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86화 (483/712)

486화. 비난

성벽 위, 성안에 살아남은 강호 인사와 격추 중인 오랑캐 그리고 북경 병사와 요족이 동시에 사악하면서도 강한 힘을 감지했다.

그들은 하마터면 무기를 놓칠 뻔했고, 마음속에는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끓었다.

“진북왕, 이 죽일 놈!”

공중에 흑염(黑焰)이 맴돌았고, 신 같기도 악마 같기도 한 허칠안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마치 천신(天神)이 선포하는 명령 같았다.

“진북왕, 너는 2품으로 승직하기 위해 사욕으로 초주성의 38만 백성을 살육했다. 그 많은 사람이 너로 인해 죽었다. 북경 백성이 너를 공경하고 사랑하며, 너를 신성시했다. 네가 변방을 지키기에 백성들이 오랑캐에게 수모를 당하지 않는 거라 여겼다. 하지만 너는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너는 무신교와 결탁하여 그들을 산송장으로 만들었다. 무신교의 비법으로 정혈을 정제하는 데 한 달이라는 시간을 썼지. 이런 만행은 극악무도하다. 진북왕, 너를 추대한 대봉 백성들에게 떳떳한가? 건국에 어려움을 겪은 개국 황제에게 떳떳한가? 지난날 선조의 영혼에게 떳떳한가? 30만 원혼에게 떳떳한가? 이 짐승 같은 놈!”

그가 소리치며 묻는 소리가 하늘 끝까지 울려 퍼졌다.

허칠안이 이 말을 할 때, 그의 머릿속에는 화살에 맞고 땅에 쓰러진 백성들이 하나씩 스쳤다. 백성들이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지만, 칼끝에 심장을 관통당하던 모습들이 스쳤다.

열정적인 서생이 큰 소리로 물었다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뒤 살인마를 죽일 듯이 주시하던 눈빛이 스쳤다.

그 눈빛은 절망적이면서도 분한 마음을 자극했다.

아이를 몸속에 감쌌으나 보호하지 못하고, 아이와 자신이 함께 관통당할 때 젊은 모친의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눈빛이 스쳤다.

정 포정사의 둘째 아들이 죽기 전, 고통에 흐느끼던 얼굴과 정흥회의 통곡하는 모습이 스쳤다.

원혼들이 절규하고 포효하며 통곡했다.

허칠안의 삼관이 원혼의 울부짖음 사이로 흔들렸다. 오늘 진북왕을 죽이지 않으면 결국 안심할 수 없었다.

* * *

수만 명의 북경 병사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했다.

“진북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했다는 말인가? 초주성의 백성들을 진북왕과 무신교가 결탁해서 죽였다고 말인가?”

“불가능하네. 초주성의 백성들은 이전에 잘살고 있었다고. 오랑캐와 요족이 성을 공격할 때 죽은 게지. 분명히 그들이 악독한 법술을 써서 성안의 백성들을 모조리 죽인 게야.”

병사들 사이에서 왈가왈부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군가는 심하게 욕을 퍼붓고, 누군가는 멍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누군가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흥분하면서 진북왕 대신 변명했다.

말단 병사들은 신분과 식견에 한계가 있기에, 진북왕의 계략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혈단 정제의 비밀에 관해서는 더욱이 알지 못했다. 그들은 설사 방금 성안의 기이한 현상을 직접 목격했다고 해도, 눈앞의 광경을 이해할 식견이 전혀 없었다.

그날 백성을 대량 학살한 병사는 본래 고품 주술사 수하의 시체 병사였다.

무신교가 시체와 영혼을 조종하고 기혈을 끌어올릴 수 있으니, 정혈을 정제하는 수단을 틀어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전제는 그자들이 반드시 이미 죽었어야 했다는 점이었다. 산 사람은 주술사가 통제할 수 없었다.

시체를 통제하는 수법으로 정혈을 정제하는 편이 은밀하고 안전했고, 그렇기에 오랑캐와 요족에게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이 방법이라면 설령 술사라도 속일 수 있었다.

주술사는 천기와 운명을 교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죽은 백성들을 포함하여 영혼은 몸속에 봉인되어 있었다. 혈단 정제가 성공하는 순간, 그때서야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말단 병사가 그 속의 심오한 이치를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 병사들 외에 생존한 강호 인사들은 소리치며 묻는 말을 들으면서 넋을 잃고 우두커니 있었다.

