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화. 복수자 (2)
“재미있군, 재미있어. 패도의 의(意)를 수련한 자는 거의 없었는데.”
‘허칠안’이 한 손에는 검을 들고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가린 채 신경질적으로 크게 웃었다. 그가 웃으니 진북왕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후, 후…….”
진북왕은 천천히 후퇴하던 중 옆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를 들었다. 그가 좌우로 힐끗 보니 길리지고와 고품 주술사가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회합을 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먼 곳에 있던 지종 도수 역시 천천히 방향을 바꿔 근접전을 펼치는 강자 셋의 후방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분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약점이 없다. 근접전에서는 무적이라고 할 만해.”
주술사가 전음으로 말했다.
“그의 육신은 아주 괴이해. 우리와 비할 수 없더군.”
푸른색 거인 역시 자신이 직관한 느낌을 전했다.
“허나 그에게는 ‘의(意)’가 없는 듯하다.”
진북왕이 전음으로 말했다.
그는 손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혈육이 천천히 꿈틀거리면서 옅은 금빛 화염을 없앴다.
‘불문 사람, 선(禪)과 무(武)를 쌍수하고, 육신은 요상하리 만큼 무시무시하다……. 너무 강하다. 불문에 언제 이런 강자가 나타난 건가.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쯤 되자, 다섯 명의 강자는 아까의 자신감을 접었다.
* * *
성벽 가까이 있는 집 꼭대기, 대리사승과 어사 둘은 용마루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의 전쟁터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저 보통 사람이었기에, 전투의 자세한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기껏해야 우르르 쾅쾅 폭발 소리와 곁에 불어와 광풍으로 변하는 기기 파동으로부터 이 전투의 격렬한 정도를 판단할 뿐이었다.
하지만 곁에 양연 같은 금라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는 버젓한 4품이라 평소에는 그래도 아주 위압감을 주었다.
지금 그는 ‘망원경’ 역할에도 괜찮은 적임자였다.
류 어사는 까치발을 들고 내다보면서 물었다.
“양 금라, 전황이 어떠한가요?”
대리사승이 뒤이어 캐물었다.
“그 신비로운 고수가 어떻게 다섯 사람을 이길 수 있지? 그, 그는 괜찮은가?”
양연은 마음이 요동쳤다.
“……너무 강하네. 그 신비로운 고수는 너무 강해. 3품 다섯이 둘러싸고 공격하는데도 혼자만의 힘으로 그들을 제압했네.”
“좋아, 좋아!”
대리사승은 흥분하여 온몸을 떨었다.
대봉 병사와 오랑캐가 교전을 멈춘 틈을 타, 생존한 강호 무사들이 잇따라 성벽 위로 올라가 각자 성벽에 위치를 잡고 내려다보았다.
너무 강했다. 이게 바로 전봉 고수의 전투였다.
초주성은 삼십 여만 명의 인구가 있는 대성으로 보통 사람이 이 도시를 가로지르려면 꼬박 하루를 걸어야 했다.
말을 타도 두 시진은 걸렸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니 황량한 폐허만 보일 뿐이었다. 성벽 가까이에 위치한 집만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이는 성안의 강자들이 파괴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주위 성벽조차 이미 부서졌을 터였다.
“다 해치워! 진북왕과 오랑캐, 요족을 죽이고 초주성 백성들의 원수를 갚아 주어라!”
한 젊은 강호 사람이 분개했다.
“방자하다! 진북왕은 친왕이거늘. 너는 불경죄를 지었다.”
먼 곳에서 검은 장포의 밀정이 그 말을 듣고 벌컥 화를 냈다.
“이 몸이 한 말이 틀렸소?”
그 젊은 강호 사람은 북경인의 불같은 성질을 지녔다. 그는 눈을 흘기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밀정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진북왕은 자신의 사욕을 위해 초주성 전체를 도살했소. 개 같은 친왕. 진국검조차 그가 싫어 떠나지 않았소.”
“맞다. 그들을 죽이자. 이 몸이 이번에 파리 목숨을 지킬 수 있다면 반드시 진북왕이 한 일을 널리 퍼뜨리겠다.”
주변의 강호 인사들이 적개심을 불태우며 잇따라 욕설을 퍼부었고, 칼자루를 쥐었다. 강호 필부는 포악하고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라 본래 마음속으로 끝없는 분노를 참았더랬다.
