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화. 오합지졸
‘잉? 북방 요족이 이렇게 불문을 두려워한다고?’
허칠안은 좀 의외였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의 군요를 훑어보았다. 마치 눈을 부릅뜬 금강 같았으나 속으로는 미친 듯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신수 대사, 얼른, 얼른 나와서 식사하세요.”
“신, 신수 대사?”
‘……제기랄, 신수가 또 인터넷이 끊겼나? 그럴 리가 없는데. 방금 그에게 VIP 시즌 카드 네 장 끊어줬단 말이야.’
허칠안은 머릿속에 가득한 비난을 토해낼 대상을 찾지 못했다.
그는 순간 좀 초조해졌다. 몸에 소성의 금강불패를 품고 있기에 그는 이 요족들의 포위 공격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물론 절대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뚫고 나가는 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왕비는 어떡하겠나?
만군 사이에서 몸이 연약한 여인을 보호하면서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다치지 않게 하려면……. 파괴만 할 줄 아는 저속한 무사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었다.
어쩌면 유가 서적을 사용하면 이 요족 무리를 따돌리는 일은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허칠안이 원하는 일은 그들에게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요병들의 우두머리를 붙잡아 정보를 캐내는 것이었다.
신수 대사는 하필 이 시기에 인터넷이 끊겼다.
“씁…….”
이때 거대한 구렁이가 포효하더니 입에서 사람의 언어를 내뱉었다.
“그를 먹겠다!”
순식간에 흰 짐승이 포효하자 쥐 떼가 ‘찍찍’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여우 무리는 이를 드러냈는데 이가 아주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흑마는 고개를 숙인 채 콧김을 내뿜으며 제자리에서 발굽을 치켜들었다.
산림 사이로 군요가 일제히 움직였다. 원숭이 무리는 나무 꼭대기에서 도약하고, 산양은 고개를 숙인 채 적진으로 돌격할 태세를 취했다. 벌레, 치타, 산 고양이 등의 중·대형 요수의 속도는 더 빨랐다. 허리를 한번 폈다가 움츠리자 이미 숲을 벗어났다.
왕비는 두려움에 눈을 감고 허칠안이 잡은 자신의 손을 꽉 쥐었다.
이와 동시에 허칠안의 머릿속에 신수 승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금 좀 생각을 했네.”
‘이 머리가 그렇게 텅 비었는데 이 추억은 그렇게 불행해?’
허칠안은 비아냥거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신체 통제권을 내려놓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우선 저들을 죽이지 마십시오. 저는 정보를 캐낼 겁니다. 이 요족 무리는 아마 북방 요족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저는 저들의 목표를 알고 싶어요.”
다음 순간, 그는 사지의 주도권을 잃었다.
“사냥감을 살생하면 안 되지.”
그윽한 탄식 소리가 산골짜기에 메아리쳤고, 마치 봄날의 천둥소리처럼 군요의 귓가를 덮쳤다. 동시에 그들은 신체의 통제권을 잃고 분분히 고꾸라졌다.
내달리는 관성으로 인해 그들은 데굴데굴 구르며 앞으로 돌진하고, 산비탈을 구르고,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졌다.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졌다.
“오합지졸들.”
허칠안이 입을 열었다.
“…….”
쓰윽쓰윽…….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거대한 구렁이가 무형의 힘에 압박되어 지면에 붙어 버렸다. 이제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공포가 마음을 장악하자 살육하겠다는 생각이 사라졌고, 그때서야 신체의 통제권을 되찾았다.
거대한 구렁이보다 더 빠른 건 약소한 요수들이었다. 그들은 더 쫄았고, 살육하겠다는 생각을 더 일찍 접었다. 이 덕분에 신체의 주도권을 더 빨리 되찾을 수 있었다.
거대한 구렁이가 신체 통제권을 되찾은 뒤 도망 신호를 보내려는데, 괴상하게도 세로 눈동자에 거꾸로 비친 금신이 사라졌다. 다시 포착했을 때 그 강대한 불문 고수는 이미 곁에 와 있었다.
