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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65화 (462/712)

465화. 전부 거짓말 (2)

“이는 목적 있는 살인임이 확실합니다. 야만족의 오랑캐가 진북왕 밀정을 죽이고 있어요.”

허칠안이 나지막이 말했다.

왕비는 힘껏 머리를 조아리더니 다시 허칠안 뒤에 기댔다.

“그래서 우리는 왜 서둘러 가지 않는 건가?”

허칠안은 웃으며 반문했다.

“왜 가야 하지요?”

이때 먼 곳에서 맞붙어 싸우던 상대방이 구경하던 남녀가 있다는 걸 눈치챘고, 검은 장포를 두른 남자가 소리쳤다.

“자네군. 속히 삼황현으로 돌아가 지원을 요청하게. 자네의 발걸음이라면 반주향만에 돌아올 수 있을 게야.”

그는 용의주도하게 깜짝 놀라며 기뻐하는 말투로 오랑캐 세 명이 자신과 허칠안이 서로 아는 것처럼 착각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을 들은 오랑캐 셋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그중 한 명은 바로 후퇴하고는 더 이상 검은 장포의 밀정을 포위 공격하는 데 개입하지 않았다. 그는 돌아서서 허칠안과 왕비를 목표로 삼았다. 죽여서 멸구하고 지원병의 도착을 차단할 심산이었다.

검은 장포의 밀정은 이 광경을 보더니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오랑캐가 찍어 내린 장도를 피하는 동시에 연검(軟劍)을 휘둘러 상대의 팔을 붙들더니 갑작스레 잡아당겼다.

그 오랑캐 팔소매가 실오라기로 변했다. 푸른색 팔에는 각질이 한 층 덮여 있었는데 뜻밖에도 연검에 의해 벗겨졌다.

그는 즉시 물러서서 아픈 팔을 흔들었고, 고개를 돌려 오랑캐 언어로 소리쳤다.

“그 두 사람을 얼른 해결해. 우리 둘로는 그를 죽일 수 없다고!”

멸구를 책임지는 오랑캐는 대답하더니 속도를 높였다. 그가 갑자기 크게 무어라 외치더니 발밑에서 쾅쾅 하는 소리와 함께 뜻밖에도 십여 장(丈)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마치 매가 공중에서 내려와 야생 토끼를 잡는 것처럼 손에 쥔 장검으로 앞을 확 베었다.

하지만 명색이 오랑캐의 목표인 허칠안은 얼이 빠진 듯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그의 뒤에 있는 여인은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높은 데시벨로 비명을 질렀다.

‘흥, 어리석은 오랑캐 같으니라고…….’

그 오랑캐가 점점 멀어져가는 걸 보면서 검은 장포의 밀정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그의 유인책이 먹히다니, 어리석은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한 놈을 따돌린 뒤 그는 부담이 많이 줄었다. 더 이상은 도망치기 어려운 처지가 아니었다. 관도를 따라 20리를 더 가면 바로 군영이다. 그는 군영에 도착하면 안전해진다.

먼 곳의 저 재수 옴 붙은 자식은 그를 위해 죽겠지만 가치 있게 죽는 셈이다. 그때 가서 군대를 이끌고 청안부 첩자 세 명을 토벌하여 그의 원수를 갚아주면 된다.

이때 검은 장포의 밀정과 청안부 오랑캐 두 명이 교전을 벌이는 중에 낭랑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울렸다. 오랜 전투 경험이 있는 그들은 듣자마자 강철 칼이 부러지는 소리임을 알아챘다.

‘무슨 일이지…….’

쌍방이 약속이나 한 듯 여지를 좀 남기고 재빠르게 먼 곳을 힐끗 보았다. 그들이 본 건 눈이 휘둥그레지는 광경이었다.

먼 곳의 그 남자가 그 순간 금빛 찬란한 금신으로 변했다. 그는 여전히 우뚝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높이 뛰어올라 강철 칼을 휘두른 그 오랑캐는 그 순간 이미 땅으로 떨어져 경악한 얼굴로 손에 쥔 강철 칼을 쳐다보았다.

“불문 무승?”

