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화. 요군(妖軍)이 국경을 넘다 (2)
“잠깐!”
궐영수는 갑자기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양연이 고개를 돌리자 그는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양연, 자네가 왕비마마의 호위에 성공하지 못하여 마마께서 오랑캐에게 납치당하고 현재는 행방이 묘연하네. 회왕께서 아주 분노하셨음에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건 위연의 체면을 봐서지. 하지만 자네가 만약 잘못을 인정하고 군영 밖에서 두 시진 동안 무릎을 꿇는다면 본 공이 전례를 깨고, 자네들이 위병의 출영 기록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해 주겠네.”
궐영수는 이 말을 할 때 입가에 냉소를 머금은 채 숨김없이 도발했다.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류 어사는 노발대발한 나머지 문관의 날카로운 언변을 펼쳐 이 저속한 무사에게 가르침을 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양연의 눈빛에 저지당했다.
돌아서서 떠나는 두 사람의 뒤에서 궐영수의 광기 어린 비웃음이 들려왔다.
“정말이지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는구먼, 지나치다…….”
류 어사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심장병이 도질 것 같았다. 그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경성에 돌아간 후, 본관이 그자에게 지식인의 붓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겠습니다.”
양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가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고 있잖나. 그는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하네.”
류 어사는 깜짝 놀라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양연은 대답하지 않고, 말 등에 올라타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혈도 삼천리는 아마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 까다로울지도 모르네. 허칠안의 결정이 옳았어. 암암리에 북상하여 사절단에서 벗어나는 것 말일세. 그가 만약 아직 사절단에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게야. 그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으로는 궐영수의 올가미에 걸리기 쉽네. 이곳에서 그는 호국공과 진북왕을 이길 수 없어. 결말은 죽음뿐이지.”
갑자기 류 어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이내 모든 감정을 가다듬고 전에 없던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허 은라의 총명함과 지혜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양연은 고개를 저었다.
“단순한 자극 요법은 당연히 소용없지…….”
‘하지만 만약 애당초 주 은라 같은 경우라면, 허칠안이 참을 수 있을까?’
류 어사는 캐묻지 않았다. 그는 양연의 말뜻을 이해한 게 아니라, 벼슬아치의 예민한 직감에 기인하여 혈도 삼천리가 사절단이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성가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지 않고선 호국공이 왜 살기를 띠겠는가?
* * *
“제가 마마께 우스갯소리를 해 드리지요.”
허칠안은 관대한 왕비를 업은 채 산과 들판 사이를 건너다 입을 뗐다.
머리를 두들겨 맞아서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허칠안은 왕비가 소심하고, 겁 많고, 도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뒤에 두 가지는 상관없었지만, 아무튼 그녀는 정말 소심하긴 했다. 음, 그녀는 기분이 나빠지면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는다.
허칠안은 답답하다는 마음에 수다를 좀 떨고 싶었다.
왕비는 그가 양보하자 ‘음’하고 소리를 냈고 아래턱을 치켜들더니 말했다.
“우선은 들어보지.”
“옛날에 개미 한 마리가 있었는데 자신의 다리를 가지고 노는 걸 아주 좋아했습니다. 개미가 하루는 천족충(千足蟲)을 보더니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헐. 이 다리로 1년은 놀 수 있겠네.”
왕비는 몇 초간 어리둥절하더니 그 속의 심오한 이치를 깨닫고는 ‘껄껄’ 웃기 시작했다.
“천족충을 본 적이 없지만, 틀림없이 다리가 아주 많은 벌레겠지. 맞는가? 그래서 개미가 깜짝 놀란 게고.”
“네, 네.”
“‘헐’은 무슨 뜻인가?”
“……놀란 감정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왕비는 문득 모든 걸 깨친 듯 고개를 끄덕여 자신이 배웠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는 허칠안을 용서했다.
허칠안은 그녀를 업고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산골짜기에서 멈췄다.
“무슨 일인가?”
왕비가 물었다.
“오줌이요.”
허칠안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왕비는 침을 뱉더니 그의 등에서 내려와 몸을 돌렸다.
허칠안은 이상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이 여인은 내가 자기 앞에서 오줌을 눌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뭘 생각하는 거야? 양아치 아냐?’
