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화. 재상 대인, 초주에 큰일이 났습니다 (1)
‘어쨌든 전부 자기네끼리 개싸움이잖아. 누가 죽었든 손뼉 치며 기뻐할 만큼 좋은 일이군…….’
허칠안은 그를 쳐다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지만 만약 그 신비로운 고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일의 결말은 진북왕이 2품으로 승직하여 대봉의 영웅이 되는 거군요. 위 공께서는 이런 결말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진북왕이 2품으로 승직하지 못한 건 자네가 사전에 왕비를 가로챘기 때문이네.”
위연은 또 차를 호호 불었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알, 알고 계셨습니까?”
허칠안은 굳은 얼굴로 무미건조하게 웃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위연은 찻잔을 내려놓고 언짢아했다.
“머리를 쓰면 알 수 있지.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세.”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방금 이야깃거리를 이어갔다.
“진북왕이 만약 승자가 되었으면, 혈단을 삼켜 3품 대원만에 도달했겠지. 그럼 딱 좋네. 무신교를 칠 때 그에게 적진으로 돌격하라고 하면 되니까. 허허, 무신교가 대거로 변방을 침범하니 조정에서는 군대를 진두지휘할 고품 무사가 시급했네. 하지만 북방의 고품 우두머리 역시 이미 몰락했으니 진북왕이 더 이상 발뺌할 구실이 없지. 북경에서 발생하는 일은 결국 만 리 밖이라 통제를 받을 수 없네. 하지만 군대에 이르면, 전쟁터에서 진북왕을 징계하고 싶어도 간단한 문제일까? 무신교 맹호가 길리지고와 촉구보다 훨씬 더 유용하지.”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에게 정보를 발설하여 그들이 진북왕에게 죽기 살기로 덤비게끔 했다. 호랑이를 부려 늑대를 삼키면서도, 늑대 무리가 호랑이를 물게 했다.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이 패하면, 수련 경지가 대폭 성장한 진북왕이 무신교를 상대하면 된다. 그런 뒤 기회를 엿보다가 같은 방식을 다시 한번 쓰면 된다.
진북왕이 패하면, 백성을 대량 학살한 죄인을 징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조당에서 벗어나 다시 군대를 장악하게 할 수 있었다. 북방 오랑캐의 난폭함을 고려했을 때 진북왕이 사라지면 북방을 지키기에 가장 적합한 자가 누구겠는가?
답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허칠안은 슬그머니 침을 삼킨 뒤,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진북왕과 무신교는 결탁하였습니다.”
위연은 부드럽게 웃었다.
“만약 이익이 일치한다면 나 역시 무신교와 결탁할 수 있네. 하지만 이익에 충돌이 생기면 아무리 친밀한 맹우 역시 칼을 뽑아 서로 겨눌 것이네. 따라서 진북왕이 꼭 초주에서 죽지 않았어도 되었지. 허칠안, 기억하게. 책략에 능한 자는 참고 견뎌야 하네. 필부의 용감함은 순간은 명쾌할지 모르지만, 자네가 더 많은 걸 잃게 할걸세.”
‘하지만 위 공, 저는 본래 무사라고요. 신을 믿지 않고, 부처에게 예를 갖추지 아니하고, 군왕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늘과 땅을 공경하지 않아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면 감히 천지를 뒤엎는 게 바로 진정한 무사잖아요. 이건 애당초 위 공이 저한테 알려준 건데요…….’
위연은 책략에 뛰어나고, 배후 배치를 숨기며 천천히 나아가는 걸 즐겼다. 대부분은 결과만 보기 때문에 그 과정의 손해나 희생을 견딜 수 있었다.
허칠안은 자신이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했으며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예컨대, 그때 주씨 은라가 소녀를 더럽히고자 할 때 허칠안이 참는 걸 택했다면, 지금쯤 그는 주씨 부자가 모든 뒷감당을 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당시에 한 선택은 단칼에 주 은라를 베어 중상을 입히는 것이었고, 결국 요참형을 선고받았다.
