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화. 성을 공격하다 (1)
해가 점점 서쪽으로 기울고, 성벽에 서서 조망하던 병사들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하늘 끝에서 일어난 먼지를 보았다. 무수한 기마병이 쏜살같이 달려왔으며 그 뒤로는 두 장 높이(6m)의 푸른색 거인이 보였다.
그들이 왔다.
쿵쿵쿵!
북소리가 울리고, 들판이 요동쳤다. 성벽 위의 병사들은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질서 정연하게 성을 지키는 무기를 준비했다. 낙석, 석유, 뇌목(檑木) 등이었다.
오랑캐 대군이 곧 성을 공격한다는 소식은 이미 초주에 전해진 뒤였다. 군관이든 말단 병사든 어느 누구도 이 사태에 당황하지 않았다.
갑옷과 투구가 맞부딪히는 사이로 진북왕이 칼을 들고 발걸음을 내디뎌 성루의 조망대에 섰다. 그는 청안부의 우두머리를 멀리 바라보았다.
3품 강자 둘이 광활한 평원을 사이에 두고 눈을 마주쳤고 상대방의 표정, 눈빛을 똑똑히 보았다. 길리지고는 흉악하게 웃었으며 진북왕은 냉소와 경시를 머금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길리지고는 상대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두 팔을 흔들며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쿵쿵쿵…….
마치 포탄이 터지는 듯 대지가 진동했고, 푸른색 거인은 잔영으로 변했다. 성벽에 머리를 부딪쳐 무너뜨리려는 듯했다.
“발포!”
호국공 궐영수가 포효했다.
성벽 위의 대형 상노, 화포가 잇따라 푸른색 거인을 조준했다.
상노의 활시위는 네 명의 병사가 협력하여 잡아당겼다. 활시위를 천천히 잡아당김에 따라 상노 뼈대에 낙인된 주문이 하나씩 빛나기 시작했다. 주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약한 빛은 마치 물처럼 흘러 2m 길이의 무거운 화살 위로 모여들었다.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자 약한 빛이 전부 무거운 화살에 응집했다. 2m 길이의 무거운 화살에서 눈부신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마치 순수한 빛으로 이루어진 듯했다.
붕! 붕! 붕!
2m 길이의 무거운 화살이 휙휙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마치 흐르는 빛처럼 푸른색 거인을 향해 발사되었다.
쿵! 쿵! 쿵!
이와 동시에 같은 진법이 뒷받침하는 화포에서 타오르는 불덩이가 하나씩 발사되었다. 마치 눈부신 운석 같았다.
대봉 군대는 개인의 무력이 오랑캐만 못했다. 인원수는 시체를 조종할 수 있는 무신교만 못했다. 융통성 면에서도 교활하고 성가신 고족 군대만 못했다. 더욱이 중·고차원적인 전투력은 불국만 못했다.
하지만 대봉이 중원을 차지하고, 구주를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전에 유가에 기댄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가가 조당을 주도하던 시절, 삼군을 통솔하고 군대를 통솔하던 직위는 통상적으로 유가 지식인이 맡았더랬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유장(*儒將: 서생의 풍모를 지닌 장수)은 대체로 운록서원 출신이었다.
유장들은 병법에 정통하고 군대를 신처럼 부리는 데다가 스스로 등판하여 싸울 수도 있었다. 허풍을 부리자면 천지를 뒤흔들 정도였다.
유가가 몰락한 후에는 사천감의 법기가 중책을 맡았다. 중형 살상 법기, 화기는 대봉이 의지하는 생존의 근간이었으며, 더욱이 성을 지킬 때는 고기 분쇄기라고 불릴 정도였다.
눈을 자극하는 빛을 내뿜는 무거운 화살, 운석을 방불케 하는 불덩이가 끊임없이 푸른색 거인의 몸에 폭격을 퍼부었다.
길리지고는 6품 무사를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무거운 화살과 화포를 애써 받치고 있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그의 몸뚱어리도 떨렸다.
하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진해서 무거운 화살과 화포의 세례를 맞이하고, 거대한 검을 휘둘러 무서운 화살과 유성을 쫓아버렸다. 이런 공격은 그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뒤따르는 기마병에게는 치명적인 화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설령 이렇게 해도 한 차례 폭격으로 백여 명의 정예 기마병이 희생됐다.