그러다가 강렬한 궁금증이 들끓어 올랐다. 그들은 하늘에 차고 넘치는 무서운 기세의 그 강자가 진북왕을 비방한다고 여겼다.

진북왕은 십여 년간 변방을 수비하면서 오랑캐를 막아내고 영토를 보위한 대봉 무도의 최강자다. 그의 공적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았다.

갑자기 신비로운 고수 하나가 튀어나와 진북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했다고 비난하는데 어느 누가 믿겠는가.

“죄다 허튼 소리야. 정말 진북왕이 그를 벨 수 있길 바라네.”

“만약 형세가 심상치 않으면 우리가 백성으로서 초주에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는가. 초주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

“하지만 저자가 진국검을 들고 있잖나. 내가 듣기로 진국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자는 황실 사람밖에 없다던데. 그가 하는 말이 진짜는 아니겠지…….”

* * *

“욕 한번 잘했군. 이 몸의 마음의 소리를 내뱉었네. 친왕이면 또 어떠한가. 이런 만행은 짐승과 다를 바 없지.”

류 어사는 흥분한 나머지 온몸을 떨었고, 사방으로 침을 튀기며 말했다.

“이 자는 분명히 우리 대봉 황실에 숨은 고수일 테야. 그가 하늘을 대신하여 정의를 행하러 왔군. 진북왕을 토벌하러 왔어.”

“속내를 털어놓아라. 백성을 희생해야 2품과 맞바꿀 수 있다면 우리 대봉은 나라가 망해도 싸다. 진북왕이 틀렸어. 그가 완전히 틀렸다고.”

대리사승이 분개했다.

문관들은 이렇게 진정한 강자가 나서서 진북왕을 통렬하게 비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강자는 그의 죄를 까발린 데다가 그의 목을 베겠다고 큰소리까지 쳤다.

비록 여러 해 동안 선인(善人) 노릇을 하지 못했지만, 이 순간 이 신비로운 강자가 진북왕을 통렬하게 비난하자 그들은 속으로 ‘권선징악’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희열에 잠겼다.

“백성은 전란에 죽을 수 있고, 오랑캐와 요족의 손에 죽을 수 있다. 기껏해야 살아 돌아오면 된다. 현재 그가 우리 대봉 성(城)을 대량으로 학살했으니 장차 우리 대봉이 그를 멸할 것이다. 본디 적국의 원수는 죽이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 법이다.”

진 포두는 주먹을 꽉 쥐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백성은 진북왕의 손에 죽었으면 안 됐다.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도 진북왕이 대봉의 대들보라고 여겼고, 그들을 수호하는 영웅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영웅은 그들에게 칼을 휘두르고 그들의 정혈을 빼앗았다. 오직 자신이 2품으로 승직할 수 있기 위해 말이다. 얼마나 가엾은가! 진북왕이 어찌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개자식이다. 감정 없는 냉혈한 짐승이다.”

무사에게는 나름대로 혈기가 있었다. 진 포두는 이미 상대방의 친왕 신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진북왕이 백번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진북왕이 죽은 뒤에 북경은 어떡하냐고?

친왕은 사욕을 위해 성지 자체로 제사를 올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죽지 않으면 추후 1품으로 승직할 때는 설마 성지 열 군데에 제사를 올려야 한단 말인가?

오랑캐가 불태우고 약탈한 데다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지만, 죽인 사람은 도리어 진북왕보다 많지 않았다.

산해관전역 이후, 오랑캐는 십여 년 동안 회복기를 가지며 사회를 재정비했다. 그런 뒤 수 차례 변방을 침략했으나 그저 소규모의 약탈일 뿐이었다. 대형 전쟁은 발생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진북왕은?

38만 백성을 죽이겠다고 하고, 죽였다. 대량 학살하겠다고 하더니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

앞으로 그가 1품으로 승직하고자 하면 어떡하겠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이 이치를 깨달았다. 때문에 대리사승은 비통함에 빠진 채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이번 전투는 오랑캐가 이기길 바라네!”

* * *

진북왕은 어떠한 표정 변화 없이 우렁차게 말했다.

“각하께서는 누구십니까. 무슨 까닭으로 핏대를 세우며 본왕을 중상모략하십니까.”

