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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96화 (493/712)

496화. 경성으로 돌아가다

이묘진은 대답하는 대신 왕비를 잠시 주시하더니 전음으로 말했다.

“운이 나쁜 자이니 경성으로 데리고 가 안착시키라는 건가? 이 부인은 잘 가꾼 모습인데. 다만 자네가 언제 이렇게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어진 거지?”

‘묘진, 내가 너를 얕잡아 보는 게 아니라 팔가락지를 벗은 그녀는 자신 있게 한마디 할 수 있다고.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 쓰레기예요!’

허칠안은 이묘진이 좀 떠름해하는 걸 눈치챘다. 그는 대답 없이 그저 공수했다.

그런 뒤 그는 돌아서서 왕비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내 첩의 친정 식구이니 믿을 수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우선 그녀를 따라 경성으로 돌아가 그녀의 안배에 따르세요.”

왕비는 이 말을 듣더니 버들 눈썹을 약간 찌푸렸다. 그녀는 처음으로 허칠안에게 첩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신분과 지위를 생각하고, 그가 교방사 단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첩이 있어도 이상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이묘진에 관해서라면 잘 알고 있었다.

“응!”

그녀는 냉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흘 후, 정 포정사는 밤낮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달린 끝에 한 달여 만에 드디어 초주성으로 다시 돌아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정흥회는 성벽 위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섰다. 예전에 번화했던 초주성은 이미 폐허가 되었고, 곳곳이 무너진 담벼락이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상처투성이였다.

북쪽의 성벽이 반쯤 무너졌고, 서쪽의 성문 역시 무너졌다.

이만여 명의 병사들은 성안에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바쁘게 움직였다. 누군가는 식량, 쌀가루 등의 음식물을 찾았다. 비록 도시가 심각하게 훼손됐지만, 토굴에 저장한 물질은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붕괴된 폐허 안에서도 많은 물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어떤 병사는 집을 수리하여 임시 군영으로 충당했다. 이만여 명의 병사들에게 당분간 머물 숙소를 제공했다.

어떤 병사는 성벽을 보수했다.

어떤 병사는 시체를 매장했다. 전우도 있었고, 성안의 백성을 있었으며 오랑캐와 요족도 있었다.

이 작업들은 이미 3일간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다.

“사서에 분명히 이 일이 기록될 것이다. 후세 사람들을 각성하는 동시에 진북왕의 죄를 기록하여 그 오명을 오래도록 남길 것이네.”

류 어사가 그의 곁에 나타났다. 사절단 쪽은 이미 이묘진의 입을 통해 정흥회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걸 들었으며, 그들은 성안에서 본 정흥회가 가짜라는 걸 알았다.

아마도 그 3품 주술사의 솜씨일 터였다. 그렇지 않고선 4품인 양연을 속일 수가 없었다.

“조정에서 정말 진북왕을 단죄하겠는가?”

정 포정사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승리는 쟁취하는 것이지요.”

류 어사가 또박또박 말했다.

이때 허칠안과 양연, 진 포두 등은 성벽에 올랐고 수석 수사관 허 은라는 나지막이 말했다.

“곧 저희는 경성으로 돌아갑니다. 경성에 돌아간 후 진북왕을 단죄하고, 이 사건을 제대로 평가할 겁니다. 하지만 그전에 정 포정사는 아마 성안의 망령들에게 우선 박주(*薄酒: 남에게 대접하는 술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를 몇 잔 대접하고 싶을 겁니다.”

백부장 진효는 손에 술주전자를 들고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정 포정사는 술주전자를 받아 아래쪽의 성지를 다시 조망하였다. 그는 제사를 지내기 전에 자신의 인생의 전반부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좀 누리고 싶었다.

* * *

정흥회는 대봉의 양대 곡물 창고라고 불리는 곳 중 하나인 장주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어릴 적에 집안이 가난하였던 탓에, 부유한 집안의 옷을 빨아 주고 수놓는 일을 하는 모친에 의지하여 힘들게 살았다.

젊은 정흥회가 가장 기대하는 건 추수하는 날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밭에 가서 밀을 주울 수 있었다.

밀을 한 광주리 주우면, 그는 홀어머니와 3일 동안 죽을 먹을 수 있었다. 너무 많이 주우면 몰매를 맞기도 했다.