길리지고는 초주성에 접근하기까지 채 200m가 남지 않았을 때, 갑자기 두 무릎을 굽혔다. 그러자 지면이 내려앉으면서 그가 몸을 기울여 성벽에 부딪쳤다.
강풍이 휙휙 불어왔다. 두 장(丈) 높이의 푸른색 형체는 누구도 다스릴 수 없는 기기를 휩쓸고 있었다. 마치 산 한 채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 성루 위의 진북왕이 움직였다. 펑! 벽돌이 산산이 부서진 사이로 그는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선홍색의 외투가 마구 펄럭였다. 그는 가장 높은 곳까지 도약하며 긴 칼을 뽑아 들었다.
그는 그대로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뒤이어 진북왕은 급하강하여 긴 칼을 내리쳤다.
그는 비록 한 사람이었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위압감을 주었다.
푸른색 거인은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자세를 멈추고, 몸가짐을 굳건히 했다. 거대한 검이 갑자기 공격을 되받아치면서 공중에 있는 진북왕을 향했다.
쿵!
하늘과 땅 사이, 거대한 소리가 큰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조수 같은 기기가 원형을 그리며 물결쳤다. 마치 화포 수십 개가 폭발하면서 허공에 충격파가 퍼지는 듯했다.
아래쪽의 청안부 기마병은 운 좋게 화를 면했다. 성벽의 벽체 위에서 주문이 빛나더니 무형의 장막을 형성하여 기기의 여파를 막았다.
진북왕은 다시 날아올라 성루로 돌아갔다. 손에는 긴 칼을 쥔 채 우뚝 섰다.
“진북왕, 전쟁의 신이여!”
호국공 궐영수가 무기를 높이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진북왕, 전쟁의 신이여.”
“진북왕, 전쟁의 신이여…….”
성벽 위,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단결했다. 진북왕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신처럼 떠받들었다.
* * *
북성 문 앞 성 밖의 끝없는 광야 위, 큼직한 무언가가 지평선 끝자락에 나타났다. 몸 전체가 검붉고 비늘이 없으며 이마에는 금빛 태양 같은 외눈이 있었다.
검붉은 뱀이 땅에 붙어 이리저리 움직이니 서서히 먼지가 일었다.
그의 후방에는 빽빽한 요족 군대가 있었다. 교룡, 검은 비늘의 거대한 호랑이, 외뿔 도마뱀, 원숭이가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서는 새까만 금부(禽部) 대군이 천지를 뒤덮으며 빠른 속도로 스쳐왔다.
성벽 위의 병사는 무표정으로 두려운 기색도, 긴장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기계적으로 상노, 화포 또는 구부러진 강궁을 발사하면서 공중을 선회하는 날짐승을 공격했다.
화살에 맞고 떨어진 날짐승은 본래도 이미 죽었는데, 추락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새빨간 눈을 뜨고 다시 날갯짓하며 동료에게 달려들었다.
포화와 화살에 죽은 요족 대군 역시 다시 기어올라 곁에 있는 동료를 물어뜯고 심지어는 적색의 거대한 구렁이까지 물어뜯었다.
요족 대군이 성 밑까지 돌진하기도 전에 그들 사이에서 소규모 혼란이 일어났다.
붕붕붕…….
무거운 화살이 세차게 발사되었다. 알아서 요족 대군을 무시하고 목표를 적색 구렁이로 고정했다. 화살은 결코 직선으로 가지 않고, 곡선으로 같은 목표를 공격했다.
거대한 구렁이의 칠 촌(寸) 지점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무거운 화살과 포화를 가지고 놀면서 약점을 조준했다.
거대한 구렁이는 몸집이 커서 압도적인 힘이 있지만 동시에 그다지 민첩하지 않다는 단점도 있었기에 무거운 화살과 화포를 피할 수 없었다.
비록 중상을 입지는 않을 테지만, 칠 촌(寸) 지점은 마치 강철 못이 피와 살을 파고드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참기 힘들었다.
“악…….”
거대한 구렁이는 머리를 치켜들고 시뻘건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마치 검붉은 블랙홀처럼 이마의 외눈이 끊임없이 떨리더니 갑자기 금빛을 내뿜으며 성벽에 세차게 부딪쳤다.
벽체의 진문이 빛나기 시작했고, 무형의 장막이 자극에 반응하여 떠올랐다.
금빛이 장막에 부딪히며 잘게 부서진 빛 부스러기를 일으키자 벽체에서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무수한 틈이 갈라졌다.