청안부 오랑캐는 부러진 강철 칼을 손에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왕비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건 푸른 두피였다. 아니다, 금색 두피였다.

‘그, 그가 머리카락이 없었어…….?’

이 순간 여정 중의 수많은 의혹이 풀렸다. 그는 머리 위의 담비 모피 모자를 여태껏 벗은 적이 없었다.

그는 밥을 먹든 잠을 자든 목욕하든 늘 모자를 벗지 않았다.

그가 자주 하는 일이 바로 한 손으로 모자를 고정하는 것이었다.

“답이 틀렸으니 벌칙은 죽음이다.”

허칠안은 정색하고 오른팔을 내밀어 청안부 오랑캐의 목덜미를 졸랐다.

오랑캐의 눈빛에는 공포가 가득했고,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목덜미를 조르는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악했다.

그러다 모든 발악이 순식간에 멈췄고, 손발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불문 무승!”

검은 장포의 밀정을 포위 공격하는 오랑캐 둘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였다. 그들의 동료는 마치 지푸라기 한 가닥처럼 약하기 그지없었다.

이 순간, 그들은 불문에게 지배당했을 때의 공포가 떠올랐고, 그해 산해관전역 때 볏짚처럼 목숨을 날린 족인들이 떠올랐다.

‘불문 무승? 아니다. 무승은 이런 옷을 입지 않는다. 그가 방금 한 말에는 중원 억양이 짙게 배어 있는데…….’

검은 장포의 밀정은 마음이 동요하였고, 본능적으로 분석을 펼쳐 유용한 정보를 뽑아냈다.

“도망쳐!”

오랑캐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돌아서서 한 놈은 북쪽으로, 한 놈은 남쪽으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갔다.

“마마께서는 여기에 가만히 계세요. 죽이고 난 후에 데리러 돌아오겠습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돌려 당부했다. 뒤이어 그는 왕비의 눈이 자신의 머리통을 주시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기분이 불쾌해진 것 같아…….’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금색 잔영으로 변해 추격했고, 오랑캐 둘을 처치한 뒤 그들의 시체를 들고 돌아왔다.

이때 검은 장포의 밀정은 가지 않고 먼 곳에서 관망했다.

허칠안은 이 모습을 보더니 시체를 처리하는 틈을 타 슬그머니 품에서 종이를 집었다. 그는 기기로 불을 붙여 망기술을 시전하는 순간, 눈을 감고 청광이 흩어지는 바람에 검은 장포의 밀정이 놀라지 않게 했다.

“귀하께서 나서서 도움을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귀하께서는 불문의 그 장로님의 제자이신지요?”

검은 장포의 밀정은 자발적으로 가까이 다가와 상대를 탐색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는 허칠안을 보자 황급히 덧붙였다.

“방금은 상황이 긴박하여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고승께서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쩔 수 없다는 한마디로 홀가분하게 넘어가는 건가? 내가 만약 보통 사람이라면, 지금쯤 머리통이 이미 두 동강 났을 거라고…….’

허칠안은 손을 들더니 단도직입적으로 신분을 밝혔다.

“본관 허칠안, 북경으로 가서 혈도 삼천리 사건을 조사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검은 장포의 밀정은 표정이 굳어졌고, 가면 아래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정말 허칠안이라고?!’

그는 방금 머리가 번뜩이면서 하나의 추측이 떠올랐다. 정보에 따르면 허칠안은 불문과 두법하다가 금강불패 신공을 얻었다.

이 자는 중원 억양을 지니고 있고, 옷차림새도 불문 사람 같지는 않았기에 그들이 줄곧 암암리에 찾던 수석 수사관 허칠안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생각이 잇따라 떠오르는 사이, 그의 시선이 평범한 자태의 여인에게로 옮겨 갔다. 그는 밀정의 직업적 소양에 기인하여 본능적으로 그녀의 신분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

‘생각한 대로 그는 홀몸으로 북상하여 사건을 조사하는데 왜 곁에 여인을 한 명 데리고 다니지? 도중에 구한 여인인가? 만약 그렇다면 곁에 데리고 있지 말아야 한다. 사건 수사에도 불리하고 여인의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다. 설, 설마 왕비?!’

