 나서지 않은 걸 생각하니 제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헤헤, 이 자식이 줄곧 제 기회를 빼앗아 아주 얄미웠거든요. 초주에서 그 신비로운 고수가 쥐락펴락한 걸 보면 그 역시 마음속으로 부러워서 미칠 거라고요.”

양천환은 말을 마친 뒤, 4품 술사의 직감을 통해 감정 스승이 전에 없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봤다는 걸 눈치챘다.

‘스승님이 드디어 예전에 한 잘못된 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시기 시작했나……?’

양천환은 마음이 통쾌해졌다.

감정의 눈빛은 연민으로 가득 찼다.

* * *

이튿날, 군신들은 다시 궁문에 모여 파업하고 소란을 피웠다. 그들은 꼭 희롱당한 듯했다.

어제 아주 오랫동안 소란을 피웠다. 본래는 폐하께서 타협하기 위해 재상 대인을 불러들여 공무를 논의하는 줄 알았다. 누가 생각했겠는가. 왕 재상이 내놓은 대답은 이러했다.

“폐하께서는 본관을 만나지 않았네.”

우습다. 만나지 않고 피한다고 해서 이 일을 발생하지 않았던 일로 치부할 수 있는가?

사건이 발효됨에 따라 진북왕의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은 이미 관리 사회에 국한되는 일을 뛰어넘었다. 시정의 각계각층 사람들 모두 이 일을 듣고 몸서리쳤더랬다.

주막, 찻집, 기루 등 소식 집성 센터라 불릴 만한 이런 장소에서는 온종일 누군가 와서 방청하고, 누군가는 담론하였다.

“진북왕은 잔인무도해. 38만 명의 생명과 성 전체인데 그는 어떻게 모진 마음을 먹었을까?”

누군가 탁자를 치며 분개했다.

지금 시정에서 진북왕에게 모욕적으로 욕설을 퍼붓는 건 이미 정치적 올바름이 되었다. 관리 사회 전체가 모두 욕을 하고 있었기에 단죄당할까 봐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진북왕을 욕하지 않는 자는 잔인무도한 짐승이었다.

진북왕을 욕하면 경전을 많이 읽은 지식인이요, 정의의 동반자였다.

“자네들 아는가? 이번에 북경에 사건을 조사하러 간 허 은라 말일세. 역시 그답더군. 만약 그가 없었다면 진북왕의 죄는 지금까지도 까발리지 못했을 걸세.”

“이 세상에 허 은라가 밝혀내지 못하는 사건은 없네. 나는 허 은라가 있어야만 조정이 좋은 조정이라는 생각이 드네. 악당이 더는 규율을 어기고도 마음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없잖나.”

“하지만 내가 듣기로 이 조정의 일은 허 은라도 역부족이라더군.”

“그래도 무방하네. 문무백관이 자연스레 허 은라를 대신할 테니. 자네 들었나? 허 은라의 사촌 동생이자 그 춘시 회원이 어제 궁문에서 해 질 녘까지 꼬박 두 시진 동안이나 욕설을 퍼부었다더군. 오늘 또 갔대.”

“정말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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