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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84화 (481/712)

484화. 진국검 (2)

진북왕이 갑자기 웃었다. 뒤이어 촉구, 길리지고 그리고 흰 치마의 여인은 무기를 쥐지 않은 왼손을 펼치고 말하는 그를 보았다.

“검!”

우르릉……. 먼 곳 성루 안에서 찬란한 금빛이 휙휙 소리를 내며 오더니 진북왕의 손으로 떨어졌다.

등에 오래된 무늬가 각인된, 예스럽고 소박한 형상의 청동검이었다. 옅은 금색이 마치 얇은 막의 빛처럼 검을 휘감고 있었다.

청동검이 진북왕의 손에 잡히는 순간, 주인을 찾은 듯 환희의 떨림이 일었다.

“진국검!!”

길리지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고, 눈에는 실질적인 두려움과 증오심이 스쳤다.

슥…….

성벽 위의 거대한 구렁이는 머리를 높게 쳐들었으나 달려드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갑자기 움츠러들었다. 충격을 받은 듯했다.

공중에 있던 구미(九尾) 여인은 재빨리 고도를 높였다. 그녀는 정교하고 빼어난 얼굴에 더할 나위 없이 엄숙한 표정을 내비친 채 진북왕 손의 동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진국검은 대봉 경성에 있지 않았나? 언제 은밀히 초주까지 가져왔지…….’

그녀는 정교한 눈썹을 잔뜩 찌푸렸고, 눈에 비친 두려움은 극도로 짙어졌다.

진북왕은 한 손으로 칼을 쥐고, 한 손으로는 검을 든 채 빙그레 웃으며 적측 고수들을 휙 둘러보았다.

“나는 승직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어째서 완벽한 책략을 쓰지 않겠는가? 너희가 초주성을 발견하지 않았어도 그만이다. 본왕은 여세를 몰아 승직할 테니. 하지만 너희에게 초주성의 비밀을 들켰다고 해도 무방하다. 진국검이 이곳에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 왕비의 행방이 묘연하여 그녀의 영온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너희 중에 한 놈으로 보완할 수밖에.”

검은 장포를 두르고 모자를 쓴 주술사가 음침하게 웃었다.

“본좌가 오늘 점을 쳤는데 대길이라고 하네. 그렇지 않고선 어찌 본좌를 이곳에 머무르게 하겠는가.”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손을 들어 성벽 위의 거대한 구렁이를 조준하더니 여유롭게 말했다.

“죽어라!”

푹푹푹…….

비늘이 없는 거대한 구렁이의 몸뚱이가 끊임없이 갈라지더니 선혈이 펑펑 흐르며 벽을 붉게 물들였다.

고품 주술사가 되면 주살술은 더 이상 매개체가 필요 없이 100% 성공률을 자랑하는 공격 수단이 될 터였다. 물론 상대방의 혈육, 모발이 있다면 주살술의 위력 역시 한 층 더 커졌다.

비늘 없는 거대한 구렁이는 고통에 몸부림쳤고, 혈육이 폭발하는 즉시 바로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아주 큰 상처를 입힐 수는 없지만 통증은 참기 힘들었다.

구렁이는 성벽을 빠르게 돌아다니다가 별안간 도약하였다. 도시 절반만큼 뛰어오르더니 주술사에게 달려들었다. 그 과정에서 이마의 세로 눈이 금빛을 뿜어냈다.

검은 장포의 주술사는 번개처럼 빠르게 뻗어 나가는 금빛을 피할 수 없었다. 사람 전체가 금빛에 휩싸였고, 사지에서 녹을 징조가 나타났다.

주술사는 당황하지 않고 손으로 법결(法訣)을 빚어 허공에서 진실성이 부족한 허영을 불러와서 그것과 하나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의 온몸에 혈기가 돌고, 근육으로 인해 검은 장포가 터지면서 몇 장(丈) 높이의 거인이 되었다.

9품 혈령(血靈). 가장 큰 정도로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데, 증가 폭은 개인의 수련 경지에 따라 달랐다. 혈기를 끌어올려 생명력을 무사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키울 수 있지만 그 정도는 개인의 수련 경지에 따라 달랐다.

