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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69화 (466/712)

469화. 요군(妖軍)이 국경을 넘다 (1)

경국지색의 흰 치마 여인은 가볍게 웃었다.

“자네는 우선 진북왕이 혈도 삼천리를 벌인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도 무방하네.”

얼굴이 흐릿한 남자는 고개를 젓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요 며칠 저는 초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운명을 관찰했지만, 끝내 진북왕이 백성을 대량 학살한 장소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천기가 제게 초주에 있다고 알려주더군요.”

흰 치마의 여인이 중생을 뒤흔들 만큼 요염한 자태를 거두고, 길면서도 곧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침음했다.

“그는 우리와 시간을 다투고 있네. 일단 정혈 정제를 마치면 우리는 아무리 저지하고 싶어도 불가능해져. 그때 가면 모남치를 죽여야만 진북왕이 2품으로 승직하는 걸 저지할 수 있네. 허나 모남치와 그 자식이 같이 있으니 죽이려면 자네 술사들이 직접 나서게.

허, 대기운을 몸에 지닌 자가 원한을 품으면 팔자를 다치게 하는 법이지. 참, 감정은 진북왕의 계략을 안다고 말했던가? 만약 그걸 안다면 그는 왜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거지? 나는 갑자기 감정이 모남치와 허칠안이 같이 가는 일을 암암리에 조장했다는 의심이 드는군.”

백의의 남자가 냉소를 지었다.

“계속 짐작하셔도 됩니다. 그의 계략을 맞히게 되면 천기가 감지하여 감정이 올 겁니다. 제게는 분명히 사라질 방법이 있지요. 공주마마는 이 여우 꼬리를 갖고 싶단 생각을 마셔야 합니다.”

흰 치마의 여인은 역시나 좀 꺼렸고, 더는 감정과 관련된 일을 얘기하지 않았다.

“사흘, 사흘 안에 반드시 진북왕이 백성을 도살한 지점을 찾아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모든 게 기정사실화될 게야.”

흰 치마의 여인이 침음했다.

“내게 방법이 하나 있네.”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술사가 먼 곳의 강산을 조망하며 받아쳤다.

“허칠안이요?”

“그렇네. 아니기도 하고.”

그녀는 미소를 짓더니 육미백호의 유순한 장모를 쓰다듬었다.

“자네는 허칠안의 대기운이 우리를 위해 길을 가리킬 수 있다고 여기지. 이는 확실한 생각이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네. 모두가 위연이라는 사람을 소홀히 하는 것 같군. 그는 유일하게 바둑판에서 감정과 팽팽하게 줄다리기할 수 있는 책사인데 우리는 왜 사절단을 주시하러 가지 않는가.”

백의의 남자는 허 하고 소리를 냈다.

“그가 감정과 팽팽하게 줄다리기할 수 있다는 걸 아신다면, 사절단은 그저 허울이라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저는 지금껏 위연을 경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저는 그의 이 일에 대한 태도를 정확하게 짐작할 수가 없을 뿐입니다. 위연은 국사(國士)이자 보기 드문 인재입니다. 그는 문제를 대할 때 간단한 선악에서 출발한 적이 없습니다. 진북왕이 만약 2품으로 승직한다면, 대봉 북방은 아무런 걱정이 없어질 것이며, 나아가 오랑캐를 숨 막히도록 압박할 수 있을 겁니다.

위연은 몇 년간 조당에서 투쟁하면서 서서히 쇠약해지는 제국을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 진북왕이 승직하는 걸 보길 바랄 겁니다. 하지만 진북왕의 모든 행동이 한계를 건드렸습니다. 위연은 묵인하거나 아니면 암암리에 진북왕을 찌를 테고, 진북왕 자신조차 자신이 없을지도 모르지요.”

백의 술사는 여기까지 얘기한 다음 코웃음을 쳤다.

“그 미련한 자식은 지금 아직도 서행 중입니다.”

흰 치마의 여인이 품속의 육미백호를 살짝 내던지고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군요(群妖)에게 통지하게. 초주로 속히 들어가 패거리를 규합하여 명령을 기다리라고.”

귀엽고 작은 백호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과정에 몸이 부풀어 오르고 털이 뽀글뽀글한 몸뚱어리가 길게 늘어나 삽시간에 한 장(丈) 길이의 거호(巨狐)가 되었다. 몸의 윤곽이 매끈매끈하고 사지가 강하고 힘이 있었다. 뒤에 난 여우 꼬리는 마치 공작이 날개를 편 듯했다.

