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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94화 (491/712)

494화. 복기(復碁) (2)

허칠안은 초주성에서 수 백 리 떨어진 곳의 어느 연못가에서 막 목욕을 마친 뒤, 연못물에 침식되어 날카로움을 잃은 거대한 암석 위에 허약하게 누웠다.

신수는 연속적으로 진북왕과 길리지고의 생명 정수를 빼앗은 후, 깊은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아마 그가 불러도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가 고분에서처럼 다시 한번 기운에 무임승차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근육남 승려에게 의지하지 못하다니, 갑자기 안정감이 사라지는걸…….’

허칠안은 자신을 주시하다가 신수가 새까만 법상을 내보인 후에 자신의 육신 강도가 또 향상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지금 마치 홍수로 폭이 넓어진 수로 같았다. 홍수가 지나간 뒤에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괴로운 노신(*魯迅: 루쉰)은 말할 것이다. 우리는 터널을 뚫는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터널을 확장하는 사람에게는 숭고한 경의를 품고 있다…….’

허칠안은 이 말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달았다.

‘이번 전투를 겪으면서 내 화경에 대한 깨달음 역시 깊어졌다. 나는 고품 무사의 전투를 몸소 체험했고, 그들의 힘의 운용을 체험했다. 모두 내게 아주 귀한 체험이었지…….’

그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 그는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면서 한참을 머릿속으로 소화한 뒤 직업적 습관에 기인하여 ‘혈도 삼천리 사건’을 복기하였다.

“진북왕이 성안의 백성을 도살한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 혈단을 정제하여 대원만에 충격을 가한 뒤 왕비의 영온을 흡수하여 정식으로 2품을 밟는다. 둘, 포석을 깔아 길리지고와 촉구를 사냥한다. 진국검이 나타났다는 말은, 진북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했다는 사실을 원경제가 낱낱이 알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 일에 개입까지 했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고선 진국검이 초주에 나타날 리가 없다.”

허칠안은 당시에 진국검이 나타난 걸 보고 더할 나위 없이 놀랐고 분노했다. 그저 그때 그는 적 앞에 있었기에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을 따름이었다.

“원경제 이 개 같은 황제…….”

허칠안은 탁한 숨을 내뱉더니 열심히 분노를 억제하려 했다.

“개 같은 황제가 이 일을 알고 있다. 음, 오히려 나의 의혹이 풀렸다. 경성 밖에서 죽은 그 협객은 원경제가 사람을 보내 처리한 것이다. 그만이 경성 주변에 빈틈없는 경계망을 설치하여 목표 인물을 선별하고 조사할 수 있다. 이렇게 보니 왜 내게 수석 수사관을 하라고 했는지, 왜 순무를 안배하지 않았는지 이 모든 게 설명된다…….

사절단은 본래 적당히 일을 얼버무렸으면 됐다. 권력이 막강한 순무를 안배하여 진북왕을 상호 견제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부득이한 상황에 몰렸을 때는 진북왕이 사람을 죽여 멸구하면 된다. 그리고 사절단에게는 또 하나의 역할이 있다. 바로 왕비를 북경으로 호송하는 것이었다. 비록 개 같은 황제가 사람 구실은 못 하지만, 약삭빠르군. 하지만 어쨌거나 그가 진북왕을 너무 믿고, 용인했다는 생각이 든다.”

허칠안은 몇 초 침음하더니 계속해서 생각의 흐름을 따라갔다.

“원경제가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의 진상을 아는데 위 공은 알까? 내가 그의 잔혼에게 준 피드백으로 보면 아마 모를 것이다……. 악, 위 공처럼 약삭빠른 사람은 드러내는 반응이 진실한 반응이 아니라 그가 내게 보여주고 싶은 반응일지도 모른다. 가령 위 공이 이 일을 알고 있다면 그는 어떻게 포석을 깐 것일까? 그의 성격으로는 대봉에 2품이 배출된다고 해도 절대 진북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하는 걸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나는 어디에 위 공의 흔적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음, 역으로 추리해보자. 가령 위 공이 이 일을 알고 있다면, 그의 성격으로는 틀림없이 막을 것이다. 하지만 진북왕은 3품 무사이자 대봉 제일의 고수인데 어떻게 그를 막겠는가? 확실히 야경꾼에는 이런 고수가 없다. 있었으면 방금 내가 진북왕을 막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진북왕을 어떻게 저지할까?”