그들이 칼자루를 쥔 건 겁이 나서가 아니라, 정말로 칼을 뽑아 들어 목숨을 내던지기 위함이었다.
밀정은 상대방이 쪽수도 많고 세력도 큰 데다 약자가 아닌 걸 보더니 냉소를 지었다.
“너희는 오랑캐 연합군이 성을 공격하여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비상시기이니 법률을 무시한 채 친왕을 헐뜯을 수 있을 거라 여기는가? 내가 지금 너희에게 알려주겠다. 이 초주는 여전히 진북왕의 초주다.”
그는 말을 마치고 손을 휘둘러 손을 뻗은 수백 명의 병사에게 명령했다.
“이놈들을 체포하거라. 반항하는 놈이 있거든 죽여도 무방하다!”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검은 장포의 밀정은 벌떡 돌아서서 가면 아래의 눈으로 병사들을 독살스럽게 노려보았다.
“너희 군령을 거역하고 싶은 것이냐!”
병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 꼼짝하지 않았다.
“이 몸이 비록 필부지만, 나 역시 지식인이 자주 하는 말을 안다. 도의에 맞으면 돕는 이가 많고, 도의에 어긋나면 돕는 이가 드문 법이지. 진북왕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었기에 진작에 인심을 다 잃었다.”
“진북왕의 사냥개 주제에 감히 여기서 짓는 것이냐.”
강호 인사 십여 명은 역시나 무기를 빼 들고 우르르 몰려들어 밀정을 무참하게 베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병사들은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 침묵을 지켰다.
강호 인사들은 밀정을 다 벤 후, 계속해서 전쟁터를 주시하며 먼 곳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그들은 이 기회에 초주성에서 도망침으로써 옳고 그름을 멀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 간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결코 구경을 즐기는 게 아니었다. 그저 결과를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설령 목숨을 바친다고 해도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필부는 금기를 어겼지만, 필부 가슴의 뜨거운 피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 * *
이때, 지종 도수가 전음했다.
“진국검을 빼앗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를 이기기 어렵네. 혈단을 삼킨 후 이 자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어.”
흑련 도수의 말은 촉구, 길리지고 등의 의견 일치를 이끌어냈다.
다섯 사람은 진지를 확고히 하고 적을 기다리는 태세를 유지하며 암암리에 전음으로 교류했다.
진북왕이 팔목의 혈육이 천천히 꿈틀거리며 회복하고 있는 와중에 전음으로 답했다.
“무슨 방법 있는가?”
흑련 도수가 전음으로 말했다.
“내가 진법을 이용해 진국검을 침식할 수 있네. 잠시나마 총기를 잃게 하는데 일각 동안 유지되지. 대가는 이 분신이 사라진다는 것이지.”
진북왕 등은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무사로, 무턱대고 폭력만 휘두를 줄 알았기에, 전투력이 저보다 강하고 체계가 같은 강자를 맞닥뜨리면 아주 쉽게 제압당했다.
하지만 다른 체계는 달랐다. 수법이 변화무쌍했다.
흑련 도수의 분신과 상대가 일각 동안 진국검을 잃는 것을 맞바꾼다는 건 아주 수지타산에 맞는 매매였다.
먼 곳에 있던 거대한 구렁이 촉구가 전음으로 말했다.
“안 된다. 그의 무시무시한 육신으로는 설령 진국검이 없다고 해도 우리가 일각 안에 그를 죽이거나 중상을 입히기란 불가능하다.”
진국검이 없으면 그들은 상대방을 격파할 자신이 있었지만, 일각 안에 죽일 수는 없었다.
고품 무사는 정말 죽이기 어렵다.
진북왕이 약간 침음하더니 말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우리의 전체적인 실력이 순간적으로 2품에 도달할 수 있기만 하다면, 음, 나는 단순히 2품의 힘을 가리키는 걸세.”
3품이 2품으로 승직하면 당연히 기기 방면의 향상뿐만 아니라 ‘의(意)’도 탈바꿈했다.
푸른색 거인은 그를 비웃으며 전음했다.
“2품의 힘이 생긴다고 말하면 생기는 건가?”
진북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게 진도(陳圖)가 있네. 감정의 왕년 작품이지. 이 진도는 무쌍법상(無雙法相)이라고 하네. 그는 모든 사람의 힘을 하나로 합쳐 법상으로 응결할 수 있지. 유일무이하며 이름조차 무쌍하네.”