산해관전역 이후, 북경에서 첫 대형 전투가 벌어졌다. 참전한 3품 고수는 총 셋에, 은밀히 숨어 있는 미지의 고수도 한 명 더 있었다.
* * *
초주성 내, 강호 인사들이 객잔과 집을 뛰쳐나와 경악하며 성문 방향을 쳐다보았다.
쾅쾅거리는 화포 소리, 상노의 낭랑한 활시위 소리, 말발굽 소리, 성벽 수비병의 외치는 소리…… 그리고 무서운 건 고품급 강자가 맞붙으면서 나는 기기 파동이었다.
성안의 강호 인사들은 똑똑히 듣고 감지했기에 마음속에 어쩔 수 없이 두려움이 생겼다. 침상 밑에 숨어서 벌벌 떨고 싶어질 뿐이었다.
“무슨 일인가? 오랑캐가 초주성까지 쳐들어 왔나?”
“죽일 놈들. 오랑캐 놈들이 감히 초주성까지 쳐들어오다니. 그들은 대봉과 전면전을 벌이고 싶은 건가?”
“가세. 우리 역시 성벽 위로 가 함께 성을 지키자고.”
초주성에서 가장 큰 주루 입구, 강호 인사 몇 명이 발을 동동 구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이때 그들은 주인, 가게 심부름꾼이 넋 나간 표정으로 객잔을 나가는 걸 보았다.
길가의 집안에서도 현지 백성이 넋이 나간 채 걸어 나왔다. 그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에 눈빛은 공허하고 영기(靈氣)가 부족하여 마치 산송장 같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집을 걸어 나와 길가에 와서는 어눌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머리 위로 잘게 부서진 핏빛이 흘러나와 하늘로 흩날렸다. 그런 뒤 한 곳에 모여 거대한 핏덩어리로 뭉쳤다.
그리고 그들 몸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끌려 나와 땅바닥에 잠겼다. 그 과정 중에 검은 그림자는 쉴 새 없이 발버둥 치며 통곡하였다.
“알고 보니 나는 이미 죽었나 보구나…….”
“내가 죽었어? 내가 죽었다니!!”
“원치 않아, 원치 않는다고…….”
대량 학살 후 초주성에 들어온 백성, 강호 인사는 성안 곳곳에서 이렇게 무서운 광경을 목격하자 가슴이 섬뜩해졌다.
‘초주성 사람들이 이미 전멸한 건가? 그럼 나는 전에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누구와 말을 하고, 한 달여간 밤낮으로 누구와 지낸 건가? 알고 보니 우리 귀신 성에서 한 달 넘게 생활했구나…….’
거대한 공포가 얼마 남지 않은 산 사람들 마음속에서 폭발했다.
* * *
역참 안, 사절단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거리에 나와, 멍하니 서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창백한 사람 형체를 지켜보았다.
그들 머리 끝에서 혈기가 빠져나와 공중으로 떠올랐고, 그들 몸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벗겨져 땅바닥으로 말려들어 갔다.
양연이 중얼거렸다.
“알고 보니 혈도 삼천리 장소가 초주성이구나.”
“짐승 같은 놈!”
갑자기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리사승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초주 38만 인구, 38만의 원혼……. 대봉 육백 년 역사를 통틀어 이런 만행을 저지른 자는 없었다. 본관, 본관은 경성으로 돌아가 회왕을 탄핵해야겠다. 죽어서야 멈출 것이니!”
그는 주먹을 쥐고 땅을 힘껏 내리쳤다. ‘악’하고 소리를 내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류 어사는 입술을 떨었다.
“그가 어떻게 감히, 그가 어떻게 감히……. 명색이 대봉 친왕으로 그는 북경 백성의 추대를 받고, 북경 백성의 봉양을 받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무고한 백성에게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 회왕은 죽어도 싸다, 죽어도 싸……!”
진 포두는 두 눈을 붉힌 채 칼을 쥔 손을 끊임없이 떨었다.
양연은 그들을 보면서 얼굴에 감동의 빛을 내비쳤다.
이 문관들은 교활하고 능글맞으며 아귀다툼하는 걸 가장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저하게 도덕성이 마비된 이들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경전에서 물들어 나온 정서가 있었다.
나쁘면서도 좋은 이들이었다.
진 포두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회왕은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겁니까?”
양연이 침음했다.
“아마 2품으로 승직하려는 거겠지. 이건 내 추측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