5품 축제(祝祭). 하늘과 땅을 배회하는 영혼이나 선조의 영혼을 불러 자신의 소유로 만들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무사, 요족 그리고 자신 체계의 선조 영혼만 불러 모을 수 있었고 불문 강자의 영혼은 부르지 못했다. 유가 영혼을 부르면 영혼에 의해 반격당할 터였다. 당대 감정에게 말살당하기 때문에 초대 감정의 영혼은 부를 수 없었다.

도문 선배의 영혼을 부르는 일은 가능했지만 아주 위험했다. 예컨대 사도에 빠진 지종 도수의 영혼이나 업화가 몸에 달라붙은 인종 도수의 영혼을 부르는 것이 그러했다. 여태껏 천종 도수의 영혼 소환에 성공한 적은 없었다.

양측 고품 강자는 격렬한 전투를 펼쳤고, 초주성은 폐허가 되었다.

누구도 혈단을 쟁취하러 가지 않았지만, 누구나 혈단에 바짝 따라붙었다. 누구든 이를 강제로 주우면 모든 이의 공격을 받을 것이 자명했다.

성벽 위에서 단칼에 청안부 투사를 벤 궐영수는 십여 년간 지켰던 초주성이 폐허가 된 데 노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초주성을 망가뜨렸다.

초주성은 오랑캐와 요족 손에 폐허가 되었다. 초주의 백성은 이제 고품 강자의 전투를 거치며 시체도 남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모든 흔적이 이번 전투에 파묻힐 터였다.

‘이 모든 게 나 궐영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는 초주성을 지키며 진북왕과 함께 용감하게 적을 무찌르고 큰 공을 세워 천하에 명성을 떨칠 수 있으리라!

여러 측 고수들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자 그 여파가 성벽 위까지 미쳤다. 자칫하면 병사들은 끔찍한 충격파에 죽을 뻔했다.

양연은 사절단을 이끌고 미리 한발 앞서서 성벽 아래로 물러났다. 성벽을 따라 가장 가까운 성문 입구로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 * *

진국검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생기자 진북왕은 우위를 점했고, 내리누르는 기세로 길리지고의 몸에 상흔을 남겼다. 때로는 주술사를 도와 진국검으로 거대한 구렁이의 몸뚱어리를 가르기도 했다.

땅, 푹…….

진북왕과 푸른색 거인이 스쳐 지나갔다. 길리지고의 손에 있던 거대한 검이 부러지고 가슴에는 검 자국이 깊게 파여 장기가 어렴풋이 보였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옅은 금빛의 화염이 조용히 타오르며 생명력을 파괴했다.

길리지고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촉구, 이번엔 실패네. 그해 이 진국검이 우리 부친을 죽였는데 오늘은 또 나를 죽이려 하는군.”

길리지고는 연신 뒤로 물러나며 분노로 포효했다.

“뭘 소리 지르는가. 그해 아버지 휘하에 그렇게 많은 정예병 역시 이 흉기에 목을 베이지 않았는가?”

촉구는 격노했고, 방대한 몸뚱어리가 성안에서 기승을 부렸다. 공포의 괴력은 근본적으로 주술사가 필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촉구는 이번 전쟁의 형세가 자기 측에게 아주 불리하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그는 궁지에 빠졌다고 할 수도 있었다.

“본좌는 달갑지 않다고, 본좌는 아직 2품으로 승직하지 않았단 말이야. 진북왕 이 풋내기가! 그해 위연이 배후에서 그를 지지해주지 않았다면 이 몸이 진작에 그를 골백번은 삼켰을 거야.”

촉구는 쉴 새 없이 포효했다.

“위연?”

진북왕이 냉소를 지었다.

“스스로 무공을 포기한 겁쟁이지. 그해 본왕이 세력을 일으키지 못해 그와 함께 일했을 뿐이야. 본왕에게 그의 지원이 필요하다니? 가소롭군.”

그는 갑자기 목표를 바꾸어서는, 길리지고를 버리고 돌아서서 촉구를 겨냥했다. 촉구의 말이 그를 불쾌하게 한 듯했다.

이는 제 도끼로 제 발 찍는 사냥이었다. 진북왕은 2품으로 승직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오랑캐 고수를 베어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자 했다.

