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63화 (460/712)

463화. 알릴 수 없는 일

이튿날, 희미하게 먼동이 트고, 허칠안은 세수와 양치질을 마쳤다. 그는 마음속에 한이 맺힌 채아의 시선을 받으며 아음루를 나섰다.

지금은 이미 늦은 봄으로 날씨가 따뜻했고 정오에는 심지어 좀 찌는 듯했다. 이때쯤이면 오입쟁이들이 찬바람에 덜덜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허칠안은 큰 거리를 따라 유유자적하게 객잔 방향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전방에 무장한 병사들이 나타났다. 이끄는 자는 무장 장군이 아니라 검은 장포를 두르고 가면을 쓴 남자였다.

허칠안은 검은 장포의 남자에게 몇 초간 시선이 머물렀을 뿐,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시선을 옮겨 상대방과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잠깐!”

뒤에서 검은 장포 남자의 목소리와 고삐를 조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예리하다고?’

허칠안은 돌아섰고, 얼굴에는 저절로 경계심이 서렸다. 그는 공손하게 읍을 올리며 말했다.

“대인, 저를 부르셨습니까?”

검은 장포의 남자는 말머리를 돌리고 높은 곳에서 허칠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자네는 어느 인사인가? 통행증 있는가?”

“있습니다.”

허칠안은 자신의 가짜 신분을 말했다.

검은 장포의 남자는 다시금 물었다.

“무술을 연마한 적이 있는가?”

허칠안은 눈을 내리깔고 순종적인 자세로 대답했다.

“소인은 무도에 천부적인 자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19살 때는 이미 연정 전봉이었지요. 다만 연기경은 확실히 힘들더군요. 게다가 여색이 마음을 움직이고 또 혼인할 나이가 되어…….”

그는 다소 득의양양하면서도 유감스러워하는 감정을 적절하게 드러냈다.

검은 장포의 남자는 그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머리를 돌려 군대를 이끌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후…….”

허칠안은 점점 멀어져가는 군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한 기분이 되어 《천지일도참》의 축력(蓄力)을 거두었다. 이는 그의 기운을 내부로 무너뜨리고 수축하게 할 수 있었다.

“헤헤, 뭐라고 그랬더라. 무능한 사람만 있을 뿐, 쓸모없는 기능은 없다인가. 나는 자신을 감추는 데 서툰 무사의 약점을 완벽하게 해결했다. 단점은 힘을 비축하고 발산하길 기다렸다가 결국에는 발산하지 못하면 아주 고통스럽다는 거지…….”

남자들은 이런 고통을 다 이해했다.

“이 자식 옷차림이 이상하던데, 아마 자료에 쓰여 있던 진북왕의 밀정이겠지? 진북왕의 밀정이 삼황현에 출현했군. 허……. 그들은 역시나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나를 찾고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찾고 있을 수도 있다.”

사실 야경꾼은 원경제의 밀정이다. 그러므로 야경꾼이 편제되어 있고 조정의 봉록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진북왕의 밀정은 진북왕의 ‘사병’에 속한다.

그들은 북경을 나서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설령 조정의 흠차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양보해야 했다.

그들은 진북왕만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진북왕의 심복으로서 틀림없이 아주 많은 내막을 알고 있겠지. 내가 구태여 혼자서 쓸데없이 추측할 필요가 있나. 이 사건은 운주 사건과 상백 사건과는 다르다. 세밀하고 차근차근 분석할 필요 없이 아주 명확한 목표가 있다. 혈도 삼천리의 진상 규명. 그리고 이런 대규모의 살육은 숨기지 못한다. 이는 내가 이전 사건처럼 하나씩 단서를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직접 그를 잡아서 모진 고문을 하면 된다. 만약 상대방이 악인이라면 죽인 다음에 영혼을 부르면 된다…….”

* * *

그는 잠시 머무는 객잔으로 돌아왔다. 일찍 일어난 손님은 이미 1층 대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고,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싶지 않은 손님은 심부름꾼에게 아침밥을 방 안으로 가져다 달라고 분부했다.

