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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93화 (490/712)

493화. 복기(復碁) (1)

대리사승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 도사님, 일깨워 주어 고맙소. 만약 도사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자식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이오. 사절단이 경성으로 돌아간 뒤 내가 상소문을 올려 탄핵하겠소. 지명 수배를 내려 이 자식을 체포하겠소.”

류 어사는 매우 흥분했다.

“맞소. 궐영수는 회왕을 위해 사력을 다했던 놈이오. 회왕이 암암리에 초주성을 기만하고자 했을 때 이 자식의 도움이 적지 않았을 것이오. 일깨워 주어 고맙소. 본관의 절을 받으시오.”

‘이묘진은 역시나 비연 여협객답게 능력이 출중하다. 그녀는 아마 혈도 삼천리 사건이나 오랑캐가 변방을 침입했다는 얘기를 듣고 먼 길을 달려 초주로 온 것일 테다……. 그녀와 비교했을 때 우리는 모든 게 드러난 지금에서야 진상을 알게 되었다. 정말 부끄럽다…….’

사절단 사람들은 감격하면서도 내심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사절단은 사람 수가 아주 많았다. 4품 금라 양연이 있었고 경험이 풍부한 형부 총포두가 있었다. 더욱이 전기적인 인물인 허칠안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초주에 온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진 포두가 읍하였다.

“이 도사님, 궐영수는 개국 공신이 된 후에 일등 공작이자 초주 도지휘사를 겸하여 지위가 높고 권력이 세오. 설령 경성에서라고 해도 직위와 신분이 그보다 높은 자는 손꼽을 정도요. 진북왕이 성안의 백성을 학살했다는 사실은 수만의 병사가 지켜보았기에 증거가 될 수 있소. 하지만 궐영수는……. 이 도사님께서 명확하게 알려주시오. 이 사건을 어떻게 밝혀냈소?”

대리사승, 어사 둘이 잇따라 이묘진을 쳐다보았다.

양연은 성격이 담박하여 다른 일에는 열정이 부족한 편이었지만, 그 역시 보기 드물게 지식욕을 드러냈다.

빈도는 북경에서 발생한 혈도 삼천리 사건을 안 후, 기지를 발휘하여 비연 여협객으로 변신한 뒤 암암리에 초주를 방문했다. 빈도는 그렇게 갖은 고생을 겪은 뒤 드디어 운 좋게 화를 면한 포정사 정흥회를 찾았다.

누가 알았겠는가. 바로 이때, 진북왕의 밀정이 갑자기 병사를 이끌고 쳐들어와 빈도와 정 포정사를 죽여 멸구하고자 했다. 알고 보니 적이 이미 암암리에 뒤따라와 죽치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빈도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빈도는 일당백으로 마치 허칠안이 운주에 있을 때처럼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에는 진북왕 밀정을 물리쳤다. 그 결과 빈도는 정 포정사의 입에서 백성 대량 학살에 관한 구체적인 경위를 알아냈다.

이번에는 빈도가 한 수 위였다!

이상 이묘진의 속마음이었다. 그녀는 이 말을 아주 입 밖으로 꺼내고 싶었지만, 허칠안이 홀로 수만의 반란군을 막아섰다가 본 모습 탓에 지서 파편 소지자들을 만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지난날이 마음속 교훈으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운주에 있을 때 순간 득의만면하여 허칠안 앞에서 ‘본 장군은 사건 조사에 뛰어나다’라고 말했던 수치스러운 경험이 있었다.

이묘진은 추리 수사에 더할 나위 없이 열정적인 사람이라, 뽐내고 싶은 욕구를 애써 참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 모든 건 사실 허 은라의 공로입니다.”

‘허 은라?!’

사절단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이게 허칠안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묘진이 말했다.

“허칠안이 제게 사건을 조사하러 초주에 가라고 한 겁니다.”

‘알고 보니 그랬군…….’

대리사승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었다.

“이 도사님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오. 비록 도문 천종이 천인합일(天人合一)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수련한다고 말하지만, 공명과 관록을 개의치 않는 건 도사님의 성품이오. 우리는 결코 이 때문에 도사님의 공헌을 등한시할 수 없소. 공로를 모두 허 은라에게 돌리지 않아도 되오.”

류 어사는 이 말을 듣더니 덧붙이며 말했다.

“사절단은 반드시 조정에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여 논공행상을 청할 것이오.”

허 은라가 천종 성녀에게 사건을 조사하러 초주에 오라고 요청했다는 게 성녀가 초주에서 한 노력이 모두 허 은라의 공로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다.

‘지식인은 말을 참 듣기 좋게 해…….’

이묘진은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좀 부끄러웠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 뒤에 본인이 초주에 와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단서를 찾았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소이다…….”

사절단 사람들은 아주 진지하게 들었다. 그들은 이 사건이 조사하기 어려운 일임을 아주 잘 알았기에, 이묘진이 어떻게 그 속에서 돌파구를 찾아 백성 대량 학살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는지 매우 궁금했다.

“하지만 사실 모든 일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요. 혈도 삼천리를 폭로한 그 시체는 빈도가 경성 밖 산길에서 발견한 거요. 일개 필부가 어떠한 증거도 없이 어떻게 감히 경성에 고발하러 왔겠습니까. 배후에 다른 자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요. 그자는 당보와 공문을 보내지 않고 전언할 강호 인사를 택했습니다.

빈도가 짐작하기에 그는 분명히 낡은 수법을 되풀이했을 거요. 그래서 빈도는 비연 여협객이라는 이름으로 초주를 다니면서 오랑캐를 죽이고 악덕 상인을 응징하여 백성을 구제하였소. 허, 빈도가 강호에서 약간 명성을 날려 빈도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적지 않고, 빈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더 많지요……. 아니나 다를까 며칠도 안 돼 누군가 암암리에 빈도를 찾아와 제가 나서서 도울 수 있길 바란다고 하더이다.”

