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화. 재상 대인, 초주에 큰일이 났습니다 (2)
황성, 왕부에 있는 왕가의 저택은 원경제가 하사한 것이었다. 황성에 위치하여 경비가 삼엄했는데 재상의 복지 중 하나였다.
지금은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왕정문은 내각에서 저택으로 돌아와 식사하는 데는 고작 일각밖에 걸리지 않았다.
식탁 위에서 왕정문은 아내와 두 적자 그리고 며느리를 훑어보았는데 유독 적녀 왕사모만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모아는?”
“이른 아침에 외출했어요. 듣자 하니 누군가와 약속이 있대요. 산으로 놀러 간대요.”
신분에 걸맞게 단정한 왕 부인이 남편에게 대답했다.
“산으로 놀러 간다고?”
왕 재상은 미간을 점점 더 잔뜩 찌푸렸다. 그는 본처를 보면서 증명을 요구하는 듯 물었다.
“모아가 요 며칠 빈번하게 외출하면서 누군가와 약속을 자주 잡는 듯하오?”
매일 온갖 정무를 처리하는 재상 대인이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도 기억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적녀에게 마음을 쓴다는 뜻이었다.
왕 부인은 순간 좀 망설였다. 다른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인 채 음식을 먹는 데 전념했다.
머리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왕씨 집안 둘째 공자만이 ‘호로록’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여동생이 요즘 허씨 집안 둘째와 눈이 맞았어요. 춘시 회원 허신년, 모르세요?”
온 가족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한 명씩 정색하고 소리 없이 왕씨 집안 둘째 공자를 주시했다. 그들은 마치 눈빛으로 ‘너 바보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왕 이공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모는 시집갈 나이가 되었고, 마음에 드는 자는 마침 또 한림원 서길사로 가장 뛰어난 청귀(*淸貴: 직위는 높으나 실권을 쥐지 않은 사람)였다.
그녀는 사모 동생과 그 허신년이 기꺼이 함께 있길 원했다. 이게 바로 전설 속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것 아닌가……. 어쨌든 그런 계열의 의미였다.
마음이 서로 좀 더 깊어지면 아버지는 허신년에게 집으로 찾아와 청혼하게 할 테니, 여세를 몰아 사모를 시집보내면 아름답고 원만한 혼인이 이뤄지는 것이다.
왕 이공자가 아내에게 장가들 때에 바로 이렇게 했다. 본래 아내 친정에서는 그가 벼슬아치가 아닌 게 못마땅하여 동의하지 않았다. 왕 이공자는 수행원과 가위(家衛)를 데리고 아내 친정에서 꼬박 하루를 설득하여 비로소 아내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아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가 친정에 있을 때보다 훨씬 즐거워한다는 점은 확실해 보였다.
왕 재상은 안색이 조금씩 굳어졌으나 말투는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차분해지고 냉담해졌다.
“허칠안의 사촌동생?”
왕 부인은 조심스럽게 남편의 얼굴빛을 관찰하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설명했다.
“둘째가 말한 정도는 아니에요. 기껏해야 서로 호감이 있는 정도죠.”
왕 재상은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에는 한 시진 동안 휴식 시간이었다. 왕 재상은 마침 방으로 돌아가 낮잠을 청할 계획이었는데 집사가 급히 와서는 안방 입구에 서서 말했다.
“나리, 형부 손 상서가 찾아오셨습니다요.”
‘이 시간에…….’
왕 재상은 좀 의외였다.
“그를 내 서재로 모시게.”
왕 재상이 더 뜻밖이라고 여긴 부분은 손 상서에 뒤이어 대리사승 역시 방문했다는 점이었다. 대리사승은 무려 현재 제당의 지도자였다.
또한 위로는 4품부터 아래로는 7품까지 요직에 있는 관원 여러 명이 더 있었다. 하지만 전부 실세였다.
서재 안, 왕 재상은 하인에게 차를 내오라고 분부한 뒤 모든 이들을 둘러보곤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이게 무슨 일인가? 여러 대인께서 초대장을 잘못 받고 본 재상 저택에서 경사를 치르는 줄 착각한 것 아닌가?”