이게 바로 위연이 말한 대로 꾹 참아야 하는 경우였다. 필부가 용감함을 과시하면 더 많은 걸 잃게 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꾹 참는 대가는 죄 없는 소녀가 모든 남자들 앞에서 능욕당하는 사태였다. 이 시대 소녀의 삶에 있어, 그 뒤의 결과는 자살 아니면 우물에 뛰어들기였다.
사후에 복수한들 의미가 있겠는가?
소녀는 죽었는데 말이다.
그 당시 허칠안이 원한 건 사후 보복이 아니었다. 그는 그 소녀가 무탈하길 바랐다.
당시 그는 단칼에 내리쳤기에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었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았다.
‘나와 위 공은 결국 다르다…….’
그는 속으로 탄식하더니 물었다.
“위 공께서는 왕비가 진북왕을 만나지 못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의 마음속에 강렬한 의혹이 솟구쳤다. 왕비를 팔아넘긴 게 위연이 아닌가 의심됐다.
위연은 천천히 말했다.
“양연이 금군에게 시켜 돌려보낸 그 여종들을 내가 회왕부로 돌려보냈네. 양연 성격상, 만약 그 여종들이 문제없었다면 나한테 보내는 게 아니라 바로 회왕부로 돌려보냈을 걸세. 바꾸어서 말하면 그 여종들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지. 나는 상황을 물어서 파악한 후 틀림없이 자네가 왕비를 구했을 거라는 걸 알았네. 양연 역시 이런 의심이 들었기에 그녀들을 야경꾼 관아로 데려온 게야.
양연 외에 현장을 본 자는 없네. 자네의 ‘혐의’는 가벼우니 보통 사람을 자네를 의심하지 못할 게야. 하지만 우리 폐하의 의심 많은 성격으로는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놓치지 않을 걸세. 그때 가면 사람을 파견해 상세하게 조사할 가능성이 크네. 허나 지금 그는 왕비에 관한 일을 신경 쓸 기분과 정신이 없을 게야.”
‘어쩐지 그래서 양연이 초주를 떠나기 전에 내게 많은 일에 관해 위 공에게 가르침을 청하라고 했던 거군…….’
허칠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범한 전우들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이때 위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진지한 표정을 내비쳤다.
“사절단이 출발하기 전에 폐하께서 부질없게 왕비가 뒤따라갈 것이라고 내게 말씀하셨네. 그는 내게 배후에서 몰래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하셨지. 왕비의 행적이 노출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
허칠안은 마음이 움직였다.
“위 공, 이 일에 관해서 보고드려야 할 구체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세상의 갖은 풍파가 깊이 서린 위연의 눈동자가 살짝 빛났다. 그는 앉은 자세를 바로잡고 말했다.
“말해보게.”
“오랑캐 배후에 암암리에 돕는 술사 패거리가 있습니다. 그날 제가 죽…… 돌진해 갔을 때 마침 오랑캐 고수들과 같이 섞여 있는 술사 한 명을 보았습니다.”
위연이 침음하더니 말했다.
“세은 사건 때 배후에서 주도했던 그자?”
……허칠안은 말문이 막혔고, 마음속으로 탄식하였다. 위연의 지혜로 세은 사건 때 나타난 신비로운 술사를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전 호부시랑 주현평이 아마 그 신비로운 술사의 사람인 듯합니다. 저는 일찍이 이 일로 감정을 찾아갔었는데 제게 답을 주지 않더군요. 허나 어느 정도는 단정 지을 수 있습니다. 이 신비로운 인물은 조정에 앞잡이가 있습니다.”
위연과 허칠안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둘다 더 이상 탐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화제를 돌렸다.
아주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 본능적으로 등한시했다. 그들 자신조차도 이 상황이 아주 이상하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자네는 모남치를 어떻게 안배할 계획인가?”
위연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위 공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칠안은 겸손하게 가르침을 청했다.
위 공은 잠시 침음하더니 말했다.
“일단 표면적인 첩으로 삼아 부양하게. 허나 자제에 신경 쓰게. 3품 전에는 다른 사람의 몸을 점령하지 말게. 그랬다간 못 쓰게 될 거야.”
