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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92화 (489/712)

492화. 읍하다

변방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마음속의 어스름한 기운이 걷히자 생각이 통달하고 양심에 물어 부끄러운 바가 없다는 생각만 했다.

이묘진이 혈도 삼천리 사건을 발견했다. 처음에 허칠안은 속으로 무겁다고만 생각하면서 그렇게까지 깊은 인상을 받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먼 하늘 끝의 일이지 않은가.

그러다가 그는 명을 받들고 초주로 가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책임을 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차근차근 진실을 파헤치면서 진북왕의 만행을 깨달았다. 그날 밤, 포정사 정흥회의 기억을 보고 그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반드시 진북왕의 계략을 부숴 그를 저지하고 응징할 거라고 말이다.

이는 38만의 무고한 생명을 위해, 그리고 그 자신의 신념을 위한 결정이었다. 만약 그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울분을 참으면서 위축되고 나아가지 못하면, 이 일은 평생의 응어리가 될 터였다.

그는 세상일에 관여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눈앞의 일은 관여할 수 있었다.

이만여 명의 북경 병사와 수백 명의 강호 무사들은 등 뒤에 스물네 개의 팔이 자라난 그 모습을 성벽 위에서 보더니, 날뛰던 기운을 거두고 아래쪽 초주성을 향해 깊이 읍하였다.

류 어사는 이 광경을 보더니 갑자기 눈물이 마구 흘렀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대리사승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진지하고 신중하게 의관을 정리하고 지식인의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공중의 그 사람을 향해 읍하였다.

양연은 먼 곳을 깊이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진 포두가 주먹을 쥐었다.

백부장 진효가 주먹을 쥐었다.

이만여 명의 병사가 일제히 주먹을 쥐었다.

그는 성안에서 죽은 백성들에게 절하고, 성벽 위의 이만여 명은 그에게 절했다.

* * *

‘진북왕이 죽은 뒤, 북경의 세력이 균형을 잃을 테니 제가 3품 하나를 더 죽여야 합니다…….’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신수 대사와 소통했다.

“양주향의 시간이네……. 나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 것이야……. 누구를 죽일지 생각했는가?”

신수 승려의 목소리에서 더할 나위 없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방금 만약 진북왕의 생명 정수를 흡수했다면, 신수는 이때쯤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팔 24개 법상의 전투력은 2품에 달했으나 신수는 그저 팔 하나였기에 잠재된 에너지를 많이 짜내야 했다. 이 법상의 비법은 그의 팔뚝이 시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길리지고입니다.”

허칠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

북방 요족의 영토 대부분은 무신교와 인접해 있었기에 양측은 갈등이 아주 격렬했다. 촉구는 무신교와 뒤엉켜 상호 견제하도록 남겨두면 되었다.

길리지고는 반드시 죽어야 했다.

요족이 대봉 북경에 가장 큰 해를 입히기 때문이었다.

선택한 후, 신수 승려는 허공을 가로질러 기운을 따라 길리지고를 추적했다.

* * *

구름 위,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의 술사는 배를 끌어안고 아주 통쾌하게 웃었다.

“진북왕이 죽었다. 드디어 죽었어. 아주 잘 죽었어.”

백의 술사는 손뼉을 치며 쾌재를 불렀다.

이때 은방울 같은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흰 치마의 여인이 구름을 밟고 허리를 비틀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수줍어하는 자태로 얌전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외모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마름모꼴의 붉은 입술은 매혹적이고 윤기가 흘렀다. 사람을 꾀는 요염한 눈으로 좌우를 둘러보면 눈부신 광채가 빛났다. 코는 오뚝하고 눈썹은 길고 곧았다.

이렇게 정교한 이목구비가 갸름한 얼굴에 그려져 있으니 ‘홍안화수(*紅顔禍水: 미녀는 화의 근원이다)’라는 네 글자가 절로 떠올랐다.

또한 그녀는 허리띠로 가는 허리를 부각시키고 가슴을 풍만하게 받쳐서, 신체 비율이 아주 좋아 보였다.

설령 가장 까다로운 남자라고 해도 그녀에게서 흠을 찾을 수는 없을 듯했다.

