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75화 (472/712)

475화. 습격 (1)

허칠안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는 제삼자이기에 그대에게 계략을 품을 리가 없고, 전과 다름없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대를 찾은 것이오. 그렇다면 그의 동기는 아주 분명하오. 바로 진북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한 일을 퍼뜨리려 하는 것이오. 그가 오랑캐에게 밝히지 않은 것 역시 오랑캐도 정혈을 노려 진북왕의 승직을 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의미라오. 이로써 그는 기사가 아니라 그 속에 휘말린 피해자라는 걸 알 수 있소. 또한, 이 자는 살고자 하는 욕구가 아주 강하오. 그가 신중할수록 더욱이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의미하오. 그렇지 않고선 아무런 거리낌 없이 퍼뜨려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만, 그 대가는 진북왕의 첩자에게 멸구당하는 것일 테니까.”

‘맞네. 합리적인 분석이야…….’

이묘진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서 그는 내가 정보를 퍼뜨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여기는 게군. 그는 아마 한 번 시도해본 적이 있을 테지만, 그를 도와 소식을 전한 강호 인사들 모두 경성 외곽에서 죽임을 당한 거야. 즉, 내가 길가에서 발견한 그 시체인 게지.”

이묘진은 디테일이 맞아떨어지니 갑자기 모든 걸 깨달은 듯 후련해졌다.

초주 포정사가 백성 대량 학살이라는 재난에서 도망쳐서 잠복했다. 암암리에 강호 인사를 파견하여 전달한 소식은 경성으로까지 넘어갔다.

하지만 강호 인사는 추격 살인을 당했다. 그는 경성 밖에서 죽었지만 뜻하지 않게 마주칠 일이 생겼다.

허칠안은 고개를 기울였다가 아래턱을 쓰다듬더니 말했다.

“정흥회가 공문 쓸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건 이해할 수 있소. 가로막힐 테니깐. 초주에서 전파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소. 초주는 진북왕의 근거지니 목숨을 잃을 정도의 화를 불러오기에 십상이오. 내가 납득가지 않는 점은 길가에서 죽은 그 사나이가 분명 거의 경성에 도착했다는 부분인데……. 이치대로라면, 경성 관내로 도망치는 데 성공할 수 있다면, 성에 들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오. 경성 세력은 얽히고설켜 초주처럼 도처가 전부 진북왕의 첩자와 부하인 것과는 다르오.”

이묘진이 말했다.

“수주대토일 가능성도 있지. 사전에 경성 근처에 매복을 심은 게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휴식에 급급했기에 이 화제에 집착하지 않고 일어서서 이묘진의 침상으로 걸어가 꼿꼿하게 누웠다.

“나는 잠깐 눈 좀 붙이겠소. 날이 어두워지면 나를 깨우시오.”

“자네…….”

이묘진은 입을 벌리더니 말을 하려다 말았다.

‘이 자는 대체 뭐지? 여인의 침상에 눕는다고 하자마자 그냥 누워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나? 됐다, 됐어. 강호 사람은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는다. 나중에 객잔 심부름꾼에게 침구와 침상을 바꿔 달라고 하지 뭐…….’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자신을 위로했다.

‘역시나 누워있는 게 편하다. 내 지금의 체력이라면 이런 몸살 정도는 금방 회복될 거야……. 음, 이 은은한 향기는 뭐지? 이묘진은 연지나 물분을 쓰는 여인 같지는 않은데.’

허칠안은 정신을 가다듬고 재빠르게 수면 상태로 접어들었다.

* * *

조진은 십여 미터 떨어진 같은 복도의 방 안에서 초조하게 하루를 보냈다.

그는 그동안 관찰과 정보 수집을 거치면서, 하늘을 가르며 나타난 비연 여협객이 틀림없는 진짜라는 것을 철썩 같이 믿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두 가지를 통해 검증할 수 있었다.

첫째, 북경 오랑캐가 광기를 부리며 날뛰고 약탈하자 많은 강호 협객이 잇따라 왔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비연 여협객을 본 적이 있었고,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녀의 대표 비검을 들은 적은 있었다.

