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66화 (463/712)

466화. 진범 (1)

‘진북왕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포악하구먼……’

허칠안은 무표정으로 계속해서 들었다.

“둘째, 왕비를 구하신 건 큰 공로입니다. 회왕 전하께서는 여러 해 동안 군사를 장악하면서 ‘상벌분명(賞罰分明)’ 네 글자를 가장 중시하셨습니다. 만약 회왕 전하의 줄을 잡으면, 허 은라께서는 분명히 전도유망하실 겁니다. 위연은 대인의 관직을 발탁할 수만 있지만, 회왕은 친왕이십니다. 그는 대인의 작위를 발탁할 수 있지요.

셋째, 사건은 그저 사건입니다. 한 건 처리하지 못한다고 수차례 기이한 사건을 해결한 대인의 명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전도야말로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구태여 자신과 무관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본인에게 영향을 미칠 필요가 있습니까?”

왕비는 말없이 다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는 검은 장포의 밀정을 보지 않은 채, 모든 관심을 허칠안에게 쏟았다.

‘그는 비록 호색가이지만, 일 처리 방법은 올바른 편이야. 절대로 앞길을 위해 다른 사람을 파는 인간쓰레기는 아니라고…….’

왕비는 이 점에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지만, 여전히 조마조마하고 긴장됐다.

어쨌거나 허칠안이 현재 직면한 건 친왕에게 미움을 산다는 부담과 관직 및 작위를 높여준다는 앞길이었다.

‘관료주의는 어느 세계에나 다 있군…….’

허칠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씀이라 저도 믿고 따르게 생겼습니다. 맞습니다. 왕비마마께서는 본래 진북왕의 정실이니 제가 이 때문에 친왕의 미움을 살 필요는 없지요.”

가면을 쓴 검은 장포 밀정의 얼굴에 웃음이 드러났다. 그는 내기를 하던 중이었다. 허칠안이 회왕의 미움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하며, 허칠안은 앞길을 더 신경 쓸 거라는 점에 내기를 걸었다.

한쪽은 지옥이고 한쪽은 도원경이었다. 바보도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알았다.

물론 이 말들을 실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 회왕이 허씨에게 비단으로 수놓은 앞길을 제공하길 원하는지 아닌지는 누가 신경 쓰겠는가.

허칠안은 이 재난을 넘기고 군영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바로 독 안에 든 쥐다. 망기술이라면 검은 장포의 밀정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방금 말한 내용은 전부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회왕은 실제로 상과 벌이 분명했다.

허칠안은 눈에 띄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검은 장포의 밀정을 보면서 나지막한 어조로 말했다.

“제게 하나만 대답해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혈도 삼천리는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검은 장포의 밀정은 가슴이 철렁해서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허칠안, 굳이 조사하겠다면 너를 기다리는 건 파멸뿐이다. 마치 개미 한 마리를 비벼 죽이듯 회왕이 너를 비틀어 죽일 거야. 너뿐만 아니라 네 가족, 네 지인 전부 연좌할 것이다. 만약 그들을 너와 순장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얌전히 나를 풀어주는 게 좋을 것이다.”

검은 장포의 밀정은 말없이 침묵하는 허칠안을 보자 냉소를 지었다.

“네가 나를 죽이면 기껏해야 사람을 죽여 멸구하는 건데 무슨 의의가 있단 말인가? 설마 내 영혼을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말귀를 좀 알아듣고 잘 생각해보아라. 내가 방금 한 말은 여전히 유효하니.”

그는 명색이 정보 요원이었으므로 사람의 마음과 화술을 잘 알았다. 그는 협박과 회유를 결합하여 앞길로 미끼를 삼고, 가족과 벗으로 위협했다.

“맞는 말이네.”

허칠안은 씩 웃었다.

검은 장포의 첩자는 소름이 돋고, 불길한 예감이 솟구쳤다. 그는 상대방을 떠보았다.

“뭐, 뭐라고?”

허칠안이 그의 눈을 주시하며 반복해서 말했다.

“네 말이 맞다고. 나는 정말 영혼을 소환할 줄 알거든.”

그는 말을 마치고 검은 장포 첩자의 눈동자가 갑자기 움츠러드는 걸 보았다. 그는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발악했고, 겉으로 강한 척하며 위협했다.