추수가 끝난 후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겨울이었다. 겨울마다 그의 손발은 얼어서 갈라졌다. 그리고 그의 모친은 설령 겨울이라고 해도 동전 몇 개를 위해 언 강가에서 다른 사람의 옷을 빨아줘야 했다.

홀어머니는 이렇게 조금씩 선생에게 주는 사례금을 모았고, 국자감에 들어갈 은자를 모았다.

정흥회는 16살에 국자감에 들어가 10년간 고학하다가 원경 19년에 그는 급제하여 2갑 진사가 되었다.

그는 쉴 새 없이 내달려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고, 경성으로 모셔가 정착하고 싶었다. 가문을 위해 영광스러운 일을 하여 비아냥거리는 말을 내뱉었던 모든 사람이 눈을 비비고 그를 다시 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본 건 어머니의 낮은 묘였다.

홀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줄곧 그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집에서 온 편지는 가족들이 대신해서 써준 것들이었다. 일생을 고생한 평범한 부인은 자신이 아들의 학업에 영향을 미치는 걸 원치 않았다.

정흥회는 모친의 묘지 앞에서 하룻밤을 꼬박 꿇고 있었다.

정흥회의 벼슬길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그는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었고 나쁜 물이 들길 원치 않았기에, 그 당시 재상의 미움을 사서 북쪽 지방인 초주로 강등되어 8품 현령이 되었다.

처음에 그는 초주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북쪽 지방은 몹시 춥고 민속이 사나웠기 때문이다. 융통성이 없는 그 역시 마침내 생각이 트였다. 그는 저축을 다 써서라도 익숙한 사람을 찾아가 관계를 쌓아 다시 경성으로 소환되길 바랐다.

어느 해, 오랑캐 기마병이 쳐들어와 수십 리를 약탈하였다.

그 후 정흥회는 백성들을 위문하고 상황을 시찰하라는 뜻에서 파견되었다. 그가 논두렁 사이를 걷다 보니 정예 기병에 짓밟힌 덜 익은 농작물이 보였다. 그는 관도 위를 걷다가 오랑캐가 삼켜 몸뚱이만 남은 시체를 보았다.

그가 산으로 걸어 들어가자 운 좋게 화를 면한 백성을 보았고, 그들의 곤궁하면서도 거친 얼굴도 보았다.

정흥회는 여러 해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나중에 그 재상이 사직하자, 동창과 벗들은 조정에서 활동하며 그를 경성으로 소환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정흥회는 이미 초주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정력과 심혈을 이 토지에 쏟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임하며 때로는 불철주야 정무를 처리하면 어머니에 대한 결핍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 18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는 일생 절반을 전부 초주에 맡겼지만, 지금 외톨이가 되어 퇴장하게 생겼다.

“공명과 관록은 종이 한 장일 뿐, 흩날리는 먼지에 지나지 않는구나…….”

정 포정사는 마음속에서 비통한 감정이 솟구치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술을 남김없이 쏟아버리자 먼지가 일었다.

* * *

오랫동안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정흥회의 기분이 가라앉자 대리사승은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궐영수는 이미 죄를 짓고 도망쳤고, 진북왕은 처형당했네. 하지만 그들의 죄악을 아직 천하에 명백히 알리지 않았지. 정 포정사는 주요 인적 증거로 반드시 우리를 따라 경성에 돌아가야 하네. 하지만 초주성의 이 같은 상황에, 지금 북경에는 남아서 전반적인 정세를 주관할 사람이 필요해…….”

류 어사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분석했다.

“초주성 백성 38만 명이 참혹하게 죽었습니다만 뒷일은 간단합니다. 이 이만여 명의 장병을 배치하기만 하면 됩니다. 다른 주(州), 군(郡), 현(縣)은 원래대로 유지하면 되니 특별히 돌볼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오랑캐와 요족은 막 대전을 겪었으니 간담이 서늘해졌을 겁니다. 그들은 그 신비로운 고수를 두려워해 당분간 다시는 변방을 침략하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몇 년 동안까지도요.”

정흥회는 잠시 침음하더니 양연을 쳐다봤다.

“수재는 군대를 장악하지 않지요. 본관은 정무 처리에 익숙하고, 군대 관리는 문외한입니다. 양 금라, 이 자리에서 수련 경지가 가장 높고, 더욱이 군대를 통솔한 경험도 있지 않습니까. 병사들을 관리할 수 있으면서도 두려움에 떨게 할 수도 있지요.”

