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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88화 (485/712)

488화. 복수자 (1)

길리지고와 촉구는 즉시 허칠안을 쳐다봤다. 세 눈동자에 기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진북왕은 남에게 화를 떠넘겨 그들과 부담을 나누고자 했다.

이건 음모였다.

이 자는 내력이 신비롭고 진국검을 부릴 줄 알았다. 방금 전투에서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의를 품고 있었다. 만약 진북왕이 진국검에 죽으면, 이 자의 다음 목표가 반드시 그들임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국검의 존재는 또 그들에게 실질적인 살상력을 지니고 있어 매우 위협적이었다.

반면 진북왕 그는 이미 진국검에게 미움을 받았지만, 실력은 또 그들만큼 뛰어나지 않아 위협적이지 않았다.

촉구와 길리지고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좋다.”

진북왕은 섬뜩하게 웃으며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동맹 체결.”

‘이 자를 죽이고 진국검을 되찾으면, 나는 다시 진북왕과 손을 잡고 촉구를 죽여야겠다. 이 화근을 제거하지 않으면 진북왕은 죽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촉구를 죽여서는 안 되겠군…….’

고품 주술사는 마음속으로 저울질하다가 타협했다.

순식간에 진북왕, 주술사, 흑련, 촉구 그리고 길리지고가 모두 허칠안에게 시선을 옮겼다.

5대 고수가 호흡을 맞추고 함께 이 자를 죽이려 했다.

장내의 변화는 성벽 위를 둘러싸고 구경하던 병사, 밀정 그리고 군대에 속한 고수들이 손쓸 틈 없게 했다.

병사들은 복잡한 눈빛으로 진국검을 손에 쥐고 고독하게 서 있는 신비로운 자를 쳐다보았다.

흰 치마의 여인은 개입하지 않았다. 그녀는 목을 빼고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빛이 허칠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뻐하는 듯도 하고 또 슬퍼하는 듯도 했다.

‘신수, 그대의 진짜 전투력의 빙산의 일각을 보여준 거지.’

속담에 이르길 전쟁터는 순식간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이 말은 딱 이 상황에 부합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사태는 생각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랑캐와 진북왕은 물과 기름처럼 죽자 살자 싸웠다. 그런데 이 그들은 순간 갑자기 동맹을 맺고, 진국검을 손에 쥔 신비로운 강자에게 창끝을 겨눴다.

허칠안은 전봉 고수 다섯 명이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자 입술을 핥더니 섬뜩하게도 피에 굶주린 웃음을 지었다.

“아주 흥분했나 보군? 정말 진국검으로 적 다섯을 상대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진북왕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냉소를 지었다.

“네 기운을 보니 마침 3품인 듯하군. 마침 혈단 효과가 충분하지 않으니 네 생명의 정수로 메워야겠다.”

3품 고수의 생명 정수는 혈단에 못지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북왕이 혈단을 정제한 이유는, 방대한 생명 에너지로 2품에 충격을 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자신을 밀어주기 위함이었다.

본질적인 요소는 ‘방대한 생명 에너지’였다. 38만 백성으로 정제한 혈단이 생명 에너지였으며 3품 고수의 정혈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평소에는 3품 하나 죽이는 일도 너무 어려우니 백성을 대량 학살하는 편이 차라리 쉬웠다.

촉구와 길리지고는 진북왕의 말을 듣고 입술을 핥더니 군침을 흘렸다.

평소에 그들이 3품 무사 한 명을 둘러싸고 공격할 수 있는, 이렇게 좋은 기회는 없었다. 오랑캐와 요족은 동맹국이었고 3품이 둘이었다. 그리고 북경에는 진북왕만이 3품이지만, 그는 홈그라운드라는 우세를 차지한 데다 성을 보호하는 진법과 중형 살상 법기도 가지고 있었다.

그 자체로도 강골인데, 여기에 더해 진북왕은 틀림없이 초주성을 사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촉구는 도망치고 싶어 하는 3품 한 명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진북왕을 죽이지 못하면 대봉의 반격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위연이 다시 군대를 지휘하여 북상할까 봐 두려웠다.

