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501화 (498/712)

501화. 욕!

“왜 내각에서는 사절단의 공문을 받지 못했는가?”

왕 재상이 대리사승을 쳐다봤다.

대리사승은 공수하더니 말했다.

“사절단은 이 일로 급하게 공문을 보내면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면 폐하께서 어떻게 하면 진북왕의 죄명을 벗겨줄 수 있는지 생각할 시간이 생기니까요.”

‘사절단이 이미 폐하를 뵈었는데도 내가 여전히 소식을 받지 못했다는 건 폐하께서 함구령을 하달하셨다는 의미다…….’

왕 재상이 비웃었다.

“이렇게 하면 폐하께서 속수무책이 되시겠나?”

그는 사절단의 뛰어나지 않은 대책을 비웃더니 탄식했다.

“기왕 이러하다면, 신비로운 고수의 신분은 당분간 신경 쓸 필요 없겠군. 이 일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지 고려해야 하네. 또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한 6품 관원이 나지막이 말했다.

“진북왕이 초주성 38만 백성을 대량 학살했습니다. 만약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저희는 장차 사서에 길이 남을 악명을 기록하게 될 겁니다.”

다른 관원이 덧붙였다.

“진북왕의 죄명을 결정하라고 폐하를 다그쳐야 합니다. 이래야 경전을 공부한 우리가 떳떳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명성을 얻을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관원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본관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마음속의 의지와 기개를 위함입니다.”

‘아마 정흥회가 분주하게 움직인 덕분에 이 관원들이 나를 찾아올 수 있었겠지…….’

왕 재상이 숨을 내뱉더니 말했다.

“속히 가서 소식을 알아보고 사실을 확인해보게. 당직 시간이 되자마자 제공들과 연합하여 궁에 들어가 폐하를 알현하자고.”

* * *

점심 시간이 막 지나자마자 군신들은 왕 재상의 인솔하에 모두 모여 어서방 북문으로 직행했으나, 우림위에게 저지당했다.

어서방은 마치 그들이 이렇게 나올 걸 진작에 예측했다는 듯 궁문 입구에 미리 관문을 설치하여 어느 누구의 출입도 허가하지 않았다. 군신들은 어김없이 밖에서 가로막혔다.

“꺼지게. 우리는 폐하를 알현해야 하네.”

“진북왕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었으니 백번 죽어 마땅한데 뒷일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네. 우리는 초주성 38만 백성들의 억울함을 씻어 주어야 해.”

어느 관원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정의롭고 의젓한 모습이 마치 정의의 화신 같았다.

“명색이 친왕이 백성을 도살하다니, 죽어도 전혀 아쉬울 게 없네. 회왕이 백성의 가치를 깎아내렸으니 황야에 시체를 효시하여 만천하에 단단히 알릴 것이야.”

민심이 격앙되었다. 각색의 관포를 입은 관료 군수들이 관문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무엄하다!”

우림위 천부장(千夫長)이 군신들을 노려보면서 큰 소리로 호통쳤다.

“너희가 감히 황궁으로 난입한다면 곧바로 사살할 것이다!”

“퉤!”

머리가 희끗희끗한 정 포정사가 그에게 짙은 가래를 뱉었다. 그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발대발하였다.

“이 노인네가 오늘 이곳에 서 있을 테니 배짱 있으면 나를 베거라.”

우림위 천부장은 뱉은 가래를 피했지만, 사실 그는 두피가 저려 왔다.

그는 정말 칼을 뽑아 들어 사람을 벨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록 그가 황궁에 난입하는 것은 죽을죄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규칙은 규칙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예전에 군신들이 격분하여 황궁에 난입한 사례도 있었다.

이때 올바른 방법은 그들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것이었다. 설령 이 방법이 맞을지라도 그는 정말로 이 노학자들에게 칼을 뽑으면 안 됐다. 그런다면 그가 맞이할 결말은 몹시 참담할 것이다.

눈앞에 선 이들이 전부 어떤 사람인가?

당조 재상, 육부상서, 시랑, 한림원 청귀, 육과 급사중……. 여러 제공이 형용하는 게 바로 이 자들이었다.