둘째, 경성에서 일어난 천인 간의 전쟁은 끝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사전에 한 달 넘게 분위기가 조성되었기에 강호에서는 비연 여협객의 진짜 신분에 관해 일찍이 정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긴장되고 초조한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그는 큰 비밀을 실토했으나 좀처럼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도 가장 쪼들렸다.

이때 그는 탁자 위의 찻잔이 갑자기 쏟아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물 흐른 흔적이 네 글자를 이루었다.

<내 방으로.>

조진은 놀라우면서도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황급히 일어서서 문 입구로 걸어가다가 다시 멈춘 다음, 숨을 깊게 들이마시어 미쳐 날뛰는 심장 박동과 긴장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자신이 최대한 차분하게 보이도록 했다.

그런 뒤 그는 발걸음을 억누르지도 않고, 또 안달 나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이묘진 방으로 걸어가서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방문이 저절로 활짝 열렸다.

* * *

널찍하고 깔끔한 실내 안, 비연 여협객과 그녀의 경국지색 여종이 탁자에 앉아 있었다. 촛불이 그녀들의 아름다운 얼굴을 따스한 주황색으로 물들였다.

조진은 두 절세미인의 매력에 이미 익숙해졌기에 그녀들을 바라보는 일은 알아서 생략했다. 그녀는 시선을 두 여인 뒤의 침상에 누운 한 남자에게로 옮겼다.

‘이건……. 그가 바로 비연 여협객이 말하는 동료인가? 비연 여협객의 침상에서 잘 수 있다니, 친분이 얕지 않은 모양이군.’

조진은 깜짝 놀랐다. 이묘진은 정신을 차리고 침상을 향해 소리쳤다.

“일어나게. 그자가 왔어!”

침상 위의 남자는 부르는 소리에 깬 듯 움직이더니 갑자기 몸을 돌리고 앉아 조진을 쳐다보았다.

쿵쿵쿵…….

조진은 놀라서 연거푸 뒷걸음질 쳤다. 그 사람은 고개를 비스듬히 한 채 곁눈질로 그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곁눈질로 사람을 보는 건 그렇다 칠 수 있겠지만, 고개를 기울이고 쳐다보는 행동은 대체 어떤 오만함이란 말인가!

“그대가 조진?”

목이 삐딱한 남자가 말했다.

“저, 접니다…….”

이 순간, 조진은 촛불을 빌려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마치 속세의 훌륭한 공자처럼 더할 나위 없이 준수했다.

이렇게 보니 그는 비연 여협객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내가 그대에게 묻고 싶은 게 있네.”

목이 삐딱한 남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삐딱하고 준수한 외모의 소년랑이 그를 잠시 주시하더니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정흥회가 한 말이 진짜라고 판단하고 확신했지?”

이묘진은 마음이 동요했다. 조진이 대량 학살 참사를 겪지 않았는데 어떻게 정흥회가 한 말의 진위 여부를 판단한 거지? 만약 정흥회의 말만 들었다면, 그날 일은 보류해 두어야 했다.

조진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제게 의형제가 있는데 정 포정사 저택에서 하인으로 있습니다. 그가 모든 객경들과 포정사를 호송하여 초주성을 도망쳤다고 합니다.”

대봉은 판도(版圖)를 13주(洲)로 구분하고, 주(洲) 아래에는 주(州), 군(郡), 현(縣)이 있다. 초주는 본래 국가적인 호칭이 ‘초주(楚洲)’였는데 나중에 초주(楚州)로 바뀌었다.

다른 주(洲) 역시 그러했다.

정 포정사는 한 주(洲)의 민생 및 정무를 주관하는 관원으로, 지위가 높고 권력이 세니 당연히 저택에 많은 고수를 두고 있었다.

허칠안은 만약 백성을 대량 학살한 사람이 진북왕이 아니라면, 그가 운 좋게 초주성을 탈출한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제 의형제가 저를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안 후에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지요. 따라서 암암리에 초주성으로 갔고, 그곳은 여느 때와 다름없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백성을 대량 학살한 흔적이 전혀 없었지요.”