그는 빈정대면서 조롱했지만, 표정은 위엄 있고 엄숙하였다.
“경사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례를 치를지 말지 고려해야 할 참입니다.”
손 상서가 손을 불끈 쥐고 탄식했다.
“초주에 큰일이 났습니다. 재상 대인, 저희 다음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좀 생각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왕 재상은 그를 주시하다가 또 다른 사람을 쳐다보더니 말없이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나지막이 말했다.
“무슨 일이 났는가.”
손 상서의 늙은 얼굴에 의기소침함과 어둠이 드러났다. 그는 왕 재상을 빤히 쳐다보며 상심한 얼굴로 말했다.
“초주성이 사라졌습니다…….”
쿵!
천둥이 왕 재상의 머리 위를 내리쳤다.
원망이 극에 달한 대리사승이 덧붙였다.
“진북왕이 죽었습니다…….”
쿵쿵!
천둥이 왕 재상의 머리 위를 두 차례 내리쳤다. 그는 깜짝 놀라 아연실색했다.
다른 4품 관원이 분개했다.
“진북왕이 성안의 백성을 도살했습니다…….”
쿵쿵쿵!
왕 재상은 천둥으로 머리를 차례차례 얻어맞은 듯했다. 그는 사고가 점점 흐릿해지면서 모든 생각이 사라졌으며 심지어 표정 관리 능력조차 잃었다.
손 상서 등의 사람들이 보기에, 탁자에 멍하니 앉은 왕 재상은 두 눈이 흐트러지고 표정이 멍해진 게 마치 생기가 없는 종이 인형 같았다.
‘초주성이 없어졌다고? 진북왕이 죽었다고? 초주성은 진북왕이 대량 학살한 거라고? 왜 이렇게 중요한 소식을 나는 오히려 마지막에 알았지?’
한참 뒤, 왕 재상의 머리가 다운된 상태에서 회복됐고 사고 능력을 되찾았다. 머릿속에 의혹들이 저절로 하나씩 떠올랐다.
왕 재상은 여러 해 동안 관리 사회를 표류한 사람답게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비통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자세히 얘기해보게. 손 대인, 자네부터 시작하지.”
이때 진 포두가 문턱을 넘어 서재로 들어왔다.
손 상서가 탄식했다.
“당사자에게 얘기하라고 하시죠.”
대리사경은 이 말을 듣더니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
“자네와 내가 같은 생각을 했구려.”
그는 즉시 서재를 나가 왕부 하인에게 저택 밖에서 기다리는 대리사승에게 들어오라고 소리치라 했다.
대리사승이 서재에 들어왔다. 진 포두는 왕 재상이 자신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걸 본 즉시 모든 관원을 향해 읍했다.
“재상 대인, 여러 대인 어르신. 북상하는 길에 저희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강주 관내에 있을 때 오랑캐 4품 고수 셋에게 습격을 당했지요. 그리고 당시 사절단에서 4품인 자는 양 금라뿐이었습니다.”
왕 재상은 놀란 얼굴로 그를 주시했다.
“자네들은 습격에서 어떻게 벗어났는가.”
진 포두가 대답했다.
“사실 관선에 있었으면, 사절단이 하마터면 전멸할 뻔했습니다. 그때 허 은라가 갑자기 의논하기 위해 저희를 소집해서는 육로로 바꿔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육로로 변경하지 않으면, 내일 류석탄을 지나가는 길에 매복을 맞닥뜨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차례 논쟁을 거친 뒤, 저희는 허 은라의 의견을 따라 육로로 가기로 했습니다. 이튿날, 양 금라 혼자서 배를 타고 타진하러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매복을 맞닥뜨렸습니다. 매복은 북방 요족 교부의 탕산군이었습니다.”
왕 재상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자는 생각이 섬세하고, 교활한 토끼처럼 예민하지. 애당초 그를 수석 수사관으로 택한 건 조당 제공들 과반수가 사실 그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네.”
“애석하게도 그럼에도 저희는 추격을 피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그들이 찾아냈습니다. 그 당시 4품 셋이 사절단을 겹겹이 포위했지요. 양 금라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진 포두는 여기까지 말을 마친 뒤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위기의 순간 허 은라가 선뜻 나서 혼자의 힘으로 4품 둘을 막아서 저희가 도망칠 기회를 쟁취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저희는 허 은라와 헤어졌고 초주성이 파괴된 후에야 다시 재회했습니다…….”