다행히 병사들은 건장하였기 때문에 이 노인네들을 막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들이 침을 뱉고, 발로 차고, 뺨을 때려도 이들은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저 골치 아픈 일은 우림위가 반 발짝도 양보하지 않을수록, 문관들은 더 세차게 소란을 피운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십여 명의 조당 우두머리가 소란을 피웠는데 점점 황성 관아의 다른 관원들 역시 따라서 성가시게 굴었다.

성문 입구에서 떠들썩하게 굴며 쌍방이 양보 없이 맞섰다.

이때 우아한 마차 한 대가 먼 곳 길가에 멈췄다. 창문 발이 젖혀지고, 준수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외모의 소년랑이 얼굴을 내밀었다.

“신년…….”

찻간 안에서 여인의 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사모는 아름다운 얼굴을 내밀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 행동으로 폐하의 미움을 살 테지만, 그대가 진정으로 입신양명할 좋은 기회예요. 게다가 궁문에 단체로 모여 있는 대인들이 언제 이런 생각을 품지 않은 적 있었나요? 마음 놓고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다 하세요. 만약 조정과 재야 위아래로 칭찬이 자자하여 우리 아버지가 그대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장차 벼락출세하지 못한다고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들이 여러 방면으로 애써 알린 덕에 황성 관아에서 진북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한 일을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왕사모는 이 얘기를 들은 뒤 허신년에게 계책을 알려 주었다. 그 역시 개입하라고 건의하였다.

‘네 아버지가 나에 관한 생각을 바꾸건 말건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허신년은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정색했다.

“내가 이번에 온 건 명성을 떨치기 위해서가 아니오. 그저 마음속의 신념과 백성을 위해서요.”

왕사모는 아름답게 웃었고 마침 말을 하려던 참에 갑자기 허신년이 말 더듬는 소리를 들었다.

“형, 형님?!”

왕씨 집안 아가씨는 깜짝 놀라 발을 젖혔고, 허신년의 시선을 따라서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은라 차복을 입은 허칠안이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형님 어째서 여기 있어요?”

허신년은 깜짝 놀랐다.

“너는 왜 여기에 있니?”

허칠안이 반문하였고, 고개를 돌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왕사모를 쳐다보았다.

왕사모는 억지로 예의상의 웃음을 짓더니 재빨리 발을 내렸다.

허칠안이 패도를 내려놓고, 허신년의 엉덩이를 한 대 후려치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허신년, 대단한데! 지금 큰형은 여전히 외톨이로 아내를 맞이하지 못해 고민인데 너는 좋겠구나. 왕씨 집안 소저를 꼬시고 말이야!”

“형님, 무슨 헛소리예요.”

허신년은 다소 안달내며, 약간은 난처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저와 왕 소저는 시를 주고받는 벗으로 과거와 현재를 논하는 군자지교(君子之交)라고요.”

‘군자지교를 이렇게 쓴다고? 이 상황은 관포지교잖아…….’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녀에 관한 일은 집에 가서 얘기하자꾸나. 뭐하러 왔니?”

허신년은 이 말을 듣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방금 사절단이 경성에 돌아오면서 진북왕의 시체를 가지고 왔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그가 자신의 사욕을 위해 2품으로 승직하려 성안의 백성을 도살한 일도요. 형님, 제게 말씀해보세요. 정말인가요?”

허칠안은 건들건들한 태도를 거두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신년은 명치가 아파 비틀거리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났고,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본래 믿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상황과 문관들이 내뱉는 경멸, 큰형의 말 전부가 그에게 그 일이 참혹한 사실임을 알려 주었다.

허칠안은 아우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군신들을 바라보았다.

“궁 안의 그 사람은 아마 진북왕의 죄를 단정 짓고 싶지 않은 듯하더라. 문관들의 문장력은 대단해. 그저 입만 나불거리면 의미가 떨어지더구나.”

“형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갔다가 금방 올게요.”

‘38만 명의 목숨이다. 자신의 백성을 도살하다니! 사서를 보더라도 이렇게 냉혹하고 잔인한 자는 거의 없다. 오늘 만약 솔직하게 밝히지 못한다면, 나 허신년은 19년 동안 경전을 헛되이 읽은 것이다…….’