그리하여 양측은 우발적으로 충돌했지만 지금과 같은 이런 대규모 전역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봉 고수 다섯 명이 3품 한 명을 둘러싸고 있었다. 설령 상대가 진국검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기껏해야 고기 위에 바늘 하나 찌른 것뿐이었다. 그저 먹기에 좀 불편한 정도였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허칠안은 진국검을 바닥에 꽂고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받치고 고개를 치켜올린 뒤 허스키한 목소리로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이렇게 오랫동안 억눌렀는데, 드디어 마음껏 힘을 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다섯 명의 3품 풋내기는 본좌가 그럭저럭 한 끼로 먹겠군.”

그런 뒤 그는 손가락을 치켜세워 선포했다.

“1단계.”

진북왕 등은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그들이 보기에, 상대방은 허세를 부리고 있다기보다는 혈단의 힘 때문에 제 분수를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저기요, 대사님. 너무 오바하시는 거 아닌가요? 대사님이 생전에 강했을 수는 있지만, 지금은 그저 팔뚝에 잔혼이 더해진 것뿐이잖아요…….’

허칠안 역시 신수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매번 불멸의 몸이 나타날 때마다 신수는 이상하게 변하곤 했다. 신수는 마치 사람이 바뀐 듯 성정이 크게 변했다.

“허세 부리긴!”

주술사가 콧방귀를 뀌더니 손바닥을 펼쳐서 허칠안을 조준했다.

“죽…….”

그가 말하고 싶었던 건 ‘죽어라’였다. 그는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은 이 강자에게 주살술로 중상을 입히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죽’자를 반도 채 내뱉기 전에 ‘허칠안’이 갑자기 집게손가락으로 입술을 막더니 우쭐대는 말투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쉿, 입을 다물라.>

순식간에 주술사는 무형의 힘에 입이 봉인된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그가 입을 벌리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허칠안은 그 후 사라지더니 곁으로 따라붙어서 근접전을 펼쳤다.

눈을 자극하는 빛이 폭발했다. 외부인은 전투의 세부 사항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끊임없는 폭발과 천둥소리 같은 거대한 울림을 통해 전투가 격렬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뿐이었다.

뒤이어 한 형체가 떨어지면서 날아올랐고, 기혈을 끌어올리고 나자 이 무신교 주술사의 육신이 팽창하였다. 알고 보니 푸른색 거인 길리지고보다 더 컸다.

하지만 지금은 맞아서 원형을 되찾은 참이었다. 가슴이 움푹 파였고 흉부에는 투명한 검 구멍이 나 있었다. 왼팔은 어깨와 나란하게 잘렸는데 단검에 베여 잘린 면이 반듯했다.

고품 주술사는 재빠르게 후퇴하였고, 그 과정에서 기혈을 끌어올려 9품 혈령(血靈)의 능력과 자신의 상처 회복 능력으로 잘린 팔을 다시 만들었다.

“조심해. 저자는 약점이 없어. 나는 그의 약점을 찾지 못했다고.”

주술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3품 주술사는 ‘영혜’라고 하는데 적의 약점과 동작의 허점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이로써 효과적인 공격이나 반격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영혜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힘들이지 않고 여유 있게 일을 처리한다는 점이었다. 당신이 어떻게 발광하며 공격하든 간에 그는 언제나 높은 자리에 앉은 강자처럼 느긋하게 풀어낸다.

“너는 불문 사람이냐?”

촉구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촉구는 본능적으로 거리끼면서 세로 눈에서 이내 증오의 빛을 내뿜었다.

오백 년 전, 60년 사이에 나라가 멸망된 남요(南妖)도 그렇고 오늘날 인재가 부진한 북방 요족도 그렇고, 전부 불문의 쓴맛을 맛보았으며 불문에게 가르침을 받았더랬다.

이백 년 전 구주에서 불문과 승패를 가릴 수 있는 건 대봉 유가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유가가 몰락했으니 불문이 구주 제일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불문이 뭐라고. 내 육신이 다시 모이는 날이 바로 불문이 멸망할 때다.”

허칠안은 광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흡사 극악무도한 미치광이 같았다.

갑자기 금빛 한 줄기가 솟구치더니 곧장 신수를 맞혔으나 잔영에게 명중하였다.