거대한 공포가 구렁이의 마음속에서 폭발하였다. 구렁이는 심지어 생사 결단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상대가 신마 같은 힘을 지니고 있는데 당신은 그저 개미 한 마리일 때, 목숨을 내던지는 것조차 과욕이 된다.
이 불문의 고수는 무승이면서 동시에 불법을 닦았다. 불문의 두 갈래 길을 그는 모두 수행했다…….
허칠안은 천천히 입을 뗐다.
“본좌가 네게 물을 말이 있으니 성실하게 대답하거라.”
무서운 압박이 쏟아지자 거대한 구렁이는 전전긍긍하며 입에서 사람의 언어를 내뱉었다.
“대사, 말씀하십시오.”
허칠안은 이때 이미 신수와 교체하여 몸뚱어리 통제권을 되찾았기에 물었다.
“너희 북방 요족이 대규모로 대봉 영토를 침입했는데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그는 사실 이미 답을 짐작했다.
“저, 저는 북방 요족이 아닙니다.”
거대한 구렁이가 목소리를 낮추고 대답했다.
허칠안은 물음표 하나가 머릿속에 스쳤고, 뒤이어 거대한 구렁이의 설명을 들었다.
“저희는 만요국의 국민입니다.”
‘만요국 잔당, 국주(國主)가 구미천호인 만요국?’
허칠안은 하마터면 무의식중에 말을 할 뻔했다.
그는 순식간에 만요국에 관한 자료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만요국은 일찍이 남강의 10만 대산을 지배한 요국(妖國)이자 구주 대륙에서 남북 요족 중 남요(南妖) 혈통이다.
국주는 구미천호다.
반보무신(半步武神)이라고 추정되는데 이 정보는 천지회 오호 구성원 리나로부터 얻었다. 그녀는 일찍이 애당초 갑자탕요에서 만요국의 반보무신이 부처를 직접 나서게 만들어 비로소 죽였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후 만요국은 와해되고, 구미천호의 고아인 구미 공주가 잔존 병력을 데리고 도망쳐 장장 오백 년에 걸친 항쟁을 펼쳤더랬다.
‘만요국의 잔당이 어째서 여기에 나타난 거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 요족 공주 역시 이 진흙 구덩이인 초주에 끼어들 작정이라는 걸 의미하는 건가……. 3품 무사가 2품으로 승직하는데 이렇게 많은 거물이 연루되다니. 엇, 경우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허칠안은 매서운 눈빛을 했다.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초주에 은밀히 잠입하여 공주마마께서 진북왕의 혈도 삼천리 장소를 찾으면 일제히 일어나 공격할 겁니다.”
거대한 구렁이는 황급히 대답했고, 전전긍긍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녀 역시 정혈을 빼앗으려고? 만약 오랑캐의 청안부 우두머리까지 가세하면 초주 물이 탁해지겠군. 좋은 점은 내가 혼란한 틈을 타 한몫 챙길 수 있고, 더는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단점도 아주 명확하다. 이들은 좋은 새는 아니다. 누가 정혈을 얻든지 간에 좋은 일은 아니다. 음, 요국 공주의 연락처를 너무나도 알고 싶은걸. 그녀에게 단서가 있는지 없는지 좀 물어보게……. 허칠안아, 허칠안. 이건 무모한 짓이야. 죽어도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거라고.’
허칠안은 이 생각이 스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희 역시 진북왕의 혈도 삼천리 지점을 찾지 못했는가?”
거대한 구렁이가 고개를 저었다.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신수 대사와 소통하더니 주도권을 그에게 넘겼다. 신수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허칠안이 다시 물었으나 방금과 같은 대답을 얻었다.
‘이거, 만요국이 혈도 삼천리 지점을 찾고 있는데 북방 요족 역시 혈도 삼천리 지점을 찾네…….’
