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68화 (465/712)

468화. 나는 그가 아주 마음에 들어

신수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적게 잡아도 수십만의 백성이라는 점이네.”

허칠안은 조각처럼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볼 근육에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더니 관자놀이에 핏줄이 하나씩 섰다.

후…….

그는 탁한 숨을 내뱉고 감정을 가라앉힌 뒤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왜 직접 전쟁을 발발하지 않고, 백성들을 도살해야 합니까?”

신수 승려는 온화하게 말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네. 3품은 이미 비범한 자야. 평범한 사람의 생명 정화를 빼앗음으로써 자신을 완전하게 하려면 반드시 평범한 사람의 정혈을 변화하게 해야 하네. 그러므로 그는 정혈을 정제하고 정화할 시간이 필요한 걸세. 예상한 시점에 도달해야만 빼앗을 수 있는 게지.”

‘까놓고 말해서 양적 변화로 인한 질적 변화이니까 수십만 백성의 정혈이 필요한 거군…….’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침음하더니 말했다.

“그래서 전쟁으로는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는 거군요. 적이 그에게 정혈을 정제할 시간을 주지 않을 테니까요. 게다가 이런 일은 당연히 은밀하게 진행해야 하고요.”

이로써 왜 진북왕이 전쟁을 통하지 않고 정혈을 정제했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전쟁 중에 적의 눈을 속이면서 양측 첩자가 활약하여 대규모의 시체를 운반해 정혈을 정제하기에는 어렵다.

그리하여 진북왕은 암암리에 백성을 살육하여 정혈을 정제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겠으나 신비로운 술사 패거리가 꿰뚫어 보고 오랑캐에게 팔아넘겼다. 이로 인해 오늘날 첩보전이 빈번한 현상이 생긴 건가?

신수 승려가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개입을 시도할 수는 있으나 아마 진북왕을 참살할 수는 없을 것 같네.”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사조차 승산이 없는 겁니까?”

신수는 ‘허’하고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그가 2품 승직에 자신이 있는 이상, 그 자체로 보통 3품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네. 대원만과는 실 한 가닥 차이일 뿐이지. 지금 상태로는 기껏해야 한번 다툴 뿐이야. 그를 이기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참살이라니? 3품 무사는 매우 죽이기 어렵네.”

“하지만 대사께서 고분에서는 2품 전봉인 미라를 격파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저 시체일 뿐이잖나. 게다가 도문에서 가장 강한 건 법술인데 전혀 하지 못하더군.”

‘그래서 대사와 미라 모두 산 밖에 난 범이군. 한 놈은 눈이 없고, 한 놈은 꼬리가 없잖아. 흠이 있는 자가 더 대단한 셈이었어…….’

허칠안은 하마터면 얼굴을 가릴 뻔했다.

허칠안은 대화를 마친 뒤,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신수 대사가 이렇게 쓸모없다는 걸 안 이상 어쩔 수 없이 전술을 변경해 목표를 ‘진북왕 참살’에서 ‘진북왕 승직 파괴’로 바꿔야 했다.

첫째, 사건의 발원지를 찾는다. 그곳이 아마 진북왕이 정혈을 정제하는 장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곳을 찾아서 그를 제지하고, 그의 경사를 망가뜨린다.

둘째, 그는 반드시 자신의 신분을 숨겨야 한다. 간밤의 그 남자가 바로 대봉의 허 은라임을 진북왕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셋째, 왕비를 어떻게 안치해야 할까?

첫째 단서는 서구군이다. 우선 그쪽에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좀 봐야 한다. 하지만 서둘러야 한다. 진북왕이 언제 성공을 거둘지 모른다.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가는 길에 계속해서 왕비를 업고 있어야 해. 왕비가…… 이렇게 마음이 넓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 숙부가 나를 속인 건 아니군.’

둘째, 어떻게 신분을 숨기는가? 절대 금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비록 이는 불문의 절학으로, 이 절학을 지닌 무승의 수가 적잖을 테지만, 그다지 안전하지는 않다.

허 은라 역시 금강불패를 다룰 줄 안다. 하지만 허 은라는 마침 북경에 잠입했으니 더는 감시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생기면 진북왕은 조사할 것이다. 절대로 다른 사람의 지능지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

“다행히 신수 승려에게는 또 하나의 피부인 불멸의 몸이 있다. 이건 지금껏 내가 옆 사람 앞에서 드러낸 적이 없기에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 감정은 안다. 신수를 나한테 맡겨둔 요족이 안다. 신비로운 술사 패거리도 안다.