궐영수는 낯빛이 변한 채 문득 검자루를 꽉 쥐었다. 이 자는 벗이 아니라 적이었다. 뜻밖에도 회왕을 죽이기 위해 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어디서 나타난 개자식인가. 왜 우리의 대사를, 회왕의 대사를 망치려고 하는 것인가.”

궐영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궐영수는 진북왕의 말을 듣더니 마음이 동요하여 성가퀴를 밟고 소리쳤다.

“모든 장수들이여. 지금의 모든 건 요족과 오랑캐 두 족속의 음모다. 그들은 우리의 진북왕을 해하려 한다!”

북경 병사들은 이 말을 들은 순간 문득 모든 걸 크게 깨닫고 분노로 치를 떨었다.

“요족과 오랑캐가 진북왕을 해하려 할 뿐만 아니라 그의 명성을 더럽히고자 한다니. 가증스럽군.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을 모조리 죽이지 못하는 게 한스럽다.”

“진북왕께서는 변방을 지키느라 여러 해 동안 경성으로 돌아가지 못했지. 우리 마음속의 영웅이다. 모두 저자에게 홀려서는 안 되네.”

“진북왕은 죽으면 안 되네. 그는 대봉의 군신이야. 대봉은 그를 필요로 하고, 백성들은 그를 필요로 한다고.”

“우리 목숨을 걸고 진북왕으로 보호하자고.”

북경 병사는 열정이 끓어올랐다. 기껏해야 죽을 뿐이었다. 그들은 시체로라도 진북왕에게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길을 깔아줘야 했다.

이때 고공에서 허칠안이 손에 쥐고 있던 진국검을 내던졌고 ‘쨍’하는 소리와 함께 지면이 꽂혔다.

“진북왕, 진국검에는 영혼이 있어 충신과 간신을 판별할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지. 네가 만약 양심에 물어 부끄러운 바가 없다면, 진국검에게 물어봐라. 그가 너를 선택하는지 아닌지 말이다.”

허칠안은 어슴푸레 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마치 그가 자신을 버린 일을 억울해하며 규탄하는 듯했다.

그 순간, 먼 곳의 악다구니 소리가 뚝 그쳤다.

성벽 위에 선 병사들이 먼 곳에 있는 진북왕과 진국검을 높은 곳에서 뚫어지게 주시했다. 그들은 눈을 깜박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성 밑에 있는 병사들은 보이지 않으니 속에 불이 나듯이 초조했다. 즉시 날개를 꽂고 성벽 위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 무렵에는 시시한 전투가 몇 차례 계속된 걸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모두 싸움을 멈췄다. 오랑캐, 요족 그리고 대봉의 병사들은 서로 경계하며 거리를 벌리면서 관심을 분산시켰다.

‘진국검은 기운만 알고 사람은 모른다. 본왕은 명색이 대봉 친왕으로, 명성이 그대로고 기운도 그대로인데 어째서 진국검을 사용할 수 없단 말인가…….’

진북왕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더니 선조 황제의 패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는 기기로 검자루를 끌어 뽑아내려 했다.

촉구와 길리지고 그리고 흰 치마 여인은 이 광경을 보더니 낯빛이 변했다. 그들은 상황을 본능적으로 저지하고 싶었지만, 방금은 계속 뒤로 물러났기 때문에 거리가 꽤 멀어진 참이었다.

그들은 이 순간 사태를 다시 막으려 했으나 겨를이 없었다.

웅웅…….

갑자기 동검이 옅은 금빛을 내뿜더니 회왕의 기기 견인을 뒤흔들어 그가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진국검이 회왕을 거절했다…….

길리지고와 촉구는 서로 마주 보더니 거리를 두고 전음했다.

“이 자는 신분이 확실하지 않지만, 상상 이상으로 내력이 어마어마하니 대의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어. 그가 진북왕을 겨냥한다고 해도, 아마 우리 역시 가만두지 않을 거야. 진북왕의 생사는 논하지 말자고. 혈단 쟁취야말로 우리 이번 행의 목적이니까.”

연꽃 중앙의 칠흑 같은 사람 형제는 놀라고 의아해하며 허칠안을 주시했다. 이 자 복연(福緣)의 깊이는 거짓이 아니지만 대기운을 지닌 자는 아닌데 어떻게 진국검이 회왕을 헌신짝처럼 버리게 했단 말인가.

“진북왕,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대 황실에 이런 고수가 숨어 있었는가? 너희 대봉 황실의 어느 선조 아닌가?”

고품 주술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등골이 오싹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