양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지요.”

‘대장은 사실 주광효 업그레이드 버전이야. 과묵하지만, 착실하고 적극적이라 아주 믿을 만하지…….’

허칠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참견을 하지 않았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이 문관들이 했기 때문이다.

“참.”

그는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진북왕의 시체를 경성에 가지고 갈 겁니다. 그는 이 사건의 주역이니 죽었어도 경성에 가지고 가야지요.”

“당연합니다.”

정 포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북왕의 시체는 어떻게 되든 경성으로 가져가야 했다.

진북왕을 죽인 일은 그저 이 사건의 1차 결말일 뿐이었다. 사건을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마무리였다.

양연은 이미 이야기를 마친 걸 보더니 허칠안을 쳐다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나를 따라오게.”

‘대장, 대장의 진지한 모습과 오만한 말투는 마치 우리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 같다고요…….’

허칠안은 그래도 얌전하게 그를 따라갔다.

* * *

두 사람은 성벽을 따라 일정 거리를 걸어갔다. 양연은 멈추더니 돌아서서 말했다.

“진북왕이 성안의 백성들로 제사를 올릴 때, 나는 성안 백성들의 영혼이 땅으로 모이는 걸 보았네. 땅에는 진법이 더 있는 듯하네. 하지만 내가 사후에 발굴하러 가서 땅 삼 척(尺)을 팠는데 아무것도 찾지 못했네.”

‘영혼이 땅으로 모였다니? 이건 무슨 조작이야. 진북왕이 성안의 백성을 대량 학살한 게 혈단을 정제하기 위함이 아니야……?’

허칠안은 얘기를 다 듣고 가장 먼저 이러한 생각을 했다.

‘묘진, 나는 그대가 필요하오!’

영혼 방면에 관해선 지식이 부족하기에 이묘진을 찾아가면 맞았다. 만약 이묘진의 학예가 뛰어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약삭빠른 금련 도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양연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물었다.

“무슨 단서가 있는가?”

‘인맥이 넓어서 좋은 점은 아주 분명하지. 나는 앞으로 계속해서 어장을 확대 발전시킬 거야. 맞다, 황유옥으로 조각한 소검을 아직 여장군에게 선물하지 않았네…….’

허칠안은 속으로 주제와 동떨어진 생각을 하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대장,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저 뒷간에 다녀오겠습니다.”

양연은 그가 지서 파편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애당초 양연이 혼자 해치워버린 그자가 바로 자련 도사였다.

* * *

허칠안은 성벽 위에서 내려와 외진 구석진 곳을 찾아 지서 파편을 꺼내고 3호의 신분으로 전서를 보냈다.

[삼: 금련 도사님, 도사님과 단둘이 상의할 일이 있습니다.]

천지회 구성원들은 한밤중에 이 전서를 보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요즘 어찌 된 일인지 이묘진 그 도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모두를 차단해 달라고 요구하더니, 지금은 삼호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몇 초 후, 금련 도사가 전서로 말했다.

[구: 무슨 일인가?]

[삼: 묘진은요? 묘진은 대화에 참여해도 됩니다.]

금련 도사는 탄식하더니 전서로 말했다.

[구: 묘진, 문자를 보내도 되네.]

[이: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는가. 할 말 있으면 하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게 무슨 일이람. 화가 많이 났네?’

허칠안은 전서로 말했다.

[삼: 그대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소. 무슨 일이오?]

이묘진이 말했다.

[이: 허, 자네 그 여인은 어떻게 된 일인가. 그녀가 곧 나를 여종처럼 부리겠던데. 몰랐으면 그녀가 왕비인 줄 알았겠어. 그런 마음 편한 모습이 아주 화가 난다고.]

‘그대도 종리와 마찬가지로 예언사인가?’

허칠안은 전서로 성녀를 위로했다.

[삼: 그녀와 똑같이 굴지 마시오. 그녀는 습관이오.]

왕비 그 어리석은 여인이 꼭 고의로 그러는 건 아니다. 그녀는 반평생을 왕비로 살았다. 그녀는 여종의 시중을 받으며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렸으므로, 생활 속 많은 습관은 바꾼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묘진이 그처럼 끊임없이 왕비를 자극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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