“허칠안, 나는 회왕 전하의 밀정이다. 네가 감히 나를 죽인다는 건 회왕과 적이 된다는 것이고 좋은 말로는 없을 것이야. 바보인가? 아니, 바보도 너보다는 똑똑하겠지. 탄탄대로를 걷지 않고 굳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성내며 울리던 고함이 뚝 끊겼다.

“시끄러워 죽겠네.”

허칠안은 시체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던졌다. 이 밀정은 눈을 크게 뜨고 쥐 죽은 듯 조용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잘 죽였어!’

왕비는 속으로 남몰래 갈채를 보냈다.

그녀의 마음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다시 허칠안을 보는 눈동자에는 감추기 어려운 흐뭇함이 서렸다.

어느새 그녀에게 허칠안의 이미지가 점점 선명해지고 입체적으로 변해갔다. 허칠안을 향한 그녀의 믿음 역시 커졌다. 이런 변화는 소리 없이 일어나기에 본인은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왕비는 방금 입을 떼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 빨리 떠나자!>

허칠안은 책 한 권을 꺼내 종이 한쪽을 찢더니 기기로 불을 붙였다. 삽시간에 허공에 음풍(陰風)이 불기 시작하고 귓가에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늘의 따뜻한 태양이 온도를 잃었다.

그런 뒤 왕비는 진실함이 부족한 그림자가 푸른 연기가 되어 오는 광경을 보았다. 그 그림자는 그러더니 허칠안 앞, 한 장(丈) 밖의 허공에 떠올랐다.

‘귀신이다…….’

왕비는 놀라서 어리둥절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조금씩 벌렸다.

그녀는 한평생 귀신을 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는 전부 자신이 뇌로 반복해서 망상하며 스스로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지금 진짜 영혼을 보니 머리가 좀 멍하고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심지어 그녀는 도망치는 것도 잊어 버렸다.

허칠안은 왕비가 두려운 감정에 떠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설령 눈치챘다고 해도 지금은 대봉 제일 미인을 위로할 시간이 없었다.

더 중요한 일이 그를 기다렸다.

그는 자신의 손에 죽은 오랑캐 셋과 검은 장포의 밀정을 제외하고도 비명횡사한 병사의 망령을 소환했다.

새로운 영혼들은 눈빛이 멍하고 얼이 빠져 있었다.

허칠안은 검은 장포의 남자를 바라보며 몇 초간 침묵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혈도 삼천리는 어떻게 된 일인가.”

밀정은 굳은 표정과 공허한 말투로 대답했다.

“회왕 전하께서 3품 대원만에 충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생명 정원(精元)으로 무사의 기혈을 증가시켜야 한다.”

이 말은 허칠안과 왕비의 귓가에 우렁찬 천둥처럼 터졌다.

‘혈도 삼천리는 진북왕이 한 짓이었군…….’

이 순간 누군가에게 정면으로 얻어맞은 듯 허칠안의 머릿속에서 웅웅웅 하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사실 이미 예상했다. 혈도 삼천리가 만약 오랑캐의 짓이라면, 명색이 부락 우두머리인 탕산군 일행이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개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저 저상룡이 사정을 모른다는 이유로 이 디테일을 간과하고 이 사건에 여전히 내막이 있다고 여겼다……. 아니, 진짜 이유는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변방에서 수십 년을 주재하던 친왕이, 대봉의 황족이 자신의 사욕을 위해 그를 공경하고 그를 추대하던 백성들을 도살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허칠안은 입술을 떨면서 중얼거렸다.

“용서할 수 없다…….”

그는 차라리 모든 일이 오랑캐가 한 짓이었으면 했다. 각자 진영이 다르기에 만나면 생사를 마주한다. 오늘 상대가 대봉 백성을 도살했으면, 다음 날 우리 쪽에서 군대를 이끌고 오랑캐 부락을 평정할 터였다.

어차피 철전지원수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는 이런 대규모 학살 사건을 빚어낸 자가 대봉의 친왕인 진북왕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백성에게 칼을 휘둘렀는데 그 이유가 고작 2품으로 승직하기 위함이었다.

‘짐승 같은 놈!’

‘회, 회왕이 한 짓이구나…….’

왕비는 입술을 가리고 작게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 지나고 허칠안은 쉰 목소리로 질문했다.

“도살 장소는 어디인가?”

검은 장포의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른다.”

‘모른다라…….’

이 대답은 허칠안의 예상 밖이었다. 서구군이 아니란 말인가? 그쪽은 이미 봉쇄되지 않았는가?

