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화. 복수자 (4)
다른 한편, ‘새까만 법상’의 잘린 두 팔이 날아오르더니 절단된 면에 이어져 빈틈없이 봉합되었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주먹 만 개다.”
진북왕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기운이 다소 떨어졌다. 그는 손을 들고 말했다.
“죽어라!”
그의 손바닥은 새까만 법상의 피로 물든 상태였다. 이 주살술은 본래 새까만 법상에게 중상을 입혔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까만 법상 뒤의 마염 고리가 사리(*舍利: 석가모니나 성자의 유골)를 본떠 온화하면서도 짙은 오광을 내뿜었기 때문이다.
불문의 사리는 도문의 금단과 마찬가지로 만사불침(万邪不侵)의 효능이 있었다.
새까만 법상은 적진으로 돌격하였다. 발소리가 마치 지진 같았다.
진북왕은 서서히 허리를 숙이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다섯 손가락이 한데 합쳐지고, 공기가 묵직한 폭발음을 내더니 그가 공기를 쥐어 터뜨렸다. 그 힘의 강대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포악한 권의가 다시 나타나자 하늘에 소용돌이 형태의 구름층이 갑자기 산산이 흩어졌다.
열두 쌍의 팔이 갑자기 하나가 되어 ‘허칠안’의 오른팔에 녹아들었다. 그는 마찬가지로 주먹을 날리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두 주먹이 맞부딪치자 기파가 잔잔하게 확산되는 게 아니라 한순간에 초주성 전체를 휩쓸었다.
태풍이 국경을 넘는 듯, 폐허를 날리고 평지 위의 모든 걸 날려 버리면서 근처 몇 리가 전부 깨끗이 비워졌다. 폐허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진북왕의 주먹이 조금씩 파열되면서 피와 살이 터졌다.
그는 고통스럽게 포효하기 시작했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새까만 법상이 발걸음을 내디뎌 뒤를 따랐고, 열두 쌍의 주먹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진북왕은 가슴과 얼굴을 맞으면서 끊임없이 뒤로 밀렸다.
퍽퍽퍽!
주먹이 이렇게까지 빽빽하면 보통 사람은 이를 육안으로 포착할 수 없었다. 각질 갑옷을 내리치면서, 복구하면 또 때려 부수고 복구하면 또 때려 부쉈다.
“가소로운가? 평범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사력을 다하는 게 우스운가?”
퍽퍽퍽…….
“백성이 없으면 무슨 친왕 노릇을 한단 말이냐! 너는 누구의 친왕인가!”
퍽퍽퍽…….
5만 주먹, 10만 주먹, 20만 주먹, 30만 주먹……. 진북왕의 몸이 계속해서 파열되었고 계속해서 복구하였다. 맨 처음에 그는 반격할 수 있었지만, 입은 상처가 점점 많아질수록 당해낼 힘이 점점 사라졌다.
38만 주먹!
허칠안은 주먹을 다 휘두른 뒤 열두 쌍 팔을 내밀고, 진북왕의 머리, 팔, 허리, 두 다리를 잡고 높이 치켜올렸다.
이 순간, 허칠안은 적막한 성벽 위를 훑었다. 그는 상처 입은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를 훑어보니 백성을 대량 학살한 장면이 다시금 떠올랐다. 귓가에는 마치 38만 원혼의 통곡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무엇이 강자인가?
평범한 사람을 약자로 간주하는 이가 강자인가?
그는 운록서원으로 돌아간 듯, 아성전으로 돌아간 듯 붓을 쥐고 비석에 비뚤비뚤하게 네 마디를 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천지에 감사한 마음을 확립하고, 백성에게 좇아야 할 도리를 가르치고, 성현의 학문을 계승하고, 후세를 위해 태평성대를 연다.>
“그를 죽여라!”
갑자기 성벽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전해졌다. 한 젊은 강호 인사가 돌출된 성가퀴 위에 서서 흉악한 얼굴로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그를 죽여라!”
한 병사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뒤이어 옆에 있는 검은 장포의 밀정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병사를 주시했다.
그 병사는 겁에 질려 고개를 숙였다.
검은 장포의 밀정이 막 입을 떼 협박하려던 참에 이내 또 다른 병사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를 죽여라!”
이 순간, 화성이 초원에 떨어진 듯 맹렬한 기세가 타올랐다.
점점 더 많은 병사들이 응했다.
“그를 죽여라!”
“그를 죽여라!”
“…….”