‘아이고, 위 공 저속하십니다. 헤헤헤.’
“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위연은 온화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왕비께서는 도대체 어떤 신비함이 있습니까? 그녀는 도대체 정체가 뭔가요?”
그는 이 의문을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었다.
“운록서원에 가서 《대주습유(大周拾遺)》라는 책을 한 권 찾아보게. 다 보고 나면 알 수 있을 걸세.”
위연은 말을 마치고 물었다.
“또 질문 있는가?”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위연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그를 보면서 말했다.
“자네들 진북왕의 유골을 경성으로 데려왔는데 그다음에 무슨 계획이 있는가?”
허칠안은 이 말을 듣더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진북왕의 죄명을 인정하고, 초주성 백성들에게 정의를 돌려줄 겁니다.”
그는 경찰이었던 만큼 사후의 판결을 가장 중요시했다.
진북왕이 백성 대량 학살이라는 잔인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다. 설령 죽었다고 해도 좋은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했다.
위연은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조정의 일은 자네가 문외한이니 이 일은 관여하지 말게.”
허칠안은 어리둥절했다.
“위 공,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위연은 대답하지 않고 마침내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
허칠안은 일어서서 공수하더니 호기루를 나섰다.
* * *
형부!
진 포두는 미처 집에 돌아갈 겨를도 없이 출궁한 후에 서둘러 관아로 달려갔다.
그는 아주 익숙하게 대청 안으로 들어갔다. 손 상서가 마침 탁자 앞에 앉아 정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진 포두는 공손하게 말했다.
“상서 대인, 소직 경성에 돌아왔습니다.”
손 상서는 어리둥절하더니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자네 언제 경성으로 돌아왔는가?”
진 포두는 문턱을 넘어 대청 안으로 들어와 목소리를 낮추었다.
“방금 경성에 돌아오자마자 상서 대인을 뵈러 즉시 왔습니다.”
‘보아하니 혈도 삼천리 사건의 결과를 밝혀내지 못했군…….’
손 상서는 마음속으로 판단을 내리곤 고개를 숙이고 공문을 읽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 사건 조사는 어떠한가?”
그는 순전히 짐작을 통해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 풍부한 관리 사회의 경험에 기인해 판단했다.
그가 혈도 삼천리 같은 큰 사건을 제대로 밝혀냈다면, 사절단은 틀림없이 사전에 공문을 보내왔을 것이다. 그럼 폐하께서는 분명히 미리 어서방에서 소조회를 열어 이 일을 상의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소식도 받지 못했다. 이는 이 사건이 결국에 흐지부지되었고, 그렇기에 관심을 두는 자가 없다는 의미였다.
진 포두는 책상 앞에 앉아 공무를 보는 손 상서를 쳐다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초주성이 사라졌습니다…….”
손 상서는 전혀 개의치 않고 ‘음’ 소리를 내었다. 몇 초 후, 그는 이제야 반응이 왔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진 포두를 주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자-네-뭐-라-고-했-는-가?”
진 포두는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덧붙여 말했다.
“진북왕이 대량으로 백성들을 학살했습니다.”
손 상서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대청 내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손 상서는 소리 없는 침묵 속에서 탁자를 받치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진 포두를 바라보았다.
“진북왕, 그, 그는?”
진 포두는 나지막이 말했다.
“진북왕은 처형당했습니다.”
손 상서는 현기증이 엄습해오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의자 위에 털썩 앉았다.
진 포두가 황급히 앞으로 나아갔다.
“대인, 괜찮으십니까.”
손 상서는 손사래를 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제대로 얘기하게. 사실대로 말하게.”
진 포두는 즉시 일의 대소를 논하지 않고 자신이 보고 들은 전부를 손 상서에게 말했다.
그들은 일을 각자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문관 집단과 연합하여 원경제에게 압력을 가하기로 했다. 이건 사절단이 일찍이 세운 책략이었다.
반 시진 후면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손 상서의 마차는 형부를 떠나서 기세등등하게 왕부로 달려갔다.
비슷한 시간, 대리사승의 마차 역시 관아를 떠나 왕부 방향으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