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6화. 습격 (2)
이묘진은 말을 이어갔다.
“자네는 사절단이 북경에 도착한 일을 알 테지.”
조진은 아쉬워하며 허칠안에게서 시선을 옮겼고,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혈도 삼천리 사건을 조사하러 왔겠지요.”
이묘진은 웃더니 허칠안을 가리켰다.
“수석 수사관이 바로 저자일세. 은밀히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도중에 사절단을 벗어나 암암리에 북경에 잠입했지.”
‘그랬군…….’
조진은 더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채 감격하며 읍을 올린 뒤 목소리를 낮추었다.
“허 대인, 대인께서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대인께서는 불문을 격파하여 조정의 체면을 세워 주고, 강호 인사들의 입에 오르내렸지요. 하지만 저는 가장 탄복하게 만드는 사건이 운주 때 홀로 반란군 수만을 막아선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매번 생각할 때마다 저는 뜨거운 피가 들끓습니다. 남자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요.”
‘이 드립은 못 넘어가겠지?’
허칠안은 하마터면 얼굴을 가릴 뻔했다. 당사자 중의 하나인 이묘진이 그를 향해 경멸하는 눈빛을 던졌기 때문이다. 허칠안은 부끄러운 나머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이 자는 언제나 허풍 떨기를 좋아하는군. 나쁜 버릇을 고칠 수가 없나 봐. 나까지 창피하게 하다니. 천지회 내부에 그의 신분을 공개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묘진은 그를 노려보더니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콜록콜록!”
그는 기침 소리를 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사나이는 과거를 자랑하지 않네. 잡담은 그만하고, 우리 즉시 정 포정사를 만나러 가세. 이 장군, 그대 비검으로 우리를 데리고 떠나 주오. 몇 바퀴 더 돌고.”
이묘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는 내가 감시당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나? 허나 내 귀신은 반응이 없다고 하던데.”
허칠안은 ‘허’하고 소리를 냈다.
“그건 상대의 잠복 수준이 높다는 걸 설명하는 것밖에 안 되오. 생각해보시오. 진북왕의 밀정이 소식을 전하는 강호 인사를 죽인 이상, 당연히 정 포정사의 의중을 어느 정도 파악하지 않았겠소. 그리고 그대가 마침 이 시기에 나타났으니 진북왕의 밀정들이 절대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오. 그들은 고의로 그대를 무시하면서 은밀히 정 포정사를 낚아낼 가능성이 농후하오.
다행히 조 형이 신중해서 갑자기 찾아온 건 아니었소. 그는 일찍이 그대 곁에 잠복하지 않았소. 하지만 이렇다고 해도 조 형을 포함하여 그대 휘하의 강호 인사들 모두 조사 중에 있을지도 모르오. 어쩌면 며칠 지난 뒤 진북왕 밀정이 직접 찾아올지도 모르고.”
이묘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하더니 깨달은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날 내가 곡물 가격을 올리는 악덕 상인을 처단한 후, 관아에서는 처음에 나를 없앨 계획을 갖다가 나중에 다시 생각을 바꿨네. 은밀히 나를 찾아와 이야기하길 내게 좀 절제하길 바란다더군.”
그녀는 즉시 소소를 향낭으로 거두고 머리를 굴려 탁자 옆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은 비검을 살렸다. 그러자 비검이 방 안에서 빙빙 돌았다.
이묘진이 손을 휘젓자 ‘콰당’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리고 비검이 뚫고 나갔다.
“가세!”
그녀는 앞장서서 창밖으로 뛰쳐나갔고, 허칠안과 조진이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동시에 검을 밟았다. 이묘진이 앞에 허칠안은 가운데에 조진은 뒤에 섰다.
비검이 세 사람을 끌고 곧장 높은 하늘로 솟구쳤다.
바로 이때, 허칠안의 머릿속에 상응하는 화면이 떠올랐다. 아래쪽에서 강한 기기를 휘감은 화살이 격하게 날아왔다.
이 화살은 적을 관통하지 않았다. 화살은 절대 멈추지 않는 기세를 품은 채 날아갔다.
“왼쪽으로!”
허칠안이 크게 소리쳤다.