다음 순간, 촉구는 기습 공격을 했다가 가슴이 철렁해져 문득 고개를 돌렸고 세로 눈에서 금빛을 내뿜었다.

그곳에는 금빛에 의해 찢긴 형체가 하나 막 떠올랐는데 알고 보니 그저 환영이었다.

푹!

‘허칠안’이 온몸에 마염이 감도는 상태로 적색 거대한 구렁이 등 위에 떨어졌다. 그는 청동검을 거대한 구렁이 등에 꽂고 질질 끌면서 적색의 큰길 위를 폭주하였다.

진국검이 거대한 구렁이의 혈육을 베어 냈고, 경추뼈를 한 토막씩 절단했다.

그의 뒤에서 핏빛 꽃이 피어났다.

촉구는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거대한 뱀 몸뚱어리가 성안을 들쑤시며 여기저기로 부딪쳤다. 성벽 위 병사들의 눈에는 마치 발광하는 뱀이 모래판으로 돌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푸른색 거인 길리지고가 소리 없이 허칠안 뒤에 나타나 거대한 검을 갑자기 내리쳤다.

허칠안은 뒤에 마치 눈이 달린 듯 돌아서서 진국검으로 막아섰다.

땅땅땅…….

푸른색 거인의 손에서는 문짝 같은 묵직한 검이 마치 장난감 같았다. 두 사람은 순간 스무 번 칼로 맞불을 놓았다. 묵직한 검이 한 치씩 줄어들면서 철 조각으로 깨졌다.

허칠안은 바로 뛰어올라 푸른색 거인의 머리를 누르고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그의 뒤를 뚫고 갔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색 거인의 정면에 검이 나타났다.

동검이 번쩍이며 피부 밖의 각질 갑옷, 기관지 그리고 경동맥을 베었다.

붉은색에 푸른색이 섞인 선혈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강한 압력을 받으며 수 미터 높이까지 솟구쳤다.

진북왕은 갑자기 두피가 저려 왔다. 그는 위험에 대한 무사의 본능적인 직감에 기인하여 갑자기 앞으로 도약하여 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가 똑바로 선 찰나에 신수는 그림자처럼 따라가서 이미 그의 뒤까지 돌진했다. 진국검이 찬란한 금빛을 내뿜었다. 마치 허공을 잘게 부술 듯했다.

진북왕의 눈에는 찬란한 검광만이 남았다. 솜털이 곤두서고 신체의 모든 신경이 그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어 알렸다.

‘위험해, 위험해. 피하지 않으면 죽어!’

그는 산해관전역 이후로 아주 여러 해 동안 치명적인 위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 순간, 그의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고 전에 없이 생각이 맑아졌다. 어떤 사람들은 위험할수록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었다.

진북왕은 천부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므로 마침 후자에 해당했다.

그의 표정은 담담하고, 그의 눈빛은 거울처럼 잔잔했다. 그는 주먹을 쥐고 천천히 쳤는데 그 속도가 지극히 빨랐다.

포악하기 그지없는 권의(拳意)가 격동하면서 천지 이변을 일으켰고, 고공의 구름층에서 선회하며 소용돌이 형태를 보였다. 대지가 우르릉 진동하는 게 마치 이렇게 포악한 의기(意氣)를 감당할 수 없는 듯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무사의 저속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눈부신 특효가 없고 그럴싸한 기능이 없었다.

이렇기에 진북왕의 이 주먹은 완전히 자신의 기기로 천지 이상(異常)을 끌어낸 것이라 아주 무시무시했다.

땅!

주먹과 검날이 함께 부딪히자 천지간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원한 곳에 있던 병사와 오랑캐 기마병이 그대로 까무러쳤다.

난폭한 에너지가 순수한 충격파로 변했고, 두 사람을 중심으로 주변의 몇 리(里) 지면이 와르르 가라앉았다.

길리지고, 고품 주술사 등 역시 어쩔 수 없이 칼끝을 잠시 피하고, 무시무시한 충격파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진북왕은 높은 압력을 받으며 그의 인생 최고의 한 방을 날렸다.

그의 주먹은 이미 피범벅이 되었고, 끊어진 팔목에서는 선혈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패도(覇道)는 그가 고수한 무도이자 그가 정신을 모아 단련한 의(意)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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