그가 산골짜기 밀림 속을 뚫고 들어가 막 허리띠를 풀고 부풀어 오른 방광을 터뜨리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왕비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와 동시에 허칠안은 먼 곳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포착했다. 소리가 소란스럽고 빽빽했다.
그는 급하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밀림을 뛰쳐나갔다. 그 결과 그는 맞은편에서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울 듯한 표정으로 밀림으로 쫓아 들어가려는 왕비를 마주쳤다.
“허칠안, 헐……! 헐!”
왕비가 소리쳤다.
‘차라리 배우는 걸 좋아하는 왕비가 낫다…….’
허칠안은 입가에 가볍게 경련이 일더니 시선을 멀리 던졌고, 문득 왕비가 왜 이렇게 겁에 질렸는지 알았다.
전방에 한 장(丈) 굵기에 십여 장(丈) 길이의 거대한 구렁이가 있었다. 구렁이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산골짜기로 들어가니 가는 길의 관목이 꺾이고,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거대한 구렁이 뒤에는 2m가 넘는 흑마가 있었다. 흑마는 이마에 뿔이 하나 자라나 있고, 두 눈은 새빨갛고 네 발굽에서는 화염이 피어올랐다. 또 사람 높이만 한 큰 쥐가 있었는데 단단한 근육으로 빽빽한 쥐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보통 말보다 체격이 더 좋은 사미백호(四尾白狐)가 빽빽한 여우 무리를 이끌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산골짜기 양쪽 숲에는 제각기 종류가 다른 동물이 무수하게 숨어 있었다. 원숭이, 산 도깨비, 산양, 호랑이, 산 고양이……. 그리고 허칠안이 모르는 흉수(凶獸)가 더 많이 있었다.
대군이 국경을 넘는다!
“요족이다…….”
허칠안은 즉시 왕비를 뒤로 끌어당기고, 강한 적을 맞닥뜨린 듯 요족 대군을 직면했다.
그는 눈앞의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워 미처 막아낼 수 없었다. 허칠안은 자신이 이런 요족 대군을 맞닥뜨릴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요족이 그를 향해 온 건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자신의 종적이 미정이고, 조심스레 일 처리 했기에 이런 대군에게 추격당할 리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조우는 조우였다.
이때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거대한 구렁이가 길게 울음소리를 내며 멈췄다. 구렁이가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차가운 세로 눈동자로 허칠안을 주시했다.
사미백호, 흑마, 쥐 괴물 등의 우두머리가 잇따라 날카로운 소리나 울음소리를 내어 신호를 보내자 산림에서 각양각색의 포효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멀리 퍼져나갔다.
그런 뒤 이 요족 대군은 멈췄다.
맞은편에서, 밀림 속에서 시선이 새어 나와 허칠안에게로 향했다. 무수한 악의가 해조처럼 용솟음쳤다. 전부 무사의 위기 직감에 포착되었다.
왕비는 깜짝 놀라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 채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허칠안의 팔을 한사코 끌어안았다. 마치 이 남자가 그녀의 유일한 기댈 구석인 듯했다.
허칠안은 머리를 재빠르게 굴려 재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했다.
‘빽빽한 기운, 이 요족들 전부 약자가 아니다. 나 혼자 적진에 뛰어들어 죽이다가는 죽을 것이다. 하물며 왕비를 보호해야 하니……. 나를 목적으로 왔든 아니든 요족의 일 처리 스타일을 봐서는 겸사겸사 손에 들어온 사냥감을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북방 요족? 요족 대군이 초주에 모였군. 이거, 초주에서 대란이 발생하려는 건가?’
“후…….”
허칠안은 가슴을 출렁여 옥석경 표면을 가볍게 눌러 흑금장도와 유가 법술 서적을 쏟아냈다.
그는 한 손으로 왕비를 잡아끌고, 한 손으로는 곧게 뻗은 장도를 든 채 서적을 천천히 입에 물고, 주위의 요족 대군을 둘러보았다. 다소 모호한 목소리가 온 장내에 퍼져나갔다.
“너희 중에 누가 선두 요물인가?”