허칠안은 어렴풋이 성벽 위, 하늘, 지면 위에 나타난 38만의 원혼을 본 듯했다. 그들은 자신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모든 마음의 소리를 세 글자로 함축시켰다. 죽여라!
열두 쌍의 팔이 동시에 힘을 내 세차게 찢었다.
그는 진북왕을 갈기갈기 찢었다.
붉은 피는 비가 되어 억수같이 쏟아졌다.
새까만 법상은 지옥에서 돌아온 복수자처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열 장(丈) 높이의 몸뚱어리가 갈기갈기 찢겼다. 그의 머리는 진북왕이 되었으며 몸통은 촉구가, 두 팔은 고품 주술사가 되었다. 그리고 두 다리는 길리지고가 되었다.
네 명의 고품 강자 중에 성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거대한 구렁이 촉구는 백 장(丈) 길이의 꼬리가 한 토막 잘렸다. 길리지고는 왼쪽 절반 몸통이 산산이 찢기는 바람에 창자와 장기가 밖에 걸려 있었다.
고품 주술사 머리 위의 전혼 허영이 그대로 사라지더니 그의 하반신이 자취를 감추었다. 징그러운 상처에서는 혈육이 꿈틀거리더니 핏빛이 마치 호흡하는 듯 부풀어 올랐다가 수축하면서 상처를 회복하고자 했다.
진북왕의 신체는 완전하게 보존됐으나 몸 표면에 도자기 같은 균열이 가득 퍼졌고 피가 끊이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는 기운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도, 도망쳐…….”
촉구는 너무 놀라 간담이 서늘했다. 이 자는 근본적으로 3품이 아니었다. 분명히 불완전한 2품이었다.
다른 체계의 3품 강자 넷이 합체하여 폭발해낸 기기는 이미 2품의 문턱에 닿았으나 여전히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대방이 온전한 상태에서는 품질 좋고 믿을 만한 2품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니 혈단을 삼킨 후 상처를 부분적으로 회복하고, 불완전함을 메운 끝에 이제야 이렇게 무시무시한 힘을 폭발시켰다.
이는 그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들 넷은 양으로 질을 메웠지만, 사실 상대는 진정한 2품이므로 이 어마무시한 영역의 강자였다.
거대한 구렁이는 남은 몸뚱어리를 미친 듯이 뒤흔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구렁이는 한평생 최고로 잦게 몸을 뒤틀더니 불완전한 성벽을 향해 헤엄쳐 갔다.
길리지고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빨리 도망쳤다. 그는 이 신비로운 강자가 너무 무서웠다. 방금 그 순간, 길리지고는 그에게서 돌아가신 부친에 버금가는 위압감을 느꼈다.
그건 2품 강자의 위압감이었다.
오랑캐 짐승이 국경을 넘는 듯 적색의 거대한 구렁이는 몸통을 뒤흔들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다만, 무시무시한 거대 짐승의 세로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고,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다.
푸른색 거인은 광분하는 사이, 떨어진 내장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 * *
성벽 위에 있던 청안부의 오랑캐와 요족 대군은 너무 놀라 간담이 서늘했고, 잇따라 성벽을 뛰어 내려와 황급히 도망쳤다.
우두머리가 패했다. 지금 가지 않고 늦어지면 보잘것없는 목숨이 사라질 터였다.
고품 주술사가 두 손으로 결(訣)을 빚고 날카롭게 울부짖자 비현실적인 검은 그림자가 아득한 하늘에서 떨어졌다. 수십 미터의 날개를 펼친 거대한 조류 한 마리였다.
조류 전혼이었다.
조류 전혼이 고품 주술사를 휘감고 곧장 위로 올라가더니 동북 방향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영혜경 주술사의 머릿속에는 일련의 대응 조치가 스쳤다. 그는 만약 상대가 앞장서서 자신을 저지한다면, 어느 각도에서 나설 것이며 주먹을 내밀 때 어느 곳으로 공격이 날아올지 등등을 생각하느라 바빴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 보호 수단을 다각도로 세웠다. 반드시 자신이 그 자리에서 죽임당하지 않도록 말이다.
물론 영혜경 주술사의 능력으로, 그는 신비로운 고수가 자신을 추격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대방의 목표는 진북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틀림없이 우선 진북왕을 상대할 터였다. 그다음이 길리지고, 그다음에야 비로소 자신과 촉구 중에 양자택일일 것이었으니 그가 탈출할 확률은 매우 높았다.
새까만 법상은 조금씩 축소되더니 곧 사람 키만한 크기로까지 회복되었다. 하지만 열두 쌍의 팔과 뒤통수의 화염 고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진북왕, 피는 피로 씻는 법.”