여기에는 당연히 쥐만큼 담이 작은 왕비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녀는 허칠안이 돌아오기 전에 어떠한 남자도 자발적으로 방으로 들이지 않을 것이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을 것이다.

허칠안은 수일을 함께 지내다 보니 이 점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안정감이 없는 여인이었다. 인생 전반부의 경험에서 비롯된 듯했다.

허칠안은 객잔 심부름꾼에게 일각 후 위층으로 아침밥을 가져다 달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그는 계단을 따라가 왕비의 방문 앞에 이르렀다. 그가 귓바퀴를 움직이니 방안에서 가벼운 숨소리가 포착됐다.

‘아직 자고 있군…….’

그는 손바닥을 문에 대고 기기로 빗장을 조종하여 방문을 열었다.

* * *

침상 위에 왕비가 몸을 옆으로 기울인 채 단정한 자세와 평온한 얼굴로 자고 있었다.

이때의 그녀에게서는, 비로소 왕비의 의용이 좀 보였다.

허칠안은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방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는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릿속으로 사건을 복기했다.

[혈도 삼천리 사건]

장소: 서구군(애매함)

살수: 불명

목적: 불명

[왕비 피습 사건]

장소: 북상하는 도중

살수: 북방 오랑캐, 북방 요족

목적: 진북왕의 2품 승직을 저지하고 왕비의 몸(영온)을 탐한다.

“현재로선 이 두 사건에는 실질적인 연결고리가 없다. 아마도 진북왕이 2품으로 승직하려는 걸 오랑캐가 알고 이 기회를 틈타 소란을 피우고 시선을 끌어 진북왕이 마음대로 초주를 떠나지 못하게 한 뒤 암암리에 사람을 파견해 매복시켜 왕비를 납치하려 한 것이다.

진북왕은 초주의 군대 통솔자로서 초주의 군사 대권을 장악하고 있다. 소환하지 않는 이상 경성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원경제는 같은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온 아우가 2품으로 승직하는 데에 찬성하는 태도를 고수하는 듯하니, 그를 경성으로 불러들이는 건 어렵지 않다. 따라서 오랑캐가 변방을 침입할 동기는 설명이 된다.

혈도 삼천리 사건 역시 이 시기에 저지른 것인가? 하지만 4품 고수 넷과 부락의 우두머리는 이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 더 재미있는 건 명색이 부장군인 저상룡 역시 이 일을 모른다. 음, 오랑캐의 어느 강자가 했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으나 유출되지는 않았다. 신비로운 술사 역시 여기에 참여했는데 그는 또 무얼 꾀하고 있을까?”

그는 생각하다가 구리거울을 통해 왕비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는 모습을 보았다.

“깼습니까?”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왕비는 하품을 했고 그에게 대꾸하지 않은 채 세면도구를 챙기고 침상 옆에 쭈그리고 앉아 세수하고 양치했다.

그녀는 다 씻은 뒤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냄새가 고약해 죽겠어. 온몸에 분 냄새가 풍기잖아. 어떤 이들은 조만간 여인 뱃가죽 위에서 죽을걸.”

‘지금 그쪽 모습은 마치 계집질하러 나간 남편을 통제하지 못하는 한 많은 부인 같아…….’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물론 그저 그의 마음속으로 조롱한 것뿐이었다.

왕비는 분명히 그가 계집질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왕비가 신경 쓰는 부분은, 자신이 어젯밤에 그녀를 내팽개치고 나가서 놀아나는 바람에, 그녀 혼자 객잔에 남겨져 오랫동안 두려움에 떨었다는 사실이었다.

“좀 더 주무시지 않겠어요?”

허칠안이 제안했다.

“한 시진 후에 저희 출발할 거예요. 서쪽 서구군으로 갑니다.”

“일은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가?”

왕비는 깜짝 놀랐다.

“일은 이미 기루에서 다 처리했어요.”

허칠안은 경박한 웃음을 지었다.

야경꾼의 첩자는 비밀이라 누설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해롭지 않은 왕비라고 해도 허칠안은 그녀에게 이 일을 알릴 수는 없었다. 만일 알린다면 첩자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왕비가 해롭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부분을 폭로할까 봐 무섭지 않은 것이다. 생각건대 왕비의 얄팍한 꾀로는 이 점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퉤…….’