이묘진은 생각하지도 않고, 비검을 조정하여 왼쪽으로 드리프트했다. 다음 순간, 화살이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세 사람의 방금 위치를 관통했다.
화살이 허공에 떨어지더니 돌아서서 다시 세 사람을 바싹 따라붙어 휙휙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고 왔다.
“4품 무사네.”
이묘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어서, 얼른 좀 높이 나시오. 4품 무사가 접근하게 해서는 안 되오!”
허칠안은 두피가 저려 왔다.
4품 무사가 접근한다면, 같은 급의 다른 체계를 순식간에 격파하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다. 한꺼번에 물리치는 조작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4품 무사가 이런 실력을 지닐 수 있으려면 두 가지 조건에 기대야 했다. 화경과 ‘의(意)’.
화경기의 무사는 개인 체술(体術)의 전봉이었다. 이묘진은 둘째 치고, 같은 무사인 허칠안이라고 해도 화경 무사를 맞닥뜨리면 아마 얻어맞는 상태에 놓일 터였다.
더욱이 ‘의(意)’를 수련해낸 4품은 논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천종 성녀와 대봉 은라 두 사람 모두 후수와 비장의 수단을 지니고 있었다. 그저 지금은 사투를 벌일 시기가 아닐 뿐이었다.
4품 무사는 짧은 시간 안에 죽이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상대가 들러붙으면, 세 사람은 갈 수 없었다. 그러니 그때 가면 다른 밀정과 관병이 밀려올 테고 더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허칠안은 신분을 폭로해서는 안 되었으므로 유가 서적과 금신 모두 시전할 수 없었다. 따라서 4품이 따라붙으면 안 됐다.
슉!
이묘진이 비검을 치켜세워 곧장 하늘을 뚫고 나가며 돌아온 화살을 피했다.
한 형체가 아래에서 용마루 위로 뛰어올라 백성들의 지붕 위에서 미친 듯이 내달리고 도약하며 비검을 추격했다. 그 과정에서 검은 장포를 두른 형체는 끊임없이 활을 당겨 4품 ‘전의(箭意)’를 머금은 화살을 쏘아 댔다.
이묘진은 줄곧 위로 올라가던 중 두 화살에 밀렸고, 막 머리 위 화살을 떨치려 했다. 그때 갑자기 아래쪽에서 발사된 여러 개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장포의 사람이 용마루 위를 날아다니며 총 13개의 화살을 쏘았다. 이 날카로운 화살은 마치 비검처럼 다른 각도에서 허칠안을 공격했다. 화살은 적을 관통하지 않았으며 결코 멈추지도 않는 진의(眞意)를 품고 있었다.
이묘진은 베테랑처럼 비검을 부려 드리프트하고 꺾고 선회하면서…… 화살을 민첩하게 피했다.
하지만 검은 장포의 사람이 쏜 화살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세 사람은 화살로 구성된 대진(大陳)에 갇혔다.
‘데자뷰다, 데자뷰…….’
허칠안은 이묘진의 운전 솜씨에 갈채를 보내면서 지상의 추적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고민했다.
‘유가 법술서는 사용하면 안 되고, 신수 승려도 이용하면 안 된다.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니까……. 금강신공도 쓰면 안 된다. 내 신분이 까발려질 것이다. 천지일도참도 마찬가지고…….’
허칠안은 그때서야 자신이 배운 게 좀 적고 허술하다는 걸 알았다.
“잠깐, 유가 법술을 시전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법서를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
그의 마음속에 영험한 빛이 스쳤다.
생각이 스치는 사이, 허칠안은 아래쪽 검은 장포 발밑의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는 걸 보았다. 그는 도약하여 일정한 고도까지 비행했고 즉시 온 힘을 다해 그의 발밑까지 화살이 날아오게 했다.
그는 이렇게 화살을 밟으면서 끊임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끊임없이 화살을 쏘아 이묘진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아마 4품 전봉일 거야…….’
허칠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묘진의 소매에서 부적이 하나 미끄러져 나왔다. 그녀는 입술 끝을 치켜세우고 주문을 외더니 갑자기 손을 홱 뿌리치며 내던졌다.
부적이 허공에서 타오르고, 화염이 ‘후’하고 팽창하더니 직경 10m가 넘는 거대한 불덩이로 변했다. 마치 태양 같았다.