하지만 그들 모두 내게 계략이 있다. 나는 조건이 성숙하기 전에 황급히 내 떡잎을 까지 않을 것이다. 이 역시 옳지 않다. 신비로운 술사 패거리는 내 떡잎을 까보고 싶을 확률이 높지만, 이 전에 그들은 신수 승려를 깨끗이 처리할 방법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 음, 나는 여전히 안전하다.

오히려 나는 이 얼굴을 사용하면 안 되겠다. 이 화는 신년 나이에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탈은 절대 안 된다. 때리자마자 떨어질 것이다. 나의 ‘위장’ 역용은 아직 대성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장 익숙한 사람을 모방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신년, 숙부, 숙모, 영월, 위연 그리고 허영음이다. 차라리 콩알이로 역용해야겠다. 진북왕에게 금강 바비의 대단함을 알게 해줘야겠군. 하하하…….”

허칠안은 어려움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마음속의 울화를 해소했다.

그는 웃고 나니 표정이 차츰 차분해졌고, 곧 목소리를 낮추고 혼잣말했다.

“사실 내가 가장 익숙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지.”

셋째, 왕비를 어떻게 하지?

절대로 진북왕에게 돌려줄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경성으로 데리고 돌아가 몰래 먹여 살려야 한다. 집안에 키우면 안 되고, 그녀에게 또 다른 소원(小院)을 한 동 사줘야 한다.

원래 허칠안의 계획은 북행을 마친 뒤 왕비를 내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진북왕의 만행과 왕비의 과거를 알아 냈다.

허칠안은 왕비를 몰래 숨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 여종들이 성가셔지는데……. 에이, 우선은 생각하지 말자. 기억을 제거할 방법이 있는지 그때 가서 이묘진에게 물어봐야겠다. 도문은 이 방면으로 전문가니까.”

* * *

초주성.

대리사승은 마차를 타고, 포정사사 관아에서 역참으로 돌아왔다.

세 사람은 대당을 지나 내원에 들어와 곧장 양연의 방문 앞에 이르렀다. 그들이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안에서 양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그들이 문을 밀고 들어가니 양연과 진 포두가 탁자에 앉아 초주 팔천 리 지도를 주시하며 아무 말 없이 침음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리사승은 자신에게 차가운 차를 한잔 따라 한 모금 거세게 주입하고 편안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불평했다.

“날씨가 정말 찌는구먼. 하루 외출했을 뿐인데 입이 바싹 마르네. 마차를 모는 마부는 왔다 갔다 하면서 뙤약볕을 쬐었는데도 땀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더군. 역시 그 지역의 풍토가 그 지역 사람을 기른다는 말이 딱 맞네.”

류 어사는 비웃었다.

“사승 대인께서 너무 허하신 거 아닙니까.”

여색을 좋아하는 대리사승은 얼굴을 붉히더니 그를 비난했다.

“풍류야말로 본성을 드러내지. 류 어사처럼 인격이 높고 절개가 굳지 않아서 말이야.”

그는 어사와 같은 고결한 서생이 한편으로는 호색가면서 한편으로는 성인군자인 척한다고 은근히 풍자했다.

양연은 두 문관의 말싸움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가 물었다.

“초주 각지의 공문 왕래는 어떠한가?”

대리사승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 고개를 젓더니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문제없네. 정기적인 공문 왕래 상황을 봤을 때, 오랑캐 침입의 방어를 제외하고는 각지에서 단서를 알아낼 수 없더군. 만약 좀 더 확인하려면 현지 시찰밖에 없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네.”

초주는 가로세로 팔천 리인데 언제 다 가겠는가. 게다가 경험이 풍부한 관리 사회의 베테랑으로서 대리사승은 딱 보면 공문의 진위에 관해 마음속에 계산이 섰다.

진 포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역참 근처가 전부 감시자입니다. 저희가 외출하면 미행당할 겁니다.”

양연은 다시 지도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초주 이북에 원을 그리더니 말했다.

“오랑캐가 변방을 침범하는 규모로 봤을 때 혈도 삼천리는 이 지역에 있지 않을 것이네.”