거호는 네 다리로 미친 듯이 내달리며 평지를 걷는 듯 재빠르게 멀어져갔다.

* * *

허칠안은 서행하는 길에 서늘한 나무 그늘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꿈속에서 그는 경국지색의 절세미인과 침상 깔개 위를 굴렀고, 흰 장포의 젊은 장수가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나아갔다.

“후…….”

허칠안은 눈을 떴다. 나무 그림자가 흔들리고 백반이 어지러웠다. 꿈속의 미인이 그날 밤 잠깐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진 왕비와 서서히 겹쳐졌다.

그는 본인이 너무 오래 교방사에 가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왕비의 매력이 너무 뛰어난 탓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이 여인은 마치 독약 같았다. 한 번 보았는데 머릿속에 계속 기억이 남았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았다.

그는 여기까지 생각까지 미쳤을 때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나무줄기에 기대어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졸던 왕비와 그녀의 평범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허칠안은 갑자기 마음이 얼음같이 맑아지고, 하늘이 무너져 내려도 걱정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종류의 현자 타임이 솟구쳤다.

“저기요, 저기요. 일어나세요.”

허칠안은 왕비를 밀어서 깨웠고, 흐릿하게 뜬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재촉했다.

“점심 식사 전에 다음 도시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저희 가서 식사를 개선하는 김에 오랑캐나 마마 남편의 밀정을 몇 놈 더 죽일 수 있는지도 한번 보지요.”

왕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마마 남편’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아서 눈을 희번덕이고 콧방귀를 뀌었다.

허칠안이 쭈그리고 앉자 그녀는 순순히 엎드려 올라탔다.

왕비는 한동안 도도하게 있다가 그의 목을 감은 채 재빠르게 거슬러 올라가는 풍경을 보지 않고 머리를 움츠린 채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기, 자네 회왕을 이길 수 있나? 그에게 어떻게 맞설 작정인가?”

왕비는 비록 그 당시 순간적으로 드러난 그의 기질에 이끌리긴 했지만, 현실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었고 허칠안이 진북왕에게 어떻게 맞설 셈인지 아주 궁금했다.

만약 허칠안이 ‘단칼에 진북왕을 베어버릴 계획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죽음을 자초하는 바보 같은 일은 하지 말라고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허칠안은 언짢아했다.

“저는 그의 아내를 찌를 작정입니다. ‘너 죽고 나 죽자’지요.”

“?”

왕비는 잠시 망연자실하다가 갑자기 반응이 왔다. 그녀는 버들눈썹을 곤두세우고 주먹을 쥔 채 힘껏 그의 머리를 두드렸다.

땅, 땅, 땅!

그녀는 가는 길 내내 때렸다.

* * *

초주위(楚州衛).

양연은 류 어사를 데리고 군영 밖에 멈췄다. 소위 군영이라고 하면, 통상적인 의미의 장막이 아니었다.

행군할 때 머무는 장막을 제외하고, 각지에 주둔하는 군대에는 전속 병영이 있었다. 보통의 민가와 차이가 없었다.

정상적으로 말하자면, 주성(州城)의 위병(衛兵) 수는 오천에서 육천 명이었다. 변방 주성의 위병 수는 만에서 이만 사이였다.

하지만 초주처럼 변방에 인접한 주성에 진북왕 수하의 증가 폭까지 합치면 위병 수가 삼만 육천 명에 달했다.

이 삼만 육천 명은 진북왕이 단기간 내에 바로 배치할 수 있는 병마다. 초주 각지의 위소에 관해서는 명색이 초주의 군대 통솔자로서 진북왕이 마찬가지로 배치할 수 있지만, 절차를 밟아야 했다.

초주 도지휘사의 인장!

양연과 류 어사는 말등 위에 앉아 한 시진 동안 뙤약볕을 쬐었다. 사타구니 아래의 말은 더운 나머지 코를 킁킁거렸다.

류 어사는 풀이 죽었다. 그는 입술이 갈라진 채 말등 위에 엎드려 맥없이 말했다.

“양 금라, 저, 저희 먼저 돌아가요. 본관은 곧 햇볕에 말라버릴 것 같습니다.”