‘훌륭하다!’

사절단 사람들은 마음 깊이 탄복하면서 큰 소리로 칭찬했다.

“이 도사님은 기지가 뛰어나오. 뜻밖에도 이런 시각에서 사건 해결의 단서를 찾아내다니. 저희는 실로 감명받았소!”

진 포두가 부끄러움에 진땀을 흘렸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본관은 관아에서 정말 헛일을 했나 보오. 부끄럽소, 부끄럽소.”

류 어사는 감탄했다.

“나는 본래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을지 없을지는 결국에 허 은라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도사님의 능력이 한 수 위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소.”

문관들은 칭찬의 말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반은 진심이었지만, 반은 관리 사회의 인사치레가 습관이 되어 하는 소리였다.

이묘진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가서는, 조금 의기양양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런 뒤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빈도가 겸손한 게 아니라 사실 이것들 모두 허칠안이 빈도에게 가르쳐준 겁니다. 저희는 암암리에 줄곧 연락을 해 왔습니다.”

웃음소리, 찬미하는 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마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듯이 사절단 사람들은 표정이 굳어서 망연자실하게 천종 성녀를 쳐다보았다.

왜 이 이묘진은 가장 중요한 일을 맨 마지막에 남겨 뒀다가 얘기하지?

이는 그녀의 무슨 악취미일까?

좀 난처했다…….

‘어쩐지 허 은라가 도중에 사절단을 벗어나 남몰래 북경으로 간 점이 이상하더라니, 처음부터 그는 일찌감치 조력자를 찾아 놓았나 보군. 폐하와 제공들이 그를 수석 수사관으로 위임했을 때, 그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형부 진 포두는 허칠안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손 상서는 그의 손에서 여러 차례 굴복당했다. 그는 화가 나서 발광했으나 손쓸 길이 없었다. 도리가 없었던 게 아니었다.

‘본관이 경솔했다. 세은 사건, 상백 사건, 운주 사건 및 이후의 복비 사건 건건이 모두 허 은라가 경험이 풍부하고, 생각이 섬세한 사람임을 의미한다. 깔보면 안 된다.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는 드디어 그가 곤두박질쳤다고 생각했었다…….’

대리사승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건 허 은라의 계획에 있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다.’

‘역시 허 대인답군…….’

정신이 번쩍 든 백부장 진효는 우러러보는 기색을 보였다.

금군들 역시 웃기 시작했고 영광스럽다고 생각했다.

양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는데, 전혀 의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뒤이어 이묘진은 정흥회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사절단에게 알렸다. 류 어사는 더할 나위 없이 흥분하였다. 인적 증거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그와 정흥회는 어느 정도 친분이 있기도 했다. 때문에 류 어사는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알고는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허칠안은 아마 아직 초주성으로 오는 길일 겁니다. 제가 검을 부리는 게 그보다 훨씬 빠르니까요.”

이묘진은 한 마디 내뱉더니 다시 물었다.

“그 신비로운 고수는 어느 쪽으로 갔나요?”

양연은 돌이켜보더니 갑자기 놀랐다.

“그가 떠난 방향이 오랑캐가 도망친 방향과 일치하오.”

대리사승은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불가사의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호흡이 갑자기 가빠지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류 어사의 반응도 느리지는 않았다.

“설마 그가 길리지고를 추격하러 간 건 아니겠지? 그는 북경 세력이 균형을 잃을까 봐 두려운 것이오. 이 전투 후, 초주 백성이 오랑캐의 침략을 받아도 상호 견제할 자가 없을까 봐 두려운 것이오.”

양연과 이묘진이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말했다.

“저희 보러 가지요.”

이묘진이 덧붙여 말했다.

“타세요.”

양연은 검등에 가볍게 올라타 뒷짐을 지고 섰다.

4품 무사는 허공을 가로질러 비행할 수 있었지만, 속도와 고도 그리고 지구력 모두 도문의 어검술에 비할 수 없었다. 이 간극은 굳이 형용하자면 대략 오토바이와 고속철도의 차이에 비견되는 수준이었다.

한 명이 지면에서 질주하는 사람이라면, 한 명은 하늘에서 비행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사는 또 한 수 더 빨라야 했다. 전제는 끝없이 넓은 평원에, 길을 막는 산봉우리와 하류가 없어야 했다.

이묘진과 양연은 북으로 이각 정도 비행하였을 때, 길리지고를 보았다. 그들은 길리지고를 발견하기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상대방이 관도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투 이후, 오랑캐 최강자는 이미 앙상한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

그의 머리는 무참하게 꺾였으며, 이 상흔은 척추뼈 반 토막까지 이어져 길옆에 내던져져 있었다.

이묘진은 멈추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북경 전투로 3품 무사 둘이 몰락했다. 이 일은 틀림없이 구주에 두루 퍼져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이야.”

양연은 다소 얼떨떨했다. 그가 자나 깨나 도달하고 싶었던 경지가, 더 높은 차원의 강자 눈에는 이 정도일 뿐이었다.

3품은 어느 체계든 어느 세력이든 지도자급의 인물이었다.

* * *

양연은 검등에서 뛰어내려 척추뼈를 잡고 청안부 우두머리의 머리를 든 채 주성으로 돌아갔다.

그가 머리를 초주성으로 가지고 돌아가 성벽 위에 걸었을 때, 이만 명의 병사가 묵묵히 고개를 젖히고 이 광경을 쳐다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20년간 초주를 위협했던 오랑캐 강자가 드디어 몰락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의문이 스쳤다.

그 신비로운 강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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