훨훨 타오르는 불빛이 아래쪽의 도시를 비추어 낮이 일찍 찾아온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허칠안이 타는 냄새를 맡고는 고개를 돌려 보니 조진의 속눈썹은 이미 없어진 뒤였다. 그의 머리카락 역시 구부러져 누렇게 말라 버린 상태였다.
‘분명 내 속눈썹도 없어졌겠지……. 내 털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전 세계가 내 털을 겨냥하는구나…….’
허칠안은 현재 본인의 푸르스름한 두피와 막 그를 떠나간 속눈썹을 떠올리자 가슴이 아팠다.
이묘진은 고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한 손을 뻗더니 세차게 밀었다.
불덩이가 마치 운석처럼 검은 장포를 내리쳤다.
검은 장포는 허공에서 가로로 이동하여 화살을 밟으면서 불덩이를 피했다. 그는 불덩이를 떨어지게 놔두고, 도시의 백성들을 해치도록 내버려 두었다. 불덩이를 막을 계획은 전혀 없었다.
이묘진은 미간을 찌푸리자마자 펼쳤던 손바닥을 갑자기 꽉 쥐었다.
쿵!
불덩이가 허공에서 폭발했다. 마치 성대한 불꽃처럼 원을 그리면서 폭발하며 흩어졌고, 땅에 떨어지기 전에 소멸했다.
검은 장포는 이 기회를 틈타, 화살을 밟으면서 공중을 가로질러 재빠르게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혔다.
일단 거리를 좁히면, 그는 재빨리 이묘진에게 심한 타격을 입힐 자신이 있었다. 가장 최악의 사태가 생긴다고 해도 그는 그녀를 공중에서 떨어뜨릴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묘진이 할 수 있는 일은 동료 둘을 버리고 혼자서 도망치거나 동료와 함께 궁지에 몰린 쥐가 되는 것뿐이었다.
이묘진은 기세등등하게 자신을 죽이러 오는 검은 장포를 마주해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산사태를 앞두고도, 태연자약하고 냉정한 얼굴로 검지(劍指)를 하늘로 향하고 낮게 소리쳤다.
“사(赦)!”
우르르 쾅쾅!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소리가 크게 울렸다. 넘실대는 먹구름 속에서 갑자기 눈을 자극하는 번개가 쳤다.
번개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공중은 무사의 홈그라운드가 아니었기에 검은 장포는 이번에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맞았다.
지직!
번개는 무형의 기장에 가려졌고, 촘촘한 불꽃이 기장 표면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는 기기를 뒤흔들어 이번 벼락에 완강히 저항했다.
조진은 안색이 변했다. 이런 광폭한 벼락도 검은 장포를 저지할 수 없었다. 지금 양측의 거리라면, 검은 장포는 다음 순간 그들에게 바짝 다가올 터였다.
이묘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만일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땅에 내려가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자신과 허칠안의 전투력이라면 이 4품 전봉의 고수를 죽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바로 이때, 그녀는 허칠안이 하는 말을 들었다.
“계속 나시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즉시 땅으로 내려가 사투를 벌이겠다는 생각을 접었고, 비검을 몰아 위로 돌진했다.
그리고 이때, 검은 장포는 몇 장(丈) 밖에서 이미 힘을 비축하여 언제든 덮쳐올 태세를 취한 채였다.
치익!
허칠안이 손을 홱 뿌리쳐 종이 한 장을 다 태워 버리고, 몸으로 종이의 연소를 막으면서 우렁차게 말했다.
“하늘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덕목을 가장 중시하는 법. 살생은 안 된다!”
검은 장포는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가 갑자기 굳더니 날카로운 눈동자가 부드럽게 바뀌었다. 전투 의지는 연기처럼 사라져 없어지고 마음속에는 참회하고자 하는 충동이 일었다.
그는 눈앞의 세 사람을 추격하여 죽이려 했던 일과, 예전에 범했던 자신의 다른 죄악을 참회했다.
이 과정은 불과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무사의 강한 의지가 영향을 몰아냈다.
이미 늦었다. 통제력을 잃은 화살이 추락했다. 그는 점점 멀어지는 동안 재빨리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이묘진 등 세 사람의 검은 그림자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불문?”
검은 장포는 분노한 듯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