허신년은 드디어 인파 밖으로 빠져나간 뒤, 단전에 기를 가라앉히고 다소 사나운 표정으로 분노에 차 소리쳤다.

“너희들은 비키거라!”

떠들썩한 소리가 갑자기 사라지고 적막이 흘렀다.

문관들은 미간을 찌푸린 채 돌아섰다. 알고 보니 상대는 한림원의 서길사 허신년이었다.

많은 사람은 머릿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불문과 두법할 때 허신년이 날카로운 언사로 화를 내며 불문의 정진 법사에게 벌컥 성을 낸 장면을 회상했다.

군중들은 말없이 길을 비켰다.

왕 재상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무표정으로 허신년을 쳐다보았다. 표정은 비록 냉담했지만,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그에게 좀 기대하는 듯했다.

허신년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소리 높여 말했다.

“오늘 들으니 회왕이 자신의 사욕을 위해 성안의 백성을 도살하여 멸절하였다 합니다. 제기랄, 정말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1분 1초 흐르고, 태양은 점점 서쪽으로 기울었다. 궁문 앞에는 점점 허신년 한 사람의 목소리만 남았다.

이 욕설은 꼬박 두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심지어 아주 수준 있는 욕이었다. 그는 문언문을 사용해 현장에서 격문을 구술하여 욕을 퍼부었다. 그는 경전을 인용해 막힘없이 줄줄 욕을 퍼부었다. 빙빙 돌려 상대를 욕하고, 허튼소리로 욕하고, 괴상 야릇하게 욕을 퍼부었다.

사람들은 그의 풍부한 어휘량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황실이라는 민감한 대목은 아주 잘 피하여 이야깃거리를 남기지 않았다.

문관들이 점차 많아졌다. 위로는 늙은 대신부터 아래로는 신임 관리까지 허신년을 보는 눈빛에 숭배와 존경이 가득했다.

그들은 견문이 크게 넓어졌다!

만약 조정에 욕설 시험이 한 과목 있었다면, 그들은 허신년을 장원으로 임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남의 죄상을 폭로하는 조당을 몇십 년 동안 겪은 왕 재상도 이 순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자를 휘하에 거두면, 조당 말씨름에서는 따라올 적수가 없겠군.’

우림위는 욕을 먹고 하나씩 머리를 숙였다. 그들은 의기소침한 얼굴을 한 채, 속으로는 이 자식이 한시라도 빨리 떠나길 바랐다.

“허 대인, 목 좀 축이십시다…….”

한 문관이 찻잔을 받치고 왔다. 허신년은 이 두 시진 동안 이미 여러 차례 목을 축였다.

문관들은 기꺼이 그에게 차를 따라주길 원했다. 그가 계속하기를 부탁할 뿐이었다. 만약 허 대인이 목이 말라 떠난다면 그들에게 아주 큰 손해였다.

허신년이 목을 축이고 찻잔을 다시 돌려준 뒤 계속해서 입을 떼려고 했다.

“닥치게. 더는 욕하지 말게, 더는 욕하지 마……!”

이때, 늙은 태감이 환관들을 데리고 허둥지둥 뛰쳐나왔다.

“자네, 자네, 자네…… 실로 방자하구나! 대봉이 건국한 지 육백 년인데 어찌 자네 같은 놈이 궁문 밖을 막아서고 두 시진 동안 욕을 한단 말인가?”

늙은 태감은 화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허신년은 태연하게 말했다.

“공공께서는 제게 말 걸지 마십시오. 본관은 터무니없는 대화를 제일 싫어합니다.”

생각이 예리한 문관들은 하마터면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 왕 재상은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러나 마치 허신년이 원경제 곁에 있는 늙은 태감에게 미움을 사는 걸 보길 원치 않는 듯, 즉시 대열에서 나와 나지막이 말했다.

“폐하께서 우리를 만나길 원하시는가?”

늙은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폐하께서 재상 대인만 만나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속히 물러가십시오. 궁문에서 패거리를 규합해서는 안 됩니다.”

문관들은 얼굴에 희색을 띠며 분기탱천했다. 한순간 허신년을 바라보는 눈빛에 예전에는 없었던 인정과 애정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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