진도는 수년 전 그가 감정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일단 북방 요족과 오랑캐 두 족속이 손을 잡으면 그가 혼자서 감당하기란 어려우니 강력한 자기 보호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감정 역시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겸사겸사 재고 정리도 할 겸 진법을 베풀었다.
강적을 앞에 둔 다섯 명은 아주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푸른색 거인 길리지고는 앞장서서 행동했다. 목표는 ‘허칠안’이 아니었다. 어느 성벽을 조준한 뒤 세차게 빨아들였다.
웅웅…….
성벽 위 병사들과 오랑캐 기마병이 손에 쥔 무기가 갑자기 그들 손에서 벗어나 저절로 공중으로 날아갔다.
후……. 강철로 주조한 화포 받침대 등 중형 무기 역시 날아올라 높은 곳으로 모여들었다.
이 철무기는 공중에서 쇳물로 융해되어 끊임없이 불순물을 배출하고 적홍색의 쇳물 덩어리로 농축되었다.
‘허칠안’은 진국검을 쥔 채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이 광경을 오만하게 지켜보았다.
‘대사님, 그들이 큰 수를 벼르고 있어요. 시끄럽게 하지 말고 그들을 조져주세요…….’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하여 머릿속으로 신수 승려와 소통했다.
신수 승려는 들은 체 만 체하며 검을 짚고 선 자세를 유지한 상태였다. 마치 신호가 안정적이지 않아 갑자기 접속이 끊긴 듯했다.
‘이 상태의 신수는 너무 오만하고 너무 방자하다고. 나는 그를 전혀 다룰 수가 없어……. 악, 무엇 때문에 내가 그를 부릴 수 있다는 착각을 한 거지…….’
허칠안은 속으로 탄식했다.
이때 주술사가 손을 들고 손바닥을 허칠안에게 겨누더니 소리쳤다.
“죽어라!”
신수는 무의식적으로 불문 법술을 시전하여 그의 주술살을 끊었다. 하지만 이때 진북왕이 돌진해 왔다. 대봉 제일의 고수는 기세가 드높고 패도는 둘도 없었다.
‘허칠안’은 법술 시전이 끊기자 검을 들어 찔렀다.
펑!
그의 가슴이 갑자기 움푹 내려앉았다. 주살술이 거대한 살상 효과를 일으키며 그의 검세(劍勢)를 꺾었고, 진북왕이 여세를 몰아 주먹으로 허칠안의 가슴을 후려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권의가 등을 뚫고 폭포 같은 기기를 터뜨렸다.
이때 하늘에서 쇳물이 밝은 붉은색의 종을 주조하여 재빠르게 냉각하였고, 종에서는 칠흑같이 까만빛이 발했다.
거대한 종이 갑자기 허칠안을 뒤덮었다. 그 과정에서 지종 도수는 검은 탁류로 변해 거대한 종을 휩쓸었다. 종 표면에 사악함과 타락으로 가득하고 새까맣게 뒤틀린 부문이 떠올랐다.
삽시간에 현장에서 제련된 거대한 종이 지종 도수와 어우러져 사악하고 기이한 검은 안개를 내뿜는 법기가 되었다.
타락을 상징하는 거대한 종은 세상의 모든 것을 타락시켰다.
촉구는 이마의 세로 눈을 빛내더니 갑자기 오광을 내뿜어 허칠안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생각이 혼란스러워지고 몸이 굳었다.
거대한 종이 갑자기 세상을 뒤덮으면서 먼지가 가라앉았다.
진북왕 등은 이 모습을 보더니 승리를 앞두었다는 미소를 지었다. 이 종이 떨어지면서 그들에게 승리의 발판을 다져주었다.
땅…….
갑자기 거대한 종 표면에 손바닥이 나타나더니 바깥으로 돌출된 손바닥 자국이 나타났다.
땅땅땅…….
점점 더 많은 손바닥 자국이 튀어나왔다. 타락을 상징하는 이 법기의 형체가 뒤틀리고 산산조각 날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진북왕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하늘로 솟구쳐 올라 소리쳤다.
“나를 따라와!”
고공에 멈춰 선 그의 근육이 팽창했다. 흰색 미광을 발하는 부문이 하나씩 도드라지더니 그의 몸 구석구석을 뒤덮었다.
진도가 그의 몸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