바로 이때, 위병 한 명이 칼자루를 쥐고 나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도지휘사 대인께서 두 분 들라 하십니다.”

홀가분해진 류 어사는 허탈한 듯 탁한 숨을 내뱉더니 말 위에서 허둥지둥 내려갔다.

* * *

두 사람은 위병을 따라 군영으로 들어갔고, 병영(兵營)을 한 동씩 지나 두 채가 딸린 대원(大院)에 이르렀다.

대원에 들어서니 접견실에 있는 초주 도지휘사, 호국공 궐영수가 보였다.

궐영수는 아주 괜찮은 몸뚱이를 지녔다. 그는 이목구비가 준수했고, 짧은 수염을 길렀다. 다만 눈 한쪽이 멀어, 유일하게 남은 한쪽 눈은 눈빛이 날카롭고 오만했다.

그는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손에는 찻잔을 받치고 있었다. 한쪽 눈으로 양연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위연의 양자 아닌가? 내 군영에는 어쩐 일로 온 게지?”

양자는 수양아들인데 다만 전자는 약간 풍자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양연 같은 안면 신경 마비는 당연히 이런 일로 화를 내지 않는다.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건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궐영수는 뻔히 알면서 일부러 물었다.

“무슨 사건?”

양연은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혈도 삼천리입니다. 저는 초주 위병의 출영 기록을 봐야겠습니다.”

그들이 초주 위병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사절단이 북경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초주성을 먼저 들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는 인접 원칙이었다.

게다가 초위(楚衛) 삼만 육천 병마는 전부 진북왕의 심복이었다.

또한 초주의 주력군이기도 했다.

오랑캐의 혈도 삼천리에 진북왕은 틀림없이 군대를 출동시켜 교전했을 테니, 그렇다면 출영 기록이 바로 증거였다. 군대를 동원하는 건 번거로운 업무였다.

출영한다고 말하면 출영하는 게 아니었다. 상응하는 군수품, 무기 등등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진북왕이 초주성을 통제한다고 해서 꼭 단서를 남길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조사해야 할 건 조사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사절단은 어쩔 수 없이 역참에 머물며 차 마시고 잠이나 잘 수밖에 없었다.

“무슨 혈도 삼천리!”

궐영수는 탁자를 치며 일어났고, 류 어사는 깜짝 놀랐다.

호국공이 성큼성큼 양연 앞으로 걸어오더니 그에게 삿대질하며 심하게 욕을 퍼부었다.

“본 공은 진북왕을 따라 초주를 지킨 지 수십 년이다. 내시 나부랭이 위연의 수양아들이 조사하겠다고 하면 조사하는 건가?”

양연은 대꾸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본 공이 앞장서서 적을 죽이고 변방을 수비할 때 경성에 있는 너희는 아리따운 여인의 침상에 누워 있었지. 지금 달려와서 나한테 한다는 말이 무슨 혈도 삼천리? 퉤, 썩 돌아가서 위연에게 그리고 붓이나 들 줄 아는 지식인 나부랭이에게 알리거라. 본 공을 모함하고, 회왕을 모함하고 싶어도 꿈도 꾸지 말라고.”

호국공 궐영수는 냉소를 지었다.

“바로 지금, 왔던 길로 썩 꺼져라.”

류 어사는 벌컥 화를 냈다. 그는 궐영수를 삿대질하며 비난했다.

“호국공, 저희는 황명을 받들어 사건을 조사하는 것인데 감히 명령을 어기시는 겁니까?”

궐영수는 헛웃음을 지었다.

“류 어사는 경성으로 돌아간 후에 본 공을 탄핵하면 되겠군.”

이렇게나 광적이라니!

류 어사의 볼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수석 수사관도 더욱이 순무도 아니었다. 호국공을 처분할 권리가 없었다.

더욱이 초주에서 상대방과 정면으로 맞서기란 불가능했다. 밑천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경성으로 돌아가 호국공을 모질게 탄핵하는 것뿐이었다.

“가세!”

양연은 그대로 돌아서서 떠날 참이었다.

“…….”

류 어사는 분노가 극에 달한 듯했다. 그는 바깥에서 한 시진 동안 뙤약볕을 쐬느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군영에 들어왔는데 결과적으로는 상대방이 그들에게 매서운 치욕을 안겨주기 위해 고의로 들어오라고 한 셈이 되었다.

그는 사건을 조사하고 싶지만 어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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