검은 장포 밀정의 머릿속에 광채가 언뜻 비치더니 대담한 추측이 스쳤다.

상부에서 전해 온 정보에 따르면 저상룡이 도망치기 전의 대응 조치는, 왕비가 얼굴을 역용했고 기운을 차단하는 법기를 휴대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허칠안이 피습당한 후 사절단을 이탈해서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최근에 변방을 봉쇄했으나 오랑캐 고수 네 명의 행적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온갖 생각이 떠오르는 사이 허칠안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녀가 바로 그대들의 왕비마마요.”

왕비는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깨문 채 다소 실망스럽고 슬픈 표정으로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렇게 나를 팔아넘기다니…….’

‘뜻, 뜻밖에도 이렇게 인정하다니……. 정말 왕비군…….’

검은 장포 밀정의 마음속에서 더할 나위 없는 설렘이 솟구쳤다.

왕비를 찾았다. 그가 찾았다. 그는 엄청난 공을 세울 것이다!

‘비록 그가 왕비를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그는 왕비를 구하고 홀로 가는 걸 택했다. 목적은 왕비로 회왕 전하를 협박하려는 것이다…….’

검은 장포의 밀정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는 기쁨과 감격을 적당히 드러내더니 웃으며 말했다.

“허 대인, 왕비마마를 찾아 주어 감사합니다. 회왕 전하께서 반드시 사례하실 겁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몇 가지 질문을 드리지요. 솔직하게 대답하면 왕비마마는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왕비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두 남자와 멀리 떨어졌다. 그녀는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입술을 오므렸다.

검은 장포의 밀정은 몇 초간 침묵하더니 말했다.

“허 대인, 말씀하시지요.”

“혈도 삼천리는 어떻게 된 일입니까?”

“혈도 삼천리?”

검은 장포의 남자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망연하게 말했다.

“저는 혈도 삼천리가 뭔지 모릅니다. 차라리 이렇게 하시지요. 허 대인께서 저를 따라 함께 군영으로 가 우선은 왕비마마를 안전하게 두시는 겁니다. 그런 뒤 도울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시지요. 저희는 반드시 전력으로 협조할 것입니다.”

허칠안은 차분하게 그를 쳐다보면서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

“군영에 돌아가면 저는 궁지에 몰린 쥐가 되겠지요. 맞습니까?”

표정이 살짝 변한 검은 장포 밀정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허 대인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인은 폐하께서 칙명으로 지정한 수석 수사관입니다. 소직은 대인을 모시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그는 허칠안의 신분을 강조함으로써 ‘조당에서 임명한 관리는 감히 해칠 자가 없다’는 착각을 일으켜 오도하려 했다.

허칠안은 탄식하더니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허나 그쪽이 진실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눈에 있는 망기술로 다 보고 있습니다.”

검은 장포의 밀정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위험에 대한 무사의 직감으로 본능적으로 후퇴하더니 내친김에 연검을 휘둘렀다.

다음 순간, 허칠안이 그의 목덜미를 졸랐다.

상대방의 강력한 손목 힘은 검은 장포의 밀정이 상대와의 실력 차이를 깨닫게 했다. 그는 경험이 풍부한 정보 요원이었으므로 위기를 맞닥뜨렸다고 해서 정신을 못 차리거나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반대로 여러 해 동안의 훈련으로 위기의 순간 오히려 점점 더 냉정해졌다.

“허 대인,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대인께서는 혈도 삼천리 사건을 조사해야 하면서도 회왕 전하의 미움을 살까 봐 두려우시겠죠. 소직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굴지 마시길 권합니다. 대인께서 아셔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왕비마마는 오랑캐에게 납치당하지 않았지요. 이 일은 숨길 수 없습니다. 허허, 그 이유는 대인께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를 믿으십시오. 왕비마마께서 오랑캐 손에 들어간다면 회왕 전하께서는 결국에 알 수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인께서 왕비마마를 구해내셨지요. 사후에 조사하여 대인께서 사절단을 이탈한 시점과 왕비마마가 납치당한 시간이 일치하기만 한다면 이걸로 충분합니다. 회왕 전하께서 누군가와 맞서고 싶으시다면 증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상대를 적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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