“그럼 자네는 대량 학살의 진위를 어떻게 판단했나?”

이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는 바로 다음에 성안에 정 포정사가 한 분 더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 어떻게 두 포정사가 존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의심을 품고 의형제의 부탁에 응했습니다. 은밀히 보호하면서 믿을 수 있는 강호 인사를 끌어들여 이 일을 퍼뜨리려고 했지요. 그 과정에서 저희는 초주 변방의 관도, 군현 모두 봉쇄됐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장군이 곳곳을 검문하고, 진북왕의 밀정이 암암리에 수색했지요.

저는 그때서야 정 포정사 대인이 하신 말씀이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대략 보름 전쯤, 저희 1기 형제들이 몰래 초주를 벗어나 경성에 가서 어전에 고발하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감감무소식이고요.”

조진이 탄식했다.

허칠안의 눈동자에 청광이 스쳤다.

‘거짓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날 그 잔혼이 한 본래 말은 혈도 삼천리, 조당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진북왕을 토벌해 주십시오!’

허칠안이 침음했다.

“그대는 초주성의 현 상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혹은 그 진짜 정 포정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진이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모르겠습니다. 정 대인께서도 판단력을 잃으셨지요. 그는 두 눈으로 직접 궐영수가 군대를 이끌고 백성을 살육하는 걸 보았는데, 사후에 저희가 다시 초주성에 잠입했을 때 그곳은 이미 원래대로 회복된 뒤였습니다.”

‘……제기랄!’

간단한 서술이었지만 허칠안은 두피가 저리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사절단은 이변이 없는 한 진작에 초주성에 도착했을 것이다. 만약 그곳에 문제가 있다면 양연의 수련 경지로 눈치챌 수 있을 테지……. 아니다. 양연은 그저 저속한 무사니 단서를 알아차릴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다. 만요국의 공주, 신비로운 술사 패거리가 전부 진북왕이 백성을 도살한 장소를 찾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진북왕은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 이 모든 걸 감추었지? 내 식견은 여전히 부족하다.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우선, 정 포정사를 만나보고 얘기하자. 그는 당사자니까…….’

허칠안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곁눈질했다.

“진짜 정흥회는 어디 있는가?”

조진은 일이 눈앞에 닥치자 오히려 침묵했다. 그는 허칠안을 본 다음 다시 이묘진을 보더니 좀 머뭇거렸다.

이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를 믿지 못하나?”

조진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당연히 비연 여협객을 믿습니다.”

그가 말하면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그는 목이 삐딱한 이 남자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설령 상대가 비연 여협객의 동료라고 해도 그는 마음속에 여전히 의구심을 품은 상태였다.

이건 인지상정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을 남김없이 신뢰하는 일은 아주 어려웠다. 더욱이 이 사건에는 정 포정사의 안위가 걸려 있었다.

이묘진은 언짢아하며 뒤에 있는 남자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설명했다.

“자네는 아마 그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걸세.”

조진은 어리둥절했고, 이내 다시 허칠안을 살피더니 상대를 떠보았다.

“비연 여협객께서는 어찌 그렇게 말씀하시는지요?”

소소는 양손을 허리춤에 얹고, 아주 거만하게 말했다.

“대봉 은라 허칠안, 들어보았나요?”

‘대봉 은라 허칠안?!’

이 말은 마치 조진의 귓가에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그는 놀란 나머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있었다.

몇 초 후, 광희의 감정이 가슴속에서 북받쳤다. 마치 어둠 속에서 표류하던 배가 등대를 찾은 듯했고, 길을 잃은 여행자가 촛불을 본 듯했다.

조진 마음속에 드디어 주인 역할을 할 거물을 찾았다는 흥분이 솟구쳤다.

대봉 은라 허칠안. 이 자는 경찰이 있던 해에 궐기하여 기이한 사건을 여러 차례 해결하고 조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자는 사천감을 대표하여 불문과 두법하여 불문 나한을 격파했다.

이 자에 관한 전설은 이미 경성에 국한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천인 간의 전쟁에서 이묘진과 초원진을 제압한 사적은 아직 북경까지 전해지지 않았지만, 이미 이 정도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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