허칠안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진북왕은 도대체 어디의 백성을 죽인 것인가.
초주는 가로세로 팔천 리기에 당연히 지역이 광활하다고 하지만, 이 정도까지 은폐하기란 불가능했다.
“대사님, 묻고자 한 건 다 물었으니 착수하시죠.”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신수 승려와 소통했다.
“그들을 보내주게!”
예상 밖으로 신수 승려는 요족을 살육하여 정혈을 빼앗지 않았다.
“왜요? 대전을 앞두고 있는데 팔을 더 보양하지 않게요?”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신수 승려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지난 일이 좀 떠올랐네. 내 수련 경지가 아직 대성하지 않았을 때 만요국이 남강에 군림하였지. 비할 데 없이 강대했네. 그 요국 공주는 아마 나를 알거나 나에 대해 들은 적이 있을 것이네.”
‘맞다. 바로 만요국 잔당이 상백을 폭파시키고, 신수의 단수를 내 몸속에 맡겨 뒀지……. 요국 공주는 무조건 신수를 안다. 하지만, 신수 대사는 기억이 불완전하여 되찾고 싶어 하고. 그해 옛 친구나 동시대 사람을 만나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허칠안은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
“대사님, 요국 공주의 미움을 사길 원치 않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요수를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두면 백성을 잡아먹을 겁니다.”
그는 여전히 이 요수들을 풀어주고 싶지 않았다.
“백성도 생명이고 요족 역시 생명인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신수는 담담하게 반문했다.
‘그건…… 나랑 철학을 논하자는 거야?’
허칠안은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했다.
철학적인 각도에서 출발하자면 신수의 말이 옳았다. 중생은 평등하고 생명에는 당연히 고저와 귀천의 구분이 없었다. 모두에게 목숨은 하나였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허칠안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어떠한 여지도 없이 인류 편에 섰다. 그 역시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생명을 마음속으로 존중하고, 무차별적으로 마구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필요한 상황에서는 우유부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요족이 인류를 학살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신수는 불문 사람이다. 그의 사상은 보통 사람과는 좀 달랐다. 허칠안은 자신의 이념이 수련 경지가 최고봉에 달한 우두머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신체 통제권을 다시 되찾고 침음하더니 말했다.
“나는 너희 공주의 연락책이 필요하다.”
“그건…….”
거대한 구렁이는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안 된다고?”@
허칠안의 눈빛은 칼 같았다.
“공주마마께서는 신출귀몰하십니다. 그녀만이 저희에게 주도적으로 연락할 수 있지요. 그게 아니면 저희는 공주마마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때 사미백호가 자발적으로 입을 열어 이유를 설명했다.
‘듣기에는 구주 버전 스파이 두목 같네…….’
허칠안은 신수 승려가 입을 뗄 의사가 없어 보이자, 차가운 눈으로 모든 요족을 둘러보더니 진지한 얼굴을 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덕을 지니고 계시지. 나는 너희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초주에 잠복해 있는 동안, 인족 백성을 잠식하면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반드시 연기처럼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위협하는 일이 소용 있는지 모르겠네. 정말이지…….’
거대한 구렁이의 차디찬 세로 눈동자에서 기쁨의 빛이 터져 나왔고, 비굴하게 아첨하여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님, 안심하십시오. 저희는 초주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물지 않을 겁니다. 있는 동안에는 야수만 사냥할 뿐, 절대 인족을 학살하지 않을 겁니다.”
모든 요족이 눈썹을 낮게 드리우고 굴복하는 자세를 보였다.
곁에 있던 왕비는 눈동자를 굴리며 허칠안의 옆모습을 주시했다. 조금은 감탄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신비로운 대법사가 수락한 뒤, 요족 대군은 다시 길에 올랐다. 그들은 허칠안과 왕비를 우회하여, 침묵하며 빠른 속도로 행군했다. 마치 방금 패전한 오합지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