이밖에도 명색이 진북왕의 심복 밀정이 이 일을 모른다는 점은 전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누가 이 일을 아는가?”

허칠안은 마음속의 의혹을 물었다.

“초주 도지휘사 궐영수(闕永修)와 ‘천’자 밀정이 안다.”

검은 장포 남자의 영혼이 말했다.

‘도지휘사 궐영수?’

허칠안은 잠시 침음하면서 이 자의 자료를 회상했다. 궐영수, 초주 도지휘사, 호국공(護國公).

변함없이 세습하는 작위다.

제1대 호국공은 그해 평해왕이었다. 다시 말해서 훗날 무종 황제의 의형제가 된다.

무종 황제는 오백년 전에 불문과 손을 잡고 초대 감정을 해치웠고, 간신을 몰아낸다는 명분을 내세워 황위를 찬탈한 친왕이다.

호국공, 이 맥은 옛 훈귀에서 보기 드문 상록수다. 황실 종친과 사돈 관계를 많이 맺어서 가족 역사상 공주 둘과 군주 넷에게 장가들었더랬다.

궐영수는 대봉 황실의 혈통이다.

“궐영수와 진북왕이 의기투합하여 혈도 삼천리라는 학살 사건을 저질렀다……. 증거를 수집하여 그들을 고발하면, 나는 원경제가 두 사람을 비호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설령 그가 비호하고 싶어도 위 공이 동의하지 않고, 조당 제공들이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조당에 수두룩 빽빽한 제공, 경성의 문무백관은 좋든 나쁘든 아둔하든 총명하든 황제조차 맞서지 못하는 힘이다.

이렇게 몸서리쳐지는 학살 사건이라면, 일단 들춰지기만 하면 경성 백관도 좌시할 수 없다.

허칠안은 영혼을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밀정의 영혼만으로는 진북왕과 호국공을 타도하기에 부족했다.

그는 돌아서서 오랑캐 셋을 쳐다보더니 물었다.

“너희가 진북왕의 밀정을 죽인 이유가 무엇인가?”

왼쪽의 청안부 오랑캐가 대답했다.

“진북왕이 백성을 도살한 장소를 찾아 우두머리에게 보고하기 위함이다.”

중간의 청안부 오랑캐가 이어 대답했다.

“우두머리 역시 2품으로 승직하고 싶어한다.”

오른쪽의 청안부 오랑캐가 마지막으로 대답했다.

“그동안 우리는 진북왕의 밀정과 서로 사냥하여 많은 족인을 해쳤다.”

“왜 진북왕이 백성을 도살한 장소를 찾으려고 하는가?”

허칠안은 멍하니 서 있는 검은 장포 남자의 잔혼을 쳐다보았다.

그는 즉시 요점을 파악했고,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사건 발생 장소를 찾는 건 이 수석 수사관이 해야 할 일이었다. 또한 이는 그가 반드시 찾아야 하는 증거 중 하나였다. 만약 피해자조차 찾지 못한다면, 사건을 수사해나갈 방법이 없었다.

진북왕의 밀정은 사건 발생 지점을 알지 못했지만, 오랑캐는 사건 발생 지점을 찾고 있었다. 이는 혈도 삼천리가 아직 진정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정혈을 빼앗기 위함이다.”

왼쪽의 오랑캐가 대답했다.

허칠안은 다시 중간과 오른쪽의 오랑캐에게 물었고, 같은 답을 얻었다.

매복 공격 사건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오랑캐는 진북왕의 복을 빼앗으려고 두 가치 측면에서 손을 썼다. 첫째, 왕비를 납치한다. 둘째, 정혈을 빼앗는다.

두 번째로 피드백 받은 정보를 통해 혈도 삼천리 사건이 결코 끝나지 않았거나 혹은 진북왕이 아직 큰 성공을 거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게 아니었다면 청안부의 첩자는 이미 군대를 철수했을 것이다.

어쩐지 그가 왕비를 죽이려 할 때 청안부의 고수가 없었다. 예상대로라면 그들은 초주에 잠입해 혈도 삼천리 장소를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북왕의 밀정이 암암리에 오랑캐와 서로 겨루며 사냥하고 있었다.

어쩐지 왕비를 데리러 갔을 때 호송하고 맞이하는 밀정이 없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일만으로도 힘에 벅차 혈도 삼천리를 숨기려 하거나 초주에 잠입한 오랑캐를 사냥하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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