허칠안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구호탄랑(*驅虎呑狼: 호랑이를 부려 늑대를 없앤다).

북경에서 진북왕의 호사를 망칠 수 있는 존재는 길리지고와 촉구뿐이다. 허칠안은 자신이 그 입장에 있었다면, 진북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한 지점을 그의 적에게 누설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 공은 백성을 대량 학살한 장소가 초주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고, 갑자기 불합리한 디테일을 떠올렸다.

경성을 떠나기 전에 위연이 그에게 말한 적 있었다. 첩자가 모두 동북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북경의 정보가 뒤처져, 그는 혈도 삼천리 사건을 절대로 알 수가 없었다고 말이다.

“위 공의 지혜라면, 설령 첩자를 차출하여 이동시켰다고 해도 북경에서 전부 철수했을 리는 없다. 분명 고정적이고 중요한 몇몇 도시에는 바둑돌을 몇 알 남겨두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그는 위연이 아니지.”

그는 위연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또 다른 방면의 증거를 찾았다.

허칠안은 이 생각이 깊어지면서 사고 흐름이 점점 뚜렷하게 정리되었다.

“위 공이 특별히 나를 찾아와 대화를 나누며 어떻게 사건을 조사할 계획인지 물었다. 나는 그에게 도중에 사절단에서 벗어나 홀로 북상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뒤 그는 채아 낭자의 연락책을 주었다. 내가 채아를 만나자마자 즉시 그녀의 입에서 서구군의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이 모든 게 너무 지나칠 정도로 순조로웠다. 그리고 서구군과 초주는 마침 등지고 있었다. 이건 위 공이 일부러 내게 거짓 정보를 흘려 나를 서쪽으로 내쫓았음을 의미하는 건가? 그는 내가 이 일에 개입하는 걸 원치 않았다. 만약 이러하다면, 사실 그는 북경의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던 것이다.”

허칠안은 순간 두피가 저리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감격스러웠지만 또 본능적으로는 이 약삭빠른 사람이 꺼려졌다.

“왕비를 데리고 사절단과 합류하면 다시 삼황현을 다녀와야겠다.”

* * *

이튿날 오전, 허칠안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잘생긴 얼굴을 들고 객잔으로 들어가 왕비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두 차례 울렸으나 방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허칠안은 귀를 기울인 끝에, 고르면서도 가뿐한 숨소리를 포착했다.

‘태양이 중천에 떴는데 아직까지 자고 있다니. 이 여인은 얼마나 속이 없는 거야…….’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손바닥으로 방문을 눌렀다. 기기로 미니 빗장이 저절로 튕기면서 열렸다.

* * *

허칠안이 방안에 들어서서 보니 내부는 깨끗하고 깔끔했다. 굳게 닫혀 있었던 방문 너머의 원형 탁자에는 찻잔 네 개가 엎어져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바로 놓여 있었는데 찻잔 안에는 마시던 차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방문을 마주한 병풍 위에는 비단 치마, 홑옷 그리고 매화가 수 놓인 옅은 분홍색의 배두렁이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아마 어젯밤에 목욕하고, 씻자마자 침상 위에 누워 쿨쿨 잠을 자느라 옷과 휴대 물품을 미처 정리할 겨를이 없었던 듯했다.

허칠안은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으나 지서 파편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법보와의 감지를 따라, 결국에는 지서 파편이 책상 모서리를 받치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좀 그녀에게 뭐가 채찍질인지 알게 해주고 싶은걸…….’

허칠안은 마음 아파하며 지서 파편을 품속으로 거두었다.

이 여인은 이 옥석경의 귀중함을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그 안에는 허칠안의 평생 저축이 간직되어 있었다.

그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고개를 돌려 침상 위에 몸을 옆으로 기울인 채 꿀잠을 자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잠자는 자세가 아주 우아하여, 조금은 왕비의 기질이 엿보였다.

깨어날 때의 상황을 한 마디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었다.

1분 1초 시간이 흘렀고 화장대 옆에는 물시계가 있었다. 침상 위의 여인은 때로는 중얼거리다가 때로는 분수에 만족하지 않고 몸을 몇 차례 뒤틀었다. 그녀는 무슨 꿈이라도 꿨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다리를 뻗으며 저항했다.