“진북왕을 죽인 게 자네 계략의 일환인가?”

흰 치마의 여인이 웃으며 물었다.

“알고 싶나?”

백의 술사는 웃음을 거두고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차라리 우리 정보를 교환하는 게 낫겠군……. 자네 그자를 아는가?”

흰 치마의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백의 술사가 침음했다.

“그가 바로 불문 사절단이 찾으려는 그 마승(魔僧)이네.”

“그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지.”

“자네는 그와 무슨 관계지?”

흰 치마의 여인이 간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혀보게.”

백의 술사는 대답하지 않고 차분하고 느긋하게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를 아주 존경하네.”

흰 치마의 여인이 술사를 쳐다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자네 차례야.”

백의 술사는 뒷짐 지고 서서 만 리 강산을 굽어보았다. 그는 모든 걸 다 통제하고 있다는 듯이, 자신에 찬 말투로 천천히 말했다.

“나는 자네에게 두 가지 일에 대해서만 알려주지. 첫째, 내가 원경제를 도를 닦으라고 꾀어냈네. 둘째, 진북왕이 죽으면 감정이 더는 굽이치는 대세를 막기 어려울 걸세. 다른 연유와 세부 사항에 관해서라면 말하지 않겠어.”

이때 두 사람은 동시에 시선을 먼 곳으로 향했다. 한 사람 형체가 검을 부리며 다가오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보고도 못 본 체했다.

“이번 세대의 천종 성녀는 자질이 훌륭해. 3품, 심지어는 2품에 충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어.”

흰 치마의 여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전혀 숨기지 않고, 평가했다.

백의 술사는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내게 있어 앞으로 2년 안에 가장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성대한 일이 바로 천인 간의 전쟁이지.”

* * *

허칠안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성벽 위에서는 서서히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마지막에 하류로 모여들어 떠들썩하게 변했다.

진북왕이 죽고 초주성은 폐허가 되었고 북경에는 지도자가 사라졌다. 살아남은 이만여 명의 병사들은 거대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양연은 병사들의 이상을 알아차리고, 단전에 기를 모아 소리쳤다.

“모든 장병들은 명령을 듣거라. 본관은 금라 양연으로 이번 사절단의 수석 수사관이다. 오늘 진북왕이 이미 죽었으니 본관이 초주성의 모든 군정 업무를 접수한다. 속히 성벽 위 병사들은 성밖에 집결하라.”

병사들에게 갑자기 지주가 생겼다. 그들은 부서진 담을 질서정연하게 떠나 성 밖의 공터에 모였다.

양연은 젊었을 때 위연 뒤를 따라 산해관전역에 참전했다. 그래도 그는 군대를 이끈 경험이 있었기에 아주 빠르게 장병들을 다독이고 질서를 유지했다.

마침 이때, 이묘진이 검을 부리며 다가와 초주성 상공에 멈췄다.

이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몇 각만 더 지나면 완전이 어두워질 참이었다.

그녀는 폐허가 되어 상처 입은 사람들뿐인 초주성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초주성이 이미 함락되었군. 이 형세를 보아하니 방금 성안에서 고품 무사의 전투가 일어났네.’

이묘진은 폐허를 한번 대충 훑은 뒤 돌아서서 성밖에 모인 군대를 바라보았다.

‘이건 불합리해…….’

이 장군은 군 생활 경험이 풍부한 만큼, 단번에 상황이 이상함을 판단했다. 이치대로라면 이렇게 격렬한 전투는 반드시 처참한 죽음이 동반되어야했다.

이렇게 많은 병사가 생존할 리 없었다.

“양 금라, 초주성에 무슨 일이 일어났소? 진북왕……은?”

이묘진은 비검을 부리며 양연 등과 멀지 않은 곳의 저공에 떠 있었다.

양연은 진작에 그녀를 보았다. 두 사람은 운주에서 비적을 토벌할 때 접촉한 적이 있었기에 굳이 따지면 친분이 있는 셈이었다. 안면 신경 마비 무사는 융통성 없는 성격이라 아는 사람을 만나도 기껏해야 눈빛을 주고받을 때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그는 일부러 소리를 내어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대리사승 등은 이 말을 듣더니 표정이 이상해졌다.