성지가 무너지지 않기만 하면 마을의 백성들이 살육당해도 조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고작 마을 백성을 약탈하는 정도로는 ‘혈도 삼천리’라는 고사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양연은 생각하더니 또 서구군과 운승주(云勝州)에 원을 그렸다. 이 두 지역 중 한 군데는 서쪽이고 한 군데는 동쪽이었다.

“이 두 지역의 공문 왕래는 정상적인가?”

대리사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네.”

양연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진 포두, 자네 요 며칠 사람을 데리고 초주성 사방을 돌아다니게. 시정에서 정보를 알아내게. 류 어사, 자네는 나와 함께 도지휘사사에 다녀오자고. 내가 호국공 궐영수를 만나야겠어.”

류 어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초주의 어느 산맥.

산세가 가파르고 험준한 절벽 위, 빙빙 묶인 백 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바깥으로 자라난 채 겹겹이 쌓인 나뭇가지를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소나무 아래 암석 위에는 흰 치마를 입은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녀의 고운 머리카락과 치맛자락이 바람에 흔들려 묘사할 수 없는 몸의 곡선을 그려냈다.

그녀의 기질은 변화무쌍했다. 그녀는 때때로 산속의 정령처럼 청순하고 아름답기도 했고 때로는 게으르면서도 어여쁜 모습으로 중생을 뒤흔들기도 하는 절세미인이었다.

흰 치마의 여인은 품에 육미백호(*六尾白狐: 꼬리 여섯 개 달린 흰 여우)를 한 마리 안고 있었다. 육미백호는 가늘고 낮게 울부짖는 소리를 내더니 얌전하고 온순하게 있었다.

이때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공주마마, 산해관을 떠나신 지 벌써 21년이 흘렀는데도 인품과 재능이 여전히 당대 제일이십니다. 국주(國主)께 뒤지지 않아요.”

흰 치마의 여인은 깔깔깔 장난스럽게 웃었다.

“자네는 내 어머니를 본 적도 없으면서 내가 어찌 그녀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가?”

뒤에서 갑자기 백의의 형체가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짙은 안개로 겹겹이 가려져 본 모습을 엿볼 수 없었다.

“구미천호(九尾天狐) 계통은 천지의 정화를 응집하고, 세상의 지혜를 모읍니다. 천호마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겉모습을 하고 있지요.”

백의의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덧붙였다.

“생김새와 영온에 관해 논하자면, 당대에 그 왕비를 제외하고 비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공주마마의 영온은 공주님 자신에게만 속하지만, 그녀의 영온은 누구라도 딸 수 있으니까요.”

흰 치마의 여인이 웃더니 부드러우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야말로 세상에서 유일무이해.”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 육미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나를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백의의 남자가 개탄했다.

“공주마마께서 상백을 폭파하고, 신수를 풀어줬으면 그만이지, 제 성과를 가로채셔서 제가 20년 동안 고생하여 짠 계략이 하마터면 하루아침에 무산될 뻔했습니다. 이번에는 관대히 봐주시길 바랍니다.”

흰 치마의 여인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말했다.

“기사가 대국을 시작하려면, 각자의 능력에 의지하는 법. 내가 관대히 봐주길 원한다면 가능하네. 그 자식의 명언을 나는 아주 좋아해. 등가교환. 자네가 내게 감정이 뭘 꾸미고 있는지 말해 준다면야?”

이목구비가 모호한 백의의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글자의 반을 까발리기만 해도, 감정께서 초주에 나타날 겁니다. 대봉 관내에 그의 적수는 없습니다.”

“대봉의 국운을 자네가 절반 가져갔으니 감정은 더는 그 당시의 감정이 아니네. 두려워할 것 없어.”

흰 치마의 여인이 웃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백의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자식은 자네에게 용기에 불과해. 예전 같으면 나는 그의 생사에 관여하지 않을 게야. 하지만 지금은 나는 그가 아주 마음에 드네.”

“마음에 든다고요?”

백의의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마치 그녀가 이런 말을 내뱉는 게 아주 의외인 듯했다.

흰 치마를 입은 여인은 대답하지 않고, 먼 곳의 아름다운 강산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말했다.

“어쨌든 자네는 진북왕의 2품 승직을 저지하기만 한다면, 누가 정혈을 얻든 상관없잖나.”

“아니요!”

백의를 입은 남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저는 오랑캐 중에서 2품이 나오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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