왕비는 황당한 얼굴로 욕을 내뱉었다.

* * *

경성, 교방사.

부향은 나른한 자세로 일어난 뒤 여종의 시중을 받으며 세수한 다음 양치질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는 거울을 보고 화장하더니 갑자기 명치를 누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다음 순간 얼굴빛이 정상적으로 회복된 채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너 먼저 나가렴. 나는 좀 더 자야겠다.”

수행 여종은 좀 이상했지만, 별다른 말 없이 고분고분 방을 나갔다.

사람이 멀어져가자 부향은 침대 밑에서 여우 머리 향로와 아주 까만 향을 꺼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한 가닥 잘라 칠흑같이 까만 향에 붙인 뒤 향에 불을 붙이고 향로에 꽂았다.

부향은 공손하게 향로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무릎을 꿇은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칠흑같이 까만 향은 아주 빠른 속도로 다 타 버렸고, 재가 가볍게 탁자에 떨어지더니 저절로 모여 짧은 글자 한 줄을 이루었다.

<북경의 일이 마무리되면 그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이 글자를 본 부향의 표정이 알 수 없이 격해졌다. 그 표정에서는 괴로운 나날을 견뎌낸 기쁨이 엿보였으나, 그녀의 눈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감춰져 있었다.

* * *

초주성.

사흘간 길을 재촉한 덕에 사절단은 진북왕이 파견한 오백 명의 군대의 호송하에 초주성에 도착했다.

대봉의 13개 주(州) 중에 핵심 주(州)의 성(城)은 통상적으로 지역 중앙에 위치하는데 유독 초주만 달랐다. 초주는 국경에 인접하여 북방 오랑캐와 요족을 직면했다.

북경 백성들은 진북왕이 초주성에 주재하며 지키고 있기에 북방 오랑캐의 침입에도 수십 년간 끄떡없을 수 있다고 종종 얘기했다.

역사적으로 초주성은 두 번 무너진 적이 있다.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두 번이나 겪었다.

하지만 진북왕 세대에 이르자 초주성 부근의 비바람이 순조로워졌다. 오랑캐 기병은 초주성 주변 100리 내에서 말썽을 부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구역은 북경 최정예 군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리사승은 마차의 발을 젖히고 우뚝 솟은 성벽을 조망했다. 성벽 위에는 복잡하고 기이한 진문(陳紋)이 가득 새겨져 있었는데 성벽 모퉁이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성가퀴 위에는 사천감이 연구·제작한 화포, 상노 등 살상력이 어마어마한 법기가 세워져 있었다.

“《대봉지리지·초주지》에 보면 초주성의 성벽에 진법이 가득 새겨져 있다고 나오네. 벽체가 견고하여 3품 고수의 습격도 막아낼 수 있다고 하더군. 정말 백문이 불여일견일세.”

대리사승이 개탄하며 말했다.

대봉 변방의 주요 도시는 전부 비슷한 진법을 새겨 그려 방어를 강화하였다. 사천감은 백 년마다 모든 술사를 불러 모아 진법을 수리하고 보완해왔다.

“게다가 진북왕이 주재하며 지키고 있으니 초주성은 난공불락이지요.”

류 어사가 맞장구를 쳤다.

사절단이 성문 입구에 도착하자 이미 오랫동안 공손히 기다리고 있던 십여 명의 관원들이 보였다. 가장 앞장선 자는 붉은 장포에 가슴까지 기른 수염, 수척한 외모의 소유자로, 그에게는 지식인의 기품과 국경 관원의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다.

초주 포정사 정흥회(鄭興懷)였다.

“정 대인, 경성을 떠난 지 이미 3년이 되었구려.”

류 어사는 크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정흥회와 아주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정 포정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엄숙한 얼굴에 약간의 미소를 짜냈다. 그들은 한바탕 인사를 나눈 뒤 사람들을 이끌고 초주에서 가장 큰 역참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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