왕 재상은 손을 들고 그의 말을 끊은 뒤 물었다.
“오랑캐가 사절단을 매복 공격한 이유가 뭔가? 허칠안이 그곳에 갔나?”
진 포두는 미간을 찌푸리며 확실하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마 왕비마마 때문일 겁니다. 허 은라라면, 그는 사절단을 벗어난 후 홀로 북상하여 저희와 따로 움직였습니다.”
“아마?”
왕 재상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약간 의뭉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이건 소직이 아니라 허 은라의 추론입니다.”
진 포두가 읍을 올리며 강조했다.
왕 재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눈에 비친 의혹이 가셨다. 그는 오랑캐가 왕비를 납치한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진 포두는 이 모습을 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런 뒤 저희는 초주성에 도착했습니다. 궐영수의 방해로 몇 날 며칠 동안 아무런 수확이 없었지요. 그날까지…….”
왕 재상은 진 포두의 진술을 통해 그날 초주성에서 발생한 대전에 관해 알게 되었다.
왕 재상이 오랜 침묵 속에서 말했다.
“이 과정에서 허 은라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가 이 말을 물었을 때 시선은 대리사승을 향해 있었다.
대리사승은 그의 말뜻을 깨닫고 읍했다.
“허 은라는 홀로 북경에 잡임해 천종 성녀 이묘진과 협력하여 유일한 생존자인 정 포정사를 찾았습니다. 성안에서 대전이 발생했을 때, 그는 아마 정 포정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겁니다.”
왕 재상이 ‘음’하고 소리내더니 시선을 진 포두에게로 옮겼다.
“허 은라는 그 신비로운 고수의 신분을 어떻게 추측하던가?”
‘재상 대인께서는 허칠안의 추론을 아주 중시하시는군. 방금 왕비 일을 언급했을 때 그는 내가 허 은라의 추측이라고 말하자마자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어…….’
진 포두는 대답했다.
“그 신비로운 고수에 대해 언급했을 때 허 은라는 냉소적으로 한마디했습니다.”
왕 재상을 포함한 자리에 있던 관원들은 모두 즉시 진 포두를 쳐다보았다.
진 포두가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칠안은 조정의 수두룩한 제공들이 전부 요괴와 악마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자리에 있는 대인들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이 불경죄였다. 따라서 진 포두는 고개를 숙이고 더는 말을 하지 못했고, 재상과 여러 대인의 표정을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허칠안의 말뜻은 그 신비로운 고수가 조당 사람이거나 혹은 조당의 어느 인물과 관련이 있다는 의심이 든다는 게로군…….’
손 상서는 가슴이 철렁했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그는 관리 사회에서 여러 해 동안 표류하면서 자신이 조당 세력과 조당 사람들을 아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손 상서는 방금 머릿속으로 한 번 훑었다. 누가 이렇게 수준급 고수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적합한 후보를 찾지 못했다.
‘허칠안이 감히 이렇게 말한다는 건 그가 상당히 확신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신비로운 고수와 조당 사람이 연루되었다는 것만 확신할 수 있을 뿐,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
왕 재상은 눈빛이 번쩍이면서 갑자기 허신년이 생각났다. 사모와 그가 서로 호감이 있다고 했다. 어쩌면 허신년을 통해 허칠안은 떠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위연일까요?”
대리사경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왕 재상과 손 상서의 안색이 변했다. 그리고 다른 관원인 진 포두, 대리사승 등은 멍한 기색을 보였다.
그들이 보기에 위연은 그저 보통 사람인데 대리사경이 왜 이 말을 내뱉었는지 몰랐다.
“이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대리사경이 뒤이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은 위연이 경성에서 떠난 적이 없다는 의미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어서방에서 소조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조당 제공과 폐하가 위연을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의 모습으로 역용하여 대신 참석한 일은 발생할 수 없었다.
위연의 얼굴을 모방할 수 있고 그의 겉모습을 따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느낌을 흉내 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