허칠안은 한 걸음 내딛고, 주먹을 쥔 채 팔을 돌려 공기를 다듬질했다.
진북왕은 몸이 갈기갈기 찢겨 한 조각씩 떨어졌고 선혈이 땅에 튀었다.
고깃덩이가 이내 비틀린 기생충으로 변하더니 악취를 풍겼다.
그리고 그의 형체가 백 장(丈) 밖에 나타나더니 하늘을 가로질러 도망쳤다.
대신고(替身蠱)!
이는 천고족의 목숨 보호 수단이었다. 그들은 고(蠱)를 몸속에서 키우는데 평소에는 숙주의 생기와 기혈을 흡수하여 숙주와 동화하다가 생사의 기로에 놓이면 숙주 대신 화를 막을 수 있었다.
이 고(蠱)는 그 종류만을 필요로 하기에 체내에 심으면 누구나 그것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진북왕은 명색이 대봉 친왕으로서 자기 보호 수단을 갖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다.”
허칠안은 포효했다.
신수 승려는 추격에 협조하느라 잠시 발언권을 빼앗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고해는 끝이 없으나 뉘우치면 구원을 받는다.”
진북왕이 하늘을 가로지르던 중 몸이 굳어졌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싶은 듯 목을 돌렸고, 이내 불문 계율의 영향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도망쳤다.
허칠안은 상대방이 굳어 버린 순간을 틈타 그의 뒤를 바싹 뒤쫓았다. 열두 쌍의 손을 동시에 날려 공기가 폭발하는 효과를 냈다.
중요한 때에 진북왕의 몸에서 혈무(血霧)가 터져 나왔고, 잠재력이 폭발했다. 그는 고집스럽게 옆쪽으로 이동하여 치명적인 주먹을 피했다.
“돌아와라!”
열두 쌍의 손이 동시에 펼쳐졌고, 기기가 바짝 따라붙더니 세차게 잡아당겨 진북왕을 다시 잡아 왔다. 열두 쌍의 손은 진북왕의 머리, 팔, 두 다리를 쥐었다.
이 순간, 성벽 위의 시선들이 이곳을 바라보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진북왕을 지켜보았다.
아무도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이 장면은 무서우리만큼 적막했다.
진북왕의 몸속에서 순수한 기혈이 흘러나왔다. 열두 쌍의 팔은 마치 스물네 개의 검은 동굴처럼 그의 생명 정수를 미친 듯이 착취했다.
“나는 비록 네가 왜 진국검을 사용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너는 결코 대봉 황실 사람이 아닌데 초주성의 38만 백성이 너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대봉 제일의 무사는 생명 정수가 사라지는 걸 감지했기에, 절망적인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만약 감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조당 문관들이 그를 탄핵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자는 대봉 인사가 아니었으며 선량한 인사 또한 아니었다. 마염이 하늘을 찌를 듯한데, 초주성 전체 백성을 위해 그를 사지로 몰아넣으려 했다.
“그럼 내가 너를 죽이는 게 또 너와 무슨 상관인가?”
허칠안은 냉소를 지었다.
“네 마음속에는 정의가 없다. 너는 약육강식의 규칙을 숭상하지. 그럼 내가 오늘 38만 백성을 대신해 네게 한 가지 일을 알려 주겠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하찮게 여기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네가 언제 개미가 아닌 적이 있었더냐.”
“아니다!”
진북왕은 절망적으로 울부짖었다. 마치 맹수가 죽기 전에 슬피 포효하는 듯했다.
백성 대량 학살은 가장 그의 마음에 드는 계략 중 하나였다. 혈단을 정제하여 수련 경지를 올리는 동시에 제가 놓은 덫에 치인 길리지고와 촉구를 진국검으로 죽이는 방법이었다.
일단 성공하면 세상은 그의 위대한 공적만 기억하고 찬양할 터였다. 누가 38만의 원혼을 기억하겠는가?
한 성과 타민족 3품 고수 둘과 맞바꾸고, 대봉에 2품이 배출된다면 그들의 죽음은 가치 있었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이 계략이 결국 그를 해쳤다.
진북왕의 울부짖는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피와 살이 바싹 말라 쪼그라들더니 시체가 되었다.
허칠안은 그의 머리와 사지를 힘껏 찢어 버리더니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이렇게 갈기갈기 찢긴 자는 친왕이었다. 반 갑자 동안 눈부신 세월을 보낸 전봉 무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