그녀는 좀처럼 편안히 자지 못했다.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 사시 초(9:00)가 되었다. 그녀는 마침내 옹알이하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허칠안은 왕비의 요염한 몸이 갑자기 경직되었다가 천천히 느슨하게 풀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찻잔을 받치고 한입 마시더니 그녀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깨어났어요?”

왕비가 그를 본 순간 그녀의 눈에는 어렴풋이 놀라움과 기쁨이 스쳤다. 그녀는 일어나서 일부러 그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어떻게 돌아왔지? 허, 깨달은 게지? 진북왕은 3품이고, 대봉 전체에 그보다 더 뛰어난 자는 없다고. 자네가 이익을 좇고 해를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훌륭해.”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약간은 부드러운 어조로 바꾸어 말했다.

“이 일은 조정에게 맡겨 처리하면 되네. 자네가 위풍을 떨 필요 없어.”

왕비는 어젯밤에 몸을 엎치락뒤치락하느라 잠에 들기 힘들었다. 이 모든 건 당연히 허칠안이 진북왕에게 죽임당할까 봐 걱정하는 그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허칠안이 담담하게 말했다.

“진북왕은 이미 죽었습니다.”

왕비는 조각상처럼 그곳에 멍하니 있었다.

“나, 나는 믿지 않네…….”

그녀는 허칠안을 한사코 주시했다.

“농담할 가치가 있는 일도 아닌데요.”

허칠안은 불쾌해했다.

“버젓한 친왕이 죽임당했습니다. 이렇게 큰일로 제가 마마를 속여서 뭐 합니까?”

왕비는 멍하니 그를 보면서 온몸을 떨었다.

“정, 정말인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비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이윽고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선이 끊어진 진주처럼 눈물방울이 주르륵 떨어졌다.

그녀는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에 훌쩍훌쩍 흐느꼈다.

허칠안은 자신과 그녀가 그렇게 친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대봉 제일 미인이 엉엉엉 우는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방관했다.

허칠안은 그녀가 다 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늦게 총괄적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마마는 이미 자유입니다. 구주는 크니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가세요. 문도(*lol 게임 캐릭터 중 하나)처럼 말이에요.”

그녀는 하염없이 훌쩍거리며 눈물을 훔쳤고, 질문도 잊지 않았다.

“문도가 누군가.”

허칠안은 이렇게 시시한 문제에 대꾸하기 귀찮았다.

왕비는 아침 식사를 먹을 때 기분이 회복되어서, 두 사람만 있는 방안에서 살금살금 말했다.

“자네가 죽였는가?”

허칠안이 고개를 저었다.

“진북왕이 그렇게 강한데 제가 어떻게 그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신비로운 고수가 나타나더니 그 자리에서 그를 베어 죽였습니다. 이 일은 사절단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으니 나중에 알 수 있을 겁니다.”

왕비는 ‘오’하고 소리를 내면서 허칠안이 그를 죽였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총명하고 이지적인 여인이었으므로, 허 은라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경성의 무지한 소녀들과는 달랐다.

진북왕은 성정이 포악하고 무정하지만, 수련 경지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지금의 허칠안보다 훨씬 훨씬 더 뛰어났다.

그녀는 총유병(蔥油餠)을 두 손으로 받친 채 먹느라 작은 손이 기름기로 반들반들했다. 그녀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허칠안 머리 위를 배회했다.

“자네 머리카락이 어째서 다시 자랐지?”

“저는 원래 머리카락이 있었어요.”

“없었네.”

“있었다고요.”

“자네…….”

왕비는 허칠안한테 젓가락으로 손등을 한 대 찰싹 맞더니 말귀를 잘 알아듣고 말투를 바꿨다.

“자네 있었네.”

허칠안의 머리카락이 신수 승려의 강대함 덕분에 드디어 다시 자라났다. 3품 무사는 다리가 절단되어도 재생할 수 있는데 하물며 머리카락은 어떠하겠는가.

이는 허칠안을 아주 흐뭇하게 하는 일이었다. 더 흐뭇한 부분은 자신이 머리카락을 줄곧 잘 가꿔왔단 점이었다. 담비 모피 모자를 쓰고 있어서 다른 사람은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상황을 알지 못했다.

‘앞으로 밖에서 계속 담비 모피 모자를 써야겠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벗을 수 있겠지……. 나는 여전히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소년랑이라고.’

허칠안은 즐거운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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