거대한 구렁이가 차디찬 눈동자로 허칠안을 주시하면서 입에서 사람의 언어를 내뱉었다.
“너는 누구인가?”
‘나를 모르는군……. 나를 겨냥해서 온 건 아니었어…….’
허칠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나는 그저 강호의 무사로 너희와 적이 되길 원치 않는다.”
그는 먼저 자신의 태도를 확실히 밝혔다.
이 시대에는 웃는 얼굴이 부를 가져다주는 걸 중히 여겼다. 때리고 죽이는 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요족의 습성을 잘못 짐작한 게 확실했다. 산림 사이로 한 마디씩 들려왔다.
“그를 먹자, 그를 먹자.”
“아주 강한 원기의 힘이야. 피와 살을 보양하면 되겠군.”
“옆에 있는 그 여인도 아주 신선하고 맛있어 보여. 간식으로 삼아도 되겠어.”
“그를 먹자, 그를 먹어. 악랄하게 착취하자고.”
조수 같은 악의가 대단한 기세로 밀려왔다.
왕비는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그녀는 지금 마치 찬바람 속의 꽃처럼 가련하고 막막했다.
거대한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렸고, 차디찬 눈동자가 점점 먹이를 먹고 싶다는 욕망으로 대체되었다. 그들은 공주의 명령을 받들어 초주에 잠입했기에 나대지 않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이 남자의 원기는 실로 너무 매력적이었다.
‘보아 하니 분쟁을 그치고 서로 편안히 지내기란 글렀군……. 잘 됐어. 신수 승려의 자양제가 왔구먼…….’
허칠안은 탄식하더니 검지(劍指)로 미간 사이를 눌렀고, 입꼬리를 조금씩 벌리며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너희 확실히 나를 먹을 셈이냐!”
미간 사이에서 금칠 한 점이 반짝이더니 재빠르게 온몸에 퍼져나갔다. 찬란한 금빛이 웅대한 뜻을 내뿜으며 모든 요족의 눈에 비쳤다.
“금강신공?!”
겁에 질려 날카롭게 부르짖는 소리가 밀림에서 울려 퍼졌다. 요족은 한순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선두에 있는 요족 우두머리 몇몇이 무의식적으로 후퇴했다.
와르르…….
전방의 요족 대군이 본능에서 우러나온 듯 일제히 후퇴했다. 산림 사이의 요족 역시 마찬가지로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어떤 이는 뒤로 물러나거나 뒤로 뛰어올랐고, 또 어떤 이는 무의식적으로 나무 위를 기어올랐다.
금신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왕비는 경악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방금까지만 해도 서서히 행동을 개시하며 탐욕을 드러내는 요수(妖獸)를 보았는데 이 순간, 마치 상갓집 개처럼 아주 겁을 먹었다.
왕비는 이 광경을 보더니 마음이 서서히 안정되고, 하얗게 질린 얼굴이 혈색을 되찾았다. 그녀는 허칠안의 곁에 있으면 무한히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이건 그녀의 환각이 아니었다. 사실상, 북행한 이래로 이 남자는 시종일관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어 그녀의 두려운 마음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다만 그는 여전히 아주 밉살스러웠다. 그녀를 희롱하고 겨냥하는 걸 즐겼기에 어느 틈엔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느낌을 희석시켰다.
그리고 왕비의 현재 마음속에는 잊을 수 없는 글자가 스쳤다.
“헐!”
모두가 알다시피 이건 놀란 감정을 표현하는 감탄사다.
“금강신공, 너는 불문의 그 파벌이군. 스승이 누구인가?”
거대한 구렁이는 머리를 쳐든 채 입가에 근막을 벌려 아가리를 180도로 쩍 벌렸다.
아주 흉악하게 표현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나약했다. 음식을 섭취하고자 하는 눈 속의 욕망이 두려움과 원한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군요들의 표현 역시 이와 같았다. 그들은 공포가 가져다주는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 후, 갑자기 분노했다. 일제히 앞으로 돌진하여 이를 드러내고 허칠안을 노려보았다.
그들의 사나운 눈에 난폭함과 증오가 번뜩였다. 마치 허칠안이 그들의 족인을 죽이고 그들의 배우자를 빼앗아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