양연이 설명했다.

“진북왕이 성안의 백성을 학살하고 죽임당했소.”

……이묘진은 굳은 얼굴로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양연은 고개를 끄덕여 사건이 이렇게 됐다는 의미를 나타냈다.

‘이게 무슨 설명이냐? 이거 사람 감질나게 하는 거 아니야? 네 성격이 원래 이렇다는 걸 알지 못했다면, 지금쯤 소매를 걷어붙이고 널 때렸을 거라고. 아, 나는 당장 4품 전봉의 무사를 이길 수 없지. 그럼 괜찮아…….’

이묘진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대리사승은 기침하더니 덧붙여 말했다.

“해 질 무렵, 북방 요족과 오랑캐 두 종족의 대군이 손을 잡고 성을 공격했소. 청안부 우두머리 길리지고, 요족 우두머리 촉구가 혈단을 쟁취하기 위해 왔지. 그리고 혈단은 진북왕이 초주성 38만 인구를 학살한 후 정제해서 만든 것이오. 진북왕은 자신의 사욕을 위해 뜻밖에도 성 전체를 모조리 도살하였소.”

대리사승은 여기까지 말하더니 비통한 기색을 보인 뒤, 조금도 놀라지 않고 침착한 얼굴을 한 이묘진을 보았다.

“그대는 개의치 않아 보이오?”

대리사승은 조금 화가 났다.

“본 장군은 일찍이 알고 있었소이다. 하지만 뒷일은 모르니 계속 말씀해주시지요.”

이묘진이 말했다.

“……좋소.”

대리사승은 목청을 가다듬고 성안에서 발생한 전투와 참전한 고수의 수 등 세부 사항을 이묘진에게 꼼꼼히 알려 주었다.

천종 성녀는 늠름하고 씩씩한 모습을 하고, 장군 차림을 한 채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녀도 진북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무신교 고품 주술사의 개입 역시 그녀를 놀라게 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허칠안이 이미 진북왕의 배후에서 다른 체계의 고품이 돕고 있다고 분석했었기에 지금 그녀는 ‘역시나 그랬구나’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묘진은 이 전투에 사도에 빠진 지종 도수, 진국검, 신비로운 여인 그리고 장 전체를 쓸어버린 고수가 개입했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설마 진북왕이 자신의 사욕을 위해 성안의 백성을 학살한 뒤 요족과 오랑캐 두 족속의 반격을 끌어내려 했나? 왜 이 고수들이 개입했을까? 관계가 너무 얽히고설켰다. 냉정하게 분석해봐야겠다. 아니, 나는 허칠안이 필요하다…….’

이묘진은 좀 부끄러운 생각을 했다.

“이 도사님은 진북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했는지는 어떻게 알았소?”

류 어사는 생각이 섬세한 지식인답게 공수하며 물었다.

그가 이를 일깨워 주자 이묘진은 버들눈썹을 치켜세우고, 비검을 밟은 채 하늘로 올라가 이만 병사 위에서 선회하며 소리쳤다.

“양 금라, 즉시 도지휘사, 호국공 궐영수를 체포하시오. 진북왕은 성안의 백성을 학살한 원흉이고, 그는 진북왕의 도살용 칼이오. 그날 바로 이 자가 군대를 이끌고 백성을 대량 학살하였소.”

“뭣이라?!”

양연뿐만 아니라 대리사승 등의 안색도 변했다.

그들은 더 자세하게 물을 겨를도 없이 즉시 궐영수를 수색하는 이묘진에게 협조했다. 하지만 그들이 군대를 다 둘러보고, 성지의 폐허를 두루 찾아보아도 궐영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도망친 뒤였다.

어쩌면 오랑캐가 뿔뿔이 흩어진 틈을 타 같이 빠져나갔거나 진북왕이 죽은 걸 목격한 후 슬그머니 도망쳤을지도 몰랐다.

당시 모든 사람의 시선이 전쟁터를 향해 있었다. 궐영수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걸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그를 유달리 주목했겠는가?

궐영수뿐만 아니라 진북왕의 밀정 역시 진작에 잠적하였다.

사람들은 분노에 가득 찼지만 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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