초주성의 38만 백성은 그의 무도의 징검다리로, 그가 정상에 오르는데 필요한 희생이었다. 그들은 그와 같은 이유로 죽었다.

“잘 왔군!”

촉구는 갑자기 머리를 비틀어 돌리더니 세로 눈에서 오광을 내뿜어 진북왕을 뒤덮었다.

진북왕은 몸이 갑자기 굳어서는 생각이 느려졌으며 손과 발의 관절이 뻣뻣해졌다.

흰 치마의 여인이 이 기회를 틈타 아홉 개의 여우 꼬리를 바람에 부풀린 뒤 마치 촉수처럼 진국검을 감고 힘껏 잡아당겼다.

길리지고는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그러면서 주먹을 치켜들더니 허리를 비틀고 팔을 흔들면서 한 방 날렸다.

이 순간,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주먹과 공기가 마찰하면서 화염이 한 층 타올랐다.

진북왕은 머리를 한 방 맞고, 포탄처럼 날아가 집을 뚫고 폐허에 부딪쳤다.

그리고 이때 주먹을 날리는 음파와 진북왕의 머리를 때리는 ‘펑’ 소리가 그때서야 울려 퍼졌다.

진국검은 공중에서 선회하다가 먼 곳에 무너져 내린 폐허에 꽂혔다.

“후후…….”

길리지고는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이 틈을 타 옅은 금빛의 화염이 태운 상처를 손봤다.

촉구와 흰 치마의 여인 역시 마침내 진귀한 숨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상황이 아주 불리했다. 혈단 쟁탈전을 계속하다 보면 반드시 누군가는 낙오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렇게 물러가면 진북왕이 혈단을 삼킨 후 틀림없이 진국검을 들고 쳐들어와 길리지고나 촉구의 정혈을 빼앗을 터였다.

그는 2품으로 승직할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진퇴양난이었다.

진북왕은 폐허에서 일어서서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더니 냉소를 지었다.

“진국검은 생명이 없는 물건이 아니라 정신이 깃들어 있다. 우리 대봉 황실 사람이라면 부릴 수 있지. 너희가 마지막 발악을 해봤자 죽는 시기를 미루는 것뿐이다.”

그는 말을 마치고 오른손을 뻗었다. 마치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려는 듯 소리쳤다.

“검이여, 오라!”

길리지고, 촉구 그리고 흰 치마의 여인은 순간 두피가 저렸다. 그들처럼 강해도 이 순간만큼은 솟아오르는 무력감을 참을 수 없었다.

이때 가늘고 긴 손이 검자루를 잡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진북왕은 휑한 오른손을 보고 경악하더니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진북왕의 냉혹한 얼굴에 보기 드문 놀라움과 분노 그리고 망연함이 드러났다……. 그는 처음으로 황실 외 사람이 진국검 뽑는 걸 보았다.

큰 타격을 입은 푸른색 거인은 마치 강적을 맞닥뜨린 듯 먼저 온몸을 떨었다. 그러고 나서 진국검이 진북왕의 손으로 돌아가지 않은 걸 발견하곤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리고 망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주술사와 거대한 구렁이는 쌍쌍으로 손을 뗐다. 수 리 밖으로 급히 물러난 주술사의 시선은 시종일관 한 방향, 한 장소에 머물렀다. 진국검이 있는 장소였다.

거대한 구렁이는 머리를 치켜올리고 뱀 몸뚱이를 조정한 뒤 금색 세로 눈을 참다못해 가늘게 떴다. 한쪽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듯했다.

연화 중앙의 검은 사람 형체는 악의를 가득 담아 진국검과 그걸 잡은 사람을 주시했다.

유독 흰 치마의 여인만 표정이 복잡했다. 그녀는 기쁜 듯 슬픈 듯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국검을 쥔 자는 평상복을 입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모의 남자였다. 그는 보잘것없는 일을 했다는 듯 진국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두 눈으로 진북왕을 빤히 주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벌려 험상궂어 보이기도, 분노해 보이기도, 비통해 보이기도 한 웃음을 지었다.

“훌륭해. 나도 이 검을 쓸 수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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